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국이 만주점령
노불독 삼국의 간섭으로 만주를 청국에 환부한 후 그 이듬해에 노국이 동청철도(東淸鐵道) 부설권을 청국으로부터 얻어가지고 전 만주를 통하여 세비리아와 해삼위를 연락하고 조선까지 연락되는 철도를 놓았으며 또 여순과 대연 두 항구는 전쟁이 있을 때 사용하는 권리를 얻었다가 그 후 광무 원년 11월에 청국이 선교사 살해사건이 있어 각국이 연합하여 청국과 전쟁하여 그 대상으로 독일이 교주만을 점령함에 노국도 그때 여순 대연을 점령하였다.
또 그 이듬해에 요동반도를 조차하여 군사시설을 하며 그 화근이 조선까지 미치게 되어 조선 남해에 군사지를 얻어가지고 대만해협의 문호를 주장하여 여순과 해삼위와의 연락을 취하려하는지라. 이것은 동아의 큰 위협이다.
그리하여 광무원년 10월에 목포 남쪽 고하도(孤下島)를 얻으려고 우리 외교부의 공문을 얻어가지고 가서 조사하여 보고 토지를 매수하려하였으나 목포 감리(監理) 진상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광무 3년 4월에 노공사 파우로후가 귀국하는 길에 마산 가서 지세를 살펴보고 토지를 매수하려다가 일인들이 먼저 점령한 고로 또한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나 만주에 대한 경영은 점차 진보적으로 만주에 관동성(關東省)을 두고 아력시후가 총독으로 와있으며 태평양함대를 관할하며 또 3월에 마산 남쪽에 있는 율구미(栗口味)를 조차하려고 계약을 이루었는데 노국의 동방에 대한 야심은 노골적으로 보여 졌다.
또 광무 4년 5월에 청국에 의화단(義和團) 난이 있어 각국 연합군이 또 북경을 함락함에 그 이듬해 9월에 화약을 이루고 각국이 다 철병하였는데 오직 노국만이 철병하지 않고 동청철도 보호라 핑계하고 만주에 노병은 그냥 있으니 사실상 만주는 노국이 점령하였다.
이때에 노국의 극동경영을 막기 위하여 일본서는 영국과 악수하여 일영동맹이 성립되었으니 그 대의는 조선과 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목적하고 일본은 조선에 영국은 청국에 정치상 사업상 특수권리를 가지고 이것이 침해 드는 때에는 각각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으며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개전할 때는 엄정 중립할 것이고
또 청국의 내란으로 인하여 양국이 손해를 보는 때는 공동으로 보호의 책임을 가질 것인데 그 뒤에 노국은 만주를 도로 청국에 환부한다는 조약을 두고 철병을 3기로 나누었는데 제1기 6개월 이내에 요서에 제2기 6개월 이내 요동에 제3기 6개월 이내 흑룡강 성에서 철병하기를 되었으나 제1기는 실행하고 제2기부터는 철병치 않았다.
이로 좇아 동양의 화근 만주에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노국의 극동경영이 만주가 근거지가 되고 차차 조선에 손을 뻗칠 모양이니 청국 조선 일본은 그의 침입을 금할 수 없다. 고로 일본이 솔선하여 항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