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파동원리에서 자리가 다가 아니다
2007/03/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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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파동원리에서 자리가 다가 아니다
옛날 내가 초등학생 때 유도를 잠깐 배웠었다.
많이는 아니고 한 반 년 배웠는데, 겨우 노란띠를 땄었다.
그 당시 배웠던 게 업어치기 단 1개.
업어치기도 3가지 방법이 있는데, 결국 손 자세만 바꾼거라 크게 보면 1개만 배운 것이다.
한창 운동에 재미를 붙일 때에 학업에 열중해야 하던 터라 유도를 그만두었지만,
유도를 계속 하고 싶어 서점에서 유도 교본을 샀다.
온갖 화려한 기술이 책 안에 실려있었고,
난 이불을 마루에 깔아놓고 죄없는 동생을 메치며 기술을 나름대로 공부했다.
여러 기술을 공부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 내 머리만 어지러웠다.
기술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와 싸우게 되었다.
초등학생 싸움이라 별 게 아닌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업어치기가 나와버렸다.
순식간에 그 친구는 허공을 날아올라 목부터 바닥에 떨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반친구들이 걔를 데리고 양호실로 갔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그 업어치기 기술 덕분에 난 반성문을 쓰게되었다.
인체파동원리도 이러하다.
이 원리는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리이다.
원리는 간단하나 그 활용범위는
쓰는 자의 정신의 크기와 지식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현실에서의 결과는 그 자가 가지고 있는 정신에 담긴 지식만큼만 딱 나오게 된다.
마치 반년동안 업어치기 하나만 배워온 나는 유사시에 업어치기가 나오지,
어렵고 화려한 다른 유도기술이 나오지가 않는 것처럼.
이X원장이 인체파동원리에서 말하는 자리를 한의사들에게 까발린다고 하자,
인체파동원리에 손가락질을 하며 매도하던 자들이 앞다투어 그 강의를 신청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다.
내가 처음 인체파동원리에 입문했을 때, 자리에 대한 그림을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다.
딱 보고 느꼈다.
이게 다가?
별 거 아니네.
뭐, 없구만.
몇 번 쓰윽 훑어보고 선생님께 돌려드리며 다 봤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선생님왈, "오~ 대단한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참 남사스러웠던 일입니다.
그리고 임상에 나갔는데 이럴수가 자리를 안다고 되는 게 아니였음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진단이 되지를 않는 것이다.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무릎을 놨는데도 낫지를 않고,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어깨를 놨는데도 낫지를 않는다.
결국 진단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히 자리를 넘어선 그 이상의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원리를 쳐다보고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적으며 되뇌였다.
이제 지식을 갖추었으니 임상은 아무것도 아니겠지했는데,
또 그게 아니였다.
진단이 되어도 환자가 좋아지지를 않는다.
이건 또 뭐지?
또 파고들고 카페글을 열심히 읽던 차에 모선배님이 쓰신 글 한 귀퉁이가 내 머리에 들어왔다.
"인체파동원리는 사랑이다. 환자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별 거 아니고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여 눈이 안 가는 그 길지 않은 문장이
내 가슴을 후볐다.
그러고 나서 나는 카페에 열심히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썼던 그 글이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를 인도했던 것처럼,
나의 글도 누군가를 광명으로 이끌겠지하고 써내려갔다.
쓰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기왕이면 잘 써보자.
내 맘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 선생님 맘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
원리를 파고들며 내 글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임상에 들어갔다.
한결 낫더라.
그런데 이런 또 난관에 부딪혔다.
환자가 나뉘게 되더라.
사랑스런 환자, 사랑스럽지 않은 환자.
도대체 정이 안 가는 환자가 있다.
이런 환자는 정말 치료가 잘 안 된다.
이런 환자까지 어떻게 사랑하노?
나도 비위가 있지.
그러다가 우연찮게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나서 정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서글픔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환자를 보자 모든 환자가 다 하나로 보였다.
다 불쌍한 인간들이구나.
저 불쌍한 몸뚱아리를 끌고 다니려니 어찌 안 힘들겠노?
그러니까 해결이 되더이다.
그러다가 환자가 어느 정도까지는 호전되나 더 이상의 호전이 안 되었다.
맨날 놓던 자리를 바꾸어보았다.
손에 놓던 침을 발에 놓고, 머리에도 놓고, 귀에도 놓고, 무릎에도 놓고 하니
또 다르게 호전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어느덧 내가 다루는 질병 중에 두통이 가장 안 풀리는 질병군으로 떠올랐다.
근골격계질환은 빨리 빨리 풀리는데, 이 놈의 두통은 그 자리에서 확 풀리지를 않는다.
카페글을 다시 읽어보자.
"지식은 내가 되지 않으면 내가 지식이 되지 않으면 지식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아직도 정신을 놓고 있었네.
그러다가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는데 머리 한 구석에 쳐박아두고 쓰지 않던
기치료를 시도해보았다.
감기로 코가 막혀 자다가도 숨을 못 쉬어 수시로 깨던 내 아들에게 써 보았다.
코도 뻥 뚫리고 콧물도 싹 말라버리기에 깜짝 놀랬다.
그 다음부터는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면
길면 5분, 짧게는 2-3분 손만 살짝 올려놓으면 두통이 좋아졌다.
점점 내 기술에 자신이 붙고 어느덧 자만심이 생겨났다.
최근의 일이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자석테이핑요법을 보고 코웃음을 쳤었다.
저게 무슨 치료가 되겠냐, 임상은 손맛인데 자석테이프 하나 딸랑 붙여놓고
저게 무슨 치료고?
여기서 잠시 딴 길로 샌다.
통영에서는 공부 잘 하기로 몇째 손가락 안에 들던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는 반에서 30-40등을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의자에서 대부분의 하루를 보내던 때에
고등학교 때 낭습이 심했다.
낭습이 좋아지자 갑자기 사타구니가 심하게 가려웠다.
양약연고는 바르지 않고 가려우면 긁고 버텼다.
한의대 본과 3학년이 되어 양방 피부과책을 읽던 중에 내 병명을 알았다.
완선.
읽어보니 치료법도 없고, 교수님도 썩 맘에 드는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시고.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었다.
내 불쌍한 사타구니.
그러기를 지금까지 난 어느 날 선생님이 제천에 오셨는데
선생님께서 자석테이프를 붙이고 계신 걸 보았다.
바로 그 자리에 나도 그냥 붙여보았다.
효과는 반신반의하면서.
그러기를 며칠 지나자,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사타구니가 당최 가렵지가 않은 것이다.
주로 저녁에 가려운데 이상하게 하나도 가렵지가 않은 것이다.
아, 자석테이프때문이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일 자석테이프를 하고 다닌다.
처음 인체파동원리에 입문했을 때의 내 모습과 비교해보면
내 정신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내 지식이 점점 커지고,
그 지식은 단지 머릿속에 쳐박힌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열매를 맺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고 있다.
인체파동원리는 자리가 다가 아니다.
아무리 자리를 잘 알아도 그 자리를 써야 할 경우에 그 자리를 못 쓸 때가 많다.
진단이 안 된다거나 한 자리만을 계속 써서 파동이 친 여러 부위를 못 보거나
환자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단지 침만으로 해결하려들거나
(때로는 손맛이다. 기치료를 하든 골격교정을 하든.)
자만심으로 자기 눈을 가리거나 기타 등등의 장애물과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임상에서는 자주 난관에 부딪힌다.
그럴 때 길을 이끌어주는 이가 필요하다.
그가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인체파동원리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일 수도 있고,
혹 동기나 후배들일 수도 있다.
50만원 강의를 듣는 한의사분들께 고한다.
임상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수많은 난관을 어찌 다 헤쳐나갈려고 하는 것이오?
인체파동원리는 자리가 다가 아닙니다.
이런 얘기는 밤을 새도 모자란 얘기입니다.
[Elgar] Salut D'amour, Op.12
정경화(VAmoreiolin) from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