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레위기 16:23-34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들도 늙고 병들면 더 이상 날지 못할 때가 있을 텐데 라는 생각 말입니다. 평생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지만 그 하늘을 나는 것도 마지막이 있을 겁니다. 새들이 죽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자기 둥지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운이 다 빠진 그 늙은 몸을 수명이 다한 날개로 감싸고 스르르 눈을 감고 죽지 않을까요?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이 있을 것이고 그날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도서 3장에서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말씀합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그 육체는 다 흙에서 왔기 때문에 수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영혼은 위로 즉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말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심판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압니다. 살만큼 살다가 늙어 죽을지, 병이나 사고로 죽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의 그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미래는 천국과 지옥의 결정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침에 집으로 갈 때나, 어둠이 살짝 내려앉은 저녁에는 인생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이 뭘까? 그저 이 세상에 와서 죽어라 자신의 만족과 영광을 위해 불나방처럼 살다가 결국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처럼 미련하고 불쌍한 것은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영원한 시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살다가는 그 시간은 정말 잠깐도 아닙니다. 정말 눈을 깜짝할 순간도 아닐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내려가 대속의 십자가를 만나 자아숭배자로 타락한 그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경외하는 거룩한 믿음을 배우고 오라고 보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엉뚱한 짓을 하며 인생을 잘 못 사용하다가 결국은 영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하나님이라는 그 타락한 자아숭배와 교만을 회개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것이 아닙니까?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속의 십자가를 만나도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또 다시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그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두 주인으로 섬기면서 보이는 세상의 재물과 영광으로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내 죄와 타락을 대속해주신 그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속죄를 받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과 영으로 만나 회개하지 않으면, 속죄를 받지 못하면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내가 여전히 주인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으로 죽어 심판대 앞에 가면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심판을 받고 영원한 고통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누구도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의 그 거룩함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죽고 내 안에 내 죄를 대속해주신 거룩하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건은 내 안에 모신 그 거룩하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인격과 삶의 열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힘과 영광을 소유한 존귀한 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준비하고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사람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그 전능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존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어떻겠습니까?
준비하지 않고 만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청함을 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것입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충분하게 주었는데도 안일하게 흘려보낸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두려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무서워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아직 그 준엄한 현실을 모르고 있을 뿐인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미련하고 불쌍한 것입니까?
제사장들이 속죄일에 의식을 행하면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몸을 씻고 세마포 옷을 입고 지성소에서 나오자마자 그 옷을 벗고, 성막에서 나갔다 돌아올 때에도 다시 몸을 씻고 옷을 빠는 것은 인간은 거룩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어떤 외부의 부정에 오염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은 곧 그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부정하게 타락한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그 부정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마음에 있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 안에는 뭐가 있습니다. 온갖 죄악의 다 있는 것입니다. 그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는 죄악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그 부정을 대속제물의 피로 일시적이나마 속죄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없이는 사람의 죄는 속죄가 될 수 없고 거룩함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입은 흰 세마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몸을 씻은 그 물도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없으면 속죄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 그 부정을 씻어내고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그 보혈을 만나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과 함께 나도 그 십자가에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세상으로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던 나의 자아숭배와 그 주인 됨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오직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 회개와 거듭남이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 성품을 내 인격으로 조금씩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용서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조금씩 점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의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그 열매가 없으면 나무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잎이 무성해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어떤 선행으로도 거룩하게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려면 반드시 내가 입고 있던 옷을 즉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던 자아숭배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즉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노릇 하던 교만한 내가 반드시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에 대하여 이런 결론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오라고 사람을 세상에 보내셨고 나는 회개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라는 겁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에게 그것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말 회개하였는지 말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을 받았는지, 속죄를 했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덮어놓고 내가 육체로 내놓는 그 종교적인 행위를 의지한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눈이 범죄하면 눈을 뽑으라고 하셨습니다. 손이 범죄하면 손을 자르라고 하셨습니다. 발이 범죄하면 발을 자르라고 하셨습니다. 신체 중에서 하나가 없더라도 온전한 몸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내 손으로 눈을 뽑고 손과 발을 자르겠습니까? 그것은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과 함께 내가 십자가에 죽는 자아의 죽음 즉 회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영원히 사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죄와 싸우면서 믿음으로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후방에서 전쟁을 지켜보는 사람의 옷에는 피가 묻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최전방에서 대적과 싸우는 그 용사의 옷에는 피가 튀고 묻는 것입니다. 자신의 피가 묻기도 하고 대적의 피가 튀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와 치열하게 싸우는 믿음의 용사도 그렇습니다. 자신과 세상과 죄와 최선을 다해 싸우는 믿음의 용사의 그 믿음의 옷에는 피가 흥건해지는 것입니다. 그 피가 곧 자신의 믿음과 거룩함을 지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죄와 내 자신과 세상과 싸울 때 흘리는 피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흘리신 대속의 피인 것입니다. 그 피가 죄를 씻어내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여 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이 부르는 그날까지 죄와 싸우는 그 회개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회개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타락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찢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들이 복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는 회개가 있어야 거룩하신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룩한 옷, 흰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을까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기 위해 세상에 온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옷을 입고 자랑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자랑하던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바울은 그것을 배설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참 사람이 미련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회개하여도 보이는 것이 세상이니 그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고 그러면 금방 미혹을 받아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앙인데 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회개와 십자가와 믿음에 대하여 강단에서 말씀을 전해도 세상의 영광과 힘을 보고 초라한 제 자신을 바라보면 순식간에 세상이라는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몰려오는 겁니다. 내가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인가? 회개한 것인가라는 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 죄송해서 십자가에 앞에 나아가 또 회개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을 받고도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것이 아닙니까? 그때 주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나는 너에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영원한 생명을 주었는데 너는 세상의 그 썩어질 영광을 바라보고 마음을 빼앗기니 마음 아파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믿음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는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에서 자신이 입은 그 옷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세상을 보면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세상을 아무리 보아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애초에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나와 따로 거하며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선악과가 있는 곳은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면 벌써 마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그래도 그곳을 지나가야 하면 눈을 감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와 싸우며 내 믿음을 지키는 길인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 죄와 싸우며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기쁘게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