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보리밥
이영백
일용할 양식은 쌀밥만 아니다. 예전에는 살아남기 위하여 보리밥 지어 먹었다. 속을 채워야만 일하러 가고, 배 채워야 살아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교 음악교과서에 “꽁당보리밥”이라는 노래까지 있다. 돌림노래라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다시 되돌아와서 끝날 줄 모른다. 꽁보리밥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꽁당보리밥 노래는 계속 불렀다.
1973년 교사시절 정부시책에 따라 혼식검사 하였다. 쉰 명의 이름을 출석번호 순으로 적어서 혼식이 완전히 되었으면 그 날에다 ○표, 반 정도는 △표를 쳤다. 아예 휜 쌀밥은 ×표로 표기하였다. 이 결과표를 장학지도 때에 제출하였다. 혼식검사는 국가를 생각하여 철두철미하게 지켰다.
라떼는 보리밥도 잘 못 먹었다. 내가 초교 1학년 때 끓인 우유, 2~4학년 때까지 우유가루를 배급받았다. 5학년 때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옥수수가루 받았다. 6학년 때 옥수수 가래떡을 만들어 주어 교실에서 먹고 가게 하였다. 왜냐하면 우유나 옥수수가루를 받아 가면 장에 내다팔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우리들은 보리밥이라도 그게 대수냐이다. 일찍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점심은 보리밥이다. 보리밥 짓는 엄마는 혼자 늘 고생하였다. 보리쌀을 깨끗한 우물물 받아 손으로 팍팍 눌러 씻었다. 쌀뜨물이 뿌옇게 나왔다. 그것도 세 번까지 씻어내어야 겨우 맑아진다. 먼저 한 번 삶아 보관하였다가 밥할 즈음에 다시 솥 밑바닥에 깔아 놓고 쌀 붓고, 좁쌀 조금 얹어 밥한다. 무쇠 참 솥에 나무로 불 때어 밥 짓는다.
점심으로 보리밥이면 식구들이 모여 앉아 대나무 소쿠리에 숟가락으로 퍼 먹는다. 아예 밥 덜지 않고 위에다 선 그어놓고 밥을 먹는다. 어른들은 금 밑으로 파고들어 내 쪽 밥을 다 먹어버려서 그만 푹 꺼지고 만다.
아무리 잘 지어도 보리밥은 보리밥이다. 처음 삶았을 때 잘 삶아서 푹 퍼지고 느실느실하게 하였다면 그 보리밥은 꽁보리밥이라도 뜨끈뜨끈할 때는 부드러워 참 맛나하는 보리밥이 된다. 보리밥이라도 맛나게 먹었다.
보리밥은 보리밥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꽁보리밥은 우리 건강에 너무 좋다. 방귀는 썩은 음식물을 몰아내 주는 청소역할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좋은 일만 할뿐이다. 보리밥이 너무 좋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