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시즌의 김남일은 전성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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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인천] 서호정 기자= ‘플레이에 물이 올랐다. 축구에 눈을 떴다.’ 77년생. 만 36세인 김남일이 최근 들어서 듣고 있는 어,색,한, 평가다. 회춘했다 정도가 어울리는 표현일까? 게임으로 치면 레벨99의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 축구 인생의 황혼기에 고향팀으로 돌아온 그가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팀의 최고참이자 중원의 파수꾼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봉길매직’을 그라운드에서 실행하는 김남일의 활약 속에 인천은 리그 상위권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포백 앞의, 허리 깊숙한 위치에 포진해 상대 수비를 차단한 뒤 역습으로 전환시키는 빠른 패스 전개는 마치 안드레아 피를로(34, 유벤투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김남일 자신도 “작년보다 올해가 몸 상태도 경기력도 더 좋다”고 인정할 정도다. 경기장 밖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은 김남일의 회춘을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의 카리스마와 시크함이야 전부터 유명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말랑말랑해진 유연함으로 띠동갑인 후배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며 팀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김남일을 만났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현재와 미래뿐만이 아니었다. 과거까지도 캐물었다. 맞을 각오를 하고 그의 마지막 A매치로 기록돼 있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다행히 그는 분노하지도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다. 김남일다운 시원시원한 직설화법으로 질문에 맞섰다. 그리고 가슴 속에 몰래 숨겨둔, 태극마크에 대한 마지막 희망도 슬쩍 공개했다.
인천의 주장으로서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김남일 (사진=인천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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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주장 김남일, “요즘 공 차는 게 행복하다”
4승 4무 2패, 5위. 리그 10라운드를 마친 현재 인천의 성적이다. 서울, 전북, 성남, 대구가 그들에게 잡혔다. 포항과 울산 원정에서는 무승부를 거두고 돌아왔다. 한때는 리그 선두까지 올랐다. 10라운드에서 수원에 패해 순위가 좀 내려 앉았지만 1승을 거두면 금방 2, 3위 권으로 상승할 수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의 상승세를 감안해도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정인환, 정혁, 이규로 등이 떠나며 불안한 감이 있었다. 설기현은 긴 부상 중이고 이천수는 미지수였다. 그런 변수를 잠재우고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데는 2명의 리더의 역할이 돋보인다. 김봉길 감독,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주장 김남일의 존재가 그것이다.
Q. 요즘 그라운드서 뛰는 걸 보고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 보여요. 맞죠?
A. 행복해, 너무 행복하지. 작년하고는 또 달라. 그땐 후반기에 안 지니까 즐거운 맛에 했는데, 올해는 경기가 끝나고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그 과정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거든. 지난주에 우리 애들에게 얘기를 했어. ‘분위기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다. 훈련을 하면서 너희들과 함께 하는 게 행복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고맙다.’ 이기고 지는 걸 넘어서 일정한 수준의 좋은 경기를 하고, 우리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어떤 전략, 전술보다 큰 힘을 갖거든. 경기 내용도 안 좋고 지면 완전히 바닥인데. 반대로 경기 내용이 좋고 원하는 결과까지 얻어서 돌아오면 힘든 줄을 몰라. 요즘엔 날씨도 좋으니까 몸도 올라오는 것 같고.
Q. 시즌을 준비하면서 인천이 이 정도로 잘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A. 사실 준비하는 동안은 걱정투성이였어. 떠난 선수들이 작년에 워낙 큰 역할을 해줬잖아. 새로 온 선수들은 잘 모르고. 기다려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거라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계속 들었어. 괌, 목포, 기타쿠슈로 이어지는 전지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온 선수들이 제 역할을 못했거든. 그런데 시즌에 들어갔는데 달라졌지. 그때야 ‘아니구나, 내 걱정이 틀렸구나’라고 느꼈어. 돌아서 보니까 내가 현역 생활을 하면서 시즌을 준비했던 시간 중 가장 순리대로 됐던 거 같아. 감독님의 준비가 좋았고 선수들도 충실히 따라갔어.
Q. 작년에 해외 생활을 접고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 다들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했어요. 나이도 많고, 부상도 있는 상황에서 김남일이 괜히 이미지 망치는 거 아닌가.
A. 인천에 올 때 내 스스로도 그렇게 큰 기대는 안했지.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서 여기 온 거니까. 그래도 이왕 왔는데 뭔가는 이뤄야 되는 건 아닌가하는 책임감 같은 건 있었어. 큰 거보다는 뭔가 이 팀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게 나 혼자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 선수들을 독려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걸 보여주려고 했지.
Q. 그런데 함께 하기엔 선수들이 너무 어리잖아요. 띠동갑 넘는 후배들이 엄청 많을텐데?
A. 그런 갭을 안 보려고 하지. 그 친구들이랑 함께 생활하고, 운동하면 나까지 어려지는 것 같아. 걔네들이랑 시선을 같이 두려고 하고, 관심사를 그 나이대에 맞춰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 ‘내 중심의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어린 선수들처럼 생각을 해 보자’고. ‘내가 프로 몇 년 찬데 그런 것도 해야 돼?’ 이런 생각 버렸어. 그러니까 편해지더라. 걔들 취미가 뭐고, 화제거리가 뭐고, 그런 데 귀를 계속 기울여. 아주 어렵진 않지. 농담으로 여자 연예인 얘기도 하고, 차나 다른 관심거리에 대해서도 애기 주고 받고.
Q. 그 덕분일까요? 인천의 어린 선수들이 작년이랑 올해랑 보여주는 기량이 다른 거 같아요.
A. 한교원, 문상윤, 구본상 이런 친구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 뿌득하지. 내가 경기를 못 뛸 때 밖에서 지켜보면 잘하는 게 납득이 가. 걔네들이 노력을 많이 하거든. 가끔은 진지하게 축구에 대해 애기를 나눠. 아무래도 마음 속에 있는 걸 표현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있잖아. 그러면 내가 먼저 메신저나 문자로 연락을 해. ‘형이 볼 땐 니가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이 팀에 도움이 된다. 고맙다’라고. 후배들이 그걸 어찌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대화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말랑말랑해진 김남일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 (사진=인천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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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최고의 MF 김남일, “피를로 같다? 듣는 피를로 기분 나쁠걸”
올 시즌의 김남일이 빛나는 건 주장으로서 보스 기질을 발휘하며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해서만은 아니다. 단순한 1명의 선수로 놓고 봤을 때 그는 현재 가장 좋은 활약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리그 톱 클래스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미드필드 깊은 곳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정확한 공간 패스로 팀 공격의 물꼬를 여는 그의 모습은 ‘딥라잉 미드필더’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 ‘패스마스터’ 피를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김남일 본인은 그런 평가에 대해 “오바하지 말라”며 웃음만 지었다.
Q. 뭐 좋은 거 챙겨먹어요? 요즘 김남일이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평가가 많아요.
A. 작년보다 몸 상태는 더 좋아. 이유가 있지. 작년엔 팀에 늦게 합류해 동계훈련을 제대로 못했고, 여러 이유로 운동에 집중하지 못했으니까. 올해 들어선 걱정이 하나 생겼어.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올지 그게 인생의 제1원칙이야. 집에서 출발해 인천까지 운전을 하고 오면서 머리 속에는 어떻게 내 몸을 더 챙겨서 경기에 나갔을 때 잘할까 그 생각뿐이야. 밥 먹으러 갈 때도 몸에 좋은 거 하나 더 먹자고 하고.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지금은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게 축구야. 어쨌든 나는 축구 선수고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컨디션이 떨어지고 경기력이 나쁘면 그 영향이 온전히 가족에게 가거든. 와이프도 그거 걱정하느라 스트레스 받아 자기 일 못해.
Q. 사실 조금만 방심하면 후배들한테 자리 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
A. 맞아. 내 포지션의 후배들이 너무 열심히 해. 나 없을 때 성남 잡고, 포항이랑 비겼잖아. 구본상, 문상윤, 손대호 걔들이 운동할 때 이 악물고 하니까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지. 그래서 걔들한테 너무 고마워. 날 자꾸 깨워주고 자극시켜주니까.
Q. 요즘 플레이를 보면 피를로같다는 평가나 기사들이 많은 건 알아요?
A. 아, 그건 아닌데… 오바지. 내가 그런 기사 보면 쑥스럽다. 제발 그런 기사는 안 써줬으면 좋겠어. 그냥 난 김남일이니까. 피를로가 그런 기사를 보면 얼마나 기분 나빠할까? 걔 몇살이지? 79년생? 그래도 공은 걔가 더 잘 차. 나는 외국 선수들 보면서 저 선수처럼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 난 그냥 김남일이니까.
Q. 혹자는 뛰어난 패스를 보여주는 걸 보고 김남일의 재발견이라고 해요. 그런데 정말 새 무기를 장착한 거예요? 사실 2002년 월드컵부터 잘 관찰하면 터프하고 강한 모습에 묻혀서 그렇지 김남일의 원래 패스 감각이 뛰어났잖아요.
A. 난 했던 걸 하고 있었을 뿐이야. 사람들이 몰랐던 거지. 난 늘 그런 플레이를 했다고. 2002년 월드컵 경기 영상을 보면, 공격수들이 골을 못 넣어줘서 그렇지 내가 패스는 잘 넣어줬다고.(웃음) 그 패스가 골로 연결됐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겠지. 그런데 그게 참 신기한 거 같아. 난 이상하게 패스가 좋아도 골로 안 들어가. 일본에서도, 러시아에서도 패스를 잘 해줬는데 선수들이 못 넣어줘. 그래서 부각이 안 돼. 천수 같은 경우를 봐. 울산전에서 찌아고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는데 물론 크로스가 좋았지. 그런데 찌아고는 우리 사이에선 헤딩 못하기로 유명하고 걔 앞에는 수비수 둘이 있었다고. 그런데 될 얘들은 그렇게 올라가도 골이 되고 도움을 기록하더라고.
※ 김남일은 K리그에서 10시즌을 뛰며 12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도움을 올린 시즌은 3도움을 기록한 2001시즌(전남)과 2012시즌(인천)이다.
Q. 요즘 옆에 좋은 파트너도 있잖아요. 구본상, 그 친구 잘하더라고요. 둘이 허리에서 받쳐주는 거야말로 인천 돌풍의 핵심 포인트인 것 같고.
A. 난 본상이를 보면 늘 의문을 가져. 경기를 할 때마다 걔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어. 순간적으로 주는 척 하고 공을 갖고 들어가는데 ‘어, 쟤가 저런 게 있었어? 뭐지?’하며 감탄한다니까. 본상이랑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해. 대화도 하고, 경기비디오를 보면서도 축구 얘기도 하고. 같이 미드필드를 보는 이석현도 좋은 선수야. 걘 잘하고 있지만 원래 잘할 거라는 기대만큼 해주고 있어. 석현이가 들으면 서운할 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본상이가 더 커 보이는 거 같아. 작년에 기대만큼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기량 발전만 보면 본상이는 정말 기대가 된다.
Q. 이석현에게도, 구본상에게도 김남일이란 선배는 좋은 과외 선생님이겠군요.
A. 내가 더 도움을 받지. 둘 다 많이 뛰어주거든. 그래서 늘 미안하다고 해. 경기 전에 둘한테 “석현아, 본상아. 형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뛰어주라”고 하면 걔들은 “형, 힘들어요”라고 해. “어쩌겠냐, 형이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기분 안 나쁘게 해줘야지. 내가 좀만 더 젊었을 때였으면 “야, 싸가지 없게”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형을 위해서 태클 많이 해주라”고 사정도 한다고.(웃음)
Q. 예전의 김남일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경기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기자들이 말 걸려고 하면 한번 째려 보고
그냥 갔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둥글둥글해진 거 같아요.
A. 이젠 나도 나이를 먹은 거야. 어린 선수들이 다 귀여워 보여. 예를 들어 팀 내에는 규칙이 있고 그에 대한 벌금이 있는데, 예전에 수원에서 주장할 때는 “야 너 벌금 얼마다. 내라”하고 대 놓고 딱딱하게 얘기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얘들한테 대하는 것처럼 얘기해. 우리 팀에서는 공을 관리하는 게 막내들 몫인데 어느 날은 코치 선생님들이 공에 바람이 부족하다고 뭐 했냐고 지적하더라고. 예전 같았으면 성질 부렸겠지. 그런데 지금은 “본상아, 상윤아 알지? 알아서 내~”하고 말아.
▶ 인터뷰 2편에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