인성 N 인권
인성(人性)이 먼저인가 인권(人權)이 우선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인간의 기본 성품으로서 지켜야 할 인성과 살아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개인적 권리로서 인권은 양면의 동전 같기도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도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어린 아이와 함께 길을 가는데 엄마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고 있었다, 그 엄마는 얼른 아이를 일으키면서 “이 나쁜 돌멩이야! 하필이면 우리 아이를 왜 다치게 하냐?” 그리고 아이가 보도록 그 돌멩이를 마구 때리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엄마는 또 이어 “아이구 귀한 내 새끼! 돌멩이 나쁘지?” 라고 다시 한 번 아이를 부둥켜안으며 너스레를 떤다. 어디선가 한번 쯤 본 듯한 장면일 것이다.
언젠가 시내버스 안에서 엄마와 어린 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아이가 칭얼대며 소리 내어 운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어 보지만 막무가내이다. 다른 승객들이 말은 없지만 바라보는 눈빛은 불편한 기색이 역역하다. 그러한 상태가 30여 분간 계속되는데 엄마는 표정이 별로 심각하지 않다. 버스 안의 승객들을 향하여 “나만 자식이 있나요? 아이가 좀 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 라고 말하는 듯하다.
같은 경우로서 이웃 나라 일본의 엄마들은 다르다고 한다, 길 가다가 돌멩이에 넘어진 아이에게 엄마는 돌멩이보다는 아이를 나무란다는 것이다. “네가 미리 조심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아이가 보채면 곧바로 엄마는 승객들을 향하여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음 정류장에서 무조건 하차한다고 한다.
서양 사회에서는 아이가 혼자 일어서도록 가만히 지켜보면서 다친 부분의 유무를 살펴볼 것이고,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칭얼대는 버릇은 아예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다른 침대를 사용하며 독립심을 키우며 사는 문화의 덕분이리라.
얼마 전, 뉴스 방송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왕족의 DNA가 있으니 조심하시오” 라는 등의 내용으로 수십 차례 협박성 민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부모 아래에서 보고 듣고 자란 아이는 실제로 현대판 왕족으로 착각하게 되고, 담임 선생님을 보모 또는 돌봄이 정도로 여기었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교사들이 학생들의 눈치만 살피는데 급급하다 보면 어린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가 대단한 줄로 여기게 될 개연성도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부모들의 과보호 하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한 기본 틀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본 인성에 문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부모로서 어린 지식에 대한 애절하고 각별한 관심과 사랑이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생각의 폭과 방법이 문제가 될 것이다. 부모자식 사이에 발생하는 측은지심은 현대뿐만 아니고 고대에서부터 거론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품고 30세에 입신한다. 라고 제자들을 가르쳤고 실제로 공자는 소년기를 홀어머니와 살면서 생계가 어려워 상가(喪家)를 전전하며 살다가, 벼슬에 대한 욕구에 따라 15세에 이르러 학문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0세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노나라에서 대부 벼슬을 받기도 하였으나 문란한 정치 현실을 개탄하면서 관직을 포기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전념한다.
그런데 자신의 친자식을 가르치는 부분에서는 고민을 하였다. 아무래도 남의 자식과 차별을 두어 더 혜택을 주고 싶고 꾸중할 때에도 다른 자식들과 다르게 관용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공자의 생각은 현대 부모들의 생각과 좀 달랐다. 오히려 자신의 자식에 대하여 더 가혹하게 가르치기 위하여 혈육관계가 전혀 없는 다른 친구에게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내 자식에 대한 편협된 애정이 오히려 장래를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현대의 부모들은 왜 모르고 있을까. 모른다기보다는 외면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현대의 교육환경은 고대보다 수준이 높아졌는데도 왜 그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전통적 가족주의에게 죄를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문화에서 최초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수렵이동 생활에서 농업정착 생활로의 시작이다. 학자들은 이를 제1물결 또는 농업혁명이라 불렀다.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는 일손이 더 필요하게 되고 그 중심은 혈연적 가족이 충당한다. 농지도 점점 넓어지고 가족들도 늘어나게 되면 질서유지의 기능도 대두된다.
특히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지형은 산과 평지가 뒤섞여 있는 형태이므로 대단위의 농지와 마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혈족 중심으로 오밀조밀 살아가는 전통문화가 자리잡아 왔다고 볼 수 있다. 농지의 확대를 위하여 식구들이 먼저 나서야 했고 늘어나는 가족들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어른의 역할도 필요했다. 따라서 최고 연장자는 자연적으로 지도자 위치가 되어 그 아래 구성원들은 무조건 따라야 했다. 가부장(家父長)제도 정착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부장의 가족중심 사회는, 고대중국 주나라 정치체제에서 시원을 찾아볼 수 있고 주왕을 천자로 최상위에 두고 각 지방에는 친족을 제후로 분봉(分封)하여 공(公)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분할 통치의 동양최초 봉건(封建)제도 근간을 만들었다. 천자는 모두 혈연적 관계인 제후들을 자식으로 사랑을 베풀고 제후들은 천자를 부모로서 효를 다 함으로서 충성의 효과를 유도했던 것이다. 각 제후들은 관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들은 제후를 부모처럼 섬기면서 충성을 담보하였던 것이다.
동양봉건제의 핵심은 혈연을 중심으로 가족 내부, 백성과 제후, 제후와 천자 사이에서 효성과 함께 충성을 유도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치체제이다. 그 사이에서 교육이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유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스승과 제자라는 위계가 만들어진다.
스승은 부모처럼, 제자는 자식처럼 이라는 또 다른 가족주의적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를 하나로 묶으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되는 것이다. 효와 충을 통한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하여 정치적 이데올로기화 함으로서 가부장제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1945년 해방 이전까지도 조선왕조가 지속되었고 조선은 정통한족 명나라 유학이념을 숭상하여 명 황제를 주군으로 섬겼다. 그리하여 조선조 500년간 가부장제와 군사부일체 가 전통으로 뿌리박혀 왔다. 그러한 결과 해방이후 21세기 현재까지도 한국 사람들의 기본 정서는 유교적 질서의식의 잔재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직도 지방마다 향교와 서원이 보존되고 있고 그 내부에는 유명 성씨의 벼슬과 가문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 한국 사람들의 바탕에는 유학 또는 유교의 가르침이 녹아 있고 그 핵심은 인(仁)과 덕(德)을 갖춘 효(孝)와 충(忠)이었으며 그 결과가 인성(人性)으로 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인성이 최고의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면서 한국사회의 전통으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얼마 전 뉴스거리로 관심을 끌었던 기사를 보면, 자동차 뒤 유리면에 “이 차에는 오늘 탄생한 신생아가 타고 있어요” 라는 문구가 써 붙여져 있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그뿐만 아니고 자동차 뒷면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 조심해 주세요” 라는 문구가 붙은 사례는 누구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는 인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권(人權)의 문제로 접근이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우선 나부터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주장될 수 있다. 나의 차량 뒤에서 달려 오는 자동차에게 미리 경고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차량의 입장에서는 무언의 압력과 함께 잠재적 범죄자 취급도 당하는 셈이 된다.
서울 지하철역에서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장애자들이 더 편하게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목적이다. 장애자들도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하철 승객들이 집중되는 출퇴근 시간에 농성을 벌이게 되면 수많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당하는데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가?
오랜만에 동내 한 친구로부터 저녁 식사 제안이 있어서 골목길 순대 국밥집에 마주 앉았다.
“친구야 요즘 어떻게 지내나?” 라고 물으니 “응 요즘 젊은 애들이 저들만 살려고 한다” 고 푸념을 한다. “그래 맞아!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안 그래?” 라고 맞장구를 했다. 그러자 친구가 소주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그런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또 뮈야?” 라고 반문을 한다. 나는 순간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공자는 곧 유학의 가르침을 뜻하고 인성의 기본을 대변하지만 부작용도 없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인권 문제도 인성 부족이 원인 아니던가. “그래 한때 그 말이 뜨기도 했었지 그러다가 유림(儒林)으로부터 큰 반발을 일으키고 혼이 나기도 했잖아” 라고 응수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엄마라는 성인과 아이라는 미성년, 위의 어른과 아래의 자식, 그리고 사회조직의 상하 위계질서 등에 있어서 인성과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인성은 우리의 전통적 유교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한국 특유의 정서는 정통성(identity)으로 계승되어야 맞다.
또한, 인권이 부각되는 현실은 시대적 흐름으로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식의 축적, 기술 개발의 촉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국가 위상과 개인 가치도 비례 발전하기 때문에 이제는 나 개인 안전을 위해서는 뒤따라오는 자동차에 대하여 잠재적 범죄자 취급도 가능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체장애인도 좀 더 편안한 교통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친구는 인성보다는 인권을 더 강조하려는 눈치이다. 나는 인권보다는 인성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결론을 내려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친구야 내가 알기로는 쟝자크 루소가 ‘인간의 불평등 기원은 첫째로 신체적 불평등이 있고 둘째는 사유재산적 불평등에 있다’고 주장했다더라“ 라고 말을 하니 친구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듣기만 한다. 그리고 소주잔만 기울인다. 아차! 가급적 학문적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하는데... ”친구야 미안하다. 재미없는 얘기를 꺼내서...“ 사과하였더니 ”아니야 다 그런거지 뭐“ 라고 답하면서 얼굴이 좀 밝아진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은 국민들 스스로 자각이라기보다는 부추기는 특정세력에 의한 포퓰리즘과 약자 코스프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권력에 대한 견제나 저항 수단으로 이용되고 미래 권력을 도모하는 정치이념이 소수 약자를 앞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언론도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선동적 역기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인식하기보다는 여과하여 받아들이는 여유와 지혜로서도 인성은 중요하다.
인성이 먼저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인권적으로 피해를 주거나 받을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인권적 측면은 현행의 수많은 관계법령 등 얼마든지 보장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인성이 사전적이라면 인권은 사후적이라는 내 나름의 결론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