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정기(愛閑亭記),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삶> 고영화(高永和)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정기(愛閑亭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고전수필이다. 예나 제나 세파에 시달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자 수기지도(修己之道)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조용히 은둔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그중에 한양에서 충북 괴산군 괴강(달천)으로 옮겨와 살던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 1549~1623)이 그러했다. 그는 애한정(愛閑亭) 정자를 짓고서, 오랜 벗인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에게 기문(記文)을 요청했다.
<애한정기(愛閑亭記)>의 줄거리는, ‘세상일에 속박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몰라 한가로움을 사랑할 줄도 모른다. 사시사철 유유자적하며 여유롭게 지내던 익경(益卿)은 마침내 애한정(愛閑亭)을 짓고 한가로움(閑)과 하나가 되니,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한가로운 삶을 칭송했다.
한편 애한정 주인 박익경(朴益卿)이 예전에 한양 모악산 아래에 살 때, 이웃이었던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이 말하길, ‘애한(愛閑)’은 한가로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한한(閑閑)’은 ‘진실로 한가로움(閑)을 한가롭게(閑) 하는 것이니 참된 한가함을 말한다’면서 정자 이름을 애한(愛閑)에서 한한(閑閑)으로 바꾸어 <한한정기(閑閑亭記)>를 따로 지어 전한다.
○ 현재 애한정(愛閑亭)은 충북 괴산군(槐山郡) 괴산읍 검승리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괴강(槐江)이라 불리는 달천이 흐르고 있다. 조선중기 학자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 1549~1623)이 1614년(광해군 6)에 건립한 정자 애한정(愛閑亭)은 정면 6칸, 측면 3칸, 197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선조의 유현(儒賢) 박지겸(朴知謙 1549~1623)이 둔세자오(遯世自娛,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 즐김)하던 곳으로 1610년(광해군 2)에 세워 자기의 호를 따서 애한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쪽 괴강교 밑으로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괴강(槐江) 불빛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또 이 정자에는 「愛閑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안에는 광해군 6년(1614년)에 애한정 주인 박지겸(朴知謙)이 지은 ‘애한정기(愛閑亭記)’와 ‘애한정팔경시(愛閑亭八景詩)’를 비롯하여, 현종 15년(1674년)에 우암 송시열이 지은 ‘애한정이창기(愛閑亭移創記)’와 ‘제애한정기첩후(題愛閑亭記帖後), 숙종 38년(1712년)에 조천(鳥川) 정당(鄭棠)이 지은 ‘애한정중수기’, 숙종 44년(1718년)에 송병선이 지은 ‘애한정중수기’, 순조 20년(1820)에 박의화가 지은 ‘애한정게판기’ 등 많은 현판이 있다.
◉ 저자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는 애한정(愛閑亭) 박익경(朴益卿)의 벗으로, 조선중기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한문학의 대가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 보만당(保晩堂) · 치암(癡菴) · 추애(秋崖) · 습정(習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의 생애는 어디까지나 조정의 관리로서 소임을 다하는 사대부 문학의 전범(典範)을 보였다. 또한 그의 문장은 장유(張維) · 이식(李植) · 신흠(申欽)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사대가로 일컬어졌다. 또 중국어에 능하여 어전통관(御前通官)으로 명나라 사신이나 지원군을 접대할 때에 조선 조정을 대표하며 여러 차례 중요한 외교적 활약을 했다.
◉ 애한정 주인 박지겸(朴知謙 1549~1623)은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맹경(孟卿), 호는 애한정(愛閑亭)이다. 또는 박익경(朴益卿)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부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지은 박세무(朴世茂 1487~1554)이고, 부친은 군수(郡守) 박응립(朴應立)이다. 문목공(文穆公)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가 동생이다. 임진왜란 때 백의로 선조를 의주(義州)까지 호위한 공으로 별좌(別坐)에 올랐다. 광해군 때 낙향하여 아내의 고향인 충북 괴산에 애한정(愛閑亭)을 짓고 살았다. 「묘는 충북 괴산면 대덕리 갈전동에 있으며, 괴산군 화암서원(花巖書院)에 할아버지 박세무와 함께 배향되었다.
● 다음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고전수필 <애한정기(愛閑亭記)>는 조선중기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의 작품이다. 내용은 기승전결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첫 번째 단락에선, 괴산군 괴강(달천)으로 옮겨와 사는 오랜 벗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이 애한정(愛閑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기문을 요청했다. 이호민(李好閔)이 먼저 시문(詩文)을 지어 이름을 한한정(閑閑亭)’이라 바꾸었다.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愛閑)은 한가로움을 외물(外物)로 인식하게 만든다.
두 번째 단락에선, 한가로움에 일부러 마음을 두는 것은 참으로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곧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한가로운 것이다. 그래서 이호민이 ‘한한(閑閑)’이라 칭하였다. 세상일에 속박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한가로움을 사랑할 겨를도 없다.
세 번째 단락에선, 애한정을 지은 박익경(朴益卿)이 번화한 것을 멀리하고 한가로운 것을 사랑하여 계절에 따라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거문고를 타고 낚시를 하며, 책을 읽고 시를 읊는다. 산수를 유람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가롭게 지낸다.
네 번째 단락에선, 마침내 익경(益卿)은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가로움과 자신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익경을 위해 <애한정 팔영(愛閑亭八詠)> 따로 지었다며 끝맺었다.
1) ‘한가로움을 사랑하다’ 애한정기[愛閑亭記] / 이정귀(李廷龜 1564~1634)
(1) 괴산군 괴탄(槐灘)의 상류는 땅이 외지고 아름다워 푸른 벼랑과 맑은 물, 높은 소나무와 긴 대나무의 빼어난 경치가 있다. 나의 노우(老友, 오랜 벗) 박익경(朴益卿)이 그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 이름을 ‘애한정(愛閑亭)’이라 하고 사대부들에게 그 기문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 1553~1634) 이상공(李相公)이 맨 먼저 문(文)과 시(詩)를 지어 이 정자의 이름을 ‘한한정(閑閑亭)’이라 바꾸었으니, 그 뜻은 대개 ‘나 스스로 한가로워야 하는 것이니, 한가로움을 사랑한다(愛)고 하면 오히려 한가로움을 외물(外物, 외계의 사물)로 인식하는 것이 된다.’라는 것이다. 익경(益卿)이 오봉(五峯)의 시문을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면서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듯 말하기를, “정자의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하였다. 이에 내가 그 뜻을 풀이하였다.
(2) 이른바 한가로움이란 것은 아무 일 없이 자적(自適)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한가로운 뒤에 남이 그를 보고 한가롭다고 여기는 법이니, 한가로움에 일부러 마음을 두는 것은 참으로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한가롭기로는 백구(白鷗)만 한 것이 없으니, 날고 울고 물을 마시고 먹이를 쪼며 자기 본성대로 자적할 뿐 한가로움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구를 보는 이들은 한가롭다고 여기니, 백구 스스로 자기가 한가롭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이 오봉이 ‘한한(閑閑, 조용하고 한가로움)’이라고 한 까닭이다.
비록 그렇지만 한가로움이란 공물(公物, 공공물)이요, 사랑만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실로 그 한가로운 경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록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가 어린 수석(水石) 사이에 있더라도 그 마음은 오히려 사물에 끌려다닐 것이다. 저 파리나 개처럼 염치없이 애걸하고 세리(勢利, 세력과 권리)를 차지하고자 밤낮으로 세사(世事)에 속박(卯酉, 묘유)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한가로움을 사랑할 겨를인들 어디 있겠는가.
(3) 익경은 대대로 서울에 살았으니, 당초에 사환(仕宦, 벼슬아치)에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번화한 것을 멀리하고 한가로운 것을 사랑하여 정갈한 일실(一室)에 거처하며 노년이 곧 다가오는 줄도 모른다. 아침에는 해 뜨는 것에서 한가롭고 저녁이면 달 뜨는 것에서 한가로우며, 봄에는 꽃을 보며 한가롭고 겨울에는 눈을 보며 한가로우며, 거문고를 타면서 그 흥취를 사랑하고 낚시를 드리운 채 그 자적(自適)을 사랑하며, 다닐 때는 시를 읊고 누워서는 책을 보며,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조망하고 물가에 다다라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등 어떠한 경우이건 모두 한가로우니, 사랑한다(愛)는 것으로써 정자 이름을 짓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4) 사랑해 마지않아 마침내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면 ‘한한(閑閑)’의 뜻 또한 그 가운데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진실로 한가로움과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라 하겠다. 익경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이 정자 주위, 호산(湖山, 호수와 산)의 경치로 말하자면 내가 눈으로 본 적이 없기에 익경이 명명(命名)한 팔경(八景)을 시로 읊노라.
[槐灘上流 地僻而佳 有翠壁澄潭長松脩竹之勝 吾老友朴益卿 築室而居之 名其亭曰愛閑 求記於薦紳間 五峯李相公 首爲文若詩 易其名曰閑閑 其意蓋以吾自閑之 曰愛則猶外也 益卿袖以示余 若有不解者然 曰亭名何居 願聞子之說 余就而繹之 夫所謂閑者 無事而自適之謂 人必自閑而後人閑之 役志於閑 非眞閑也 物之閑者 莫鷗若也 飛鳴飮啄 自適其性 非有意於閑 而見者閑之 夫豈自知其閑哉 此五峯之言所以發也 雖然 閑 公物也 惟愛者能有之 苟不愛焉 則雖處煙霞水石之間 其心猶役役也 彼狗苟蠅營 昏夜乞哀 乾沒勢利 卯酉束縛者 固不知閑之爲何事 奚暇於愛乎 益卿世家京洛 初非無意於仕宦者 今乃謝紛華而樂寛閑 一室蕭然 不知老之將至 朝於旭而閑 夕於月而閑 花於春而閑 雪於冬而閑 琴焉而愛其趣 釣焉而愛其適 行吟詩臥看書 登高望遠 臨水觀魚 隨所遇而皆閑 則名之以愛 不亦宜乎 愛之不已 終至於不自知其閑 則閑閑之意 亦在其中矣 斯固一而二 二而一者也 益卿何擇焉 乃若湖山之勝 余未嘗寄目 竊就君所命八景者而爲之詠]
[주1] 괴탄(槐灘) : 느티여울,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흐르는 달천(한강의 지류)을 말함. 괴산군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괴산군 최대의 하천이다.
[주2] 이호민(李好閔 1553~1634) :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오봉(五峯) · 남곽(南郭) · 수와(睡窩)이다. 지례(知禮)의 도동향사(道東鄕祠)에 제향되었다. 그는 <한한정기(閑閑亭記)>를 따로 지었다.
[주3] 자적(自適) : 무엇에도 속박(束縛)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함
[주4] 묘유(卯酉) : 관청에 출근하여 직무에 종사하는 것을 말한다. 관리들이 묘시(卯時)에 출근하여 유시(酉時)에 퇴근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4년4월18일 기사에, “각사(各司)의 관원은 묘시에 출사하여 유시에 퇴근하고,해가 짧을 때에는 진시에 출사하여 신시에 퇴근하는 것이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하였다.
[주5] 팔경(八景)을 시로 읊노라. 칠언절구 8수(首) : 박익경(朴益卿) 지겸(知謙)을 위해서 지은 〈애한정 팔영(愛閑亭八詠)〉이다. 송악의 맑은 날 산기운(松嶽晴嵐), 연꽃 핀 연못에 비친 달(荷塘夜月), 연꽃 핀 연못에 비친 달(荷塘夜月), 외딴 마을의 저녁 연기(孤村暮煙), 푸른 벼랑에 지는 낙조(蒼壁落照), 돌길을 가는 행인(石磴行人), 강 포구에 떠 있는 상선(江浦商船), 절에서 승려를 찾다(佛寺尋僧), 괴탄에서 낚시하다(槐灘釣魚)이다.
● 다음 ‘東’ 운의 칠언율시 <애한정운(愛閑亭韻)>은 조선후기 『백곡집』, 『종남총지』 등을 저술한 시인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3~1684)의 작품이다. 김득신(金得臣)이 세운 서재(독서당) 취묵당(醉黙堂)은 ‘술에 취해도 침묵한다’는 뜻으로, 현종(顯宗) 3년(1662년)에 건립했으며, 애한정(愛閑亭)의 북쪽 약4Km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에 있다. 이 글의 내용을 보면, 애한정은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 있고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자에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글이 전해오고 있고 어진 고을 수령의 도움으로 정자를 잘 보존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2) 애한정운[愛閑亭韻] /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3~1684)
縹緲飛亭聳碧穹 표묘히 날아오를 듯한 정자가 푸른 하늘로 높이 솟았고
登臨豪氣太凌虹 높은 곳의 호기로운 기운이 무지개를 심히 업신여긴다.
邱原錯綜東南闊 언덕 위엔 묘소가 뒤섞여 있고 동남쪽은 트여있으니
江漢澎磅上下通 한강의 물 흐르는 소리가 아래위에서 들려오네.
月老詩篇傳後遠 월로(月老)의 시편이 후세에 전하는데
窓翁翰墨至今工 지게문 밖 노인의 한묵(翰墨)이 오늘까지 이어온 솜씨인걸.
與君交誼懽娛地 옛날 그대가 서로 교분을 나누며 기쁘게 즐기던 곳에서
賴我賢侯勸相功 우리의 어진 제후에 힘입어 서로 권장하고 일을 돕는다네.
[주1] 표묘(縹緲)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
[주2] 착종(錯綜) : 사물 따위가 뒤섞여 엉김.
[주3] 월로(月老) :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상의 늙은이. 중국 당나라의 위고(韋固)가 달밤에 어떤 노인을 만나 장래의 아내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 월로는 <애한정기(愛閑亭記)>를 쓴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를 말한다.
[주4] 한묵(翰墨) :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