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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의 파산: 프로스 톤 데온 (πρὸς τὸν θεόν, 하나님 앞에서는)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해부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람 앞에서는 도덕적으로 자랑할 행위(Erga)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꽃 같은 공의의 잣대를 들이대시는 '하나님 앞에서는(Pros ton Theon)' 그 어떤 인간도 자랑할 것이 완벽하게 제로(0)입니다!
개혁주의 칭의론의 심장: 엘로기스데 (ἐλογίσθη,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 전가되다)
로마서 4장에서 무려 11번이나 반복되어 폭발하는 핵심 단어 **'로기조마이(Logizomai)'**입니다! 이 단어는 은행의 회계 장부에 '남의 자산을 내 계좌로 입금하여 계산하다(Impute, Credit)'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죄투성이였지만,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Righteousness)를 아브라함의 텅 빈 통장에 **'전가(Imputation)'**시켜 주시고, 그를 의로운 자로 '여겨 주신(계산해 주신)' 것입니다! 가톨릭의 '주입된 의(Infused righteousness)'를 박살 내는 오직 믿음(Sola Fide)의 철퇴입니다!
다윗의 사죄의 복: 마카리스몬 (μακαρισμὸν, 복 / 지복)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살인마요 간음자인 다윗! 율법으로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일한 것(선행)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죄를 가려주시고 나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Logizetai)'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덕분이다!" 이 칭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지옥의 저주에서 벗어난 진정한 **'복(Makarismos: 신적 축복, 지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II. 칭의의 타이밍: 할례와 종교적 껍데기의 해체 (4:9-12)
(롬 4:10-11)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시간적 순서의 변증: 엔 아크로뷔스티아 (ἐν ἀκροβυστίᾳ, 무할례시에)
바울은 랍비들의 억지 논리를 역사적 팩트(Fact)로 짓밟아버립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창세기 15장 시점에 그는 할례를 받았느냐?"
성경의 연대기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후, 무려 14년 이상이 지난 창세기 17장에 가서야 할례를 받았습니다! 즉, 할례(종교적 의식, 세례, 직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겉으로 증명하는 **'도장(인침, Sphragida)'**에 불과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외칩니다. "종교적 의식이 구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 종교적 의식을 의미 있게 만든다!" 아브라함은 율법 없는 이방인(무할례자)인 상태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오늘날 율법이 없는 이방인 성도들의 진짜 '영적 조상'이 되는 완벽한 근거가 성립됩니다.
III. 율법과 은혜: 약속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 (4:13-16)
(롬 4:14, 16)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의 절대적 보증: 이나 카타 카린 (ἵνα κατὰ χάριν,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율법은 아브라함보다 무려 430년이나 뒤에 모세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만약 구원(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달렸다면, 인간 중 율법을 100% 지킬 자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모조리 파기되고 헛것(Kekenōtai)이 됩니다!
구원이 나의 행위에 달렸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구원을 잃어버릴까 봐 지옥 같은 공포에 떨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맹렬히 선포합니다!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철저히 **'은혜(Charis)'**에 속하게 하려고, 너의 행위가 개입할 수 없는 오직 **'믿음(Pistis)'**으로 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야만 이 구원의 약속이 변덕스러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서 '굳게(Bebaian: 흔들림 없이 확실하게 보증됨)' 세워지기 때문이다!"
IV.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 부활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권능 (4:17-22)
(롬 4:17-19)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기독교 신앙의 2대 기둥: 조오포이운토스 투스 네크루스 (ζῳοποιοῦντος τοὺς νεκροὺς, 죽은 자를 살리시며)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울은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신 창조주를 두 가지 위대한 사역으로 정의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 신앙): 생명의 근원이신 구속의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앙):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Creatio ex nihilo)!
절망을 찢는 믿음: 파르 엘피다 에프 엘피디 (παρ' ἐλπίδα ἐπ' ἐλπίδι,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자신의 몸이 시체처럼 죽은 것(Nenekrōmenon)을 알았습니다. 아내 사라의 자궁도 생명력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과학적 '소망'은 완벽하게 0%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망(인간적 가능성)이 완전히 끊어진 곳에서, 소망(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Par' elpida ep' elpidi)' 믿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믿음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맹신이 아니다. 내 몸이 죽은 것 같다는 현실을 정확히 '알고도(Katanoēse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망적인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고 절대적인 진리로 신뢰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리는 참된 믿음의 야성이다!"
V. 구속사의 절정: 우리를 위한 위대한 교환 (4:23-25)
(롬 4:23-25)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역사의 관통: 헤마스 (ἡμᾶς, 우리도 위함이니)
바울의 성경 해석의 천재성이 빛납니다. 수천 년 전 창세기의 그 아브라함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조로 믿는 **'우리(아름다운교회 전 세대 성도들)'**의 통장에도 완벽하게 동일한 '의'가 전가된다는 법적 보증수표임을 천명합니다!
구속의 위대한 이중 교환 (The Great Exchange): 파레도데 (παρεδόθη, 내줌이 되고)
25절은 로마서 4장의 가장 웅장하고 눈물겨운 기독론적 피날레입니다!
1)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십자가에 내줌이 되고(Paredothē)! * 우리의 끔찍한 죄악과 저주가 예수님의 계좌로 '전가(Imputed)'되어,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 대신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2)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Egerthē)하셨느니라! * 만약 주님이 죽고 끝나셨다면,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는지 우주 앞에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찢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무죄로 만들고 영원토록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영수증(Receipt)이 발급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