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역의 귀빈실 일부를 개조해, 200㎡ 규모로 건립한 기념관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1909년 당시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플랫폼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였다.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자리는 당초 붉은색의 바닥 돌로만 구분됐으나, 한자(漢字)로 '안중근 의사 격살 이등박문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이란 표지판이 내걸렸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항일(抗日) 활동과 아시아 평화를 위해 투쟁했던 일생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관 정면 입구는 과거 하얼빈역 모습을 재현해 만들어졌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란 한자 표지판 위쪽에 걸린 벽시계의 시침·분침은 안 의사의 의거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고정돼 있었다.
- 그때 그 장소, 하얼빈역에 들어선 안중근 의사 기념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역(驛)에서 19일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관람객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전시 자료를 촬영하고 있다. 하얼빈역은 1909년 안 의사가 을사늑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장소다. 안 의사 기념관은 의거 현장 바로 앞 귀빈실 일부를 개조해 면적 200㎡ 규모로 조성됐다. /신화 뉴시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흉상, 생애와 사상, 뤼순(旅順) 감옥에서의 행적 등을 알 수 있는 사진과 자료가 전시됐다. 먼저 "안중근은 조선반도 근대사에 저명한 독립운동가로, 1879년 9월 2일 현재의 조선(북한)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안 의사의 가족 관계와 가정교육, 신앙 등 유년기에 대한 자료들도 있다.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전시물은 대부분 중국어와 한국어로 병기돼 있다. 기념관 벽면에는 안 의사의 사진과 함께 '동양평화의 창의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당초 우리 정부가 중국 측에 요구한 것은 기념관이 아니라 표지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6월 방중(訪中)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속 조치로 표지석보다 한 단계 높은 기념관이 건립됐다고 우리 외교부는 이날 밝혔다. 특히 중국이 안중근 기념관을 만든 자리는 1930년대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일제는 만주를 점령하고 안 의사 의거 현장에 이토 추모비를 세웠다. 하얼빈에 주둔하던 일본군 731부대는 이토 추모비에 묵념한 뒤 돌아갔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집권 후 이토 추모비를 없앴다.
- 중국 정부가 19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역(驛)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을 갖고 있다(왼쪽). 기념관 정면에 걸린 벽시계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고정돼 있다. 중국 관람객들이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플랫폼에 걸린 표지판을 촬영하고 있다(오른쪽). /외교부·신화 뉴시스
중국 측은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전시 내용 등에 대해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했다. 그러나 개관 일정 등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북한에도 사전에 알리지 않을 만큼 기밀 유지에 신경을 썼다"며 "중국 정부의 예산으로 독자적으로 건립해 관리하는 기념관이고, 개관식 행사도 10분 안에 끝날 정도로 조촐해 따로 우리 측 인사를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사전에 기념관 개관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작년 11월 한·중 양국의 안 의사 표지석 설치 협의에 관해 "(한·일)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은 안중근이 '범죄자'라고 한국 정부에 지금까지 밝혀왔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안 의사는 역사적으로 항일 투사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중국인들은 그를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하얼빈= 안용현 특파원,김진명 기자
첫댓글 우리 역사 잘배우고 익혀서 후손에게 잘 물려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