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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담
노니노니 저녁이요. 가니가니 아침일세. 우물쭈물 하루가고 지껄찌껄 한낮일세. 우왕좌왕 우짤시고 갈팡질팡 친구찾네. 살랑살랑 자식보고 울렁울렁 나를보네. 시큼시큼 손녀보고 껑충껑충 안해보네. 부석부석 땅콩먹고 구불구불 능선이요. 흔들흔들 바위로세. 으샤으샤 청도로니 음메음메 소뿔이다. 까옥까옥 세상이니 뻐꾹뻐꾹 답례한다. 음메음메 소리치니 꾸벅꾸벅 인사한다. 비실비실 살렸거니 출렁출렁 파도친다. 살콤살콤 사탕이요. 지껄지걸 만담일세. 방긋방긋 인사하니 희희낙락 속어된다. 우물주물 천지로니 지껄지껄 우짤시고 물컹물컹 솥단지네. 부글부글 주전자요 새콤달콤 손이로세. 울긋불긋 단풍이요 푸듯푸듯 새싹이다. 가물가물 사랑이요 띄엄띄엄 추억일세. 흔들흔들 좌석이니 오라가라 못할시고 사뿐사분 거니거니 가라오라 무지로세. 야호야호 소리치고 호야호야 반응한다. 반듯반듯 고개들고 희희낙락 쳐다본다. 올레올레 제주도요 둘레둘레 남원일세. 드섬드섬 한양이요 헬레벌떡 흥부가네 우짤시고 춘향가요 눈물흘린 백제터네. 웃음찾은 백운대요 사랑버린 바닷가네. 이별찾은 석양이요 울텅울텅 가슴이니 주룩주룩 눈물지네. 가네오네 가뿔시고 오네가네 사무치네. 응차응차 숨고르고 아자아자 만세하네. 으샤으샤 벨트쥐고 껑충껑충 뛰고마니 주룩주룩 가을비양 웅컹웅컹 가슴뛰고 흔들흔들 낙옆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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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도 제
삶에 지치거니 단식투쟁 가볍구려. 거닌 식구 사라지고 지난 가족 나타난다. 살거니 죽은이 밥상 채리고 죽거니 사는이 추억 챙긴다. 흩어진 잎사귀 서리 기다리며 꼬까옷 준비한다. 고개숙인 평야에서 낫들고 들깨 털기 바쁘다. 겨울준비 바쁜 곳간에서 철새 쳐다본다. 봄에 피는 꽃 잊었거니 가을꽃 피어난다. 가을꽃 지거니 봄꽃이 아른거린다. 뭉개진 징검다리 무지개속에 사라지고 구름위로 개울이 흐른다. 죽은자 말없고 산자 지껄이니 무슨말을 하리오. 죽은이는 허공이요 사는이는 허상이다. 추억길 떠나보니 옛길이 아니보인다.
(김천 직지사 백련암 천도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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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상
웃는모습 사라지고 허스키한 목소리 들려온다. 여드름 드섬드섬 섬긴지 언제거니 아직도 빰가에는 여드름 자국 선명하다. 길거리 배회하며 웃는처자 보일시고 한걸음 앞서거니 유치원차 지나간다. 한맺힌 사랑. 못다한 인연. 가슴에 숨긴 사연. 어디에 있을거뇨,,, 향냄새 그윽하니 누가 아는척 하리오. 동자승이 할배 흉내내고 지팡이 잡고 능선을 넘는다. 사라진 추억에 무악재고개 까마귀가 왠말이뇨. 젊은 청춘이 육순에 사하니 누구의 손짓이요. 무악재고개의 발자욱이 보인다. 아침햇살 바라보며 독립문 오르던 안산이 어드메뇨,, 노을빛에 지팡이 지어보고 무악재고개 넘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리며 너는 너무 착해서 앞서가는구나 친구야 잘가시게나.. |
향 불
길어진 가을밤 길을 나선다. 가을들녁 황금색이로니 노다지 세상이로세. 재갈재갈 참새 전신주에 걸쳐 있고 고추잠자리 제방에서 입방아 찐다. 달빛이 비추는 들판에 고나리 보금자리 찾는다. 보쌈진 나그네 주막등 찾아 징검다리 건넌다. 다람쥐 밤톨쥐고 밤새거니 참게 민물가에 숨어 겨울 준비한다. 텅빈 호주머니 낙옆으로 가득차고 텅빈 마음 추억으로 가득차다. 달빛에 더불린 여정이 시작된다. 만생이 잠든 침묵속에 한 마리 올빼미 되어 길을 나선다. 초행길 미숙하여 나뭇가지에 머리 부딪치고 헛발질하여 바위에서 뒹굴기도 한다. 홀로 가는 길. 말동무 없는 길. 어눅한 밤나절 벽제에서 무거운 육신 집어던지고 북한산 방랑자되여 초저녁 은평구를 헤매고 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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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녁
노을 써치라이트 비추니 황금빛 누런색으로 변색된다. 흩어진 이삭 볏짚과 사별하고 탈곡기 우렁차고 경운기 바삐 움직인다. 호남평야 곡창지대 기역 낫든이 없이 벼이삭 추수린다. 소달구지 없어지니 트랙터 분주하고 “천고마비” 말(馬)이 살찌러니 말(馬)볼길 없구려. 허송세월 벼이삭 추수함에 무엇을 거두리오? 밭두렁 개울가에서 우렁각시 만나고 논두렁에서 고추잠자리 만난다. 가을녁 갈대 고개 숙이고 벼이삭 고개 숙인다. 바람결에 동분서주하고 갈팡질팡 길찾고 헤매네. 바느질에 눈이 침침하더니 짜깁기에 바쁘구려. 화분에서 장미보고 길거리 들국화 보네. 저녁에 길떠나니 검은색이 천지요 아침에 길떠나니 백색이 만세로다. |
변 색
황금빛 물결친다. 누런 알갱이 허수아비 불침범에 낮잠 즐긴다. 가냘픈 줄기 잎사귀 단풍인양 물들고 포도송이 얽히듯 탐스런 밤한공기 쌀겨가 보담는다. 가을바람 요동치니 대양의 파도처럼 황금바다 물결친다. 단풍으로 치장하는 가을산 치장에 시샘하며 온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풍년가 괭가리소리 들릴법하고 천하지대본 깃발 보일성 싶다. 억새풀 을씨런스레 벼이삭 흉내내고 바람결에 들썩인다. 오곡백과 한여름 기억하며 세상을 수놓는다. 신작로길 코스모스 피어나고 내천에 들국화 만개하다. 하늘에 구름 사라진지 오래고 밭두렁에 빨간고추 탐스럽다. 껫잎 내음 진동하고 배추들 대지에 뿌리내린다. 이사가느냐 철새들 바쁘고 모기 사라진 허공보고 창문을 열어본다. 세상은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은 살아 있었다. 세상은 일어나고 있었다. 가을비에 몸가르며 오늘 나의 가을을 무심코 지내 버렸다. |
낙 옆
눈에 가린 눈꺼풀 걷혀지고 흩어진 암흑이 사라진다. 살겨운 구름이 살아 움직이고 태양이 동서로 운행한다. 가물어진 세상이 꿈틀거린다. 키재기하며 살아숨쉬는 야생화들. 하늘에 사다리 놓듯 허공을 헤집는 나무 잎사귀들,, 뱀의 요동처럼 계곡을 헤집는 내울들,, 낙옆시체 썩는 냄새 진동하는 오솔길에 발디디며 조상묘 숭배한다. 하늘을 뒤덮은 낙옆들이 대지에 낙화하며 밑거름이 된다. 한해,두해,세해, 네해,다섯해,,, 가을이면 하늘을 뒤덮은 잎사귀들이 대지로 낙화하며 뿌리 보온 역할을 한다. 낙옆은 비료가 되어 새로운 생명체를 부활시킨다. 미천한 나무의 겨울나기가 낙옆이 떨어지며 뿌리를 보호하니 어찌 인간들 낙옆에 비자루 하리오. 가늘 낙옆은 심오한 것이다. 가을길은 이별로 넘쳐난다. 낙옆의 처절함이 온천지에 뒤덮고 도로가 낙옆쓰는 청소부를 볼시 나는 불현 듯 생각한다. “ 나는 한잎의 낙옆이여,,,” |
원 점
지구 한바퀴 돌아본자 누구뇨? 땅덩어리 밟고 다니다 고향찾아 주저앉네. 인생사 순회한자 누구뇨? 손주 웃음에 세상사 고뇌 잊어버리고 벤치에 걸터앉네. 사계절 경험한자 누구뇨? 봄의 달콤함과 여름의 정열과 가을의 고독함과 겨울의 냉험함에 옷갈아 입느냐 바뻤네. 하루를 삶에 시계 쳐다 보는자 어디있뇨? 모닝콜에 이끌려 보낸 하루. 어눅함에 집으로 향한다. 길어진 어둠에 산짐승처럼 침묵을 지킨다. 가벼운 미소에 넋을 잃고 냉소의 입가에 도량 깊이 가름한다. 무너진 인연이 달빛아래 아른거린다. 하루를 살던 이틀을 살던 우리가 거닌 수많은 발자욱의 흔적들. 삶에 의지한 채 버텨온 수많은 환희들. 병원에서 치유할 수 없는 암덩어리 같은 회상들이 떠오르고 팔이 절단되는 고통의 이별을 경험한 우리들,, 계절에 숨은 우리들의 과거는 하루를 지낸 오늘처럼 선명하게 회상한다. 온세상을 헤집고 다녀본 다음 원점(집)으로 돌아오듯 우린 둥그런 원을 그리며 돌고 돌면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원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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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
주룩주룩,, 겨울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린다. 들에도, 강에도, 내천에도, 논에도,밭에도,,, 눈물자국 그윽한 차량을 몰고 길을 나선다. 차량은 눈물을 보이기 싫어 세차를 하고 광택을 한다. 순간 하늘의 눈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무지개없이 어울린 눈물자국이 태양의 지껄임에 일순간 사라진다. 하늘에서는 무엇이 슬픈지 눈물을 흐른다. 눈방울에 젖은 만생들은 화초에 물주는 우리가 순간 화초가 되어본다. 조루에 떨어지는 생명수를 받드는 화초처럼 부리나케 생명수를 받아먹는다. 먼지에 찌든 오솔길 눈물로 졌시고 .탐욕에 찌든 도심 물청소 해준다. 화재시 소방차 물뿌리듯 용광로 같은 세상에 물을 뿌려준다. 가을비. 주룩주룩,, 주룩주룩,, 가을비는 가냘프다. 여인의 어깨처럼 가냘프다. 봄비에 꿈찾고 여름비에 옷졌시고 가을비에 보금자리 찾네. 요지경 세상. 몇만분의 일 몸뚱아리 보는 현미경 보듯 비행기에서 보는 손톱같은 집 속에 인간사 어울림에 구름위 신선되여 본다. 빗방울 떨어지는 구름위를 횡단하여 보니 사시사철 건기로세. 우린 눈물없이 살수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하늘의 눈물도,, 추억의 눈물도,, 사랑의 눈물도,, 하늘의 눈물을 담아먹는 우리는 빗방울을 생명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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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넓적만두 같은 반달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사과조각인양 초승달 맛나게 보인다. 여덟개 조각 피자처럼 상현달 탐스럽고, 여섯개 조각 파전처럼 하현달 보며 막걸리에 취해본다. 광열하는 햇빛에 그슬려보고 , 썬글라스 낀채 골목길 거닐어 본다. 일사병 태양열에 화상 입는다. 가뭄에 태양 원망하고 장마철 빨래 건조 어려움에 태양 그리워 한다. 못난 이끼 몰살하고, 인삼,버섯에 상처주니 빛살에 탄핵 요구한다. 눈먼 장님 그리워하는 빛이 감옥에서 수감 생활하는 죄수들이 바라보며 태양의 서광에 흐느낀다. 지하철에서 나올시 보이는 빛의 광열이 눈부시다. 가려진 커텐에서 침대칸에 비춰지는 아침햇살이 한없이 고귀하다. 태양이 사멸되면 서로 약속이나 한양 슬그머니 지평선에 나타나는 초승달. 상현달. 하현달. 반달. 보름달. 태양처럼 눈부시지 않고 잠든 시간에 수많은 별들과 어울리거니, 가로등에 묻혀 사멸된 빛이 될지언정 모든달이 어느 순간 밤손님 안내하는 가로등이 되었을꼬,,, 아님 올빼미 길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었을꼬,,
초승달. 상현달. 하현달. 반달. 보름달. 달 그림자 밟고 허공을 쳐다보니 한여름 바닷가에서 그슬린 태양빛 썬텐자국처럼 달빛에 그슬린 썬텐자국이 내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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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월
12월이 지나려니 13월이 기다려 진다. 13월이 지나 14월이 15월, 16월 ,17월이,,, 없으려니 세월의 유구함에 쓴웃음 지어본다. 동서로 지는 태양과 서동으로 지는 달아래 시침은 요동치고 타이머 시계는 쉴틈없이 움직인다. 달력보는 순간 덩그렁 남은 달력 한 장에 우리의 12월은 초췌하기도 하다. 13월이 없기에 아쉬워하고 14월이 없기에 나이 셈에 지쳐버린다. 15월이 존재치 않기 2017년 인정하며 16월이 생소하기 25시.26시.27시 만들며 하루를 연장한다. 61분,71분, 81분 시계 만들어 한시간을 무시하고 65호,75초,85초 손목시계 차고 1분을 연장하여 본다. 우린 봄,여름,가을,겨울 자연의 순리에 맞추어 사는 동물이다. 굳이 시계와 달력이 없어도 우린 한해가 가는 것을 알고 있다. 한겨울. 두터운 외투에 손장갑끼고 어울리는 새해. 삼라만상이 무던이 지내는 한겨울. 우린 손목시계와 달력을 쳐다보며 새해가 왔다고 난리법썩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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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각
같은 언어 구사하며 지구상 국경선 그은 성안에 갇혀 사는 동포들. 비슷한 얼굴 서로 쳐다보며 미남, 추남 구분하며 사는 부락민들. 참한 이 찾을 수 없어 부모 형제 의지하며 혈연 연맹 유지한다. 애국지사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상상의 인물이요, 도로는 자동차 경주장이요, 길거리는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간의 치열한 경쟁이다. 학원가는 학도들 경쟁의 서열싸움에 밤새 불야성이다. 티브이는 시청율 다툼에 대중문화 이끌고 ,뉴스는 수십개 방송매개체로 광고로 넘쳐난다. 스포츠 게임처럼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다. 경쟁자를 이겨야 승리하는 글러브 낀 권투선수처럼 상대방의 한방을 맞고 코피가 날지언정 상대방에게 펀치를 날린다. 약육강식에 생존한 연어처럼 끝없는 강을 거슬러 오른다. 수십억 인간으로 뒤엉킨 세상. 수십억 인간들이 탐욕스러운 르네상스를 꿈꾸며 사는 세상. 그 세상은 금강 철새도래지의 가창오리처럼 세월따라 구름따라 무리모여 살다 뿔뿔이 흩어져 하나하나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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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종
무엇하리오. 살아서 지껄이니 들어주는이 없네. 들어주리오. 내 새끼 아파하니 병원 의사 옥황상제로다. 말하리오. 달이 지니 봄이 가고 해가 뜨니 여름이 오네. 잠꼬대 하리오. 꿈이려니 잠꼬대하고, 꿈깨니 일장춘몽이로세. 오색구름 가마대령이오. 조랑말 신랑 출두하네. 오작교 찾을 길 없어 징검다리 거닐거니 사뿐사뿐 나비 날개짓이네. 가늘어진 바람에 육신 던져보고 따스한 햇살에 눈빛 맞추어본다. 일정기 보리밭고개 거닐다. 해방 독립만세에 태어난 역고속에 재생된 복사판들. 기리기리 길거리 배회하며 철새따라 길을 떠나네. 갈수 없는 길. 우린 길을 떠난다. 우린 길을 찾는다. 길을 찾음에 길을 떠남에 바리바리 짐보따리 싸고 배낭여행 가는 방랑자처럼 아니 등정길에 오른 산악인처럼 어는이 호주머니에 교통카드 하나 지니고 철새따라 유유히 구름위로 여행 떠나네.
(큰어머님 임종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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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彈劾)
“탄핵(彈劾)” 일반 사법절차로는 소추나 처벌이 어려운 정부의 고급공무원이나 신분이 강력하게 보장되여 있는 법전등에 국민의 국회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소추하여 파멸하는 제도,,, “탄핵(彈劾)” 지금 시대에 탄핵을 요한다. 죄를 묻고 답하고, 죄를 가름하고 판별하고 죄를 용서하고 묵인하는 절차가 있을려니,,, 법률적으로 타당한 육법전서의 해석이건, 도의적으로 타당한 윤리적인 해석이건,, 탄핵(彈劾). 나도 이전에 탄핵을 받아보았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다 용암 잔해 식을지언정 탄핵으로 그슬린 용암에는 몇천년 지난 후에야 대지의 흙이 되어 한송이 꽃을 피우네... 탄핵(彈劾). 종로 뒷골목길에서 막걸리잔 기울며 몇 년전 나의 탄핵(彈劾)을 기억하며 슬픔에 잠겨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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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로 서 기
친구 나 익산이여,, 내가 직업을 잘못 택했구먼,, 가족 패댕이치고 친구 패댕이치고 편한 직업도 많은데 새벽녘에 일꾼들과 어울려 순대먹고 막걸리 먹다 하루가 금새 간다네. 허공에 상상스케치를 하고 차곡차곡 완성해 갈때는 수십 하청업체가 고맙기도 하네. 서로 상의하고, 서로 신뢰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수백명이 어울릴 때 자그마한 집이 완성 된다네. 세상 삶에 물질이 중요하건만 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 싶었네. 글이건,시이건,수필이건,건물이건,주택이건,, 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 싶었네. 내가 간직하고 싶은 보물제1호인 가족사진처럼 손녀,외손녀한테 할아버지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네. 돈을 습득함에 노력이 있어야 하고 ,운도 있어야 하고, 인맥도 있어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돈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취미(?)활동인 주택집짓기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매일 짓고 있는데, 서울역에 바이올린 키는 악사처럼 나한테 동전 한잎 던져주니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네. 나는 배고픈 예술인 이라네 흔한 건축업자가 아닌 배고픈 예술창작가라네. 추후 내손녀,외손녀 손자들이 내집을 유람하며 자랑하겠지. 나는 그런 자부심에 살고 있다네. 삼시세끼 먹자고 사는 인생 없다네. 희망을 먹고, 인생을 먹고, 미래를 먹고, 과거를 먹고 슬픔을 먹고 괴로움을 먹을지언정 나는 길거리 악사가 될것이네. 고맙데이 친구 내글 끝까지 읽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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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
책꽂이에 쳐넣은 파란색 표지의 “의숙1권”을 읽어본다. 잊어버린 사진들과 말들이 부리나케 기억나는 구먼... 얼마전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한 “부부동반 송년회” 부럽기도 하다. 열흘전 안해가 익산으로 내려와 지저분한 자취방의 화장실. 주방,베란다를 대청소 해주니 집안에 모처럼 안해의 손길이 닿아 정겨웠다네. 좋은 친구들,,, 한때 장충동족발의 발의로 시작된 우리 모임. 그 모임이 7~8년이 지나건만 본이 아니게 “할아버지”가 되려는 순간 홀로 생각해 본다. 길거리 독거노인(?)인 나에게 찾아와 변기통,하수도,씽크대 대청소 해준 안해. 반찬 짜게 먹지 말라. 긍적적으로 사세요. 항시 힘들일 있으면 같이 상의하세요. 동반자이자. 감시자이자. 묵시자이자. 조언자이자. 평가자인 “안해” 세상에 안해만큼 친한 친구는 없는겨,,, 얼마전 부부동반 망년회. 남도로 귀향간 역적처럼 “부부동반 망년회” 한양소식에 모처럼 북쪽을 쳐다보았네. 친우들. 친한 친구는 바로 옆에 있다네. 술잔 기우는 친구보다 좋은소리, 쓴소리 하는 절친 보다 세상에 가장 유일한 친구는 “여친”인 바로 자네들 “안해”라네. 캠핑가듯 매일 밥도 같이 해먹고, 같이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고 ,, 인생 희노애락을 같이 하고, 죽음도 같이하는 세상에 유일한 친구. 그 친구는 사춘기때 사귄 유일한 여친인 “안해”라네. 친우들! 철부지 풋내기 아닐지언정 “여친”들에게 모두들 잘해주시게나.. 그리고 추억거리 많이 만드시게나..
“의숙1권” 추억사진을 뒤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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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 루
티브이 “조용히” 눌러 벙어리 만들어 버린다. 순간 영상은 살아숨쉬고, 생물처럼 꿈틀거리건만 아무소리 들리지 않는다. 귀를 막아본다. 생물들은 살아숨쉬고 영상은 꿈틀거린다. 눈을 막아본다. 암흑처럼 적막감에 소리만 들려온다. 입을 막아본다. 제한적 흡입구가 차단되고 영양소 공급 제로다. 그리고 우라무탕이 되고 손짓발짓 하기 시작한다. 코를 막아본다. 향기에 무방비중 방귀끼고 모름세 하니 썩은 홍어 입가에서 오간다. 손을 묶어본다. 주위의 사물을 정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한다. 발을 묶어본다. 장애자 수준에 버금가니 공간이동이 불가능해진다. 지인들의 어울림을 통제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독감을 느낀다. 살아있음에 밥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방황하니 오늘이로세. 고민하고 노력하고 생각하고 술한잔 걸치니 오늘이로세. 우린 매일 꿈을 꾸며 내일 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모레 같은 내일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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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간 열 차
우두커니 무궁화열차에 앉아 간이역 지난다. 대합실의 벤치가 을씨년스러 보이고, 어머니품에 안겨 잠자는 갓난아기 잠자는 모습 귀엽기도 하다. 실내조명 때문 보이지 않는 차창밖 모습은 거울처럼 어울린 기차내부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가끔 가로등이나 마을이 지날시 홀연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전경이 가끔씩 지나간다. 별이 빛나건, 구름이 지나건,달빛이 너울대건 우린 지금 무궁화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밖에는 무수한 들판과 광야와 산들과 내울과 마을이 지나건만 말없이 무궁화열차를 타고 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역은 “금지역”입니다. 다음역은 “옹정역”입니다. 기차는 한없이 달립니다. 야간열차는 더욱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개구리 겨울잠 자는 내울 교량위를 달리기도 합니다. 야간열차는 꿈속에서 방황하는 승객들에게 “폐역” 역사를 무심코 지나갑니다. 연탄난로에 불지피던 무덥한 간이역은 순간적으로 사라집니다. 어둠이라는 미명아래 역사의 명패는 길거리 가로등처럼 불연 듯 사라집니다. 우린 야간 열차를 타고 갑니다. 스쳐가는 차창밖 야경 구경못하고 스쳐가는 폐역사 하나 구경못하고 스쳐가는 전원 마을 구경 못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갑니다. 지금 우린 야간열차에서 가끔 차창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며 야간열차를 타고 갑니다. < 여기서 “ 야간열차”는 우리의 “인생길”이며, “ 어둠 때문에 차창밖을 못본다”는 것은 “삶에 지쳐 우리 주위를 등안시 “ 하는 것에 견주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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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상 화
깨진 거울 쳐다보며 조각난 내 얼굴 쳐다본다. 잔잔한 호수에 돌던지고 파장이니 일그러진 내 얼굴 쳐다본다. 지나쳐 버린 달력에서 나의 얼굴 찾아본다. 내 얼굴은 거울속에 있었다. 내 모습은 거울속에서 볼수 있었다. 그러나 거울속의 나는 바탕화면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가득 메꾸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 내 사진이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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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산에서 바다를 쳐다본다. 바다에서 산을 쳐다본다. 마을에서 언덕을 쳐다본다. 언덕에서 마을을 쳐다본다. 송년회에서 신년회를 기약한다. 신년회에서 송년회를 회상한다. “채” ‘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 있는 것.’ 이라는 단어. 개울가에서 뜰채들고 송사리 잡아본다. 그럴시 “뜰채”를 든채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기를 바랬다. 송사리가 잡히건, 메기가 잡히건,, 우린 모두 ‘파리채’를 들건 ‘뜰채’를 들건 년말에 즈음하여 “채” 라는 단어를 되새겨 본다. “죽은채 하네.” “모른채 하네.” “잘난채 하네.” 우린 “채”라는 단어에 익숙하건만 년말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채” ‘ 이미 있는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 년말에 즈음하여 “채”라는 단어가 새롭기만 하다. |
겨 울 연 가
바다내음 드리우고 파도소리 들려온다. 언덕위에 걸쳐 바위덩어리 인양 모양새 갖춘다. 구름인양 데크에 구름천막 가리고 지붕에는 까치 발자욱 그윽하다. 오솔길에 솔잎사귀 걸쳐있고 창가에는 붉은 태양 기웃거린다. 푸른 잔디 한없이 펼쳐지고 텃밭에는 쪽파 넘실대고 뒷마당에는 장독대 그윽하다. 거실에는 넓은 카페트에 쇼파 가지런하고 주방에는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진다. 안방에는 침대위 이불들 베개 벗삼아 낮잠 드리우고 허름한 벽난로 한여름 찬밥이로다. 건너방이 손님방 된지 오래요. 사랑방 사라진지 오래다. 퇴청마루 되새기며 복도처럼 꾸며보고 구들장 따스함에 전기장판 깔아본다. 우체통에는 편지하나 없고 전기고지서만 쌓인다. 우린 살던 공간을 잊어버린다. 우린 살고 있은 공간을 생각한다. 우린 살고 싶은 공간을 생각한다. “겨울연가”한때 절정에 이룬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간단명료 하였다. 인기 연예인들의 연애 스토리이거니 이 드라마가 최고 절정에 오른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집(주택)” 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자신들만의 공간. 동화속의 집을 지으고 평생 살고픈 집을 지으고 살고 싶은 욕망. 2m30cm 천정에 머리 부딪치며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들. “겨울연가” 는 헤어진 남자주인공을 잊고 싶다. 우연히 잡지책에서 여자주인공이 살고픈 집을 스케치한 집이 잡지책에서 나오길래 무심코 그 집을 찾아가 남자주인공을 만난다는 스토리. 우린 루소처럼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연에서 어울릴 한다. “겨울연가” 수십년전 드라마가 절정의 인기을 받았건만 우닐 콘테이노에 매달려 벌집의 일벌처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년말에 즈음하여 “겨울연가”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오늘 나는 안해에게 이야기 하였다네. “당신은 최지우(?) 혀,, 내가 배용준(?) 할께,,,“ 그리고 꿈에 그린 당신의 집을 내가 지어줄게,,, 하며 손가락 걸며 약속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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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우친다는 오십견을 지나 하늘의 명을 깨우치지 못한채 불현듯 회갑(回甲), 환갑(還甲)에 즈음하여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나이에 접어든다. 그리고 이듬해 앞으로 전진한다는 진갑(進甲)나이에 들어선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 하거나,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을 나이인 불혹(不惑)을 지나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서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를 지났다. 그러나 나이에 견주어 세상이치를 터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공자의 외침으로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새해 벽두부터 부정적인 시각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진갑 나이에 거짓으로 일관 하는 정치인들. 고희(古稀)의 나이 지나 하늘의 이치는 고사하고, 앞으로 전진함은 고사하고 , 불나방되여 진리에 눈먼 교수,언론인,경제인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나이에서 어울릴법한 법도와 품위는 사라진지 오래고 “삼강오륜” 사자성어로 기억한다. 동네 어르신한테 인사하고,지하철 노인석에 자리 양보한다. 그들은 나이를 무기삼아 인생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략과 지식을 오직 자신들의 방어에만 전개한다. 노인석이 왜 필요하뇨? 상석이 왜 필요한가? 나이에 견줄 하늘의 이치를 모른 철부지 약관,방녀처럼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새해에는 되새긴다. 나이에 걸맞는 옷을 걸쳐 보자.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품격을 갖추어 보자. 회갑(回甲)의 나이에 육십갑자 한바퀴 돌아 다시 원점이거늘, 우린 지금 갓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누구의 보호가 필요할지 모른다. 해는 떠오른다. 해는 떠올랐다. 나이 셈함에 회갑잔치 하건 칠순잔치하건 우린 갓난아기 돌잔치처럼 세상을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 나이 셈하지 마세. 나이 많음을 우쭐하지 마세. 우린 나이에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자연순리에 역행하다 끝없는 낭떠러지로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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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신라 경문왕의 귀를 지칭하는 말이다. 속칭 “여이설화(驢耳說話)”라고도 한다. 신라시대 경문왕 시절 복두장이는 임금님 귀가 정상인 귀가 아닌 당나귀 귀처럼 괴이함에 함구하며 살다 죽을때에 이르러 ‘도림사’ 대나무밭에서 평생 못다한 말인 “ 임근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죽으니 추후 대나무밭에 바람이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린 지금 복두장이들의 임금님에 대한 충신을 찬양한다. 우린 지금 손오공의 분신인 양 변질된 복두장이들과 어울려 산다. 수십년후 방방곡곡 들려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메아리는 한갓 또다른 설화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 우린 새해에 어울려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나의 빈약함을 용서하고 함구하며 주위에 나를 감싸주는 복두장이는 없을꼬,, 새삼스레 대나무밭에 묻혀 미약함을 평생 숨긴채 죽음에 이르러 외쳐 죽은 복두장이같은 신하 없을꼬,, 아니 그런 친구 하나 없을꼬,,, 새해에는 다짐해 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내가 복두장이 되어볼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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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 야
정유년 정월 사흘(양력) 서쪽에서 붉은 서광이 암흑천지에서 떠오른다. 가로등에 견주어 초라하기도 하다. “ 아니야” 세상에 수많은 단어중 불현 듯 떠오르는 단어. “ 아니야.” 어떻게 보면 부정단어로 판단되는 세글자를 달빛따라 드리워 본다. 낭만으로 사랑으로 풍만한 초생달빛에 어찌 “아니야”라는 단어를 어울려 볼꼬,,, “맞아,” 라는 단어는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대인관계상 ,명목상,처세술상. 그러나 “아니야”라는 단어는 우리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취침무드의 달빛아래 막걸리 한잔 걸치고 구름속에 나타난 초생달을 쳐다보며 정월 보름달을 되새긴다. 초라한 초생달이 세상을 비춘다. 써치라이트는 아닐지언정 그런대로 세상을 비추며 어둠을 거두어준다. 그때. “아니야.” 라고 하루종일 지껄이는 이가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자신이 하고픈 행위에 어긋나니 불현 듯 쉬지않고 자신의 말을 숨김없이 하고만다. “아니야.” “아니야.” 세상 표현함에 청백한 샘물같은 단어를 구사한다. 상대방이 무어라하든 “아니야.” “아니야.” 네 손녀가 훈민정음 터득함에 지껄이는 말이려니 나는 지금도 “아니야.” 라는 단어를 구사하지 못하며 살고 있거니 초생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건. 우린 태양만 쳐다보고 살고 있건만 “아니야.” “아니야.” 지껄이며 청백한 손녀,외손녀가 살아생전 처음 배운 단어. 훈민정음 단어. 본능적인 단어. 두 살백이가 말하는 단어를 덩달아 지껄이며 달빛아래 정유년을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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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울 나 기
가뭄에 찌든 대지.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자욱한 풍경이 아침햇살을 가린다. 한겨울 눈이 사라졌다. 강원도에서 볼법한 눈조차 몇일이면 녹아 사라진다. 겨울은 왔건만 하얀눈은 고사하고 겨울비라도 내리려니 창가를 쳐다본다. 꿈에 그린 동화세계 사라지고 이슬비가 내린다. 얼마전 산 장갑과 털모자는 무용지물이 된다. 전기장판 깔고 온풍기 준비했건만 추운겨울은 오지 않았다. 드럼통에 구운 군고구마 호호 불고 먹으며 어울린 시대. 군고구마 장사 사라진지 오래요, 오뎅국물에 걸축한 소주 한잔 걸친 포장마차 사라졌다. “찹쌀떡 메밀묵” 연탄불 아룻목 지짐에 들려오던 정다운 소리. “찹쌀떡 메밀묵” “찹쌀떡 메밀묵” 그 소리 들을길 없다. 진도 외투모피 무용지물이요. 내복 판매 부진하다. 철사줄 엮어 만든 썰매를 타고 마포에서 노량진으로 한강다리밑을 달리던 시절. 빙판골목길에서 비닐포대에 엉덩이 걸치고 눈길 달리던 시절. 폭설로 차량이 차도에 패댕이 쳐 도시가 마비된 모습이 사라졌다. 어린시절. 냉동실에 있을법한 얼음이 한강을 뒤덮고 작은 개미되여 한강을 건넌적이 기억난다. “얼음” 냉장고에서나 볼수 있는 단어. “얼음” 우린 그 단어를 잊어버렸다. “고드름” 무슨 단어요? “살얼음” 무슨 단어요?“ 한겨울 복판에 하얀눈이 쌓인 별천지를 보고파 하건만 우리의 겨울은 오지 않았다. 우리의 겨울은 오지 않았다. 아니 우린 평생 겨울구경 못하고 살지 모른다. 적도의 동남아인처럼,,, 심지어 한겨울 눈구경하려 북극으로 가야할지 모른다. “눈” 눈싸움하며 눈사람 만들어보고 싶건만 우린 사라진 “눈”을 아쉬워하며 혹한속에 살아온 조상님의 삶도 잊어 버릴지 모른다.
(우린 점점 자신도 모르게 적도의 “흑인”이 되가고 있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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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방 울
탐그러운 색채에 하얀 솜사탕. 가지러한 능선보며 천지 구문한다. 하늘보고 오름메 사라진 들꽃들, 바람에 흩어진 낙옆들. 평지 매회하다 사라진 혼령들. 지구 표면에서 기생하는 인류들. 창공에서 쉼터찾는 새한마리. 물속에서 숨어살다 하늘 구경하는 물고기들. 흙에서 사는 지렁이. 갯벌에 조개. 심해사는 오징어. 초원을 달리는 말. 어둠속 살며 눈감고 사는 박쥐. 하루살다 죽는 하루살이. 굴속에 식량 저장하고 열심히 사는 개미들. 다리없이 기어다니며 천적없이 절대군림하는 살모사들. 쇠똥구리 몰고 다니는 쇠똥구리. 우린 그들과 똑같이 살았다. 우린 만물의 영장이라며 그들과 똑같이 살았다.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는 물줄기. 인간사. 흔한 폭포의 물방울보다 못한 인생삶에,, 낮은곳으로 임하는 물방울보다 못한 우리들. 우린 폭포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보다 못한 만생들(하루살이,살모사,박쥐,지렁이,등등)과 어울리다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라. “똑똑똑” ‘똑똑똑“ 우리에게 노크하는 소리로 들릴뿐이다. |
바 벨 탑
해가 뜨니 아침이요. 해가 지니 밤이로세. 달이 뜨니 저녁이요. 달이 지니 새벽이로세. 정이 가니 친구요 사랑하니 가족이로세. 믿음 움직이니 동지요. 증오가 사무치니 적이로세. 한배타니 동료요 다른배 경쟁자로세. 손잡으니 동행자요 결별하니 초행자로세. 밥한끼 먹으니 지인이요, 술한잔 걸치니 호여지기로세. 아름다움 간직하니 가족이요. 은혜 찾으니 부모로세. 믿음 있거니 버스운전수요. 질투 있으니 드라마이네. 헛소리 들으니 신문이요. 거짓말 들으니 정치인 입이로세. 길을 걸으며 만나니 외인이요 말한번 어울리니 나그네로세. 철학자 만나니 사상의 대변가요 화가 만나니 공간의 디자인이로세. 교수 만나니 낭만이 절제되고 시인 만나니 자아도취 착시자이네. 벙어리 만나니 장님 부러워 하고 장님 만나니 다리장애인 부러워한다. 가진자 만나니 보초병 세우며 잠못이루고 못가진자 만나니 소주병들고 잠못 이룬다. 무신론자 만나니 유유자적이요. 신앙자 만나니 유규무언이로세. 어르신 불로장생 읆조리고 갓난아기 불로장생 속삭인다. 막국수집 한겨울 폐업하고 감자탕집 삼복더위 쉬어간다. 에어콘수리점 겨울에 몰락하고 보일러 써비스센타 한여름 휴가로세. 스님 목탁 두드리고 목사님이 찬송가 부른다. 마장동 도살잘 이사가고 그곳에 푸주간 생긴다. 장의사 이전하고 내과병원 들어오니 천상재회로세. 철새들이 날아다니고 거짓말이 온세상을 진화시키니 청학동에서 상투풀고 웃을지어다. 가물거니 33인 독립선언 어디가고 독립땅 덩어리에서 이짓할려고 “대한독립” 외쳤던가? 썩어 뭉그러진 도시에 무진장 콘크리이트 부어대니 수천년후 발견된 미완성 바벨탑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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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울 나 그 네
“겨울나그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괴로움이 진하게 고여있는 노래. 총 24편으로 편성된 노래는 1장 “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2장 “ 바람개비” 3장 “ 얼어붙은 눈물” ‘’‘’‘’‘ 24장 “ 거리의 악사”
30세 나이에 가난과 병속에서 죽음에 가까이가며 작곡한 불의의 명작이다. 죽기 1년전 완성된 곡이다. 독일이 낳은 절대 작곡가. “슈베르트” 30세에 실연과 고독과 사랑을 심취하며 작곡한 “겨울나그네” 한겨울 떠도는 죽대없는 구름처럼 홀로 세상을 떠돌았 는지 모른다. 제5장 “보리수”는 우리에게 친근한 곡이기도 하다. “성문앞 우물가에 서있는 보리수,,” ‘슈베르트’ 그가 말한 ‘겨울나그네’는 울적하고 짝잃은 새처럼 고독에 쌓였을까? 한겨울 “겨울나그네”는 최인호의 “겨울나그네”처럼 처절할지 모른다. 왜? 겨울나그네는 비참하고 슬프고 처절하여야 할까? 5장의 겨울나그네는 24장의 오케스트라 협주곡에 내가 “겨울나그네”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겨울나그네”여,, 실연을 당하건 실패를 하건 실수를 하건 실착을 하건 나는 제5장 “겨울나그네‘여,,
‘성문앞 우물가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에서 꿈을 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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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토 피 아 “유토피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상의 세계. 우린 이상주의적인 용어로 말한다. 주위의 사물을 보고 판단하고 감정으로 만족해하며 자신의 이익이 반할시 또다른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16세기 영국의 사상가에 의해 일컬어진 “유토피아” 우린 지금 물질만능주의에 휘들려 유토피아에 젖어있다.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건, 절간에서 백팔번뇌를 하건, 우린 소원성취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갈망한다. 몰락한 인간. 넘쳐나는 인간들로 세상은 난리법썩이다. 서로 밀치고 때론 부둥켜 안으며 서로의 공간과 행복론을 추구한다. 타락한 사상이 역사책에 암시하건만 , 고대도시의 몰락은 한갓 유적지로 관광유람지로 인식하고 ,백년후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빌딩을 쳐다보며 오르려 한다. “바른생활”이나 “도덕” 과목 책자 어디갔뇨? 뭉그러진 하수도에 온갖 배설물 흘러보내고 바다에서 유람선 탄다. 지하철 타고 두더지처럼 온곳을 돌아다니고, 상류댐을 만들어 연어의 고향길 막는다. 철새들 휘저으며 구름위로 날으며 쇳덩어리에서 희희낙낙한다. 자연은 사라졌다. 장승사라진 곳에 버스정류소 생기고 학교에는 사서삼경 없어지고 영어, 수학 배우면 진리 논한다. 연예지망생 넘쳐나고, 문학책 서점에서 괄시당하고 몽땅연필 사라진지 오래다. 유토피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물질이 풍요롭고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을 득하였을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세상의 물질중에 한정된 것만 소유하게 된다. 불교의 번뇌의 시작이요. 새로운 세상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달콤한 언어가 티브에서 넘쳐나고, 자극적인 음악 온세상을 포장한다. 타락한 지식인이 세상을 지배하고, 이기적인 정치인이 정장차림에 여의도 배회한다. 배타적인 의료인 돈으로 생명 흥정하고, 일확천금 노리는 인생역전 청소년 도서관에서 낮잠잔다. 우린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리고 늙어감에 유토피아를 버리고 “디스토피아”에 도달한다. 부정적인 암흑세계에 픽션을 그려냄으로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상. 우린 늙어감에 세상을 비판하는데 동질감을 갖게 된다. 어릴적 유토피아가 육십견에 이루러 “디스토피아‘에 도달함에 지금 내가 쓰는 넉두리도 “디스토피아”에 속할지 모른다. 애지당초 “유토피아”는 없었다. 사춘기 “유토피아”는 없었다. “디스토피아” 현실을 직시하는 사상. 우린 지금 세상을 편허하고 비방하며 정치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세계에 도달된 것이다. “디스토피아” 한껏 지껄이시게나 그것이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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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人)
사람인 한자로는“人”자로서 허리를 굽혀 손을 뻗어 노동일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한자어이다. 사람은 본시 노동을 하였다. 농사경작을 하건,축대를 쌓건, 대장간의 대장장이건, 탈곡을 하건, 길을 만들건, 벌목을 하건, 우리들은 허리굽혀 일하는 사람인(人)로 표기하고 일상화 하였다. 그러나 현실에 와서 우리는 점점 사람인이 아닌것처럼 행동한다. 허리굽히는 것은 노동일 때문이 아니라 상관에게 예우를 취하며 허리굽히는 이외는 사람인이 아닌것처럼 행동한다, “사람인(人)”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린 어른이 되거나 철이 들었을시 “그는 사람이 됐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주위에는 나이먹은 성인들은 넘쳐나나 “사람(人)‘이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사람살려”하며 위급시 자신이 사람(人)임을 강조한다. 우린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 사람 볼줄 아네요?” “ 됐네 이사람아” “이병은 사람한테 치명적이야” “이분야에는 사람이 없어” 우린 흔한 단어처럼 서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우린 한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였다. 허리굽힘은 생산성이 아닌 복종심과 충성심의 상징으로 변색됐고 허리굽히는 생산성에 존속하는 이가 사라지니 우린 사람임을 포기하였는지 모른다 사람인(人) “人” 한자 표기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였다. “인간(人間)” 슆게 풀이하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 동물의 일원이지만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 우린 서로 사람이라며 길거리 무수한 사람들을 쳐다보며 오늘도 살고 있는지 모른다. “ 우린 사람(人) 이여” “ 우린 인간(人間) 이여” 하며 과천 동물원을 찾아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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