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사>제1회 <원효성사>를 출판하면서
성사 원효에대하여 몰랐던 것
지금까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
역사를 단정하지 말아야 할 것
대승의 삶을 찬탄하고 행할 것
토각님께서 ‘한국불교에서 원효연구에 독보적인 이상을 구축하고 있는 정목스님!’
몇 년 전에 이렇게 말씀하실 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고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수두룩한데 .....
올해부터는 독보적인 존재라 해도 모른 척 하고 가만히 있기로 했습니다.
내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원효를 연구하고 애정을 가지고 탐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입니다.
방송국에서 출판기념 책 소개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목사. 신부 등 종교인은 프리미엄을 더 가지고 있어 출판기념회. 그림전시회. 서예전. 시화전 등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종교를 초월해 인정할 수 있는 전시회면 가능하지만 자기 생활을 쓰고 에세이라 하여 신도들에게 책을 팔고 전시회라는 미명아래 전시품을 구입하게 하는 종교지도자들 아주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아야 하고
종교에, 인류에 보탬이 되는 전시회, 출판기념회를 해야 합니다.
다음 출판기념회에 모시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서울대학 남동신 교수님은 저하고 만난 일은 없지만 20년 전에 <원효>를 집필하셨고 저와 교감이 되었습니다.
또 김용옥 교수님의 이름을 빌리고 싶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인문학계에 100~200년 안에는 이런 분이 안 나온다고 봅니다.
원효를 연구 할 수 있는 방향도 얘기하고 김용옥씨도 원효를 자세히 보면 놀랄 것입니다.
원효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1,400년 전의 사람으로 자료가 많은 편입니다.
문장가로 중국까지 이름을 떨친 최치원도 의상대사도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원효의 이름이 서동(誓맹세할 서 幢 ①기 당 ②새 깃털 드리울 동)입니다.
「유사」에서 幢 자의 뜻을 ‘毛[털]’라고 친절하게 풀어놓은 것을 생각해보자. 幢은 ‘깃발’이라는 뜻이 아니라, ‘털’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음도 ‘깃발을 뜻하는 당’이 아니라, ‘털을 뜻하는 동’으로 읽어야 한다. 성사의 유년시절 이름은 ‘誓幢[세 동]’ 또는 ‘新幢[새 동]’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말로 부르면 “새 털”이다. 誓는 본래 ‘서’이지만, ‘세’라고도 읽는데, 이것은 신라 때부터 관행인 것 같다[예: 맹세(盟誓)].
출가해서 받은 이름이 아니고 부모님이 지어준 어릴 때 이름이며 서당이 아니라 서동이라 해야 합니다.
비가 오면 새가 가만히 있지 않고 늘 깃털을 입으로 다듬는 것은 적이 나타나거나 먹이가 있을 때 언제라도 즉시 다음 행동을 할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고선사서당화상탑비 (高仙寺誓幢和尙塔碑) - 백과사전 -
원효의 비석. 신라 애장왕(재위 800∼808) 때에 원효(元曉)의 후손인 설중업(薛仲業)이 실권자인 각간(角干) 김언승(金彦昇: 헌덕왕)의 후원으로 원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비를 말한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경북 경주시 보덕동(普德洞) 고선사(高仙寺)의 옛터에서 3편으로 조각난 채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그리고 비신의 상단부는 1968년 옛날 동천사(東泉寺) 터로 전해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부근 농가에서 발견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은 전하지 않고, 비에 글을 새긴 사람만 음리화(音里火: 경북 상주시 청리면)의 삼천당주(三千幢主)인 급찬(級飡) 고금(高金)으로 되어 있다. 전체 33행에 각 행은 61자로 추정되며, 문장은 전형적인 사륙변려체이다. 비문 내용은 원효의 탄생과 학문 태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성격과 대사의 신이한 행적, 대사의 명성이 일본에까지 알려졌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비는 원효의 전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 원효 연구에 귀중하다.
속가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에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원효 열반 후 120여 년이 지난 후 손자가 중심이 되어 원효의 위업과 공덕이 뛰어나 비를 세웠는데
원효의 이름이 없고 서당화상비로 되어 있는 것은 승가에서 준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또 원효가 분황사에 오래 살았다하여 분황 원효라 하며 분황사에서 <화엄경소>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되어 있으나 내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분황사에 살았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다.
분황사에 살았다는 것이 어디에서 잘 못되었는지는 몰라도 철저한 고증 없이 옛날 ‘화쟁국사비’가 있었으니 추정으로 원효가 머물렀을 것이라 하여 계속 그대로 답습되어 왔다고 보며 분황사에서 살았든 적이 없어야 원효의 전기가 맞다.
왜 그런가 하면 원효는 34살에 도를 깨달아 ‘출가는 발심의 방편’이라 하여 승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분황사에서 많은 저술을 집필했다고 하고 나는 분황사에 살지 않았다고 한다.
둘 다 역사적 자료도 없고 모두 추정이다.
그런데 논쟁이 되고 싸움이 되어야 하나 양쪽 다 근거가 없어 논쟁이 될 가능성은 없으나
분황 원효라고 쭉 내려온 역사와 그렇게 믿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 유리하지만 사후 500년이 지난 후 고려 숙종 대에 ‘화쟁국사 시호가 내려지고 명종 때 화쟁국사비를 분황사에 건립했다.
‘화쟁국사비’에도 원효라는 이름이 없다.
원효를 누구보다 사모하고 존경한 의천(1055~1101)은 왜 원효성사라 하지 않았을까?
원효는 승가에서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효의 <화엄경소>는 어렵고 대단하여 만년에 썼을 것이라 하는데
나는 34살에 도를 깨쳐 환희심에서 <화엄경소>를 썼다고 본다. 제40 회향 품에서 붓을 꺾었다.
원효의 생애에 대한 의문점을 다 풀어 유년기 16년, 출가생활 18년, 환속한 원효성사 36년으로 구분하여 전기를 쓰는 형식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중국 일본 전 세계 불교를 하는 사람 모두가 반야사상을 중히 하며
중국에서만 해도 <금강경> 해설서가 100가지가 넘고 우리나라에도 공사상에 대한 많은 번역서가 있는데 오직 원효의 <대혜도경종요>만 해설서 번역이 되지 않는 것은 중국 것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보고 쓰고 또 보고 쓰면 되나 원효 것은 독자적이라 감히 손을 못 대고 있다. 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다.
같은 책에 별기, 소를 붙여 많이 쓴 책이 <기신론>입니다.
<기신론별기>는 해석 분까지 간단명료하게 34살 오도하기 전에 먼저 쓰고 오도 후 <기신론>이 달리 보여 <기신론소>를 구체적으로 다시 썼다고 봅니다.
내가 스스로 원효가 되어 <기신론>을 바르게 알면 바로 보입니다.
<원효의 보살계>(보살계본지범요기)는 원효성사께서 자신감을 가지고 말년에 썼으며
한국 불교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원효의 보살계>는 전문이 온전히 남아 있어 글의 뜻에 따라 분과를 하고 해설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한 곳에만 내가(정목) 보충을 했습니다.
공이라는 의미 두 가지
① 변계소집상 (자기 생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
헛것을 보고 실제로 보는 이것은 공에 대해 잘 알게 한다.
② 연기란 실체가 없다는 것을 공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원효성사>와 <원효의 보살계>를 보고 태클 거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해골 물을 마신 것과 해골을 보고 이상한 꿈을 꾼 것은 엄연히 다르며
해골 물을 마신 것은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것으로 중국에서 매도하는 것입니다.
45살에 깨달았다면 보통사람이다.
중국에는 45살 아래에 깨달은 사람이 셀 수도 없이 쫙 깔려있는데 한국에서 제일 뛰어난 사람이 45살에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려고 <송고승전>에 실어 놓았고 우리는 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죽기 전에 원효의 글을 많이 해설하려면 빨리 빨리 <법화경종요>도 내년 후반기까지 완성해야 합니다.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원효의 보살계>보다 <법화경종요>는 더 쉽게 해설하려고 합니다.
<법화경> 해설서가 중국 일본에 수두룩하나 원효의 <법화경종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행위에 대해서도 무엇을 하지마라 무엇을 하지마라 하는데
원효는 깊은 계란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 어떤 생각으로 행하는가!’이다.
계를 지키고 수행하는 목적이 만약 청정하기 위해 계를 지킨다면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이다. 하고
유와 무에 집착하는 사람도 사자 몸 안의 벌레 중에서도 상품의 벌레라 한다.
<원효성사>와 <원효의보살계>를 꼭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출판을 축하드리며 새벽의 역사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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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원명심님의 글을 스님의 육성인듯 읽으면서 많이 감사합니다.
애써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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