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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列 禦 寇 (잡편 10, 전체 32)
列禦寇ㅣ 之齊하다가 中道而反할새 遇伯昏瞀人하다 伯昏瞀人이 曰 奚方而反고 曰 吾는 驚焉호라 曰 惡乎驚고 曰 吾ㅣ嘗食於十漿하더니 而五漿이 先饋하더라 伯昏瞀人이 曰호되 若是 則汝는 何爲驚已오 曰 夫內誠이 不解하면 形諜이 成光하야 以外鎭人心이라 使人輕乎貴老하야 而제其所患하나니라 夫漿人은 特爲食羹之貨로 多餘之贏이라 其爲利也薄하며 其爲權也輕호되 而猶若是온 而況於萬乘之主乎따녀 身勞於國하고 而知盡於事하야 彼 將任我以事하야 而效我以功할새 吾ㅣ 是以로 驚호라
伯昏瞀人이 曰 善哉라 觀乎여 汝ㅣ 處已면 人將保汝矣리라 無幾何오 而往하니 卽戶外之屨 滿矣러라 伯昏瞀人이 北面而立하야 敦杖하야 蹙之乎頤하야 立有間이라가 不言而出커늘 賓者 以告列子한대 列子 提屨하고 跣而走하야 曁乎門하야 曰호되 先生이 旣來하시란대 曾不發藥乎아 曰 已矣라 吾ㅣ固告汝하야 曰호되 人將保汝라하야늘 果保汝矣로다 非汝 能使人保汝라 而汝는 不能使人으로 无保汝也로니 而 焉用之感豫出異也오 必且有感 搖而本性이라 又无謂也로다 與汝로 遊者도 又莫汝告也하나니 彼所小言이 盡人毒也라 莫覺莫悟에 何相孰也리오 巧者는 勞하고 而知者는 憂어니와 无能者는 无所求라 飽食而敖遊하나니라 汎若不繫之舟하야 虛而敖遊者也니라
열어구가 제나라에 가다가 도중에 돌아와서 백혼무인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으로 돌아왔는가?”라고 물으니, (열어구가) 말하기를 “제가 놀랬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놀랬는가?”라고 물으니, (열어구가) 말하기를 “저는 식당 열 곳에서 음식을 맛보았는데 다섯 식당은 가장 먼저 음식을 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했는데 자네는 어찌하여 놀랐는가?”라고 물으니, (열어구가) 말하기를 “무릇 내면의 성실성이 풀리지 않으면 외모의 위엄이 광채를 이루어 밖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누르는지라 사람들로 하여금 貴人들과 老人들을 가볍게 여기게 하여 그로 인한 환란을 불러들이게 될 것입니다. 대저 식당 주인은 다만 음식물을 자본으로 해서 물건 팔아 많이 남긴 것을 벌이로 해서 산다. 그런데 그 이익은 적고 그 권세도 가벼운데 오히려 이와같이 하니 하물며 만승의 군주이겠습니까! 몸은 나랏일로 고달프고 정신적 지식은 일을 해나가는 데 다 소진했기 때문에 저 군주는 나에게 일을 맡겨 나에게 공적으로 효과를 보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좋다. 너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구나. 그러나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처리한다면 사람들은 장차 너에게 붙어다닐 것이다.”라고 했다. 얼마 안 있다가 (백혼무인이) 가보니 즉 문밖에 신발이 가득하였다. 백혼무인이 북쪽을 바라보고 서서 지팡이를 세우고 턱을 괴고서 얼마간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왔다. 손님 맡은 자가 열자에게 알렸더니 열자가 신발을 들고 맨발로 달려가 문에까지 쫓아가서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이왕 오셨는데 일찌감치 약이 될 좋은 말씀을 안해주십니까?”라고 하니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그만두어라. 내가 본시 너에게 일러 말하기를 ‘사람들이 장차 그대에게 붙어 다닐 것이다’라고 하였거늘 과연 그대에게 붙어다니는구나. 그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에게 붙어 다니도록 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에게 붙어 다니지 않도록 하지는 못했으니, 그대는 어찌 써서 기이한 것을 끄집어내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기뻐하도록 하였는가? 필히 또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함이 있으면 그대의 本性도 흔들어 놓을 것이다. 또 무슨 말이 있겠는가? 그대와 더불어 노니는 자들은 또 그대에게 충고해주지 않으니 저들이 내뱉는 하찮은 말은 모두 사람들에게 독이 되는 것들이다. 스스로 깨닫는 자도 없고 남을 깨닫게 하는 자도 없으면 어떻게 서로 성숙하겠는가(孰=熟). 재주 있는 자는 수고롭고 지식 있는 자는 근심 많지마는 무능한 사람은 아무것도 구하는 것이 없어 배불리 먹고 즐겁게 노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둥둥 떠서 얽매이지 않는 배와 같아서 텅 빈 마음으로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鄭人緩也ㅣ 呻吟裘氏之地하더니 祇三年에 而緩爲儒하야 河潤九里 澤及三族하야는 使其弟로 墨하니 儒墨이 相與辯이어늘 其父 助翟한대 十年에 而緩이 自殺이러니 其父 夢之하니 曰 使而子로 爲墨者ㅣ 予也니(어니따녀) 闔胡嘗視其良고 旣爲秋柏之實矣로라하니 夫造物者之報人也에 不報其人이오 而報其人之天하나니 彼 故使彼어늘 夫人이 以己로 爲有以異於人이라하야 以賤其親하니 齊人之井飮者ㅣ相捽也니라 故로 曰 今之世는 皆緩也라하노라 自是는 有德者 以不知也온 而況有道者乎따녀/여 古者에 謂之遁天之刑이라하더니라 聖人은 安其所安이오 不安其所不安이어든 衆人은 安其所不安이오 不安其所安하나니라
정나라 사람 완은 구씨라는 땅에서 열심히 책을 독송하더니 삼년만에 완이 儒者가 되었다. 그래서 황하 물이 아홉 마을을 적시듯이 그의 은택은 三族(親家 外家 妻家) 전체에까지 널리 미쳤다. 그의 동생으로 하여금 묵자를 배우게 했다. 그러니 儒墨이 서로 변론하여 논쟁이 생기거늘 그의 아버지는 묵적의 편을 도운데 10년 뒤에 완이 자살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죽은 아들 완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당신 아들로 하여금 墨者로 되게 한 사람은 저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덤(良=埌)에 일찍이 한 번 와보지도 않으십니까? 내 시체는 이미 가을 잣나무의 열매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무릇 조물자가 사람에게 보답할 적에는 그 사람을 보답하지 않고 그 사람의 천성에 보답한다. (그러므로 아우가 墨者가 된 것은 형인 완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가 본시 그런 사람이 되게 되어서 그리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 완은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여겨서 그 아버지를 천대시 했으니 (이는 곧 우물을 판) 제나라 사람들이 우물물을 마시려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것과 같다. 고로 말하기를 “지금의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완과 같은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도 이미 잊어버리고 알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도가 있는 사람이겠는가? 옛날에는 이런 사람을 일러 천지자연의 理法에서 도망친 자의 형벌이라고 하였다. 聖人은 그 편안해할 곳에서 편안해하고, 그 편안해하지 않을 곳에서는 편안해하지 않지마는, 뭇 사람들은 편안해하지 않을 곳에서 편안해 하고, 편안해할 곳에서는 불안해 한다.
莊子曰 知道는 易하고 勿言은 難하니 知而不言이 所以之天也요 知而言之 所以之人也니 古之人은 天而不人하니라
朱泙漫이 學屠龍於支離益호되 單千金之家하야(하니) 三年에 技成이로되 而无所用其巧러라 聖人은 以必로 不必이론/이라 故로 无兵거든 衆人은 以不必로 必之라 故로 多兵하니 順於兵이라 故로 行有求하나니 兵을 恃之則亡하나니라 小夫之知는 不離苞苴竿牘이라 敝精神乎蹙淺하야 而欲兼濟道物하야 太一形虛하나니 若是者는 迷惑於宇宙하야 形累不知太初커든 彼至人者는 歸精神乎无始하야 而甘瞑乎无何有之鄕하나니라 水는 流乎无形하야 發泄乎太淸하나니 悲哉乎라 汝爲知는 在毫毛오 而不知大寧하놋다
장자가 말하기를 “道를 알기는 쉽고 그것을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니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하늘로 가는 방법이요 알고서 바로 말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옛사람은 하늘의 세계로 갔고 사람의 세계로는 가지 않았다.
주평만은 지리익에게서 용을 도살하는 기술을 배웠는데 천금의 가산을 단지 탕진해서 3년만에 기술을 완성하였으되 그 기교를 사용할 곳이 없었다. 聖人은 꼭 기필할 것도 반드시 기필되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반드시 기필할 수 없는 것을 기필한다. 그러므로 무력을 쓰는 것이 많다. 그러니 무력에 따르기 때문에 행함에 요구함이 있게 되는데 무력을 믿게 되면 멸망한다. 소견 좁은 사내의 지식은 선물이나 편지와 같은 하잘것없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막히고 천박한 일에 정신을 피폐하게 해서 道와 物을 아울러 구제하여 形과 虛를 크게 통일하고자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정신은 우주의 진리에 미혹되고 형체는 세상 사물에 얽매여 태초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저 至人이라는 사람은 정신을 처음도 없는 道의 本源으로 귀결시키고 몸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無何有의 고을에서 달게 잠을 잔다. 물은 형체없음에서 흘러나와 크게맑음으로 발하여 배설되나니, 슬프다 너의 앎이 되는 것은 털끝처럼 작고 볼 폼이 없으며 아주 큰 편안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했다.
宋人이 有曹商者 爲宋王하야 使秦하더니 其往也에 得車數乘이러니 王이 說之하야 益車百乘하야늘 反於宋하야 見莊子하야 曰호되 夫處窮閭陋巷하야 困窘職屨하야 槁項 黃馘者는 商之所短也오 一悟萬乘之主하야 而從車百乘者는 商之所長也니라 莊子曰호되 秦王이 有病하야 召醫하니 破癰潰痤者는 得車一乘하고 舐痔者는 得車五乘하니 所治 愈下에 得車 愈多하니 子는 豈治其痔邪인저/아 何得車之多也오 子는 行矣하라
송나라 사람으로 조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송나라 왕을 위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더니 그 갈 적에는 수레 몇 대를 얻었을 뿐이었는데 (진나라) 왕이 (그를 보고) 기뻐하여 수레 100대를 보태주었다. 그래서 조상이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를 만나보고 말하기를 “무릇 궁색한 마을 누추한 골목에 거처하며 곤궁하게 짚신이나 짜면서 비쩍 마른 목에 누런 얼굴을 하고 사는 것은 曹商인 내게는 맞지않는 잘 하지 못하는 일이네. 한번 만승의 군주를 깨닫게 하여 따르는 수레가 100대나 되게 하는 것은 조상 내가 잘하는 것이라네.”라고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진왕이 병이 있어 의사를 부르니 종기를 터뜨리고 뽀루지를 짜내는 자는 수레 한 대를 얻고 치질을 핥아서 (고쳐준) 자는 수레 다섯 대를 얻었으니 치료했는 곳이 더욱 아래면 수레 얻음이 더욱 많아진다. 그러니 그대는 아마도 치질을 햝아서 치료해주었겠구려. 어떻게 수레를 그렇게 많이 얻었단 말인가. 그대는 가시게나.”라고 하였다.
魯哀公이 問乎顔闔하야 曰호되 吾ㅣ以仲尼로 爲貞幹이면 國은 其有瘳乎아 曰 殆哉 圾乎라 仲尼는 方且飾羽而畫하고 從事華辭하야 以支로 爲旨하고 忍性以視民하야 而不知不信이오 受乎心하며 宰乎神하나니 夫何足以上民이리오 彼宜汝與아 予頤與아 誤而可矣니라 今에 使民離實學僞는 非所以視民也니 爲後世慮인댄 不若休之니 難治也니라
施于人而不忘은 非天布也라 商賈도(를) 不齒하나니 雖以事로 齒之나 神者는 弗齒하나니라
爲外刑者는 金與木也요 爲內刑者는 動與過也니 宵人之離外刑者는 金木으로 訊之하고 離內刑者는 陰陽이 食之하나니 夫免乎外內之刑者는 唯眞人이아 能之하나니라
노나라 애공이 안합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중니를 기용해서 나라의 근간으로 삼으면 우리나라에는 병폐가 낫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안합이) 말하기를 “거의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중니는 바야흐로 또한 아름다운 깃으로 꾸미고 채색으로 덧칠하고 화려한 말을 일삼아서 枝葉末端을 근본의 뜻으로 여기고 자연적 본성을 무리하게 교정해서 백성들에게 보이고서 믿음을 잃어버렸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니는)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정신으로 재단합니다. 이러니 그가 어찌 족히 백성들 위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는 당신(魯哀公)과 마땅히 친합니까. 즐겁습니까. 그렇다면 나라 일을 그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진실을 떠나 거짓을 배우게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똑바로 敎示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후세를 위해 생각해볼 땐 그만두고 쉬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남에게 베풀고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은 하늘이 베푸는 것과 같은 그런 형태가 아닙니다. 상인들도 그와 나란히 서지 않습니다. 비록 일 때문에 함께 서는 수도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그와 함께 서지 않습니다.
외부적으로 가해지는 형벌이 되는 것은 금속과 목재로 만든 도구이며, 내부적으로 가해지는 형벌이 되는 것은 흔들림과 뉘우침이다. 그러니 소인으로서 밖에서 가해지는 형벌에 걸린 사람은 금속이나 목재 刑具로 訊問을 당하고 내면에서 가해지는 형벌에 걸린 사람은 음양 두 기운의 부조화가 심신을 침식합니다. 무릇 안팎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眞人만이 능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孔子曰호되 凡人心이 險於山川하고 難於知天하니 天은 猶有春秋冬夏旦暮之期어니와 人者는 厚貌深情이라 故로 有貌愿而益(일)하며 有長若不肖하며 有順懁而達하며 有堅而縵하며 有緩而釬하니 故로 其就義 若渴者는 其去義 若熱하나니 故로 君子ㅣ 遠使之하야 而觀其忠하고 近使之하야 而觀其敬하고 煩使之하야 而觀其能하고 卒然問焉하야 而觀其知하고 急與之期하야 而觀其信하고 委之以財하야 而觀其仁하고 告之以危하야 而觀其節하고 醉之以酒하야 而觀其側하고 雜之以處하야 而觀其色하나니 九徵이 至면 不肖人을 得矣리라
正考父는 一命而傴하고 再命而僂오 三命而俯하야 循牆而走하니 孰敢不軌리오 如而夫者는 一命而呂鉅하고 再命而於車上儛하고 三命而名諸父하나니 孰協唐許리오
賊은 莫大乎德에 有心이오 而心에 有眼이니 及其有眼也하야는 而內視하나니 內視而敗矣니라 凶德이 有五하니 中德이 爲首라 何謂中德고 中德也者는 有以自好也오 而吡其所不爲者也니라
窮이 有八極하고 達이 有三必하고 形이 有六府하니 美髥長大壯麗勇敢 八者 俱過人也면 因以是로 窮하고 緣循偃佒困畏 不若人이면 三者 俱通達하고 智慧는 外通하고 勇動은 多怨하고 仁義는 多責하니 <六者는 所以相刑也니라> 達生之情者는 傀하나 達於知者는 肖하고 達大命者는 隨하나 達小命者는 遭하나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 마음은 산과 내보다도 더 險하고 하늘을 알기보다도 더 어려우니 하늘은 오히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아침 저녁의 주기가 있거니와 사람이라는 자는 겉모습은 두텁게 꾸미고 감정은 깊이 감추고 있다. 그러므로 그 모습을 삼가고 그 마음은 교만한 사람이 있고, 겉은 어른다우면서도 속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으며, 겉은 순하면서 조급한 듯 하면서도 속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도 있고, 겉은 굳센 듯 하면서도 속은 느슨한 사람도 있으며, 겉은 느슨한 듯 하면서도 속은 급한 사람이 있으니 그러므로 정의에 나아가는 것이 목마른 자와 같이 급한 사람은 그 정의를 버릴 때에는 꼭 불에 댄 것처럼 빨리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그 충성을 보고, 가까이에서 시켜 그 공경을 보고,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능함을 보고, 갑자기 질문하여 그 지혜를 보고, 급하게 그와 약속하여 그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서 그 어짐을 보며, 그에게 위급함을 알려서 그 절개를 보며, 술로써 취하게 먹여서 그 비틀거림을 보고, 남녀가 섞여서 거처하게 하여 그 색기를 본다. 이 아홉 가지 증거가 지극히 갖추어지면 어리석은 사람을 지적할 수가 있다.
정고보는 (겸손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첫 번의 命을 받아 士가 되어 등을 굽히고, 두 번째의 命을 받아 大夫가 되어서는 허리를 굽히고, 세 번째의 命을 받아 卿이 되어서는 머리를 들지 않고 구부린 채로 담장을 따라 달리듯 걸었으니 누가 감히 본받지 않으리오? 그런데도 보통의 사람들은 첫 번의 명을 받아 선비가 되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두 번째 명을 받아 대부가 되면 수레 위에서 춤을 추고 세 번째 명을 받아 경이 되면 백부 숙부의 이름도 마구 부른다. 그러니 누가 요임금이나 허유에 부합될 수 있겠는가.
도적은 덕에 마음이 있고 마음에 눈이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으니, 그 마음에 눈이 있음에 미쳐서는 內視(내부 즉 눈이 있는 마음으로 보게 됨)하나니 그렇게 되면 덕이 무너진다. 흉한 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中德(心中의 凶德)이 으뜸이다. 무엇을 中德이라고 이르는가. 中德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고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을 헐뜯는 것이다.
궁색하게 되는 것에는 여덟 가지 극한 원인이 있고, 영달하는 것에도 세 가지 필연적인 원인이 있고, 刑罰을 받는 데에는 여섯 가지 위험요인이 있다. 그러니 아름답고 구레나룻수염에 키가 크고 체격 크고 굳세고 화려하고 용기 있고 결단력이 있는 것, 이 여덟 가지가 모두 남보다 뛰어나면 이것에 따라서 곤궁하게 되고, 그렇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주위의 상황에 따르고 굽어보고 우러러보기를 다른 사람의 장단에 맞추고 괴로움과 두려움을 지니고 겁쟁이로 사는 것,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보다 못하면,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은 모두 소통하여 영달하고, 지혜는 밖으로 달려 마음을 해치고, 용감한 행동은 남에게 원망을 많이 사고, 仁義는 남에게 책망을 많이 받게 되니 <이 여섯 가지는 서로 형벌에 걸리게 하는 까닭이다.> 생명의 실상에 통달한 자는 위대하지만 지혜에만 통달한 자는 왜소하고, 커다란 운명에 통달한 자는 자연에 순응하고 작은 운명에만 통달한 자는 사물에 얽매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人이 有見(현)宋王者어늘 錫車十乘한대 以其十乘으로 驕稚莊子한대 莊子曰호되 河上에 有家貧하야 恃緯蕭而食者러니 其子ㅣ沒於淵하야 得千金之珠하야늘 其父謂其子하야 曰호되 取石來 鍛之하라 夫千金之珠는 必在九重之淵 而驪龍의 頷下하니 子 能得珠者는 必遭其睡也로다 使驪龍而寤런든 子는 尙奚微之有哉리오 今에 宋國之深이 非直九重之淵也오 宋王之猛이 非直驢龍也니 子 能得車者는 必遭其睡也로다 使宋王而寤런든 子爲제粉矣인저
어떤 사람이 송나라 왕을 뵈었더니 왕이 그에게 수레 열 대를 하사하였다. 그 10대의 수레로 장자에게 교만하고 유치하게 굴었는데, 장자가 말하기를 “황하 물가에 집이 가난하여 갈대와 쑥대를 믿고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못에 빠져 들어가서 천금의 구슬을 얻었거늘 그 아버지가 자식에게 일러 말하기를 ‘돌을 가지고 와서 부숴버려라. 무릇 천금의 구슬은 반드시 구중의 깊은 연못, 그것도 검은 용의 턱밑에 있을 것인데, 네가 그 구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그 용이 잠잘 때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검은 용이 깨어 있었던들 네가 오히려 네 몸의 일부인들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지금 송나라의 깊음(위험함)은 다만 구중의 연못 정도가 아니고 송나라 왕의 사나움은 다만 검은 용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수레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宋王이 잠든 때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송나라 왕이 깨어 있었던들 그대는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或이 聘於莊子한대 莊子ㅣ應其使하야 曰호되 子는 見夫犧牛乎아 衣以文繡하고 食以芻菽하다가 及其牽而入於太廟하야늘 雖欲爲孤犢인들 其可得乎아
어떤 사람(王)이 장자를 (재상으로) 초빙하였는데 장자가 그 使者에게 대응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太廟의 제사 때) 희생용 소를 보았는가? 무늬로 수놓은 옷을 입고 꼴과 콩으로 먹이다가 그 끌려가서 태묘에 들어감에 미쳐서는 비록 외로운 송아지가 되고자 하나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했다.
莊子 將死어늘 弟子 欲厚葬之러니 莊子曰호되 吾는 以天地로 爲棺槨하고 以日月로 爲連璧하고 星辰으로 爲珠璣하고 萬物로 爲齎送하리니 吾의 葬具는 豈不備邪아 何以加此리오 弟子曰호되 吾는 恐烏鳶之食夫子也하노이다 莊子曰호되 在上하야는 爲烏鳶의 食이오 在下하야는 爲螻蟻의 食이리니 奪彼與此 何其偏也오 以不平으로 平하면 其平也 不平하고 以不徵으로 徵하면 其徵也 不徵이니라 明者는 唯爲之使어든 神者는 徵之하나니 夫明之不勝神也 久矣어늘 而愚者는 恃其所見하야 入於人하야서 其功外也하나니 不亦悲乎아
장자가 장차 죽으려 하거늘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자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나는 하늘과 땅으로 널로 삼고 해와 달로써 한 쌍의 구슬로 삼으며 별들로써 치레구슬로 삼고 만물로써 祭物을 삼을 것이니 나를 장례치를 도구는 이만하면 어찌 갖춰지지 않았다 하리오. 무엇을 여기에다가 더 보탤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니, 제자들이 말하기를 “저희들은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먹을까봐 두렵습니다.”라고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風葬을 하면) 위에서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埋葬을 하면) 아래에서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될 것인데, 저쪽 것을 빼앗아 이쪽에다 주는 것은 어찌 그렇게 치우쳤는가? 공평하지 않는 것으로써 공평하게 하려면 그 공평은 공평이 아니요, 명백히 징험되지 않는 것으로 억지로 명백하다고 하면 그 명백함은 참다운 명백함이 되지 못한다. 눈은 다만 심부름꾼이 되고 정신이 징험하나니 무릇 밝게 보는 눈이 정신을 이기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는 눈으로 보는 것만을 믿고 人爲的인 것에 들어가서 그 공적을 밖으로 끄집어내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본 편의 뜻을 총체적으로 해설해보면]
1)전통문화연구회에서는
陸德明이 ‘以人名篇’이라고 풀이한 것처럼 주인공인 ‘列禦寇’의 이름을 편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列禦寇>편의 주요 주제는 <寓言>편의 마지막 장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의 그럴싸함을 버려야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싣고 있는 제1장에 집중되어 있다.
일찍이 宋나라의 蘇軾은 장자가 겉으로는 공자를 비판하고 있지만 내심 공자를 도와주려 했다는 陽擠陰助論을 처음으로 제기하여, <寓言>편의 마지막 장과 이 편, 곧 <列禦寇>편의 첫 장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들어 어리석은 자들이 장자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讓王>, <盜跖>, <說劍>, <漁父> 네 편을 끼워 넣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寓言>편의 마지막 장은 양자거와 노담의 대화이고 <列禦寇>편의 첫 장은 列禦寇와 백혼무인의 대화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말하고 있는 내용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식의 견해를 따르면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공자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盜跖>편이나 공자를 비굴하게 묘사하고 있는 <漁父>편은 장자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장자의 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후대의 어리석은 자들이 표나게 끼워 넣은 위작으로 간주된다.
소식의 이와 같은 견해는 뒤에 남송의 유가학자들이 대거 장자 주석서를 저술하면서 서지 연구를 근거로 내편은 장자 자신의 저술이지만 외편과 잡편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라는 논의를 확산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장자가 막 죽으려 할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제9장은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려고 하자 장자가 ‘풍장을 하면 위에서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매장을 하면 아래에서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될 것인데, 저쪽 것을 빼앗아 이쪽에다 주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2)고려원에서는
樹樹皆生新歲葉 나무에 새 싹 나고
花花爭發去年枝 옛 덩굴에 꽃은 피네.
故鄕千里喜消息 고향 천 리의 반가운 소식
今日明明的的知 오늘에야 분명히 알았었나니
■ 列禦寇에 대하여
--- 인위적인 知를 버리고 무위자연의 神知의 체득을 논함.
이상의 <양왕> <도척> <설검> <어부>의 제 편은 모두 위작이라 하는데 이 편은 장자의 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양왕> 이하 네 편을 버리고 제27편 <우언>의 끝에 있는「陽子居爭席」에 이 <열어구>를 합하여 한 개의 장으로 만들면 좋다는 소동파의 안에 여러 학자들은 찬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끝 부분에 있는「莊子將死」의 단락은 장자의 絶筆인가 혹은 그 뒤에 제자들이 추가한 것인가는 분명치 않다 한다. 곧 장자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장례식을 성대히 하려 하였다.
그때 장자가「나는 하늘과 땅으로 널을 삼고 해와 달로 한 쌍의 구슬로 삼으며, 별들로써 많은 치레구슬을 삼고 만물로 祭物을 삼는다. 나를 장사지낼 기구가 어느 것이 모자라는가? 여기에 더 무엇을 보탤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또 제자들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되는 것을 걱정할 때에 장자가「내 송장을 들에 버리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될 것이요, 땅 속에 묻으면 땅벌레나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니, 구태여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을 빼앗아 땅벌레나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너무 편벽된 일이 아니냐?」고 한 것은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장자의 면목이 躍如하다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