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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성경의 힘 - 제152강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는 우리의 소망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또 참 소망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베드로가 직접 쓴 게 아니고, 베드로는 자기 뜻을 이렇게 불러주고, 실루아노로 말미암아서 썼다 그래요.
실루아노가 처음에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동행을 했는데, 이따가 보니까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또 함께 하는데,
마가도 그렇죠? 마가도 이제 바울에게서 조금 이렇게 실수는 했지만, 그 뒤에 또 베드로하고 같이 가는데, 이 두 분은 아마도 바울하고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양대 산맥이 된 것 같아요.
베드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있고, 바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있는데, 일반적인 표준으로 실력은 뭐 바울이 월등하죠.
그래서 베드로는 바울하고 비교 당해서가 아니라, 어쨌든 스스로 바울이 대학자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까, 베드로 자신은 뭐 기초 학문이 많이 딸리죠.
그래서 그런지 바울 때문에 어쩌면 베드로라든지, 요한 같은 분들이 굉장히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 굉장히 노력을 해가지고 지금 이 베드로전서의 내용을 보면, 물론 뭐 실루아노에 의해서 문장이 다듬어졌을 것이다 하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굉장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내용을 볼 때, 요한은 아마 직접 썼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우리 봤지 않습니까? 굉장한 내용이죠.
그래서 이 분들이 처음 출발할 때는 바울에 비해서 많이 실력이 떨어졌지만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이제 우리가 짐작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교역자가 된다는 것은 그냥 믿고 마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는 날까지 공부해야 돼요. 우리 젊은 신학생들 우리 신학도들, 공부하다 죽는 것도 순교입니다. 순교..
열심히 공부해야 돼. 특히 우리가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배우고 항상 정리하고 자기를 돌아보고 이렇게, 끝없이 갈고 닦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화되어서 이렇게 거룩한 사도들 못지않게 이렇게 일을 해야 됩니다. 공부를 하고..
베드로를 보면 머리가 숙여지는 거죠.
여러분 우리 조용기 목사님 같은 분은 원래 그 학벌이 그렇게 높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영어로 설교를 하는 거예요. 영어로 설교. 영어로 할 뿐 아니라 일본어로 설교를 해요 이 양반이..
저는 그 분의 어떤 신학에 대해서는 별로 탐탁지 않은 게 많아요. 솔직히.. 마음에 안드는 게 많지만, 그 분의 그 노력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어요.
뭐 교회가 그만큼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됐으면 노력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럴수록 노력의 노력을 더해가지고, 그 나이가 많아서 일본어를 공부해가지고, 일본어로 설교를 할 만큼 그렇게 노력을 했다는 거예요. 노력을..
여러분 그 유명한 에디슨이란 사람이 ‘천재가 뭐냐? 1%의 영감에다가 99%의 노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이 성경을 뭐 쉽게 하니까, 공부를 건성으로 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여러분, 쉽게 하는 게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해야 그 이제 쉽게 하는 겁니다. 다른 거는 몰라도 성경과 역사와 이런 부분은 피눈물 나게 닦아서 이렇게 쉽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그, 이건 자랑이 아니고, 여러분 젊은 청년들 공부하라는 말인데, 우리 집에 지금 제가 쓰던 성경이 있어요. 그 성경은 가죽 껍데기를 세 번 갈았어요. 세 번 갈고 알맹이가 너무 닳아서 더 쓰면 안 되겠다 싶어 보관해 놓고, 지금 새로 성경을 두 번째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뭐 거의 빈 곳이 없을 만큼 메모 하고, 각주를 달고 풋노트 하고, 열심히 지금도 공부합니다. 지금도. 뭐 앞으로도 하겠죠. 앞으로도..
그렇게 공부를 안 하고 뭐 그냥 삼각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뿌리 두 개 빼고 불의 사자가 되겠다, 현기증 나는 얘기예요. 현기증 나는 얘기. 베드로를 보면 얼마나 공부를 했겠는가.
그래서 이 베드로는 그 박해, 기독교의 대 박해가 점점 이제 다가온다 하는 것을 느끼면서 소망이 든든해야 그 박해를 이길 수 있어요.
이 소망이 흔들리면 그런 박해를 이겨내지 못하죠.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바울도 그 정도 믿음이 있으니까, 그 현재의 고난을 잘 참는 거죠. 후에 있는 영광의 소망이 없다면 현재의 고난을 잘 못 참습니다.
그래서 소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야. 소망이라는 것은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 믿음을 갖고 일하는 거죠. 소망의 자세가..
그래서 참 믿음과 참 소망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참 믿음은 반드시 참 소망을 가지고 오게 되고, 그리고 참 믿음과 참 소망 있는 사람은 현재 참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이야.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거는 항상 있어야 돼. 항상..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는 참 소망은 그냥 막연한 희망사항 뭐 내지는 뭐 잘 되고 잘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소망, 참 소망..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의 막연한 희망사항하고 다른 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소망이라.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소망. 그걸 잡아야 돼요. 그 소망의 세계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현재를 잘 참고 이겨야 돼요.
둘째,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
여러분 어떤 사람은 소망이 그냥 다 그저 중간에 소망을, 잘못된 걸 소망했다가 이것이 그저 좌절되니까 절망해 버리는 거죠.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고 자살해 버리고. 그건 소망을 잘못 설정해서 그래요.
우리의 소망을 세상에다 두게 되면 세상이 깨질 때 엉망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정치적인 세계에 어설프게 소망을 뒀다가 정권이 바뀌어버리면 추풍낙엽으로 다 떨어져나가지 않습니까. 지금..
그래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에요 권불십년. 어떤 권세가 십년 가는 게 없다. 다 떨어지는 거야. 소망을 잘못된 곳에다가 둔거야. 그리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영원한 소망, 이런 걸 잡아야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소망, 죽어도, 죽어서,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소망, 이런 걸 붙잡아야 돼. 그리고 그런 소망이 있으면, 영혼의 닻이 되어서 요동하지 않는다는 거야. 영혼의 닻 같이 든든한 소망..
그 다음에 환란과 핍박을 이기고 견디게 하는 소망.
여러분 우리가 그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누가 순교하겠습니까?
그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는 걸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그런 소망을 바라보니까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소망이라는 거 굉장히 중요한 건데, 오늘 기독교가 왜 이렇게 소망이 없느냐 하면요, 계시록을 잘못 가르치니까. 계시록을 모르거나, 안 가르치거나, 잘못 가르치니까 소망이 흐리멍텅해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 소망이 흐리멍텅해지니까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거거든요. 그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믿음이나 내세에 대한 믿음이 불분명하니까, 서구교회가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계시록 가르치지 않으면 다 무너져버립니다. 계시록도 안 가르치면, 그러면 예수 이용해 가지고 이 땅에서 잘 되고, 그것 밖에 없을텐데 안되면 어떡할 꺼예요? 이 땅에서 잘 안되면, 어떡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확인해가지고 거기서 근거한, 그래서 정말 환난과 핍박을 능히 이기고 견디게 하는 그런 소망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소망.
주를 향하여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이 해야 돼요. 왜냐하면 그 거룩한 분의 세계에 들어 갈려면, 그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아야 됩니다. 실제적으로. 그렇게 세속에 탐닉하지 말고.
그리고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수 있는 소망..
이런 이야기를 죽 쓰는데,
[베드로전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자, 이 베드로라는 발신자는 베드로이고, 그 다음에 수신자가 어디냐 하면요, 폰투스, 본도라고 돼 있는데, 본도가 아니고 폰투스, 비두니아, 갈라디아, 가파도기아, 아시아와 비투니아, 이렇게 터키 땅 일대 전체를 말합니다.
터키 땅 전체를 지금 커버하는 내용인데, 폰투스, 갈라디아, 가파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물론 뭐 거기에 무시아, 이오니아, 루카오니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이걸 다 해야 이제 되겠습니다만, 어떻든 전 터키 영역을 대체로 다 말한 그런 내용이죠.
그런데 어째서 베드로가 이 지역사람들에게 편지를 했느냐 하면, 지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는 장소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 거기 끄트머리 5장 끝에 펴 보세요. 베드로가 5장에 보면요,
5장 13절에,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기 13절에 ‘함께 택하심을 입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하는데, 이것을 설교하는 분들이 또 실수하는 게, 이 바벨론은 영적 바벨론 로마다, 그게 바로 가톨릭이 하는 소리야. 그게..
전혀 아니고 진짜 바벨론이에요. 진짜 바벨론.
그러니까 바벨론 하고, 진짜 바벨론 지금 이라크 땅 그 근방인데, 바벨론하고 터키가 멀지가 않아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우리가 볼 베드로후서의 내용하고, 또 유다서하고, 베드로후서하고 유다서가 마치 한 방에서 기록한 것처럼 내용이, 거의 신학과 관심과 주제가 거의 같아지는데, 그것은 그 유다서를 쓴 유다가 다대오라는 유다 같은 데요 다대오..
그 다대오라는 유다의 무덤이 어디 있냐 하면 순교하시고 무덤이 지금 이란 저 북부 이란하고 터키의 접경 지역에 다대오라는 유다의 순교기념교회하고 무덤이 있어요.
그러면 거기하고 바벨론하고 멀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베드로, 바벨론에 가서 사역하던 베드로하고 다대오라는 유다가 자주 만나서 이란에 가서 공동 대처하면서 그런 메시지를 썼다 이렇게 보면, 이런 내용을 볼 때 로마에서 쓴 게 아니고, 진짜 바벨론 문자대로.. 여기 지금 베드로가 지금 묵시 문학을 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엉터리를 많이 하는데, 그리고 혹시 여러분, 쿼바디스라는 영화 그거 그대로 보면 안 됩니다. 그거는 하나의 소설, 헨리크 셍키비치가 18세기 사람인데 가톨릭 신자예요. 이 사람이요. 셍키비치의 소설에 나오는 얘기지, 역사가 아닙니다.
쿼바디스 하는 그 얘기가 역사가 아니고, 헨리크 셍키비치의 소설에 나온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건데, 그걸 또 사실인 것처럼 설교하는 분들이 많아.
아직까지 베드로의 그 행적에 대해서, 그 베드로행전이라는 것은 위경입니다, 위경. 거짓말 성경으로 내 몰렸는데, 베드로행전에 보면 뭐 베드로가 로마에 가가지고, 마술사 시몬하고 내기했다는 이런 얘기도 나오거든요.
만약에 베드로가 일찍이 거기 로마에 가서 있었다면 바울이 거기 안 갑니다. 바울의 원칙은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아니하는 원칙인데, 또 만약에 베드로가 거기 가 있었다면, 로마서를 쓸 때 게바에게 문안하라는 말이 반드시 나오죠.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베드로가 실제로 로마에 발을 댔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아직 못 찾았어요. 가톨릭이 이제 베드로가 뭐 초대 교황이다, 여러분, 베드로가 어떻게 교황을 하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요. 지금..
그러니까 가톨릭이 떠드는 대로 우리가 믿어주면 안 돼요. 아닌 건 딱 아닌 걸로 해야죠. 저는 여기 바벨론을 진짜 바벨론으로 봅니다.
그것은 그 유다서하고 베드로후서를 보면 내용이 거의 같아요.
그래서 괜히 해석을 우선으로 하지 말고, 문자 우선입니다. 문자 우선. 성경 해석에서 항상 문자가 우선입니다. 해석이 우선이 아니고..
3절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거기 줄을 그으세요. ‘산 소망’ 살아있는 소망이야. 죽은 소망이 아니고.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간직한 거요. 아무도 뭐 도적이 빼앗아 가거나 녹슬거나 썩거나 더럽거나 쇠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거기 줄을 그으세요,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겁니다.
13절,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모든 행실에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돼요.
어제 우리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글을 올렸는데, 어떤 권사님이 두 번인가 참여했다는데, 여기를..
자기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자기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여기 참여해가지고 엄청난 충격과 함께 큰 혼란에 빠져가지고, 들어보니까 노 목사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나는 한 번도 못 들어본 얘기만 하느냐, 그래가지고 갈등하고 해가지고 두 번째 왔다가 그렇게 달게 들려서 그 다음부터는 가가지고 싹~ 변하기, 자기 삶이 변화되기 시작하는데 먹는 것, 입는 것, 밥그릇, 국그릇 할 것 없이 전 삶에 완전히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지금. 제가 지난 주간에 부산에 부곡중앙교회 집회 때 거기도 자기가 참여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글을 올린거야.
세상하고 구별되게 살아야 돼요. 거룩하게, 전혀. 누가 봐도 다르게 살아야 돼요. 아무나 봐도 저 분은 우리하고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도록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먹는 것도 달라야 되고, 입는 것도 달라야 되고, 노래하는 것, 말하는 것, 장사하는 것 다 달라야 돼요. 공부하는 것도 다르고, 농사짓는 것도 다르고, 정치도 다르고, 여하튼 뭐 좀 달라야 돼요.
너무 지금 똑같아가지고, 귀신이 어지간하면 귀신 같이 아는데, 누가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귀신도. 너무 똑같이 믿으니까, 똑같이 사니까.
17절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거예요.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뭘 순종함으로? 우리가 깨끗하게 된 것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2장]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어떻게 넘어진다고요? 예,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는 거예요. 언제든지..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전이 선교죠,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욕할 때, 그 욕하는 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요 우리가 선행하는 겁니다. 선행. 우리의 선한 행실이 아니고는 그 사람들의 입을 막을 길이 없어요.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이 때 왕은 네로황제예요. 네로황제..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가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우리는 선한 일 하고 얻어맞기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베드로가 늘 그랬다고 그래요.
‘우리는 좋은 일 하고 욕먹기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상은 천국에서 받고 땅에서는 좋은 일하고 욕먹기로 선택되었다, 그러면서 공회 앞에서 실컷 얻어 맞고 기쁨이 충만해서 떠났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베드로 같은 분이 땅에서 억울하다고 막 그 화풀이, 분풀이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좋은 일하고 욕먹기로 선택된 사람들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때리면 더 즐거워하니까.
여러분, 이런 걸 우리가 다 잊어 버렸어요, 초대교회의 그 어른들이 걸어갔던 그런 걸 우리가 다 놓치고 있어요, 지금요. 안 가르치니까 맨날 잘 되고, 복 받는 것만 이야기하지, 좋은 일 하고 욕먹기 위해서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이런 정신이 없잖아요. 우리가 지금.
그래서 너무 오늘 교회 교육이 너무 너무 엷어요, 너무. 너무 수준이 낮다는 거예요.
21절 그렇죠.
이런 걸 위해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건데,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항상 ‘우리는 좋은 일 하고 욕먹기 위해서 선택됐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 아니겠어요?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그리고 이제 여기 역시 3장부터는 실천편인데,
[베드로전서 3장]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여러분 남편 전도하려는 사람은, 아내가 말로 가지고는 절대 전도 안 됩니다.
말로 자꾸 하다보면 얻어맞게 돼요. 아내의 말로가 아니고 아내의 행실로, 착한 행실로 남편이 구원을 받는다는 거요.
제가 밀양 무안에 갔을 때, 아 거기 가니까 뭐 여자들만 나오고, 남자들은 잘 안나오고 그래요. 보니까 대부분이 여자예요.
그래서 ‘여기도 뭐 별 수 없구나’ 해서 이제 이거를 베드로 3장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부인들에게 일절 남편과 다투지 말고, 남편한테 말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행실로 남편 앞에서 아내의 착한 행실로 남편이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하면서 여자들은 교회 있지도 못하게 하면서 예배 끝나면 부리나케 쫓아 보내고, 금요철야를 없애 버렸어요. 금요철야. 금요철야는 대개 남자는 안 나오고 여자만 나오거든요. 그 철야를 없애버리고, 예배 마치면 여자는 빨리 집에 가라고 그러고..
교회 일은 남자만 데리고 일하고 하니까, 처음엔 여자가, 여자들이 입이 이만큼 나와 가지고 저를 아주 좋지 않게 봤는데, 얼마 안 가서 그 남자들이 교회 다 나오거든요.
아내들의 착한 행실로 남편들이 교회에 다 나온 거라. 심지어 양조장 주인, 무안 막걸리 주인도 나왔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뭐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절대 아내들이 남편을 말로 이길려고 해서는 이기지도 못하고 결국은 주먹으로 이제 끝이 나는 거야. 그래 뭐 어쩌면 베드로 부인도 꽤나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죠. 아니 베드로가 처가살이 한 모양인데, 그것도 자기 동생까지 데리고 와서 처가살이 해봐.
그래서 여성들이 말로 가지고 남편에게 자꾸 하는 것은 그 남편은 결국은 이제 위축돼서 쪽도 쓰지 못하는 그런 남자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너희의 그 어떤 것을 보느냐 하면, 남편이 뭘 보고 있느냐,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그걸 보고 남편이 교회 나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하는 걸 가만히 보면서 남편이 거기에 끌려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 단장은,
3장 3절,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이걸 자꾸 질문하는데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냥..
예수님께서 금요일 저녁 때에 금요일 오후 3시에 운명하셔서 장사 지내고, 육체는 무덤에 있고 그 영은 옥에, 어떤 그 음부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데, 그대로 믿으면 되는 거예요. 그 전파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다시 구원받는 여지가 있는지는 그건 모르겠는데, 전파하긴 전파한 겁니다.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여러분 우리가 세례 받는다고 해서 육체의 더러운 것이 싹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는 거야.
우리 양심이 일깨어 깨어나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이것이 바로 세례의 의미라는 거죠.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베드로전서 4장]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한 것만 해도 너무 많이 했지 않느냐,
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의 영이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온다. 그 말이죠?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언제든지 순교할 각오하고 살아라’ 그런 말이예요.
[베드로전서 5장]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11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바벨론이라는 것은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게 로마가 아니고 그냥 바벨론입니다. 바벨론. 여러분 아마 그 스터디바이블 같은 데 밑에 보면 바벨론 해놓고 그걸 갖다가 영적 바벨론 로마라, 그런 그렇게 많이 써놨죠?
그런 난하에 해석된 거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그 해석도 철도 없는 사람이 많이 썼어요.
성경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써 놓은 것도 있고, 맞는 말도 있지만, 틀린 말도 상당히 많이 있어 보니까..
그런 것은 본문만 잘 봐야지, 밑에 있는 해석 그거 잘못 보면 큰일 납니다.
자 베드로전서는 이런 편지인데 네로황제 박해가 다가올 즈음에 이런 편지를 썼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 베드로후서죠.
[정리]
◎ 베드로가 말하는 참 소망이란..
1.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소망
2.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
3. 환란과 핍박을 이기고 견디게 하는 소망
4.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소망
5.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수 있는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