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종가>전 다들 보셨나요?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고 교훈적인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는 하나의 종가가 아닌, 여러 종가로 이루어져
있습는데요. 그중에서 제게 인상 깊었고, 직접 방문한 안동김씨 묵계 종택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연산군 때 대사간(大司諫)에 있으면서 척신들의 비위를 논박하였으나, 시정될 가망이 없음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안동 풍산(豊山)에 은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거택 옆에 작은 정자를 짓고 보백당이라 이름 짓고 학생들을 모아 가르쳐서 보백선생이라 불렸습니다. 또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는데 큰 화는 면하였으며, 후에 1859년(철종 10) 이조판서가 추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동의 사림이 호담(壺潭) 위에
묵계서원(默溪書院)을 세우고 제향하였습니다.
먼저 종가의 대표적 인물인 김계행을 소개하겠습니다.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시호는 정헌(定獻)으로
1447년(세종 29)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습니다. 성주 ·충주에서 사학(四學)교수를 지냈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습니다. 고령현감 ·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지내며
간쟁업무에 힘썼습니다.
김계행 종가에는 특별한 현판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보백당의 유훈을 새긴 현판으로 ‘持身謹愼(지신근신) 待人忠厚(대인충후)’와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有淸白)’으로 만휴정에 걸려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신근신
대인충후’는 가훈인 ‘나를 낮추고 타인을 높인다’와도 관련된 것으로 “몸가짐을 삼가고, 남을 대할 때 진실하고 온순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종가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관심보다 ‘어떻게 사는가’에 삶의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종가의 가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수양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담아 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종가에서는 이 현판을 보면서 선조의 뜻을 가슴 속에 새기고 대대로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은 글의 첫 머리에 있는 뜻으로 “우리 집안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은 오직 청백일 뿐이다.”라는 뜻입니다. 김계행의
보백당이라는 당호(堂號)도 여기에서 그 의미를 취했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바라
본 묵계종택
대대로 내려온 종가인 만큼 여러
전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음식을 빼 놓을 수 없는데요, 안동 김씨 보백당 종가의 음식으로 ‘메국수 나물 비빔밥’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음식은 종가의 불천위 제사 후에 먹는 제사 음식으로 제사상에 올렸던 5가지나물을 밥 위에 얹고 그 위에 고명처럼 메국수를 올려서 함께 비벼먹는
음식입니다. 제사
음식에는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안 넣기 때문에 나물들도 모두 참기름과 간장이나 소금으로만 간한 것이고 국수를 비빌 때도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지 특별히 한 가지 강한 맛이 튀어나오지 않는 조화로움이 강조되는 종가의 음식다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메국수
나물 비빔밥
이렇게 청백리의 표상으로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종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새겨둬야 할 가치를 지키고 있는 종가를 통해 많은 인생의 교훈을 얻는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묵계서원 및 안동 김씨
묵계종택은 1980년 6월 17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출처 : 제3기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이정민 기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