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기요》 해제
남종진|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원
《선택기요(選擇紀要)》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선택서(選擇書)의 하나이다. 선택(選擇)이란 국가의 중대사나 민간의 일상사를 하는데 알맞은 시각이나 방위를 가리는 일을 말한다.
《선택기요》는 남병길(南秉吉, 1820~1860)이 관상감(觀象監)의 명과학(命課學) 분야 실무관원들과 함께 편찬한 것이다. 책의 서문에는 남병길이 “관상감의 몇몇 생도와 함께 대가(大家)들의 주장을 베끼고 모았다.”주-D001라고 하였고, 또 책의 말미에는 편찬과 감수에 참여한 9인의 명단이 실려 있다.주-D002 당시 남병길은 관상감의 제조(提調)를 맡고 있어서 이 책의 편찬과정을 총괄한 것으로 보인다. 간행된 시기는 남병길이 지은 서문에 “상(上)의 4년 정묘년 7월”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1867년(고종4)경으로 보인다.
1. 편찬 책임자 남병길과 과학기술 저서
남병길은 남병철(南秉哲 1817~1863), 이상혁(李尙爀 1810~?)과 함께 19세기 조선의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천문학ㆍ역학(曆學)ㆍ산학(算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남병길은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자(字)는 원상(元裳)이며, 호는 육일재(六一齋), 혜천(惠泉)이다. 33세인 1853년에 《중성신표(中星新表)》를 편찬한 이후로 주로 천문과 역산의 연구에 매달렸으며, 40세인 1859년(철종10)부터 고종(高宗, 재위 1863~1907) 때까지 관상감의 제조(提調)를 맡았다.주-D003 이 시기에 《시헌기요(時憲紀要)》를 지어 천문학 분야의 실무관원을 선발하는 수험교재로 삼았고,주-D004 《칠정보법(七政步法)》을 보완하여 《추보첩례(推步捷例)》를 내놓았으며, 《의상고성속편(儀象考成續編)》을 근거로 하여 《성경(星鏡)》을 만들어 관상감에서 활용하게 하였다. 또 19세기 중반에 서양의 천문학에 근거하여 만든 시헌력(時憲曆)과 관측용 의기(儀器)를 다룬 저술을 모아 육일재총서(六一齋叢書)를 편찬하였는데,주-D005 이 총서는 당시의 천문학과 역학 수준을 가늠하는 소중한 문헌자료가 된다.
남병길은 천문학ㆍ역학ㆍ산학 분야에 관한 여러 저술을 남겼다. 그 가운데 천문과 역학 관련서로는 《중성신표》(1853년)를 비롯하여 《항성출중입표(恒星出中入表)》(1854년), 《양도의도설(量度儀圖說)》(1855년), 《시헌기요(時憲紀要)》(1860년), 《성경(星鏡)》(1861년), 《추보첩례(推步捷例)》(1861년), 《춘추일식고(春秋日食攷)》(1861년?), 《중수중성표(重修中星表)》(1864년), 《태양경루표(太陽更漏表 일명 《태양출입표(太陽出入表)》)》(1867년)가 있고, 산학 관련서로는 《무이해(無異解)》(1855년), 《집고연단(緝古演段)》(1854~1855년?), 《측량도해(測量圖解)》(1858), 《구장술해(九章術解)》(1864년?), 《산학정의(算學正義)》(1867년), 《옥감세초상해(玉鑑細艸詳解 일명 《사상세초상해(四象細艸詳解)》)》(간행연대 미상), 《유씨구고술요도해(劉氏句股術要圖解)》(간행연대 미상)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남상길은 명과학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서 2편의 저서를 남겼는데, 《선택기요》(1867)와 《연길귀감(涓吉龜鑑)》(1867)이 그것이다. 이 저서는 일상생활의 택일과 택방의 요점을 담은 것으로 같은 해에 나왔지만, 《연길귀감》은 《선택기요》와 《천기대요(天機大要)》의 요지를 모아서 정리한 것으로 《선택기요》의 후속편인 셈이다.
2. 《선택기요》의 편찬 배경
동아시아의 선택 문화는 중국의 주(周)나라 때에 음양(陰陽)의 조화를 살펴서 일을 행하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주-D006 이후 음양오행(陰陽五行), 천간지지(天干地支), 하도낙서(河圖洛書), 태현갑자수(太玄甲子數) 등을 이론적 근거로 삼으면서 점차 인간의 운명과 복록(福祿)을 헤아리는 행위 전반으로 확대되었고, 마침내 명과학(命課學)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주-D007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이래로 선택 문화가 확산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제례와 연회, 조서의 반포, 임금의 행차, 용병(用兵) 같은 공적 중대사에서부터 출행(出行), 관례(冠禮), 혼례, 입학, 건축, 이사, 농사, 상장(喪葬) 등 개인적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행위가 적용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공식 제도에 편입되어 운영되었다.주-D008 이처럼 선택 문화가 보편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선택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학습하고 또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여러 선택서(選擇書)를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는 선택서를 개발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는데,주-D009 세조 때에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공사(公私)의 용사(用事)에 필요한 택일과 택방의 방법을 모아서 엮은 《선택요략(選擇要略)》(1465년)과 정조 때에 중국의 《상길통서(象吉通書)》와 《협기변방서(協紀辨方書)》를 요약하여 만든 《협길통의(協吉通義)》(1796)가 그런 부류들이다. 이들 선택서는 역서(曆書)를 편찬할 때 역주(曆註)를 기입하는 지침으로 쓰였으며, 또 국가의 행사와 민간의 일상에서 선택의 편람으로 활용되었다.
《선택기요》는 고종 4년(1867)에 편찬되었다. 당시는 중국의 명과학 문헌을 도입하여 사용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또 70년 이전에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협길통의》가 활용되던 때였다. 그런데도 남병길이 굳이 《선택기요》를 편찬한 데는 당시의 현실적 수요에 따른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명과학 선택 분야의 생도들을 교육하기에 알맞은 새로운 교육용 교재의 개발이 시급하였다. 남병길은 《선택기요》의 서문에서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서운관의 제거를 맡아서 생도들을 살펴보았더니, 추길(諏吉 선택)의 학문은 《협길통의(協吉通義)》에 전념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오히려 여전히 《원천강(袁天綱)》을 읽고 암송하였다. 《원천강》은 추명(推命)의 방법이어서 극택(剋擇 선택)의 일과는 관계가 없다. 생도들에게 직책에 따라 그들의 업무를 물어보니 대개 영서연설(郢書燕說)이어서, 과정을 만들어 솜씨를 시험해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저 부질없는 짓일 뿐이었다.”주-D010
《원천강》은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따져 운명을 헤아리는 추명서(推命書)여서 연월일시, 방위ㆍ좌향 등을 살펴서 길흉을 헤아리는 선택과는 다른 분야의 책이다. 그런데도 당시 관상감의 생도들은 《원천강》만 공부할 뿐이어서 선택에 대한 지식은 습득하지 못하였고, 이에 자신의 업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남병길은 새로운 선택서를 만들어서 《원천강》을 대신하게 하면 “구반문일(扣槃問日)의 오류는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주-D011
둘째, 선택의 이론과 실무를 익히는 데 있어서 요점만 쉽게 파악하여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 지침서가 필요하였다. 남병길은 《선택요략》의 서문에서 “음양가(陰陽家)는 그 부류가 자그마치 수백 수천 가지나 되는데, 세대가 오래 지날수록 방술(方術) 역시 점점 번잡해졌다”주-D012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주장이 나옴에 따라 선택에 관한 이론서나 활용서도 그 내용과 구성이 넓어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 초기에 나온 《선택요략》을 《선택기요》와 비교하여 보면, 구성이 더 복잡하고 기술한 내용은 범위가 더 넓다. 조선 후기에 만든 《협길통의》는 남병길이 “그 본원을 살펴서 크게 넓혔으니 그 극치를 모두 갖추었다”주-D013라고 평가한 것처럼 선택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활용까지를 폭넓게 다루었다. 하지만 그 분량이 10책 22권으로 방대하여 자세히 학습하고 활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현장에서 외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적 문제 때문에 남병길은 선택의 요점만을 가려 뽑아서 간결하게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학습자가 쉽고 명확하게 익힐 수 있고 또 사용자도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택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남병길이 서문에서 《선택기요》는 종래의 선택서에서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요점만 간단히 가려 뽑고,”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밝히고, 아울러 “제가(諸家)의 요지를 가려 뽑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고방(古方)의 축소판으로, 후학을 위한 첩경(捷徑)”주-D014이라고 이 책의 특징을 규정한 것에서 《선택기요》가 지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선택 문화는 오래된 만큼이나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를 가려내어 취사할 필요가 있었다. 남병길은 선택 문화가 “원류는 드넓고 주장은 다양하며, 게다가 오늘날 뛰어난 전문가들은 각자 나름의 견해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을 좇아야 좋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헷갈리는 까닭이다.”주-D015라고 전제하고, “대가(大家)들의 주장에서 요점만 가려 뽑고” “술사(術士)들이 사리에 맞지 않게 억지로 끌어들인 주장은 배제하였다.”고 밝혔다.주-D016 이런 점은 이 책을 편찬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아니지만 남병길이 평소에 사리에 맞지 않는 학설이나 주장에 대하여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병길은 본문의 첫머리에서 “선택을 하는 방법은 예로부터 여러 부류가 있었으나, 그것의 근본 취지가 모두 전하지는 않고 기례(起例)에는 오류가 많았다. 이제 다시 모아서 그 가운데 사리에 가까운 것을 골라내어 풀이하고 설명을 덧붙인다.”주-D017라고 밝혔는데, 이처럼 기존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남병길의 문제의식은 그가 이 책을 기술하면서 여러 곳에서 기존의 잘못된 견해를 비판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궁합(宮合)을 따지는 것의 잘못을 논하면서는 이것이 한(漢)나라 때에 흉노(凶奴)의 청혼을 피하려는 구실로 구궁(九宮)의 조화를 핑계로 내세운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어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 가취(嫁娶)에서 길삭(吉朔)을 따지는 것은 후세에 술사(術士)들이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 《기문둔갑(奇門遁甲)》은 본래 용병(用兵)에 있어서 길일(吉日)을 가리던 것인데 이것을 수조(竪造)나 장매(葬埋)에서 활용하는 것은 후세에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 또 이 책의 마지막에서 세상에 전해지지만 어떤 근거도 없는 신살(神殺)에 대하여 하나씩 거론하면서 비판을 가한 것 등은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협길통의》의 〈변와(辯譌)〉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구체적 근거를 끌어다 일일이 논증함으로써 그 객관성을 높였다.
3. 《선택기요》의 구성과 내용
《선택기요》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 성균관대학교 존경각(尊經閣),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일본의 아가와 문고(阿川文庫) 등에 소장되어 전한다.
본 국역의 저본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자부(子部) 술수류(術數類)로 분류되어 있다. 그 서지 사항을 살펴보면, 전사자(全史字)주-D018로 인쇄되었으며, 모두 2책이다. 각 면은 10행 20자씩 조판되었고, 협주(夾註)는 쌍행(雙行)으로 넣었다. 현재 소장본에는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라는 인기(印記)가 있다.
《선택기요》는 상편(上編)과 하편(下編)으로 나누어 구성하였으며, 각 편마다 1책씩이다.
상편에는 먼저 책의 서문인 〈선택기요서(選擇紀要序)〉가 있는데 남병길이 지은 것이다. 그리고 〈선택기요상편목록(選擇紀要上編目錄)〉을 두어 상편에 수록한 내용을 밝혔다. 본문의 첫머리에 기술한 〈본원(本原)〉에서는 선택이 지닌 본질과 의미에 대하여 천명하고 이어서 선택에 있어서 사용하게 되는 각종 이론적 개념과 술어(術語)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여기에는 예로부터 내려온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팔괘(八卦), 납갑(納甲), 선천수(先天數), 후천수(後天數), 오행론(五行論), 천간지지론(天干地支論) 등이 포함되었다. 이어서 천간(天干)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천간의 정록(正祿), 식신(食神), 정관(正官), 인수(印綬)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연월일시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각종 길신(吉神)과 흉살(凶殺) 그리고 그 길신과 흉살에 해당되는 방위 등을 항목별로 나누어 배열하였다.
이어서는 앞서 기술한 이론적 근거와 각종 신살(神殺)에 관한 기본 사항을 근거로 하여 이것이 실제로 적용되는 각종 행사(行事)를 부류별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일상사는 상편에서 관계류(冠笄類), 가취류(嫁娶類), 용사류(用事類)를 기술하였고, 하편에서 조장류(造葬類)와 힐융류(詰戎類)를 기술하였다. 이처럼 다섯 부류로 나눈 것은 조선 초기의 《선택요략》이 이정류(蒞政類), 현문류(玄門類)에서부터 상장류(喪葬類)에 이르기까지 열아홉 부류로 나누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간소한 구성을 지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각종 행사(行事)의 부류를 나누고 나서 각 부류마다에 다시 세부적 항목을 하나씩 배열하고, 각각의 항목에 해당되는 구체적 행위를 실행하기에 알맞은 날〔宜〕과 피해야 하는 날〔不宜〕을 기술하여, 일상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일을 할 때 간편하게 참조할 수 있게 하였다.
관계류(冠笄類)에서는 관례(冠禮)를 행할 때, 생년에 따라 알맞은 좌향(坐向)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였다.
가취류(嫁娶類)에서는 음양불장(陰陽不將)의 길일(吉日), 여자가 시집가기에 길하거나 흉한 달을 나타낸 여명가취월분도(女命嫁娶月分圖), 혼례를 치를 시각을 선택하는 가취주당도(嫁娶周堂圖), 육례(六禮)를 치르기에 알맞은 날을 선택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또 궁합(宮合)과 길삭(吉朔)을 따지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용사류(用事類)에서는 기복(祈福)이나 구사(求嗣)를 위한 제사, 입주(入住), 입학, 산실(産室) 설치, 부임, 여행, 술 빚기, 파종, 치료, 건축, 우물 파기, 벌목, 사냥, 누에치기, 가축우리 짓기 등 일상에서 행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을 행하기에 알맞은 시각과 방위를 기술하였다. 또 일상에서 건축이나 토목을 행하는 순서를 밝히고, 그에 해당하는 길신과 흉살, 북두성이 임하는 시각과 방위인 두림시방(斗臨時方), 이장(移葬)을 할 때 좌산(坐山)에 따라 월건(月建)을 정하는 방법인 운박영정국(運泊永定局)을 도표로 만들어 실었다. 마지막에는 신살(神殺)과 두수(斗首)에 대한 문제점을 따졌다.
조장류(造葬類)는 상ㆍ하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상편에서는 먼저 산운(山運)에서의 본체〔體〕와 응용〔用〕의 관계, 정체오행(正體五行)과 홍범오행(洪範五行)의 산운과의 관계를 자세히 분석하여 다루었고, 태세(太歲)와 월건(月建)에 따른 각종 신살(神殺)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하편에서는 먼저 양 균송(楊筠松)의 〈천금가(千金歌)〉를 논거로 삼아서 산운(山運)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자세하게 다루었고, 이어서 산운에 관련된 신살의 범례, 만년도(萬年圖), 여러 화성(火星)을 누르는 방법, 이십사산(二十四山)의 정국(定局), 취토(取土)를 하기에 길한 방위, 행상(行喪)에 있어서 피해야 하는 방위, 청명(淸明) 전후에 무덤을 만드는 방법 등을 하나씩 나누어 기술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망자(亡者)가 불러서 함께 가려고 한다는 살(殺)인 적호(的呼)와 조장(造葬)에서의 선택에 있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문제를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따졌다.
힐융류(詰戎類)는 용병(用兵)의 길흉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소개하고, 아울러 용병에 유리한 날과 꺼리는 날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먼저 〈연무(演武) 총론〉에서는 병법의 길흉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따졌고, 그 뒤를 이어서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핵심적 방법, 용병에 알맞은 시각과 방위, 용병에서 길을 찾는 방법 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작전을 펼치는 데에 있어서 그에 해당되는 길신과 흉살을 표로 만들어 덧붙였다. 또 이십팔수성상(二十八宿星象)과 번금법(番禽法)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끝으로 용병과 관련하여 내려오는 신살 가운데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따졌다.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의 감수와 편찬에 참여한 인물의 관직과 성명을 기록하였다.
《선택기요》는 본래 남상길이 관상감 생도들의 실무지식 제고를 위하여 기획한 것이다. 즉 관상감 생도들이 선택학의 이론과 활용법을 쉽게 익히고, 그것을 실무에서 간편하게 활용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편찬된 것이다. 편찬 작업에는 남상길의 총괄 아래 관상감의 실무관원 6인과 별도의 감수인원이 참여하여 관찬(官撰)이라는 공적 지위를 갖는다.
《선택기요》는 간행되던 해부터 음양과의 시험교재로 채택되었고, 이후 1874년(고종11)까지 사용되었다.주-D019 이 책이 음양과의 시험교재로 사용된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이것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크다. 나아가 이 책은 다른 문헌의 기록을 단순히 가져다 재구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헌을 살펴서 근거가 없거나 잘못 전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삭제하거나 논거를 제시하여 따지는 등 비판적 수용 태도를 갖고서 기술하였다는 점은 무척 돋보이는 점이다. 아울러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여러 분야의 택일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어서 그 당시 선택 문화의 양상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주-D001] :
- 南秉吉, 〈選擇紀要序〉:“余與數三監生, 鈔輯諸家之論, 袪其繁冗, 撮其簡要.”
- [주-D002] :
- 감동인(監董人)이 4인과 휘편인(彙編人) 6인 등 모두 10명의 명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임긍연(林兢淵)은 감수와 편찬 모두를 맡아서 실제로는 9인이다. 감동인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의 직책이었고, 휘편인은 관상감정(觀象監正), 겸명과학교수(兼命課學敎授), 행명과학훈도(行命課學訓導) 등 실무관원이었다.
- [주-D003] :
- 조선 시대에 관상감은 천상(天象)의 관측과 기록, 역서(曆書) 편찬, 길지(吉地) 선정, 택일, 시각 측정 등을 공식 업무로 하는 기구였고, 제조는 관상감의 실무를 지휘하는 종2품 이상의 관원이 겸직하는 자리였다.
- [주-D004] :
- 당시는 시헌력(時憲曆)이 도입된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과거 시험에 대통력(大統曆)과 회회역법(回回曆法)을 사용하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수험서를 지었다.
- [주-D005] :
- 육일재총서는 《시헌기요》, 《양도의도설》, 《중수중성표》, 《항성출중입표》에 남병철의 《의기집설(儀器輯說)》, 《추보속해(推步續解)》, 이상혁의 《규일고(揆日考)》를 더한 7종 11책을 묶고 자신의 당호(堂號)를 붙여서 내놓은 문헌이다.
- [주-D006] :
- 《예기》에는 “외사는 강일에 하고 내사는 유일에 한다.〔外事以剛日, 內事以柔日.〕”라고 하여 용사(用事)에 따라 날을 달리하였고, 《좌전》에는 “일진이 갑자와 을묘에 있는 것을 질일이라고 한다.〔辰在子卯, 謂之疾日.〕”라고 하여, 특별히 꺼리는 날이 있었다.
- [주-D007] :
- 당(唐) 원천강(袁天綱)이 《육임과(六壬課)》, 《오행상서(五行相書)》, 《삼세상법(三世相法)》을 지어 명과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허중(李虛中)이 당사주(唐四柱)를 고안하고, 서자평(徐子平)이 자평팔자학(子平八字學)의 체계를 완성하고, 남송의 서대승(徐大升)이 자평술(子平術)을 계승함으로써 명과학이 확산되었다.
- [주-D008] :
- 태조 원년(1392)에 〈문무백관관제(文武百官官制)〉를 제정하면서 천문(天文)ㆍ재상(災祥)ㆍ역일(曆日)과 함께 추택(推擇 선택)을 서운관(書雲觀 후에 관상감으로 개명)의 직무분야로 정하였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조 참조.〕 이후 천문ㆍ재상ㆍ역일ㆍ측후ㆍ각루는 천문학 전공자가 담당하고, 지리는 지리학 전공자가 담당하고, 추길(諏吉 길한 날짜, 시간, 방위를 가리는 일)과 점주(占籌)는 명과학 전공자가 담당하였다.
- [주-D009] :
- 예컨대 관상감의 명과학 분야 실무관원을 선발하는 수험서로 《원천강(袁天綱)》, 《서자평(徐子平)》, 《응천가(應天歌)》, 《범위수(範圍數)》, 《시용통서(時用通書)》, 《극택통서(剋擇通書)》, 《천기대요(天紀大要)》, 《협기변방(協紀辨方)》, 《상길통서(象吉通書)》, 《협길통의(協吉通義)》 등의 명리서와 선택서가 활용되었다.
- [주-D010] :
- 南秉吉, 〈選擇紀要序〉:“余提擧雲觀, 見其生徒, 諏吉之學, 不甚專工於通義, 而所讀誦者乃是袁天綱也. 此卽推命之方, 無關剋擇之事. 顧其職而問其業, 殆所謂郢書燕說, 揆以設科試藝之義, 未免乎徒歸虛文.”
- [주-D011] :
- 南秉吉, 〈選擇紀要序〉:“肄業之徒, 若以是卷易彼命書, 則不害爲車獘改轍之意, 庶無扣槃問日之謬云爾.
- [주-D012] :
- 南秉吉, 〈選擇紀要序〉:“陰陽家類無慮數千百, 而世代愈久, 方術愈煩.”
- [주-D013] :
- 南秉吉, 〈選擇紀要序〉:“至於我東協吉通義, 而端本究原, 廣大該洽, 可謂極備其致矣.”
- [주-D014] :
- 南秉吉, 〈選擇紀要序〉:“余與數三監生, 鈔輯諸家之論, 袪其繁冗, 撮其簡要, 以排術士傅會之說, 務使覽者瞭然易曉, 分類五門, 彙成一書, 名曰選擇紀要. 實是古方之縮本, 亦爲後學之捷徑也.”
- [주-D015] :
- 南秉吉, 〈選擇紀要序〉:“源流澔汗, 論說多端, 今之巧師, 各主一義, 莫知適從, 此非爲誤人, 所以自誤焉.”
- [주-D016] :
- 南秉吉, 〈選擇紀要序〉:“鈔輯諸家之論, 袪其繁冗, 撮其簡要, 以排術士傅會之說.”
- [주-D017] :
- 南秉吉, 《選擇紀要》 上編 〈本原〉:“選擇之法, 古有諸家, 義不盡傳, 起例多誤, 今改蒐葺, 擇其近理.”
- [주-D018] :
- 전사자(全史字)는 조선 철종 때에 만든 구리 활자로, 청조체(淸朝體)의 근대적 활자인데, 조선 시대에 주조된 활자 가운데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이다.
- [주-D019] :
- 이수동, 〈조선 말기 명과학 시험교재 《선택기요》 연구〉, 《藏書閣》 32, 2014, p.1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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