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강 따라 걷기 10-3
강원도 산간 지역에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1960년대에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기차가 목재 운반을 대신하자 뗏목은 사라졌다. 강원도 정선군 여량 아우라지에서 출발하는 뗏목에서 뗏군들이 즐겨 부르던 정선아라리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난 못살겠네
산천초목이 푸르러서 가시던 님은
백설이 휘날리어도 왜 아니 오시나
우리가 탄 한반도 뗏목은 동해의 주문진에서 출발하여 남해를 거쳐 서해의 인천 앞바다까지 갔는데, 휴전선이 가로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걸린 시간은 30분. 나중에 요금 체계에 대해서 알아보니, 1~3인까지는 합 2만원이고 4인부터는 1인당 6000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와서 2만원을 내면 뗏목을 운항한다.
<그림15> 평창강에서 뗏목을 타다
<그림16> 뗏목의 뒷 부분(노와 깃발이 보인다)
평창강은 한반도 지형을 휘돌아 주천강과 만나면서 수량이 늘어난다. 주천강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둔내, 안흥을 거쳐 영월군 주천면으로 흘러든다. 주천강은 길이가 95km나 되는 큰 강이다. 주천강이 평창강과 만나면 이름이 서강(西江)으로 바뀐다. 서강이라는 이름은 최근에 생긴 이름이 아니다. 19세기의 <조선지지자료>에서도 서강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서강은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한국하천유역도에는 평창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서강의 행정 명칭도 평창강이다.
래프팅 장소로 유명한 동강과는 달리 서강은 외부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강의 물길이 험한 남성을 상징한다면, 서강의 물길은 순한 여성을 상징한다. 서강은 물줄기의 굽은 모습이 뱀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사강(巳江)'이라고도 부른다. 서강의 잔잔한 물길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지나 영월읍 하송리에서 동강과 합류한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면서 강 이름은 남한강으로 바뀐다. 남한강은 단양 충주 여주 이천을 지나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된다.
한반도지형 일대의 평창강과 주변은 습지가 잘 발달되어 있고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 삵, 돌상어, 층층둥글레 등 모두 871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생태학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2012년에 이 지역(면적 1.915 km2)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고, 한반도습지생태문화관을 만들었다. 이어서 이 습지는 심사를 거쳐 국제 협약인 람사르 습지에 ‘영월 한반도 습지’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다(2015.5.13.). 한반도 습지를 학습 차원에서 탐방하려면 원주지방환경청 홈페이지에서 교육신청을 하면 된다.
(http://www.me.go.kr/wonju/web/index.do?menuId=1542)
<그림17>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한반도 습지 (녹색 부분)
우리는 똇목 체험을 마치고 2시 30분에 똇목마을을 출발하였다.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갔다. 오르막에서는 아무래도 걸음이 느려졌다. 옆에 석영 박인기 교수가 함께 걷게 되었다. 석영은 경인교대 교수로 가기 전에 교육개발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나도 교육개발원에서 근무했는데 석영과는 6개월 정도 근무기간이 겹친다. 나는 내가 이름을 알던 여자 연구원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석영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그 여자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뭔가 있지 않았나?’라고 눈빛으로 추궁한다. 해명을 하지 않고 그냥 침묵으로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여자는 유난히 화장을 진하게 하여 내 눈에 띄었는데, 나는 진하게 화장한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호감은 전혀 가지지 않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석영이 넌센스 퀴즈를 내었다. 여자가 적당히 분을 바르면 화장이라고 말한다. 화장이 지나치면 뭘까? 모른다고 하니 분장(粉裝)이라고 말한다. 더 지나치면? 모르겠다. 변장(變裝). 더 지나치면? 몰라. 환장(換腸). 우리는 재미있다고 껄껄대며 웃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화장의 세대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유머가 나온다.
10대 : 치장
20대 : 화장
30대 : 분장
40대 : 변장
50대 : 위장
60대 : 포장
70대 : 환장
80대 : 끝장
여자 대학생들은 나이로 볼 때에 화장하지 않아도 예쁠 때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에 보면, 화장을 진하게 해서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지는 여학생도 간혹 있었다. 어느 봄날, 교정에는 꽃이 만발하고 날씨가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강의실에 들어가니 내가 싫어하는 화장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다음과 같이 일장연설을 한 적이 있다.
“너희들은 예쁘게 핀 꽃과 같다. 너희들 나이에는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아니, 오히려 화장을 한다면 아름다움을 감하게 된다. 아름다운 꽃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거나 물감을 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면 실례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건 화장품 회사에서 만든 말이다. 산소 같은 여자, 수세미 같은 여자니 하는 광고에 속아서는 안 된다. 괜히 돈 들여 아름다움을 감추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라. 대신 정말로 좋은 화장품을 가르쳐 주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화장품은 ‘젊음’이라는 두 글자이다.”
한참 걸어서 작은 고개를 넘어가니 한반도지형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비는 차 한 대당 2000원을 받는다. 주차장은 새로 만들어서 그런지 넓었다. 주차장에는 이미 홍교수의 차가 주차하고 있었다. 지난번 답사에서는 종점에 은곡의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날은 은곡이 불참하여 홍교수의 7인승 소렌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답사는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까지 산길로 800m를 걸어가야 한다. 산길은 걷기에 편했다. 경사 구간에는 방부목으로 계단을 만들어놓아서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다.
<그림18> 전망대로 가는 길의 팔랑개비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는,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은 금기사항이 되었다.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고 가다가도 저쪽에서 사람이 오면 얼른 다시 마스크를 쓴다. 저쪽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광경이지만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도착해서 내려다 보니 우리가 조금 전에 똇목 타고 지났던 항로가 뚜렷이 보인다. 배에서 볼 때에는 작은 산의 능선만 보였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토끼 모양의 한반도가 확실하게 보였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이 뚜렷이 보였다. 멀리에는 현대 시멘트 공장의 커다란 굴뚝 2개도 보였다. 북쪽을 바라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배거리산이 보였다.
<그림19> 한반도 지형과 뗏목
전망대 계단에 앉아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 보면서 간식을 먹었다. 내가 가져온 자두를 하나씩, 그리고 시인마뇽이 가져온 호두과자 2개씩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준비한 믹스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석영과 석주 그리고 내가 나누어 마셨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믹스커피를 먹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내 입맛에는 고급 원두커피보다 믹스커피가 더 맛있다. 나는 값싸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커다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행복은 결코 비싸지 않다.
<그림20> 제10구간 답사팀
전망대에서 걸어서 주차장으로 돌아온 시간이 오후 4시 10분이었다. 이날 평창강 제10구간 7.6km 거리를 걷는 데에 4시간 40분 걸렸다. 뗏목 타는 시간이 포함되어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다른 날에 비해 일찍 끝난 셈이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단종 왕릉인 장릉을 구경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홍교수가 소렌토를 운전하여 영월읍에 있는 장릉으로 갔다. 장릉을 구경하고 한반도면사무소 앞에 있는 순정식당으로 갔다. 토마스 형제가 추천한 순정식당에서 염소탕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끝내고 가양은 홍교수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나머지 일행은 내가 차를 운전하여 평창으로 돌아갔다. 장평터미널에서 군포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시인마뇽을 내려주었다. 다시 차를 운전하여 평창역에서 석영과 석주를 내려주었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8시 2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