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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원
영흥고등학교 1학년 박신영
얼룩진 축축한 가위
욕심 많기로 유명한 두 손.
땅 하나 얻겠다고 주먹질한다.
제 풀에 못 이긴 두 손이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 것은 무엇이었는가.
서슬퍼런 가윗날이 조그마한 땅 덩어리를
가차없이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그 누가 잘라도 된다고 했는가.
잘리는 것은 땅이어도
정작 아픈 것은 사람인데…….
반으로 쪼개진 그 슬픔을 모르고
가위를 들고 재밌다고 웃는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 아픔을 모르고
가위를 쥐고 신난다고 웃는다.
반토막 난 땅은 피를 토해내는데…….
반토막 난 우리는 눈물만 흘려대는데…….
검붉은 피와 투명한 눈물로 얼룩져
가위는 점점 더 축축해져만 간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
인천명신여자고등학교 2학년 선희수
가위
너와 나는
하나의 꼭짓점을 사이에 두고
태어났다.
너와 내가
여태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품어왔던 고약한 상처들
언제부턴가 뾰족한 칼날이 되었다.
인연은 필연이 되어
서로의 칼끝을 향해 다가간
너와 나
마침내,
너와 내가 맞물리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상처들을 끌어안았다.
언젠가는
다시 이별을 맞이하는 운명을
가진 너와 나
그때마다 더 날카로워지는
상처들의 칼날
다시 맞물릴 때면
서로의 칼날을
더 꽉 안아주리라.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3학년 박주혜
바다의 주름살
푸른 내음이 넘실거리며
초록 칠 벗겨진 대문 너머를 기웃거린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석모도는
유독 물기가 잔뜩 묻은 곳이다
옥수수 바구니를 손으로 헤집다 보면
할머니는 짠 냄새를 등에 지고 온다
까만 오리발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콘크리트 바닥 위로 물길이 새겨진다
바다로부터 이어진 길이 주우그
발끝에 매달려 있다
수경 아래에 드러난 황갈색 이마에는
파도 몇 가닥이 새겨져 있다
소금기가 스며든 그 물결은
옅게 패인 채
할머니 이마 위에 자리 잡았다
소금 결정처럼 허옇게 피어난 검버섯,
한폭의 바다를 담아 낸 이마,
물그림자로 뒤덮여 있다
수많은 시간이 내려앉은 주름살
그 위를 어루만지면
휘어지는 눈가에도 물결이 치고는 했다
자주 파랑에 부딪혀서일까
할머니에게 가라앉은
부력을 잃은 세월
자꾸만 한 가닥씩
잔물결을 그어 낸다
잔주름 가득한 손을 잡고 있으면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다의 주름살이 만들어 내는
희미한 파도 소리와 함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영양여자고등학교 2학년 김슈룹
할머니의 곶감
가을이 담긴 택배 한 상자.
테이프로 꽁꽁 동여맨
혹여 한 알 떨어질까, 티끌 하나 들어갈까
정성으로 싸맨 택배 한 상자
열어보면 활짝 소리내며 터져나오는
경상도 시골 마을 낙엽질 무렵.
종종 가면 가장 먼저 우릴 반기던
도시의 회색 빌딩보다 높게만 보였던, 그때 그 감나무.
이젠 할머니보다 높을, 그때 그 감나무.
아직 푸르던 가을의 아기 감들은
여름이 지고 간 봉숭아가 물들였나.
눈에 선한 주홍빛 감들이
이제 이곳 택배상자 속에 곱게 말라 있다.
할머니, 할머니. 손끝마다 피어난 자글자글한 주름꽃들이
한알, 한알 다듬었을 달콤말랑한 곶감.
세월의 담금질에 짙어만 가는 할머니의 주름살이
이제 이곳 택배상자 속에 곱게 말라 있다.
이제 이곳 내 마음 속에 곱게 피어났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서울정신여자고등학교 3학년 황재연
가위가 자를 수 없는 것
우리 동네 크린토피아 가게는 일찍부터 문을 열어요
엄마가 무지런한 탓일까요?
손님 대신 먹구름이 가게 위에 붐벼요
OPEN 푯말이 매달린 유리문을 열자
눅눅한 종소리가 신발 앞코에 엉켜요
구석 진 자리에서
주름진 옷 하나를 다림질하는 엄마
종이 상자 속에
쌓인 옷들은 엄마의 꿈처럼 구겨져 있어요
한쪽 벽면엔 비닐에 쌓인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어요
값싼 가격으로 팔리는 엄마의 하루치 노동
창문에 번진 바깥 풍경도
수선해야 할 것 같아요
엄마의 별명은 가위손이에요
늘 오른손엔 낡은 가위를 쥐고
할 일을 단칼에 끝내거든요
자로 잰 듯한 각,
깔끔하게 박음질된 실은
우리 엄마의 전문이에요
어느새 가게 안에는
따닥따닥
재봉틀 소리 대신
빗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네요
구김 가득한 엄마의 감정도 다림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엄마
조각 난 잠이
엄마의 정수리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네요
잘라내기만 하는 엄마의 가위도
자를 수 없는 것이 있나봐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예진
가위
가위바위보, 언니는 언제나 보자기를 낸다
쥐가 또 비누를 갉아먹었어, 변기에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천장이 시끄러웠다. 밤에는 오줌을 참는 버릇, 손을 문질러도 거품이 나지 않던, 토막난 비누
언니와 나는 눈도 코도 귀도 닮았는데, 다른 입을 가지고 있다. 예배당 뒤에서 교회오빠와 언니가 입을 맞출 때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성호를 반대르 그었다 세면대 밖으로 물이 흘러넘쳤다. 저런, 변기가 또 막혔구나
가끔씩 언니의 브래지어를 가슴에 대본다 빈 공간은 어떻게 채우는걸까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린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들던 날들 내 꿈에선 모든 사람이 나를 동생, 이라 불렀다. 눈을 뜨면 천장이 시끄럽다 휴지를 뭉쳐 심장 가까이 넣어둔다
쥐가 간밤에 팬티를 물고갔을까 건조대에 널어둔 빨래 하나가 사라졌다 수건을 개켜 욕실에 넣어두려는데 언니의 방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범람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실 문을 열면 쥐가 달아난다 이젠 토막이 아닌 비누조각이구나 아랫도리가 가려워 속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음모가 자라있다 가위로 털을 잘라버렸다 변기 물이 넘치고 있다
티셔츠를 벗으면 갈비뼈를 건반처럼 누를 수 있어 예배당에서 오빠와 내가 연주하는 상상, 그의 손과 나의 손이 같은 건반에서 겹쳐질 때 나는 언니와 다르게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다
가위바위보, 이기면 남고 진 사람이 사라져버리자, 변기에 가위를 넣고 물을 내렸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 날에는
오빠 밑에 깔리는 꿈, 쥐가 뭉친 휴지를 물고 달아난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신광여자고등학교 3학년 이서영
매의 눈가 주름살이 선명한 이유
남대문 시장 골목 한켠, 오래된 시계 금은방에는
멈춰버린 사람들의 시간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매의 습성을 되뇌이는 노인이 있다
그의 눈가에 가득한 주름살은
바쁘게 돌아가던 시침들이 잠시 쉬어가며 새겨놓은 것일까
하루하루 늘어가는 얼굴 위 실금들이 숙련된 매의 솜씨를 알려준다
둥글게 둘러앉은 숫자들을 아세운 채
톱니바퀴 맞물린 먼지를 섬세한 깃털로 걷어내는 그
튀어나온 부리처럼 뾰족한 도구들을 낚아채
나사 이곳저곳을 풀어본다
그의 유일한 장기는 작업대 밑에 모아놓은 시곗줄을 골라 물어
양끝 고리에 맞춰 끼워넣는 일
온 힘이 몰린 손끝엔 쥐가 나는 일이 잦다
그는 정적이 깎아내린 절벽 위에 살고 있는 걸까
조심스러운 그의 날갯짓
시간을 거스른 흔적이 장갑 곳곳 가득하다
그가 시계를 덮고 있던 지문들을 닦아내자
찌푸린 눈가 그늘 아래 숨어 있던 시간들이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흐릿했던 시공간이 선명해진다
오르골처럼 돌아가는 초침은
노인의 흘러간 세월도 태엽으로 감고 있을까
시간의 무게를 진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몰두된 정신이 덫에 걸려 휘청거리고
돋보기를 쓴 눈에선 왜곡된 졸음이 쏟아져나온다
잠에서 깨기 위해
하얀 머리 위 꽁지깃을 뽑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린 노인
피로가 잔뜩 쌓인 뒷목을 부여잡고 기지개 피며 마무리 하는 작업
답답한 장갑을 겨우 벗으면
뭉툭해진 발톱은 더 이상 감각이 없다
그가 되돌린 시간만큼 더 빠르게 흘러간 하루에
어느 새 침침해진 눈
밤을 바라보는 매의 눈가에 별빛이 촉촉히 고이고 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
우송고등학교 2학년 최맑은샘
가위질하는 여자
우리는 사실 전부 같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대
씨앗보다도 작았던 기원에 대해 얘기하자면
모두를 주워왔다던 다리 밑에 정말로
그 여자가 살고 있다는 것부터
어둠이 내린 밤마다 매번 다른 모양으로 가위질을 한다는
여자는 가위가 탯줄을 끊어낼 때 비로소 우리가
개인이 되었고 그래서 외로운 거라는
웃음같은 말을 했다는데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자꾸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깊은 어제로 돌아간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려
그녀는 탯줄을 자르는 순간 생기는 유통기한을
할머니의 가냘픈 몸 어디에 숨겨놓은걸까
멈추지 않는 바람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
왜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흔들릴까
생은 동그라미 같아서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닿아 있다지
할머니는 다리 밑에서 다리 밑으로 흘러가버린 거야
장례를 치른 오후엔 집에 오는 내내
가윗날 가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한없이 이상해지고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옥련여자고등학교 3학년 이영은
시간을 자르는 법
줄포리의 낡은 헤어 샬롱에선
사각이는 가위질 소리가 났다
튿어진 가죽 의자에 앉은 할머니
은백색 머리칼은 지나온 세월만큼 자라났다
긴 시간이 가위질 한 번에
후두둑 잘려 나간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선풍기에서 자꾸만
잡음이 새어나왔다
할머니의 생에 그어졌던 균열처럼
그 소리는 들쭉날쭉했다
마른 어깨 위, 불시착한 머리카락 한 올
살롱 대신 샬롱으로,
잘못 쓰여진 모음이 떠올랐다
날과 날이 날카롭게 맞닿으며
가위질은 조용히 이어졌다
언뜻 바라본 가위는
시곗바늘처럼 보였다
길게 자란 시간을 잘라 내면
바늘이 뒤로 돌아가,
잃어버린 날을 찾을 수 있는 걸까
골목의 끝에서 함께 낡아 가는
헤어 샬롱
귀퉁이가 닳은 거울 속엔
이제는 늙어 버린 할머니아 있었고,
아주머니 미용사가 있었고,
소파에 앉은 내 모습이 있었다
서걱대는 소리가 끈질기게 울려 퍼졌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대천고등학교 3학년 김원희
가위
죽정동 삼거리 위치한 헤어스페이스
갈색 곱슬머리를 치렁치렁 흔들며,
손님들에게 발랄한 미소짓는 멋쟁이 아줌마
집에선 날이 선 말들로, 나를 뜨끔하게 하던
우리 엄마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겉모습과 달리
엄마는 언제나 녹이 슨 가위를 품고 다니셨다
나는 아티스트야. 헤어아티스트
예술가는 혼이 담긴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던 말
그거 개똥철학이라며, 피익 농담을 던지고
피식 웃으시며 내 머리를 쥐어박을 때
눈에 들어온 어느새 깊어진 엄마의 주름살
어서 새 화장품을 사야겠다며 익살스레 말하지만
나는 그 속에 잠긴 고단한 시간들을 기억한다
아빠가 집을 나간 뒤,
나와 동생을 제 품에 안으시어
수십번의 계절을 견뎌온 몸은
158cm, 48kg의 작은 체구
언제나 셔터를 내리고 돌아오시면
온 몸 가득히 묻던 11시, 하루의 끝
통장을 보면 늘어지던 한숨과 곱지 않던 시선에도
꿋꿋이 가위를 놓지 않던 건, 어쩌면
길게 얽히고 섥힌 짐들을 싹둑 자르려던 건 아닌가
오래된 칼날은 점차 무뎌지고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몸집이 커진 내가 걱정하면
무리없다며 가볍게 짓던 미소
무수히 봐온 표정인데도, 가슴 한 편이 저릿하다
나는 엄마의 가위를 검지에 끼운 채 말한다
머리 잘라드릴까요? 손님
왁자지껄 흘리던 웃음, 파인 보조개
엄마는 이제 행복을 제단하는 중이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이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신수민
자르지 못한 핏줄이 심장보다 거세게 뛴다
가슴 속 짐승을 숨기지 않는 아빠를 피해 도망친
햇빛도 안 들리는 침침한 집
언니는 맨발로 나와 골목에서 구두를 신고 달리면
그 뒤의 그림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언니의 얼굴에 대한 기억의 시력이 나빠질때 들린 집엔
바람냄새를 잔뜩 묻치고 구두에서 내려온 언니
분노로 채워진 기운에 저절로 일어난 엄마
아침 드라마 시청자가 된 내가 있다
엄마는 혼수로 가져온 쌍둥이 가위로
한도초과된 언니의 신용카드를 자른다
속옷과 다를 바 없는 언니의 옷을 자른다
잦은 탈색으로 지푸라기가 된 언니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언니는 자식같이 여기는 옷이 갈갈이 찢겨
인공위성처럼 나도는 조각을 맞추며 통곡하다
다시 탈옥을 할 준비를 한다
얼마 있다 조심스레 닫치는 현관문에
엄마의 급하게 돌아간 고개
길게 파인 눈주름에 미안함이 맺혀 있다
자르지 못한 핏줄이 심장보다 거세게 뛴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대전구봉고등학교 3학년 김예람
엄마의 쪽가위
수줍게 붉은 꽃망울을 벙글은 배롱나무 잔가지가
먼지 낀 창문을 두드렸다
잔가지가 쓸고 지나간 맑은 유리창 사이로
봄기운에 늘어진 햇살이 눅진하게 내려앉았다
바닥을 구르는 수 백개의 플라스틱 눈알들
내 발에 치여 딱딱한 울음을 뱉는다
방석 위로 주저앉은 엄마의 손끝에
가느다란 실이 꿰어진 바늘이 들려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채 수술을 기다리는 장님이 된 인형들
허연 실타래가 분주하게 풀어진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실타래가 멈춰섰다
엄마의 다른 한 손에 들린 쪽가위가
서걱거리며 허공을 몇 번 베어냈다
코팅이 벗겨진 몸통은 엄마의 손끝에
비릿한 쇳내를 뱉어냈다
세월에 붉게 달아올라 몸살을 앓는 칼날
가느다란 실 한 가닥조차 단번에 끊어내지 못했다
힘겹게 쪽가위가 스타트 선을 끊어내자 시작되는
엄마의 눈 이식 수술
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천장만을 바라보던 플라스틱 눈동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정면을 향했다
엄마는 실과 함께 자신의 세월을 베어낸 쪽가위를 들고
오늘도 한참을 서걱거렸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8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고가은
싹둑싹둑
인적 드문 공중화장실 맨 끝 칸
쓰레기통에 버려진 가위
하나였던 것이 둘로 갈라지는 순간
언니는 힘겹게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학교 아래 문방구를 지나갈 때 본
허공에 가위질을 하고 있던 교복 입은 뒷 모습
언니는 한복 디자이너가 꿈이라며
항상 가방에 반짇고리와 가위를 넣고 다녔다
천을 가볍게 가르는 가윗날처럼
재빠른 발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가던 언니를
뒷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된 건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던 옆 반 남학생과
싹둑, 둘로 갈라졌을 때부터였을까
짧게 머리를 자르고 멋쩍게 웃던 언니
몇 달 내내 교실 뒷자리에서 잠만 자다가
웅크린 등마저 사라져버린 언니
오랫동안 쓰지 않아 무뎌진 가위처럼
걸을 때마다 주춤거리며
자꾸만 몸이 한 쪽으로 기울던 언니
삐걱이는 몸으로 들어간 공중화장실에서
언니는 마지막으로 가위를 꺼내 들고
가장 질긴 가위지를 시작했다
하나였던 것이 둘로 갈라지는 순간
더 잘게 조각나버린 한 사람
싹둑, 하고 종이의 반쪽이 떨어져나간다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진 조각
남은 반쪽은 다시 하나로 되돌아간다
더 작이진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