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야경 탐방
최철순
문학반에 들어 온지 두 번째 학기이다.금요일이 다른 프로그램과 중복되지 않아 신청했는데 추첨 운이 있어 합격의 영광을 받았다.문학반 견학 코스로 손석진 회원의 안내를 받아 여수 야경을 탐방하게 되었다.드디어 9월15일 오후 2시에 광천 터미널 36번 홈에서 모여 남도 투어 관광버스로 40명의 일행이 이명란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출발했다.그러나 고향 후배인 김장룡 교장의 급작스런 병 발생으로 함께 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탑승한 관광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첫 번째 견학으로 순천 송광사 경내로 향했다.바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대충 요약하면 송광사는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 사찰로 해인사의 법보 사찰 통도사의 불보 사찰과 함께 3보 사찰로 조계종 사찰의 핵심을 이룬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었다.왕족과 귀족이 말을 타고 오다가 경내에 들어갈 때 걸어가는 ,하마비,여의주가 매달린 교각을 지나면 보조국사가 이용했다는 높다란 나무 지팡이가 서 있다. 사망한 후 목욕한 세월각,척추당을 보면서 대웅전 경내로 들어갔다.108평의 넓은 부지에 웅장한 대웅보전 기와 건물이 중심에 있고 왕실 기도처인 관음전 16분의 국사를 모신 국사전 승보전 모퉁이에 비사리구시가 있다 7가마니 밥을 담을 수 있고 4천명이 먹을 수 있는 밥통이라고 하니 당시의 사찰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특이한 것은 탑이 없는 것은 탑을 세우면 풍수 지리학상 지형상 으로 재앙이 온다는 이유이고 종이 없는 것은 종소리가 수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보조국사의 사리탑은 경내 밖인 높은 돌 계단 위에 있었다.
시간 촉박으로 법정 스님이 기거했던 불일암을 가보지 못했고
설명도 듣지 못해 서운한 느낌을 받았다.자신이 필요한 것만 소유해야 한다는 무소유 정신을 실천했던 현장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다음은 벌교읍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았다.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의 6.25전쟁동안 우리 민족의 아픔을 태백산맥 소설로 엮은 조정래선생의 생애를 영상이나 실물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6년간에 10권의 방대한 양의 글을 집필한 대작이다.감명깊은 것은 집필 기록물인 자필 원고지를 수직으로 높게 쌓아놓은 흔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 대교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여수항에 도착했다.저녁 식사는 돌산 해변의 게장백반 식당이었다. 싱싱한 게와 갈치를 중심으로 차린 한정식은 여수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수성찬이었다. 풍족하게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여수 야경을 보기위해 돌산 해상 케이블카 전망대에 올라갔다.바다와 시가지가 온통 불빛으로 번쩍인 광경은 말이나 글로 모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이었다.찬란한 불빛을 밝히며 지나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 고층건물에서 비추는 전등 불빛 라이트를 켜면서 거리를 질주하는 수많은 자동차 행렬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또한 길게 뚫린 초롱등 턴널을 한참동안 걸어가면 돌산대교 교각 기둥 위에 장식된 불빛도 멋있게 보였다.
오늘의 탐방은 좋은 글을 쓸수 있는 소재가 되었고 야간 관광을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그러나 여수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의 흔적과 오동도 향일암등 역사적인 자취를 설명 듣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재활용품 활용
최 철 순
어제 등산을 갔다 집에 오니 거실에 전혀 보지 못했던 화분대에 꽃이 꽂혀 있었다. 아내에게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어보니까 사온 것이 아니고, 아파트 경비실옆 공간 바닥에 버려진 화분대를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집으로 가져와서 화분걸이에 꽃 화분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너무 멋있고 꽃 화분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느 위치에 놓았느냐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수 있었다. 화분대도 질그릇이나 프라스틱이 아닌 촛대모양의 종이 공예품이었다. 상당히 비싸게 산 귀중물이었다.
아파트 집을 팔고 이사갈 때 경비실옆에 버려진 물건이었다.
이와 같은 폐기물을 다시 재활용품으로 활용하는 아내의 지혜가 자랑스럽다.
팔순의 고령 나이가 되기까지 절약과 많은 경험에서 쌓인 삶의 지혜가 축적된 발상이었다. 아파트단지에는 종종 많은 가정용품들이 폐기물로 버려진 경우를 볼 수 있다.
다시 주인을 찾은 폐기물은 다행이지만 버린 폐기물은 본인이 처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대체로 젊은 주부들이 사용한 물건이 싫증나거나 고장나면 마구 버린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물질의 풍요로 헌 것은 싫고 새 것을 선호하는 잘못된 사고에서 나타난 행동일수도 있다.
새로 나온 물건은 기능이 다양하고 사용에 편리하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버리느냐 안 버리느냐 판단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요없는 물건은 폐기물로 당연히 버려야 하겠지만 필요있는 물건으로 다시 한번 재활용방법을 생각해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상이다.
쓰레기양을 가능한 한 줄여 환경공해나 자원절약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으며 나라와 개인의 경제적인 지출도 줄였으면 한다.
이처럼 아내의 노력으로 여러 가지 버려진 폐기물을 재활용품으로 활용하여 가정 생활용품으로 쓸모있게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오직 아내의 취미이고 낭비를 줄이는 생활습관이 되었다. 따뜻한 칭찬으로 격려해주고 싶다.
또한 이와 같은 재활용품 활용 사례는 모든 국민들에게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후배 젊은층 가정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201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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