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이수연 글, 그림 / 리젬 (2015)
12기 송수진
최근 7, 8년 사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집값에 걱정 혹은 환희에 찼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전셋집 주인의 높은 콧대에 질린데다 불안감에 휩싸여 무모하게 내 집 마련에 도전했고, 내 집만 있으면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발 뻗고 편히 잠들겠다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 집 마련을 했는데도 그 불안감과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더 좋은 동네, 더 넓은 집을 갖지 못함에 대한 불만도 생겼다. 낯선 이 동네도 생각처럼 좋진 않았고, 이사 오자마자 터진 코로나는 마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이틀이 멀다 하고 전에 살던 동네로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다녀오는 길에는 늘 아쉬움이 따랐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그곳에 늘 마음이 향했고, 반찬 가게며, 미용실이며, 심지어 주말 외식 장소까지 나는 늘 살던 동네로 갔었다.
그렇게 2년여가 흐르고 난 뒤, 코로나도 어느 정도 잠잠해졌고,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색하게 교문 앞을 서성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아는 사람들도 생기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나는 이전에 살던 동네로 가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아무 때나 차 한잔 하자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도 생기고,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고 어린이도서연구회에도 가입하게 되었다.
그림자가 길어지듯 어느덧,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 동네가 좋아졌고, 이젠 터전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한 번 이런 얘기를 담담히 동네 언니와 나눴던 게 오늘 이 글을 쓰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것도 재밌다. 누군가와의 연결고리가 때론 물질적 풍요보다 더 탄탄한 힘이 되어준다.
이수연 작가의 『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에서는 가구점 직원인 곰을 시작으로 골동품이 많아 정리할 장이 필요한 멧돼지 아주머니, 글이 잘 안 써져서 더 큰 책상이 필요한 펭귄 아저씨, 악기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아쉬운 캥거루 아저씨, 양복들을 보관할 옷장이 필요한 사자 아저씨 등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나름의 이유로 가구를 바꾸거나 추가한다. 나름 필요에 의한 ‘채움’에도 불구하고 ‘허전함’과 '공허함'이 따랐다. 곰 역시 기대하던 우수사원으로 뽑히지만 '허전함'을 느낀다. 그리고는 아주 커다란 식탁을 만들고 앞서 만난 고객들을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함께 식사를 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내가 이 동네에 마음을 한 뼘씩 정착하게 되었던 그 순간순간에 연을 맺게 된 이들이 떠올랐다.
필요 이상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시대에 살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고독하고 쓸쓸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먼저 손 내밀고 소통하면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이 공허한 시대를 과거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너무 멋진 글입니다. 진솔한 마음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