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칼럼을 씁니다.
개인적인 글일지는 몰라도 공감하시는 분이 어느 정도 계시리라 감히 생각하고,
칼럼 게시판에 이 글을 씁니다.
칼럼이라 반말체를 쓰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반 속는' 기분으로
농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초였다.
당시 고3이던 나는 농구광이었다. 고3이라는 특수신분(??)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하루에 7시간, 학교다니던 평일에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청소 시간 등 황금같은 자투리 시간을 아끼지 않고 농구에 투자해댔던 농구광이었다. 그 때를 기억해보면, 우리 농구는 쾌거를 이루었던 해였기도 하였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서장훈의 눈물로 널리 기억되는, 현주엽의 스핀무브로 각인되는..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이기고 우승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 때 티비를 지켜보던 내 친구가 그랬다. "우리 문경은 보러 부천에 가지 않을래?" 그 말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반응이, 결국 수능 끝나고의 나를 동생과 함께 부천체육관으로 이끌었고, 이때부터 나의 조금은 광적인 농구 직관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SK 빅스는 하위권이었으나 나는 문경은의 폭발적인 3점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그 하나의 기쁨만으로도 농구장으로 향하는 비용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농구 관람에 열을 올리던 2003년 초에 친구랑 네이트온을 하게 되었다. "야 여자농구는 안보냐?" 당연히 내 대답은 "아니 재미없는 걸 뭐하러 보러 가냐?"였다. 친구가 대답하길 "아냐 의외로 재밌어. 특히 삼성생명의 이모 선수가 외모도 좋고 농구도 잘하더라. 가봐라."
이 말을 나는 2004년 초까지 무시했다. 2004년 초, 쓰라린 대학 1학년을 보내고 춘천에서 겨울을 보내던 나는 문득 그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다. 또한 어느 글에서 농구를 잘 보려면 이것저것 여러 종류의 농구를 많이 보아야 한다고 나에게 영향을 주었기에 나는 '반 속는 기분으로' 당시 중립경기가 한창이던, 1963년에 세워졌다던 낡은 장충체육관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을 뚫고.
나의 여자농구에 대한 앞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장충체육관에서 열심히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 투자했던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당시 여자농구에도 용병 선수가 있었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옛적 1964년인가 어느 남미 현지인이 우리 나라 상업은행 위주의 대표단 여자대표단을 보고 느꼈던 것 - 아기자기하지만 세밀하고 아름답게 농구를 한다 - 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도 저렇게 농구를 잘 할 수 이있구나..라는 놀라움도 함께했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의 내 머릿 속에는 다시 한 번 장충에 와야지 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남자농구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 내 편견에 당당히 망치를 때렸던 선수들의 선전이 나를 여자농구광으로 하루만에 탈바꿈 시킨 것이다.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나름 오래 된 5년 전의 일이지만...
"너는 무엇하러 여자농구를 보러 가느냐?"라고 물으신다면.
2006년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춘천의 학교로 복학한 나의 관심사는 2007년 겨울리그가 언제 열리느냐 였고, 결국 2007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나는 춘천호반체육관으로 농구를 보러 갔다. 그 이후 나는 춘천을 2009년 11월에 떠날 때까지 춘천 홈경기에는 80프로 출석률을 달성하며 춘천호반체육관과 나름 친해지게 되었다. 그 밖에도 구리시체육관, 부천체육관도 기회가 날 때면...꼭 보고 싶은 경기가 거기서 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서 보는 편이다.
대학교 때 하도 여자농구 이야기를 했더니 애들이 묻는다. "여자농구를 무엇하러 보러 갑니까?" 단순한 물음이 아닌, 그렇게 재미없는, 비인기종목을 뭐하러 일부러 챙겨서 그것도 직접 보러 가느냐란 핀잔섞인 물음이었다. 그것도 춘천 우리은행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춘천의 강원대학교 학생이 한 핀잔이었다.
이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다양하고도 다양하다.
몇 주 전에 수능이 끝나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버린 동생 녀석과 같이 삼산월드 체육관에 갔다. 내 동생이 전자랜드 광팬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간만에 보는 남자농구라 재밌게 볼려고, 내심 전자랜드의 11연패 탈출을 바라면서 신나는 마음으로 갔다.
요즘 남자농구도 변화를 꾀해서 용병을 1명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전자랜드의 벨이라는 용병은 그것에 대해 항의라도 하듯 '무대포' 개인플레이를 해댔다. 물론 24득점이란 스탯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는 형편없이 지고 전자랜드는 12연패에 빠졌다. 다른 선수들의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성인 - 서장훈 등이 빈 자리에서 외쳐댔는데....화려한 개인기도 한 두 번이면 충분한데 계속 어떻게 해 볼려고 안 되는데도 써서 공만 빼앗기는 것이었다. 100프로 중 그가 공격한 빈도는 거의 70프로였다. 멀리서 서장훈의 한숨이 들리는 듯 했다.
관중들이 개인플레이보다 더 선호하는 것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예전의 앨버트 화이트 처럼 초특급 용병이 와서 단독 플레이로 1~2승은 관중들에게 선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보는 관중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쟤 혼자 하네.."라는 비판을 하면서 경기장을 나선다.
여자농구에서는? 물론 팀의 간판선수들은 있다. 하지만 단독 플레이로 여자농구에서 승수를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간판선수는 팀 플레이를 하기에 더욱 여자농구계에서 사랑받는다. 어시스트가 부쩍 는 우리은행의 수호신도 그렇고, 항상 하이포스트에서 선수들을 잡아줄 줄 아는 금호생명의 미녀 리바운더도 그렇고, 국민은행의 마당쇠로 변해버린 바니공주도 그렇고, 허슬플레이가 는 신세계의 김군도 그렇고, 신한은행의 농구여왕도 여기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농구는 다들 아시듯이 5명이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물론 득점원이 있고 블루워커가 있고, 리바운더가 있다. 하지만 다섯 명이 불협화음을 이룬다면 이기기 힘들며, 이긴다고 해도 별로 개운치가 못하다. 여자농구는 남자농구에 비해 5명의 화음 융합을 더욱 중요시하며, 실행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흔히들 여자농구에는 남자농구같이 화려한 플레이가 없다느니, 득점이 저조하다느니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여자농구를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남자농구보다 몸싸움과 허슬플레이가 더 많은 농구를 하는 것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승리를 위한 '정성'이 남자농구보다 '갸륵'하다는 것이다. 물론 몸싸움 자체에서의 강도나, 테크닉은 남자 선수들이 월등히 앞선다. 하지만, 승리를 위한 정성 발휘는 여자농구가 앞선다. 어느 기사에서인가 이런 말을 들었다. '여자농구에서는 아마추어 정신이 만연하고 있다. 이것은 승부에 대한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농구에는 남자농구에는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한 때 정치계에서 화두로 떠올랐던 '소통'의 문제이다. 그렇다. 관중이 없어서 특별한 에스코트나 경호원이 필요없겠지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바꾸어 생각한다면, 그만큼 팬들이 선수들에 대해 좀 더 가깝게, 친구같이, 언니같이, 누나같이, 동생같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기가 끝나고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다가가서 무언가 짧게라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귀찮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코트에서 뛰는 선수와 응원하는 관중들이 무언가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경기장 밖의 선수출입구라고 생각한다. 여자농구팬들은 조금만 용기가 있다면 한 경기 한 경기, 한 경기장, 한 경기장에서 선수들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즐겁게 돌아갈 수 있다. 얼마든지.
'검은양복 아저씨'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 말 한 마디 못 걸어보고, 선물 주기도 힘든 남자농구와는 다르다.(물론 가장 좋은 것은 여자농구장에도 관중이 많이 몰려 선수들이 빠져 나가기 힘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소통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연맹 측은 팬들과 선수 간의 거리 좁히기를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몇 가지 문제점은 드러난다 해도 여자농구 팬들 중 WKBL TV를 싫어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뭐하러 여자농구를 보러 가느냐."라 물으신다면 나는 앞에서의 장황한 말 대신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일단 한 번 와봐라..예전의 나처럼..그리고 보고 나서 내가 쓴 글을 확인해봐라. 내가 거짓말하는지."
우리 여자농구 팬들이 왜 자신이 여자농구를 즐겁게 보는 지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지 여자농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조리있게 없앨 수 있다. 그리고 더 잘 된다면 그들을 '일단' 농구장에 발을 들여놓게도 할 수 있다. 여자농구에 대한 편견 가득했던 나로 하여금 일단 한 경기 보게 만들어 여자농구팬으로 만들어버렸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어설픈 반전이지만 이 녀석 요즘은 여자농구에 관심이 없다. 언제 한 번 같이 보러 같으면 좋겠다.
첫댓글 공감되네요. 잘 짚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와.. 정말 잘읽었습니다. 공감도 많이 되고요. 정말 좋은글인것 같아요.
정말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