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천국의 오묘(奧竗)
마가복음 4:11
이태원교회(梨院)
主卽萬古發明家也, 自古人心, 崇拜發明家, 電氣發明에듸논씨, 蒸汽發明포알톤씨, 牛痘發明셴타氏, 皆爲人之所崇拜者, 皆蒙利千世, 今日亦然, 社會主義發明者막쓰氏, 世人何等仰慕也, 此等發明, 世皆仰之, 况使人得救之發明者乎? 然其道隱而不顯, 故主嘗設譬而言之, 天國如風, 任吹而不知風自何來也. 又如田中之宝, 人偶遇而買之, 切非人人可得也. 노아之世, 洪水之來, 人誰知之, 惟노아知之, 아브라함之時, 天星海沙之比, 誰能知之, 惟아브라함知之, 信者以外, 切不能知之, 惟信者知之. 北美大陸, 人不能知之, 而惟골놈브氏以信知之, 其隱而不顯者, 布列如下. ◇一贖罪甚奧難知, 我有犯罪, 國人排之, 社會斥之, 如猶人之癩病者, 稅吏之惡名, 此人無生世之希望, 此人美衣不足貴, 珍食不足甘, 惟罪人已而也. 人皆割席而坐, 人不握手而言, 此外現之罪人也. 且人雖不知而內有隱罪, 雖外面粉飾爲善人, 而內則戚戚不寧, 欲忘其憂戚而赴劇場, 不甚歡喜, 又見自然界之綺麗, 蜂歌蝶舞, 萬象咸熙, 而獨此人眉端自縮, 然一入敎堂, 聞赦宥之說, 心始安頓, 心知信仰, 爲得救之路, 自聖經之言, 現罪隱罪, 皆爲自服自覺, 心靈爽豁, 如開雲見天矣. 然不自服心, 受無限之苦痛, 而或成大病而死, 故黙黙自服于主前可矣. 此天國之奧義, 而主實顯之也. 主血而成之也, 엡一章七.八절. ◇二爲神之子, 甚奧難知, 人知甚昧, 不能見神, 况爲神之子乎? 如이고듸모之學者, 亦不能知主, 以重生之說諭之, 重生甚非易, 易非聖神不能, 요한三章六節. 主之神與我之神交通而後, 證其爲神之子也. 롬八章十六節. 此非由人意而生, 又非由自而生, 又非私欲而生也, 但由神而生也. 以人性言之, 多有澁滯, 不能通曉, 而初信時, 羞爲敎人, 羞入敎堂, 及至信熟, 更曰誰能絶我於基督也? 롬八章三十一節. 以下基督, 更曰 不媿爲兄弟, 聖之者被聖者, 皆幷出於一, 故爲兄弟云. 히二章十一節. 世之論理氣, 血同則爲兄弟, 主之血価, 我心灵之內, 精潔其罪惡後, 爲神之子也. 退溪幼時, 見兄之手傷流血, 乃流淚而泣, 吾等見主之血, 爲我等之罪而流, 吾等豈不悔罪乎? 於是吾等, 乃呼上帝爲父也. 갈四章六節. 豈非奧妙乎? ◇三復活.
주님은 바로 만고의 발명가이십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발명가를 숭상했습니다.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 증기(蒸氣)를 발명한 마슈 보울톤 (포올톤. 제임스 왓트와 협력한 발명가), 우두(牛痘)의 발명자 제너(셴타) 등은 모두 사람들에게 숭상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천년 세월에 이익을 끼칠 것입니다. 오늘 날도 역시 그러합니다. 사회주의(社會主義)의 발명자 칼 막스를 사람들이 얼마나 우러러 봅니까?
이러한 발명을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도록 한 분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주님은 이 진리를 감추고 나타내려 하지 않으시어 일찍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불어오기는 하지마는,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밭 가운데 숨겨진 보물과 같아서 사람들이 우연히 그것을 보고 사들이는 것이지 결코 사람마다 보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세상에 홍수가 올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오직 노아가 알았으며, 아브라함에게 임하는 복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에 비유한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직 아브라함만이 알았습니다. 곧 믿는 자 이외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북미 대륙(北美大陸)이 있는지 사람들은 몰랐지만, 콜럼버스가 믿음으로 그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처럼 숨겨져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첫째 속죄는 매우 오묘하여 알기에 쉽지 않습니다.
범죄 하면 사람들이 배척하고 또 사회가 배척합니다. 유대인 중에서 한센씨 환자와 세리는 악명이 높아서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살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좋은 옷도 귀하지 않고, 좋은 음식도 맛이 없습니다. 이들은 오직 죄인일 따름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자리도 따로 떼어 놓고 앉아 있어야 했고, 사람들과 악수하며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은 밖으로 나타난 죄인이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속에 죄가 있으면 아무리 밖으로 선인(善人)으로 꾸며 보려고 해도 마음이 우울하여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함을 잊어 보려 극장으로 달려가지만 기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 자연계의 벌이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며 모든 현상이 다 즐거워해도, 이 사람은 근심으로 눈 꼬리가 쪼그라듭니다.
그러나 한번 교회당에 들어가서 죄를 용서받게 되면,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고 믿음이 바로 구원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서 죄를 다 깨닫고 자복하면 영혼이 상쾌해져서, 마치 구름을 걷고 하늘이 나타난 것 같이 됩니다. 그런데 자복하지 않는 마음은 무한한 고통을 받게 되며, 결국 큰 병을 얻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묵묵하게 주님 앞에 자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의 깊은 뜻으로, 주님께서 실현해 보이셨습니다. 주님의 피로 이루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7-8).
◇ 둘째, 하나님의 자식이 된 것도 오묘하여 알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지식은 매우 어두워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식이겠습니까? 니고데모가 주님을 몰라보자 거듭 태어나는 이치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거듭 태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3:6). 주님의 영과 나의 영이 서로 교통한 뒤에 하나님의 자식이 되었음을 증거하게 됩니다.(로마서 8:16).
이는 사람의 뜻에 의해서도 아니고, 또 자유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또 사욕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품으로 보면, 처음 신앙을 가질 때 교인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교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익숙해지면서 ‘누가 나를 그리스도로부터 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게 됩니다.
로마서 8:31절 이하에 ‘형제 됨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는 거룩하게 하신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니,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히브리서 2:11). 세상에서 피를 같이 나눈 자를 형제라고 합니다. 주님의 피의 값은 우리 심령(心靈)에 그 죄악을 깨 끗게 한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퇴계(退溪 : 이황) 선생은 어린 시절, 그 형님의 손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린 것을 보며 우리가 어찌 죄를 뉘우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4:6). 이 어찌 오묘하지 않습니까?
◇ 셋째는 부활입니다. (이하 공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