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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제1강]
로고스(Λόγος)와 스케노오(Σκηνόω): 태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장막을 치시다
(본문: 요한복음 1장)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족보로,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외침으로, 누가복음은 사가랴의 성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시간과 공간, 우주의 기원마저 초월하여 '태초의 영원(Eternity Past)' 속으로 우리의 멱살을 쥐고 단숨에 끌고 들어갑니다. D. A. 카슨(D. A. Carson)과 헤르만 리덜보스(Herman Ridderbos)가 웅변하듯, 요한복음 1장의 서론(Prologue)은 단순한 시(詩)가 아니라, 모든 이단과 인본주의 철학을 박살 내는 기독교 기독론(Christology)의 가장 거대하고도 묵직한 반석입니다.
1. 로고스(Λόγος): 철학과 종교를 쳐부수는 절대적 창조주의 선언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
"태초에 말씀(로고스, Λόγος)이 계시니라!"
당시 헬라 철학자들에게 '로고스'는 우주를 지탱하는 비인격적인 이성이나 원리였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에게는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의 권능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양쪽 세계의 세계관을 단숨에 산산조각 내며, 가장 충격적인 진리를 벼락같이 터뜨립니다.
"너희가 철학으로 더듬어 찾던 그 우주의 원리,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창조의 능력이 바로, 역사 속에 인격적인 몸을 입고 걸어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R. C. 스프로울(R. C. Sproul)은 이 구절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신성(Deity)을 방어하는 가장 철저한 신학적 요새라고 천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비슷한 피조물이거나 뛰어난 도덕 교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완벽한 사랑의 교제를 누리신(함께 계신)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적 주권자이십니다. 이 묵직한 기독론적 전제 없이 출발하는 모든 구원론은 가짜요 사기극입니다.
2. 카탈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 전적 타락을 폭로하는 흑암과 빛의 충돌
생명이요 빛이신 창조주께서 당신이 만드신 세상 속에 들어오셨을 때, 인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철저한 영적 파산 상태(Total Depravity)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해부해 냅니다.
"그 안에 생명(조에)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포스)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카탈람바노)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4-5, 9-10)
"어둠이 깨닫지(카탈람바노, κατέλαβεν) 못하더라!"
A. W. 핑크(A. W. Pink)의 예리한 주해에 따르면, 원어 '카탈람바노'는 '이해하다(comprehend)'라는 뜻과 동시에 '붙잡아 이기다, 압도하다(overcome)'라는 두 가지 뜻을 맹렬하게 품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류의 영적 지성은 완전히 썩어문드러져(흑암), 눈앞에 빛이신 창조주가 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그분을 알아볼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동시에,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이 흑암의 세력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제거(압도)하려고 발악했지만, 결코 생명의 빛을 이길 수 없었다는 승리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창조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 한 이 끔찍한 무지야말로, 인간 스스로의 이성이나 도덕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증명하는 가장 참혹한 영적 사형 선고입니다.
3. 사르크스와 스케노오(Σκηνόω): 인본주의를 박살 낸 우주적 성육신
어둠에 갇혀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만왕의 왕께서 취하신 방법은 우리의 모든 종교적 상상력을 완전히 파괴해 버립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위대하고도 충격적인 기둥이 마침내 1장 14절에서 폭발합니다.
"말씀이 육신(사르크스)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스케노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말씀이 육신(사르크스, σάρξ)이 되어!"
헬라 철학에서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한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창조주이신 로마스(말씀)께서, 피 흘리고, 굶주리고, 배설하고, 고통을 느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고깃덩어리인 '사르크스(Flesh)'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천사가 인간으로 변장한 것이 아닙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의 선포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성의 제한과 고통 속으로 자기를 완벽하게 비우고 처박히신(비하, Humiliation) 기독교 최고의 기적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스케노오, ἐσκήνωσεν)!"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Andreas J. Köstenberger)의 구속사적 통찰에 따르면, 원어 '스케노오'는 '장막(텐트)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은 이스라엘 진영 한가운데 세워진 '성막(Tabernacle)'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짐승의 피를 뿌리던 돌과 천막으로 만든 성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찢겨질 육신(사르크스) 자체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만나주시는 '완벽하고도 영원한 참 성막(스케노오)'이 되셨다는 구속사의 웅장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오직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독사)을 볼 수 있습니다.
4. 혈통을 찢는 은혜의 주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그렇다면 누가 이 생명의 빛을 영접하고 성막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모든 공로와 혈통, 종교적 스펙을 무자비한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피(혈통)가 섞여 있다는 것을 구원의 티켓으로 여겼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선행이나 지성(사람의 뜻), 혹은 종교적 열심(육정)으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는 이 구절을 통해 '신인 협력설(Synergism)'을 철저하게 짓부수며,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단독 사역(Monergism)'임을 천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의지가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오직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 영혼이 '위로부터 새롭게 창조(거듭남)' 되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는 이 묵직한 은혜의 교리만이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반석입니다.
5. 아μ노스(Ἀμνός): 성육신의 목적, 십자가의 찢겨짐을 향한 예고
태초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터뜨린 선포 속에, 요한복음 전체가 달려갈 피비린내 나는 골고다의 사형장이 예고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아μ노스)이로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아μ노스, ἀμνὸς)이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계몽할 도덕 교사나 정치적 영웅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의 묵직한 주해처럼, 주님은 유월절 밤에 문설주에 피를 뿌리기 위해 목이 잘리고 살이 찢겨나갔던 그 '희생 제물(어린 양)'이 되기 위해 육신을 입으신 것입니다. 영원하신 로마스(말씀)께서 사르크스(육신)를 입으신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의 대못과 창에 그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 피 흘려 죽기 위함이었습니다.
6. 결론: [육신의 장막을 찢고 쏟아내신 대속의 영광]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적 주권자, 영원하신 로마스(말씀)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사르크스(육신)를 입고 이 흑암의 세상 가운데로 뚫고 들어오셨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혈통과 사람의 뜻으로는 결단코 구원의 문턱조차 넘을 수 없는 철저한 영적 파산의 상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구원이 임한다는 이 엄위한 이신칭의의 진리 앞에서 인간의 모든 교만과 공로주의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우리 가운데 장막(스케노오)을 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보좌가 아니라 골고다 해골의 언덕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아μ노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육신(사르크스)의 장막을 철저하게 찢고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맹렬한 공의가 완벽하게 만족되었고, 죄인들을 향한 구원의 길이 영원히 열렸습니다.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은 인간의 처세술이나 윤리 강좌를 쳐내고, 오직 이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성육신과 대속의 십자가'만을 우리의 유일한 자랑으로 묵직하게 선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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