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학과 살림생태계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
살림길벗 마주이야기
삶을 생성변화 재생산하는 중심작용은 살림터(마을), 배움터(학교)를 통해 일어난다.
삶의 역동성, 민의 주체역량과 자율성을 배우고 익히고 재생산하는 근본 토대가
마을(살림터)과 마을에 토대한 배움터(학교)인 것이다.
살림학에 담긴 얼과 실천전략을 소개한 《살림학 얼과 길》(밝은봄, 2024)의 한 대목이다. 삶을 견인하는 중요한 힘은 민의 주체역량에 뿌리내린 살림터와 배움터를 토대로 일어나며, 살림학은 이러한 마을과 배움터들이 함께 살림생태계 일구는 운동임을 제시한다.
지난 10월, 강원 홍천에서 열린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살림 일구는 마을, 배움터 길벗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잔치 중에 마련된 ‘살림학 마주이야기’에는 홍동표 기대리 선애빌 대표, 서명석 소소다향 대표, 윤경 산성마을/살림학연구소 살림꾼, 영남 덕계마을/이음목공방 지기, 김태훈 실상사 작은학교 교사, 박현미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교장, 솔잎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박사과정, 상병 부산 온배움터 이사장/살림학연구소 살림꾼이 함께했다. 철호 살림학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길벗들은 저마다 터한 살림터 이야기와 살림학-일상 삶의 실천들이 순환하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공동체, 다양한 이유로 시작하지만 결국 지속가능한 지향으로
기대리 선애빌은 충북 보은군에 터한 명상 공동체 마을이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의 대안으로 ‘선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홍동표 대표는 “선은 인간과 산을 합친 말이고,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 형성된 모습”이라며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삶(선문화)을 추구한다”고 소개했다. 함께 사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지며 지금은 공동체가 물리적 청산을 한 상태이지만,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새 걸음을 떼고 있는 과정도 전했다. “관념과 실천의 괴리를 줄이고 지역사회 등 세상과 소통하며 지내려 한다”는 전망을 밝히기도 했다.
소소다향은 충북 청주에서 9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체로, 스쿠버 동아리를 함께하며 시작했다. ‘적게 소유하고 향유는 많이’라는 이름 뜻처럼, 소소다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며 함께 노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서명석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명하게 살려면 최소한 공동체로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같이 놀기도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책을 읽고 토론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운다”고 공동체 생활을 소개했다.
선애빌은 명상 수행을 함께하면서, 소소다향은 놀이문화를 함께 향유하다가 그 지향이 공동체로 확장된 사례들이다. 철호 소장은 “공동체가 시작되는 계기는 다양할 수 있다는 점과 공동체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며 “그 과정을 통해 함께 배울 수 있는 게 많은 듯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함께하는 공부, 근원을 돌아보며 삶을 재구성하는 힘
양산 덕계마을과 부산 산성마을은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만난 관계가 마을공동체로 확장된 사례이다. 덕계마을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는 영남 지기는 “마을 아이들이 대안교육을 받았지만 졸업을 하면 마을을 떠나거나 공교육으로 진학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구조적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반복되는 문제를 마주하며 부모들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에 나아갔고, 마을밥상을 시작으로 지금의 마을공동체로 전환한 과정도 전했다. “밥상 중심으로 맺어 온 관계가 깊어지며 단순히 아이들만을 위한 배움터가 아니라 부모와 마을 이모삼촌 모두 배움의 동지로 거듭나고 있다”며, “함께하는 공부와 매주 만나 삶 이야기를 나누는 두레모임이 큰 힘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산성마을은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 공립형 대안학교인 금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만나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산성마을에서 마을살이하는 윤경 살림꾼은 “실패하고 싸우고 탓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함께 공부하고 두레모임으로 삶을 나누면서 관계가 달라졌다”며 지나온 걸음을 담담히 소개했다. “상대방이 내 진심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방식이 달랐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 과정에서 함께 공부하고 수행하는 과정이 중요했다”는 점도 덧붙여 나누었다.
철호 소장은 “덕계마을과 산성마을 모두 삶을 근원적으로 돌아보고 재구성하는 공부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 같다”며 “서로 깊어지기 위해서는 꼭 긴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내고 함께 공부하는 게 큰 힘이 됨을 깨닫는다”고 갈무리했다.
마을에 토대한 배움터, 삶으로 배우는 살림의 가치
지리산 자락에 터한 실상사 작은학교는 2001년 개교했다. 중등과정으로 터를 닦고 2010년에는 고등과정도 시작했다. 작은학교에서는 학생과 배움지기(교사)들이 함께 생활하는데, 삶과 배움의 일치를 배우며 자립, 생태, 공동체, 우정, 생명평화의 가치를 몸에 들인다. 김태훈 교사는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농과 살림이고, 밥모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생명평화 지키며 농사짓는 배움지기들 모시는 일이 중요하고, 밥모심하는 공양간의 배움이 학교 전체의 배움”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함께 생활하는 배움터이다 보니 다양한 일을 겪어 왔지만, 실수에서 배운 점이 많다는 이야기로 나눔을 마쳤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역사 깊은 배움터다. 사회 진보를 위해 깨어 있는 평민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로, 오산학교의 뿌리를 잇는다. 홍동마을에 토대해 함께 삶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가며, 농촌, 교육, 환경, 지속가능한 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함께 공부하고 실천한다. 박현미 교장은 “학생들은 실제 생활을 통해 배우는 여러 자치활동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삶에서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배운다”고 전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배움터인 만큼 “우리 학교의 숙제도 ‘창조적인 계승’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전망을 나누기도 했다.
철호 소장은 “실상사 작은학교와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때 진정성을 많이 느꼈다”고 나누었다. 덧붙여 “한국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는 학교라면 대부분 오산학교나 명동학교를 이으려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 배움 뜻을 진득이 이어 온 배움터들에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민의 자생력, 생기 있는 운동성의 토대
1990년 안동대 부속연구소로 설립된 민속학연구소는 민속의 전승과 보존을 연구하는 활동을 전개해 오다가, 최근 현장에 주목하는 흐름이 생기면서 한국사회 공동체문화의 사례들을 연구했다. 솔잎 연구원은 “공동체문화라는 연구주제가 탈주 사건이었다”며 “그 문제의식 자체도 탈주적이었지만, 연구방법도 집단연구였다는 점에서 실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가 개인의 성취와 직결되는 학계에서 자료를 공유하거나 함께 토론하는 분위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도권 내에서 지속성 있게 연구하는 일의 현실적 어려움도 나누었다. “연구예산을 지자체에서 받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제약이 생기기도 했다”며 “지금은 사업이 다 끝난 상태이지만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으로 이어 갈 연구방향에 고민이 있지만, 신뢰하는 이들과 희망을 품고 계속 연구해 가고 싶다는 전망을 나누기도 했다.
부산 온배움터는 녹색대학의 뿌리를 이어 ‘온생명으로 사는 삶’을 실천하는 청년 교육운동이다. 식의주, 교육, 의료, 에너지 등에 중점을 둔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청년 공동체방인 ‘살리학숙’도 있는데, 상병 이사장은 “살리학숙이 생기고부터 온배움터 전체 분위기와 활동력이 크게 달라졌다”며 “함께 살 때 생기는 유익과 기쁨, 실천적 힘들이 강력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한편, 사회적 경제 영역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거점 공간의 필요로 대출지원을 받아 산 건물이 지금은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정황을 나누기도 했다. 이 같은 사건을 겪으며 “물질적 형태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배웠다”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 함께하겠다는 삶의 의지가 본질”이라는 점을 짚었다.
철호 소장은 “현장을 떠나지 않는 공부와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배워 가는 과정이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나누었다. 더불어 “처음에는 지원 같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생기가 죽게 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며 민의 주체역량에 뿌리내린 삶터와 배움터 일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살림학 마주이야기’에는 400여 명이 함께했다. 살림꾼과 길벗들은 발표가 끝난 후에도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정황과 고민, 지혜를 나누며 교류했다. 현재 살림학연구소에는 일상에서 생명살림을 실천하는 128명(2024년 11월 기준) 살림꾼과 다양한 살림길벗들이 활동하고 있다. 살림학연구소라는 연결망을 토대로 다양한 이들이 함께 일구어 갈 살림생태계를 기대해 본다.
*살림학연구소
http://www.saallimgil.org
cafe.daum.net/saallimgil
*함께하는 길벗들
가나안농군학교, 감이당, 강원 홍천마을, 개척자들, 고마운먹거리 밝은두레, 고운마을학교, 고운숨, 공동체지도력훈련원, 군포 수리산마을, 그리는사이, 기대리 선애빌, 너브내마을밥상, 농생활소농연대, 느티나무 복덕방, 덩기덕쿵떡, 덕계마을밥상, 도토리집 공동육아 어린이집, 디렉터컴퍼니 이한, 라파공동체, 마을방앗간 꿰어야보배, 마을버스 오가는사이, 마을장터 해뜨락, 마을찻집 고운울림, 마을찻집 마주이야기, 무지개공동체, 밝은공방, 밝은덕 배움터, 밝은봄, 방정환한울어린이집, 법률사무소 명동, 법률사무소 해원, 부산 산성마을, 부산 온배움터, 빛알찬중학교, 사랑어린학교, 사이재, 사회적협동조합 새끼줄, 삼일학림, 새빛들중학교, 생명평화길벗, 생태건축 흙손, 서울 인수마을,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소소다향, 실상사 작은학교,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양산 덕계마을, 양평 고운마을, 언니네텃밭 오산공동체, 얼라, 없이있는마을, 오늘공동체, 오늘멋지음, 오솔길 작은밥상, 온마을배움터, 원주 한살림,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인수마을밥상, 일가수도원, 잘부쳐타일, 종합집수리 온살림, 청년지도력 소통과대안, 푸른마을공동체, 푸른빛중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하늘길수도원, 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희년함께, 덴마크 그룬트비포럼, 베트남 VCIL, 영국 브루더호프, 영국 지저스아미, 일본 도쿄대 한국조선문화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