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 36도.
대구는 오후 7시 넘어서까지
이 펄펄 끓는 열기에
도시 전체가 푹 삶겼다.
산행 마치고 지하철 타러오다가
길바닥에서 올라오는 더운 공기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장난 아니었다.
폭염을 피해 산으로
우리만 도망한 것같아
살짝 미안했다.
12km. 2만4천보.
오전 9시반 ~ 오후 6시반.
장미아파트 ~ 청룡굴 ~ 자살바위 ~
청룡산 정상 ~ 배바위 ~ 수밭고개 ~ 작봉 ~
쌀가루 바위 ~ 증봉 ~ 수밭마을 ~ 도원지.
참석자 : 은풀잎님. 스티카님. 산사랑님. 한소.
염천 폭서기에 산행을 신청해주신 3분께
감사드린다.
우월한 신체 조건과
나이를 무색케 하는 체력으로
3명의 후배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신
은풀잎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후배들이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재간이 없어 보이자
은풀잎님은
뒤쳐진 우리를 남겨두고
어쩔 수 없이 먼저 하산해야 했다.
청룡산 올라갈 때부터
걷는 차이가 현격했다.
1시간 이상
청룡산 정상에서 강제로 기다리셨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산행을 쉬는 기간이 있었지만
수십 년의 경력,
산꾼 짬밥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다.
비슬산-앞산 종주를
무려 20여 년 전에 성공했단다.
고운 얼굴만 보면
그런 짐작은 전혀 안 생긴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재미난 산행이었다.
청룡산 올라갈 때만 조금 더웠다.
나머지 구간에선
덥다는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운 줄 몰랐다.
점심 먹을 때 배바위 땡볕 말고는
직사광선 맞을 일 없었다.
등산 시작하기 전에
벌레 기피 약제 잔뜩 뿌렸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살이와 모기가 설쳤다.
사진 찍을 때마다
카메라 렌즈에 달라붙는
이들을 치우는데 애를 먹었다.
우기가 길어지면
이 산 주인들은 극성을 더 부린다.
폭염이 며칠 계속되면 개체수가
확 줄어들 것이다.
오랜 만에 청룡산을 찾은 손님들 접객에
버릇이 영 없었다.
예의없이 마구잡이로 덤비는
얘네들 때문에 100점 산행에
약간 '기스'가 났다.
('기스'는 일본말.
벤또. 덴뿌라 같은 말이다.
몸을 의미하는 <<기>>.
살짝 스친듯한 <<스>>.
가볍게 생긴 상처나 손상.
본래 우리 말인 듯한 느낌도 난다.
이러니 생명력이 길다.
이런 낱말은 오래 살아남는다.
아니 영구하게 존속할 수도 있다.
간명한 두 음절 단어가
상황과 잘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해서
대구 지역에선
거부감 없이 널리 쓰이고 있다.
덴뿌라와 벤또는
튀김과 도시락으로
교체된 지 오래다.)
<<고도와 속도 그래프>>
1) 장미아파트 - 자살바위(3km) - 청룡산 정상(4km) - 배바위.
군데군데 속도가 올라간 곳은
평탄한 지형이 계속된 곳이다.
2) 배바위 - 수밭고개(1.5km) - 작봉(2.5km) - 증봉(4.5km) - 도원지
수밭고개에서 고도가 520까지 내려간다.
작봉(670) 올라갈 때 힘들었다.
청룡굴 오르는 길. 약한 돌길.
작은 청룡굴
동굴 속이 궁금해서 머리 처박고 살폈다.
동굴 내부
작은 청룡굴과 큰 청룡굴 사이
데크 계단이 상당하다.
거의 직벽 수준이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큰 청룡굴이 나온다.
청룡굴 내부
흰색 페인트의 이름과 십자가.
볼썽사나웠다. 예수를 욕먹이는 짓이다.
부끄러운 이름으로
굴 속 벽면이 빼곡하다.
자기가 다니는 길목마다
똥개가 오줌 뿌리고 다니는 짓과 같다.
도원지.
미세먼지 탓으로 하늘이 뿌옇다.
오후가 되어서야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으로 돌아왔다.
앞산.
대덕산 아래 임휴사가 크게 자리잡았다.
앞산 중턱에 원기사가 조그맣게 보인다.
이쪽으로 청룡산 오르면
급경사길이 대부분이지만
중간중간에 평탄한 길이
제법 나온다.
앞산방향.
앞쪽 등대는 청룡산 산줄기.
이 능선은 청룡동굴 가는 길보다
더 완만해서 걷기 편하다.
떡갈나무잎
수밭마을
증봉 담봉 송봉.
담봉이 제일 우뚝하다.
그런데 작봉 포함하여 4개 봉우리에서
담봉만 삼필봉에서 빠져있다.
이유는 모른다.
자살바위. 밑은 천길 낭떠러지.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
자살바위 김성윤 추모비
왼쪽부터 차례로 작봉 쌀가루바위 증봉 담봉 송봉.
이 봉우리의 높낮이 비교는 청룡산쪽에서만 가능하다.
작봉과 증봉 사이는 1.5km.
증봉 담봉 송봉은 다닥다닥 붙어있다.
담봉 빼고 나머지는
독립된 봉우리로 부르기 민망하다.
그냥 올망졸망하다.
청룡산 정상방향. 자살바위에서 정상까지 1km.
벼랑 끝에서 움직일 때 오금이 저린다.
깍아지른 절벽. 천인단애. 일망무제.
수밭골을 바로 내려다보는 이 암벽능선은
청룡성능(靑龍城稜)이라 이름지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경치가 뛰어나다.
이 바위성능을 따라 정상쪽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최정산과 주암산, 비슬산과 삼필봉 자락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암수 한쌍이 건빵을 받아 먹고있다.
암놈은 새끼를 최근에 낳은 것으로 보였다.
사이가 좋아보인다.
오손도손 재미나게 지내는 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같아 속으로 흐뭇하였다.
청룡산 정상 부근 바위덤.
청룡산 700고지 이상에서
바위덤이 3개 보인다.
삼필봉에서 볼 때
제일 왼편이 자살바위군.
제일 오른편이 배바위다.
가운데 덤은 상당히 길고 험하다.
덤은 거대한 바위 절벽을 의미하는 방언이다.
암괴와는 다른 거다.
덤 밑 동쪽으로 샛길이 나있다.
대부분 이 통로를 이용한다.
덤 꼭대기로 한번 걸어보시길 권한다.
비슬산 정대봉 작봉 방향
배바위.
어느 고을에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홍수 전설과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 이야기.
이게 우리 유전자의 본형같다.
수밭고개
누리장.
나무에서 누린내가 난다하여
누리장 이름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좋은 냄새다.
알고보면 억울한 식물도 많을 것이다.
이름 처음 정하는 사람 마음에
식물의 이름 운수가 결판난다.
영자. 숙자. 말자. 말숙.
아무렇게나 부를 이름이 아니다.
이름은 존귀하게 불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이름 붙일 때
노심초사 해서 결정해야한다.
수밭고개 부근은 누리장나무 천지.
수밭골 골짜기는 생각보다 넓고 깊다.
급경사 울창한 수풀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조차 안된다.
파리풀
짚신나물
청룡산 우람한 모습.
삼필봉쪽에서만 이런 사진 얻을 수 있다.
800미터 되는 산을
일목요연하게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가
흔치않다.
이 웅장하고 힘찬 생김새에
감동 받는 사람도 많다.
청룡산에 한번 매혹되면
십년 묵은 체증이 그대로 쑥 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진정한 힐링은 자연과의 교감 혹은 대화.
이런데서 온다.
수천만 년을 이어온 풍화와 침식.
영겁의 세월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는 우리의 삶.
청룡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머물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삼필봉 전망대는
자연의 조화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쌀가루바위.
이 쌀가루로 떡을 만들어
삼필봉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떡을 돌렸다고 한다.
아무리 심한 흉년이 들어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한다.
떡을 찔 때 쓰이는 떡시루 닮았다하여
증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루봉이다.
시루봉이나 까치봉은 매우 흔한 이름이다.
증봉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담봉과
담봉 바로 밑 송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누리장 나무
수밭마을.
스티카님이 한 마리의 독사를 살리셨다.
스티카님 아니였다면
차 바퀴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