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반달곰 친구 불곰-박경선 저학년 동화20180627).hwp
아기 반달곰 친구 불곰
박경선(http://cafe.daum.net/packgungsun)
나는 아빠 반달곰과 엄마 반달곰 사이에서 태어났어. 작은 토끼만하게 태어났어. 몸은 쥐색 솜털로 덮여 있었어.
“아유, 귀여워, 우리 반달곰! 그런데 발가락이 이게 뭐야. 너무 짧은 걸.”
엄마가 내 발가락이 짧다고 걱정하며 들여다봤어.
“걱정 말아요. 발톱이 날카로우니 먹이를 잘 잡을 거야.”
아빠는 처음부터 날 자랑스러워했어.
나는 엄마 가슴팍을 파고들며 젖꼭지를 빨았어. 젖꼭지가 세 쌍이지만 같이 태어난 형이 더 많이 먹겠다고 밀어 내는 바람에 우린 좀 다투기도 했어.
2주일이 지나자 엄마 젖을 많이 먹은 탓일까? 내 몸이 무럭무럭 컸어. 석 달이 지나자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녔어. 나무의 어린 싹이나 잎 뿌리도 갉아먹었어. 곤충 번데기나 가제도 잡아먹으며 음식을 골고루 먹었어. 아빠는 뭐든지 골고루 잘 먹는다고 칭찬해주였어. 그럴 때도 엄마는 늘 잔소리만 했어.
“반달곰아, 밥 먹고 나서는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지.”
난 형도, 엄마도, 재미가 없어졌어.
어느 날, 혼자 불곰네 동네로 놀러 갔어. 호주머니에 내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알밤을 가득 담아 갔어. 나처럼 귀여운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나눠 먹으면서 놀려고 말이야.
불곰네 동네에는 아이 셋이 햇볕을 쬐며 놀고 있었어.
“애들아, 나랑 놀래? 내 이름은 반달이야. 반가워!”
내 말에 셋 가운데 가장 작은 불곰이 말했어.
“어머, 뭐야. 너 앞가슴에 반달 모양 흉터가 있네.”
조금 작은 불곰도 말했어.
“어머, 뭐야. 크기도 엄천 커.”
그 말에 셋 가운데 가장 큰 불곰이 느릿느릿 말했어.
“모르잖아. 흉터가 아닐 수도 있을걸?”
나는 불곰 친구들 말을 들으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어.
“흉터라고? 우리 엄마는 이게 훈장이라 했는데...... .”
그러자 가장 작은 불곰은 더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했어.
“어머, 훈장이 뭐야? 그런 쓸데없는 것을 왜 달고 다녀?”
조금 작은 불곰도 입을 비쭉거리며 말했어.
“어머, 훈장은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동물이나 달고 다니는 거지.”
그 말에 내 가슴이 콩닥거리고 슬펐어. 그때 가장 큰 불곰이 느릿느릿 말했어.
“모르잖아. 사람동물들 훈장과는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걸?”
가장 큰 불곰 말은 조금 괜찮게 들렸지만 난 울음이 났어.
“아아앙, 엄마!”
난 울면서 집으로 왔어. 오는 길에 아무도 없는 통나무 구멍 속에 들어앉아 생각해 봤어.
“아유, 우리 반달이는 가슴이 유별나게 예뻐. 봐. 반달 모양이 얼마나 귀엽니?”
이때껏 엄마, 아빠가 한 말이 거짓말이었나? 나는 엄마, 아빠가 귀여워하는 내 가슴의 반달 모양을 도려내고 싶었어. 뽀족한 바위 아빨에 앞가슴을 대고 마구마구 문질러 보았어. 하지만 반달 모양은 없어지지 않았어. 피, 붉은 색 피가 내 가슴에 붉은 반달 그림을 더 또렷하게 그려 놓았어. 나는 집에 돌아왔어. 다른 식구들 눈에 띄지 않게 낙엽 이불로 내 몸을 감쌌어.
낙엽 이불 속에 숨어서 혼자 울다울다 잠이 들었어. 붉은 반달 그림 그려진 가슴을 꼭 껴안고 잠이 들었어.
“애, 넌 누구니?”
우리 동네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신기한 듯 보며 물었어.
“나 반달곰이지. 너네 친구...... .”
“아니야, 넌 가슴에 불 그림이 있는 걸?”
나는 동네 아이들한테 쫓겨 불곰네 동네로 다시 갔어.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도토리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갔어.
“애들아, 나랑 놀래? 내 가슴 좀 봐. 불 그림이 있어. 너네들과 닮았지?”
아이들은 내가 가져간 도토리 바구니에 코를 박고 먹었어. 그러다가 가장 작은 불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어.
“뭐 닮았다고? 우리 가슴은 순갈색이야.”
조금 작은 불곰도 말했어.“
“뭐 닮았다고? 우리보다 훨씬 조그마한 게.”
가장 큰 불곰이 느릿느릿 말했어.
“뭐 어때? 난 작을수록 귀여운 걸.”
엄마처럼 말해주는 가장 큰 불곰이 고마웠지만 슬프기는 마찬가지였어.
“아이잉 엄마! 몰라, 몰라!”
난 곰털을 쥐어뜯으며 울었어. 가슴의 반달 그림을 쥐어뜯으며 울었어.“
“반달아, 일어나 봐. 사냥꾼이 총 들고 따라오는 꿈이라도 꾼 게야?”
낙엽을 헤쳐 내며 다가오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 난 일어나 앉으며 울었어. 낮에 불곰네 동네에 놀러 가서 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울었어. 엄마는 말없이 날 끌어안아 주며 말했어.
“앞가슴에 반달 모양은 우리가 귀한 곰이라는 표시야. 불곰네가 그런 표시 없다고 부러워할 게 뭐가 있니? 엄마는 말이다. 이 반달 모양이 자랑스러워. 조상들이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자손들에게 반달 모양이 생긴다는 전설도 있거든.”
난 엄마 말이 그럴듯해서 벌떡 일어났어. 불곰 아이들에게 뽐낼 자랑거리가 생겼잖아. 잠자코 보던 아빠가 나를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며 말했어.
“설마, 그 애들한테 뽐내러 가려는 건 아니겠지?”
난 부끄러웠어. 속마음을 다 들켜 버린 거야. 두 눈을 내리깔았어.
“우리 반달곰은 반달곰대로. 그 애들 불곰은 불곰대로 모두 소중하게 태어났어. 뽐내는 건 남을 없신여기는 일이야.”
나는 아빠가 말하는 뜻을 알아차렸어.
그날 밤, 아빠와 나는 노래를 지었어. 그리곤 밤새도록 지은 노래를 불러 보았어. 마음이 따스해져 왔어. 낮에 속상했던 마음이 노래 속에 다 녹아들어가 버렸어.
다음날, 나는 다시 불곰네 동네로 내려갔어. 바구니에 내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맛있는 번데기를 가득 담아 갔어.
“애들아, 나랑 놀래? 밤새 노래 지어 왔어.”
그러나 불곰 아이들은 내가 들고 간 번데기를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그 애들이 번데기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말했어.
“내가 불러 볼게. 한 번 들어봐.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노래야.”
그러자 세 아기 불곰이 입을 우물우물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어. 난 노래를 들려주었어. 되도록 입을 크게 벌려서 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도록 말이야.
“반달곰은 반달곰, 불곰은 불곰. 우리는 모두 소중한 친구, 참 좋은 친구!”
내 노래는 끝났어. 무슨 말을 할까? 난 기다렸어. 어젯밤에 너무 편안하고 좋았던 마음을 불곰 친구들도 느꼈을 테지. 그런데 가장 작은 불곰이 불쑥 말했어.
“어머, 넌 왜 그렇게 뺨쪽의 이가 크니?”
그 말에 조금 작은 불곰도 말했어.
“어머. 이가 커서 괴물 같아.”
‘내 노래를 들은 이야기는 안하고 내 입속만 들여다봤단 말이야?’
난 울먹울먹 울음이 났어.
“으아앙!”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데 가장 큰 불곰이 느릿느릿 말하며 다가왔어.
“반달곰아, 난 네가 부러워. 넌 이가 커서 먹이도 잘 부수어 먹겠고 노래도 잘 부르잖아.”
가장 큰 불곰의 뚱딴지 같은 말에 가장 작은 불곰과 조금 작은 불곰 눈이 휘둥그레졌어.
“그래? 그러고 보니 노래는 좋았어.”
가장 작은 불곰이 말했어.
“그래,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 같았어.”
조금 작은 불곰도 말했어.
“노래는 어떻게 짓니? 나도 배울 수 있을까?”
가장 큰 불곰이 조심스럽게 물었어.
“나도!”
“나도!”
가장 작은 불곰과 조금 작은 불곰도 따라 말했어. 나는 씨익 웃으며 번데기를 담아 간 바구니를 뒤로 엎어서 의자 삼아 앉았어. 선생님이 된 거야. 불곰 친구한테 노래 짓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하거든.
어느새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흔들며 노래를 불렀어. 목이 쉬도록 불렀어.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기분 좋게 잠이 들었어. 다음날 아침인데도 일어나기 싫었어.
“아아(아침이야) 또도록(또놀자)”
“아아(아침이야) 또도록(또놀자)”
내 머리맡에서 새 소리 시계가 나를 깨웠어.
“떠들지 마, 난 좀 더 잘 거야.”
새 소리 시계를 손으로 쫓으며 더 자려고 낙엽 이불을 끌어 덮었어. 이불 속으로 엄마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어.
“어서 일어나. 세수하고 운동해야지.”
“으음 조금만 더 잘게요. 음냐 음냐.”
나는 잠을 맛있게 씹어 먹으며 포근하게 잠들고 있었어.
“어서 일어나 밥 먹고 먹이 찾으러 가야지.”
엄마 잔소리는 계속되었어. 그럴수록 나는 마음속으로 하얗게 눈 덮인 산속을 떠올렸어, 어느새 나는 숲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곰이 되어 있었어. 통나무 가슴, 빈 구멍 속에서 포근한 햇볕 이불 덮고 잠이 들었어. 개구리, 도룡뇽, 도마뱀은 땀속, 물밑 진흙 속에서 자는 게 좋다지만 난 통나무 가슴, 구멍 속이 좋아. 고슴도치, 겨울잠쥐, 박쥐는 동굴이나 나무 구멍, 흙 속이 좋다지만 난 통나무 가슴, 빈 구멍 속에서 푸근하게 자는 거야.
“어서 일어나. 집 청소도 해야지. 응?”
엄마 잔소리가 또 낙엽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왔어
‘안 되겠어. 굴을 파고 동굴 속 깊은 곳에서 겨울잠을 잘 거야.’
난 낙엽 이불을 더 돌돌 말아 감았어. 낙엽 천막으로 깊고 깊은 동굴이 되었어. 이제 아무도 내 동굴 속에 못 들어올 거야.
“음냐! 잠맛이 꿀맛인걸. 음냐. 흐음 흠 쿨쿨!”
나는 쿨쿨 노래까지 부르며 잠맛에 빨려들었어.
그런데 동굴의 천막이 사브작사브작 걷혀지는 소리가 났어. 햇볕도 느껴졌어. 밝아지는 느낌이 이상했어.
“햐! 반달곰아, 벌써부터 겨울잠에 들려는 거야?”
어느새 왔는지 가장 작은 불곰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어.
“햐! 노래 잘 짓는 반달곰이 잠꾸러기였네.”
조금 작은 불곰도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어. 내 얼굴에 침까지 떨어드리며 말이야. 그때 가장 큰 불곰 목소리가 들렸어. 느릿느릿한 말소리로.
“일어나 봐. 우리가 꿀을 가져왔거든.”
그 말에 나는 둘둘 말았던 낙엽 이불을 확확 벗어 던지며 일어났어.
“뭐? 내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꿀, 꿀, 단꿀을 가져왔다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꿀단지 속에 서로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었어. 어느새 나는 불곰 세 친구와 서로 마주 보며 손가락을 맛나게 빨고 있었어.
“쭈욱 쭈욱 쭈욱!”
“쪼옥 쪼옥 쪼옥!”
(20180626-30쪽.
※ 이 동화는 <아기 반달곰 친구 불곰>책으로 지식산업사에서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