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대길 - 올 한해의 자주 쓸 말로 '행운'을 잡았다.
아침 한국사 傳이란 책에서 신숙주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제는 숙주나물로 흔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몇 안되는 역사인물로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읽는동안 다른곳에 더 생각이 가있었다.
사람살이 오바액션은 모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현대도시산업의 산물일것이다.
불과 4-50년밖에 안된.
그러나 이 때를 살고 있기에 충분히 그게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동차 사고나면 왜 멀쩡한데 드러누어
방금까지 좋아라 하더니 왜 짜증이야
목에 힘주고 거만떨다 왜 울어
빰 때리고 왜 만지는데
오바액션엔 변절이란 구린내가 난다
그 변절의 똥통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에너지를 강단있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냉혹한 사실이 따른다.
쉬운것은 없다는 아주 단순함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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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이란 한자는 남을 여, 물방울 적자다. 국어사전에는 붓끝에 남은 먹물, 즉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남은 먹물이란 설명이 붙어 있는데 통상 무슨 일이 끝난 다음의 남은 이야기란 뜻이다. 그래서 여록(餘錄) 또는 여묵(餘墨)이라고도 한다. '餘滴'欄은 신문·잡지 등에서 여록이나 가십 등을 싣기 위하여 마련한 지면으로 주로 단평(短評)을 싣는 곳이다. 글을 쓰다 남은 잉크방울로 무엇을 쓴다는 것은 짧지만 촌철살인의 멋진 글발로 세상을 비평하거나 풍자한다는 의미이다.
[여적]퇴임의 변
물러남에 소회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출세의 정상 혹은 그 언저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라면 퇴임은 남다를 터이다. 저마다 인생의 본막을 접는 퇴임의 변이 다양한 무늬를 갖는 것은 그래서이다. 비리로 옷을 벗으면서도 “무치(無恥)”를 주장하는 국세청장처럼 ‘후안무치형’이 있는가 하면, 10년 전 억울하게 법복을 벗으면서도 “지난 일을 말하는 것은 사나이답지 못하다. 눈을 떠보니 밤사이 벚꽃이 졌더라”며 말을 아낀 ‘침묵형’도 있다.
퇴임의 변 가운데 가장 꼴불견은 ‘침 뱉기형’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 초등생 언니들도 아우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데, 물러나는 수장에게 당부의 말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애정어린 충고를 넘어 몸담았던 조직에 침을 뱉듯 쓴소리를 쏟아내는 일도 적지 않다. 촛불시위를 물대포로 껐던 어청수 경찰청장이 지난달 29일 눈물까지 흘렸던 퇴임사가 그랬다. 구태와 악성 바이러스가 경찰 조직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있을 땐 뭘 했는지, 물러나는 마당에 조직이 병들었다고 네탓 타령만 쏟아낸 셈이다.
‘지사형’ 퇴임사도 있다. 언론인 김중배는 1991년 퇴임사에서
“우리는 권력보다 더 원칙적이며 영구적인 도전의 세력에 맞서게 되었다”고 일갈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언론의 과제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대비를 당부한 것이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도 지난달 31일 정부의 탄압을 고발하며 퇴임의 변을 갈음했다.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권력이 연구원에 물린 재갈을 폭로하고 연구원의 묵종을 경계했다.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41)가 사직했다. 촛불 야간집회 금지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던 그는 “더 가진 사람에게 더 주려는 이명박 대통령과 덜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나의 평소 생각이 맞지 않아 더이상 공직에 있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말리고 싶지만, 그는 심신이 지쳤다고 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렇게 읊었다. ‘과거의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고/미래의 일을 아직 좇을 수 있음을 알았다/인생길을 헤매었지만 그리 멀리 가진 않았다/이제사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유병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