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백의 무인 유응부
조선 5 대 임금인 문종이 승하한 후 불과 12세의 나이 어린 단종이 보위를 계승하자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위를 찬탈하고 어린 조카(단종)를 강제로 영월로 유배 보냈다.
이에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 하위지, 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과 무관 유응부 등은 새로이 등극한 세조를 폐하고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같이 거사를 공모한 김질의 밀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되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사육신이라 하여 추모하였다.
그 중 유응부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무술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청렴결백을 제일로 여긴 그는 과연 무관 출신답게 기백이 있었다.
명나라에서 온 사신을 위한 연회가 대궐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지던 날이었다. 유응부는 이날 밤을 거사를 도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세조를 비롯하여 여러 문무 백관들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 흥이 오를 무렵, 유응부는 박팽년과 성삼문 곁으로 은근히 자리를 옮겨 앉았다.
“오늘 밤이요! 오늘 밤이 하늘이 내린 기회가 아니겠소?”
낮지만 힘이 들어간 유응부의 말에 박팽년과 성삼문은 적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모두 술에 취해 있는 데다 밤늦도록 연회가 열릴 테니 대궐 경비가 허술할 것이요. 그러니 오늘 밤 당장 해치웁시다! 이대로 오래 끌다가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오!”
그러나 성삼문은 내키지 않는 투로 말하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아니 될 것 같소. 명나라 사신까지 와 있는데 괜히 일을 벌였다간 거사가 성공한다 해도 명나라의 미움을 사게 될지 모르지 않소?”
박팽년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소 나도 같은 생각이요. 자칫 잘못해서 일을 그릇쳤다가는 삼족이 멸하게 될 것이요.”
그러나 유응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말이요? 아니 그럼 공들은 그만한 결심도 없이 거사를 도모했단 말이요?”
“그건 절대 아니오! 이미 목숨을 바치기로 한 몸 죽음인들 두렵겠소. 다만 좀더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오.”
“나 역시 동감이요. 굳이 오늘 밤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머지않아 다시 올 것이오.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유응부는 앞에 놓인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듣기싫소! 기회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오.”
“이보시오....!”
박팽년이 더 뭐라고 말하려 하자 유응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무인들에게는 싸움에서 터득한 직감이라는 게 있소이다. 한 번 놓치면 필시 두 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 법이요!”
유응부는 짐짓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술만 마셨다.
유응부의 직감이 적증했던 것일까?
며칠 후 그들은 다시 만나 거사 일을 정하였으나 그날이 오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거사를 모의한 이들 중 한 명인 김질이 동지들을 배반하고 밀고한 것이다.
유응부를 비롯한 집현전의 다섯 학자들도 모두 잡혀 엄한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들 의연한 태도로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고 왕실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세조의 폐위와 단종의 복위를 부르짖었다.
유응부도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가 살갗을 파고들 때도
남아다운 기상으로 호방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인두가 실었구나! 뭣하는 게냐? 그 정도로는 돼지비계 한 점도 못 굽겠구나. 하하하...!”
주위는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날 정도였으나 고문은 조금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유응부는 죽어도 씻지 못할 한을 가슴에 품은 채 불귀으ㅟ 객이 되고 말았다. 잡현전의 다섯 학사들도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응부가 얼마나 청렴 결백했는지는 생전의 일화를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잠작할 수 있다.
유응부는 벼슬이 2품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도 밥상에 고기 한 점없이 늘 채소와 나물 몇 가지로 반찬을 삼았으며 방문 대신 언제나 멍석을 발처럼 치고 살았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아우가 하루는 유응부를 찾아와 탄식하듯 말했다.
“형님께서 ㅂ져슬길에 올라 이제 재상가지 되셨는데 어찌하여 밥상에 기름진 고기반찬 한점 없고,
방문도 없이 사시사철 멍석을 치고 사십니가?”
그러자 유응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내 녹봉으로 고기반찬을 먹는다면 이는 필시 녹봉 외에 헐벗는 백성의 고혈을 짜낸 것이고, 호화로운 발을 치고 산다면 그 역시 아첨하는 무리에게 부당한 뒷돈을 받은 것이라네.”
아우가 말을 잃고 앉아 있는데 유응부의 마지막 말이 사육신으로 청사에 길이 기록될 앞날을 예견하듯 뒤를 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신하된 자의 도리를 지키고 불의와 야합하느니 차라리 명에롭게 죽는 길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