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정리:2003.1.11-1.12
1.12(토):08:30송내-13:10인월-13:50주차장-14:25첫나들이폭포-14:45지곡갈림길-14:55오층폭포-15:10한신폭포-16:50세석대피소(1박)
1.13(일):04:00기상-05:30조식-06:40세석출발-06:55영신봉-07:40칠선봉-08:30선비샘-09:10벽소령산장-10:30삼각고지-10:40연하천대피소-11:45식사후 출발-12:05벽소령갈림길-12:55영원령갈림길 암봉-13:35도솔암-14:20영원사 갈림길-14:30두트굴 갈림길-14:40상무주암 갈림길-15:00벽소령길 갈림길-음정마을
지리산에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1월 3일 17:00부로 대설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내일 지리산의 오전 최저온도는 -18도이며 최고온도가 겨우 -7도라 한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면 실제 체감 온도는 훨씬 그 이하이며, 아주 매서운 강추위이다. 오늘 밤 자정에 출발하여 내일 새벽부터 산행하려면 중무장하여야 한다. 75L 배낭에 우모복까지 넣고 아이젠, 스패치, 스틱 등 동계 운행 장구를 확인하고 만지작거렸으나 결국 나는 용기가 없어 떠나지 못했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이미 고속도로는 눈으로 꽁꽁 얼어붙었고, 산행 들머리까지 접근하는데도 심적으로 만만치 않은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 달여 동안 기다려왔던 산행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 꿈을 접고, 근교의 삼막산에 다녀와 지리산에 오르지 못한 시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이 고프다. 40여 일 만의 지리산행이다. 이번 겨울 휴가는 교육과 연수가 없어 시간적 여유가 많았으나 집사람이 해산일이 가까워 집안에 비상 대기를 해야만 했다. 산행은 홍 샘과 함께 출발하며, 남원에서 남원산O이 합류하여 즐거운 산행이 될 것이다. 겨울 방학 동안 보충수업을 하는 딸애를 학교에 내려주고 송내역에서 홍 샘을 만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만큼 교통 상황은 원활했지만, 조치원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정체됨에 따라 남원O적과 만나기로 한 인월에는 예정시간보다 늦은 오후 1시쯤이었다.
남원의 인월은 일주일 전에 내렸던 폭설로 도로가 얼어붙었고 마천면을 지나 백무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지난여름 태풍 로사로 발생한 산사태와 함께 도로가 유실되어 아직 복구되지 않아 폭설에 더 어수선하다. 백무동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3명의 산꾼은 백무동 매표소에서 목적지를 기록하고 순백의 한신계곡 흰 속살을 파고든다. 한신계곡은 칠선계곡과 더불어 적설량이 많아 한겨울 심설 산행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만약 산행 일정이 일주일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대성골로 세석에 오른 후 남부 능선을 타거나 벽소령 쪽으로 하산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이 눈이 많이 녹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오늘은 한겨울의 정취를 한없이 느끼고 세석에서 1박을 한 후 도솔암으로 하산이 예정된 것이다.
한신계곡에 들어서자 설국이다. 바람도 솔솔 불어 산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3명의 산꾼은 첫나들이 폭포를 지나 장터목산장으로 직등하는 한신지곡 갈림길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귤을 까먹으며 첫 휴식을 취한다. 한신지곡은 올해도 통제구역. 아마 이곳도 칠선계곡과 함께 영원히 출금 지역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다. 땀에 젖은 모자를 벗으니 시원하다. 한신계곡은 많이 오르고 내리던 길이지만 눈이 많아 낯설다. 산의 모습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달라 보인다.
백무동에서 세석산장까지 3시간 정도. 평소 같으면 곳곳에 비경이 많아 볼거리가 많다. 한신계곡에는 첫나들이 폭포, 가내소 폭포, 오층 폭포, 한신 폭포 등 폭포가 제법 많은데 대부분이 등산로에서 떨어져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보통이다. 여름에는 이런 멋진 폭포들이 우렁찬 함성과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내려 장관인데 지금은 폭설로 덮여 폭포와 소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앞서 산님들이 다닌 등로는 잘 나 있다. 마지막 폭포인 한신 폭포 이정표를 지나자 등로는 상한가를 치려고 급등하는 주가처럼 급격히 고도를 높인다. 이곳에서 세석대피소까지 0.7km가 남았다고 기쁨을 주었지만, 그 끝자락은 저 높은 협곡 위에서 가물거리는 한신계곡 루트 중 가장 체력이 달리는 구간이다.
앞을 바라보니 젊은 여산우님 2명이 중무장을 한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겨울 한신계곡을 찾은 그 용기가 대단하고 대견스럽다. 인사를 나누며 격려하고 앞서 나간다. 산정에 다가 설수록 적설량이 많아 무릎까지 빠져 바지가 얼어붙었다. 막판 십여 분 오름길은 선등했던 산님의 러셀이 잘못되어 어지러이 오르다가 드디어 주능 위에 섰다. 2차례의 짧은 휴식으로 예상보다 수월하게 올랐다. 눈 속의 세석고원이 아름답다. 촛대봉과 영신봉의 안부 남쪽 사면에 자리 잡은 세석산장이 포근하다. 겨울에는 고즈넉한 세석산장. 이런 겨울의 세석산장이 나는 좋다.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오늘 쉬어갈 세석산장으로 내려선다.
땅거미가 내려서는 오후 5시. 해가 떨어지면 지리산정은 곧 기온이 급강하한다. 취사장에 들어가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이 취사장은 80년대 구 세석산장이었는데 지금은 별다른 수리 없이 취사장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비닐 문을 헤집고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산님들의 저녁준비로 스토브에서 나오는 열기로 실내 공기가 훈훈하다. 다행히 자리가 빈 곳이 있어 배낭을 푼다. 소불고기를 굽고 얼큰한 부대찌개를 끓여 소주잔을 나눈다. 산에서 마시는 한잔의 술맛은 속세와 맛이 다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지리산정의 세석산장은 마치 절해고도가 된다. 촛대봉 위로는 내행성인 샛별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고, 어두워질수록 차츰 별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내려 까만 비단 위에 수를 놓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 별은 어디쯤에서 불빛이 오는 것일까. 우주는 한없고 이렇게 영원한데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 존재란 말인가. 부질없고 아침 이슬만도 못한 것이 인생 아닌가. 그런데 우리 인간은 왜 그리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아귀처럼 다투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산에 오르면 무욕으로 돌아와 어떤 영화와 부귀도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삶에 대한 악한 악착같은 마음이 사라지고 여유롭고 평온해진다.
실 배정을 받고, 홍 샘과 남원산O을 산장에서 쉬게 하고 홀로 촛대봉에 오른다. 밤이 깊어가는 오름길은 능선 북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으나 우모 복을 걸쳐 추위를 느끼지는 않는다. 촛대봉. 멀리서 바라보면 촛대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고, 그 주변에는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많아 촛농이 흐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촛대봉이다. 촛대봉은 형상이 특이하여 대체로 쉽게 찾을 수 있어 세석산장의 위치를 가늠해준다. 촛대봉에서 바라보니 동광양 제철소의 붉은 조명 빛이 남해바다에 비추어 가물가물하다. 외로운 지리산정을 위로하는 듯하다. 강한 바람에 몸이 펄럭이며 매를 맞는 것 같다. 기도를 올린다. 지리산신이여. 올 한해도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마음의 평화를 주소서. 새로 태어나는 늦둥이 예쁜 딸 O인이를 축하해 주소서!
산장으로 들어오니 몇몇 안 되는 산님들이 취침 중이다.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가 자리에 눕는다. 세석산장의 밤은 고단하게 코를 고는 산님들과 함께 깊어간다. 모두 피곤할 테지. 나도 그렇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나 보다. 더위와 갈증을 느끼며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4시. 자리를 박차고 산장밖으로 나와 신선한 지리산의 새벽 공기를 한껏 마셔본다. 주변은 고요하고 아직도 밤하늘의 별빛이 은은하다. 아. 아름다운 세석이여.
산장 안에 들어오니 천왕봉을 향해 떠나가는 산님들이 부스럭거리며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우리도 5시가 넘어서 짐을 꾸려 나와 이른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난다. 캄캄하고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세석을 뒤로 하고 영신봉을 향해 걸음을 찍어 눈길을 차며 오른다. 설광으로 등로가 환히 보여 헤드 랜턴은 생략한다. 영신봉에 올라 꿈틀거리는 삼신봉의 낙남정맥의 줄기를 바라보고 칠선봉으로 향하는데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날이 좋아 삼대에 덕을 쌓은 산님들이 천왕봉에서 틀림없이 일출을 볼 것이다.
영신봉에서 벽소령구간은 종주에서 가장 난코스. 역방향 산행은 그만큼 순하다. 칠선봉을 지나 큰세개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바위에서 영신봉으로 찬란히 솟아오르는 새해 일출을 맞이한다. 벽소령에서 일찍 출발하여 온 산님들과 일출을 바라보며 그 감동을 나눈다. 노년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담을 재미있게 들으며 지리산 조망에 빠진다. 우리가 걸어온 동쪽으로는 하얀 하봉 능선이 보였고 중봉, 천왕봉, 제석봉으로 이어지는 주능과 영신봉 넘어 보이는 남부 능선의 삼신봉 그리고 그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성제봉. 그리고 섬진강 넘어 구름 속에 둥둥 떠 있는 광양의 백운산. 바로 서남쪽으로는 토끼봉 능선과 뒷당재. 그 너머로 이어지는 황장산과 앞당재. 왕시루봉과 느진목재. 그리고 그 줄기 위로 뻗어 오른 노고단, 삼도봉, 토끼봉, 반야봉, 만복대. 까마득히 북으로 북으로 뻗은 바래봉의 서북 능선. 아. 광활한 지리산. 지리산이여.
주능길의 상태는 아주 좋다. 적당한 적설량과 능선 아래 골에서 불어 상승 기류를 만드는 바람이 무척 시원하여 땀을 식혀준다. 같은 지리산이라도 주능선의 남면과 북면은 환경이 다르다. 햇빛의 양에 따라 음지와 양지로 환경이 바뀌어 식생도 다른 것이다. 날씨가 맑아 조망은 좋다. 내리막에서는 엉덩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선다. 벽소령과 연하천에서 1박을 한 산님들을 스쳐 지나간다. 작은새골 입구를 지나 선비샘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벽소령을 향하는 순간 눈에 익은 산꾼과 스친다. 뒤를 돌아보니 배낭 위에 의자를 매달아 놓았다. 철O님이다. 반가움에 철O님 아니세요? 그가 뒤를 돌아본다. 바로 철O님이다. 반갑게 악수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철O님은 우O지님과 어제 신흥마을에서 토끼봉을 밤새 올라 세석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산님들이 모두 떠나간 벽소령 산장은 썰물이 끝난 바닷가처럼 쓸쓸하다. 벽소령은 지리종주의 중간기점으로 덕평봉과 형제봉 사이의 중간 안부이며 비교적 주능에서 낮은 고개이며, 장터목처럼 마천 사람과 화개 사람들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고개이다. 얼마 전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산님들을 위해 많은 반대 끝에 산장이 지어졌다. 아주 오래전에는 구벽소령에 의신마을의 주민이 천막을 쳐놓고 간이 숙소도 만들었고 막걸리와 파전을 만들어 팔아서 능선길을 오가며 목을 축이기도 했었다. 벽소령 작전도로는 과거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군이 만들었는데 지리주능의 허리를 끊는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최근에는 매년 국토순례 대행진을 하는 대학생들이 이 고개를 넘기도 했고 도로포장이 계획되었다가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백지화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제 연하천산장까지는 불과 시간 반 거리. 형제봉까지는 제법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 한다. 형제봉을 넘어 망바위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지리산 조망에 들어간다. 지리산 주능에는 평균 1400m급 봉우리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이름도 없으나 사방이 탁 트이며 멋진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는 덕평봉과 칠선봉의 무명봉과 함께 주능에서 최고의 조망권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걸맞은 이름을 얻고 있지 못하니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반야봉이 지척에 있고 명선봉이 거대하고 바로 그 아래 연하천 산장이 바로 보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삼각고지를 지나 연하천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삼각고지에서 영원령이나 도솔암으로 하산길만 남았다. 조망이 좋은 삼각고지에서 지리산 자락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더듬어 보고 남원산O과 홍 샘과 함께 봉우리와 골짜기를 헤아린다.
우리가 연하천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점심이 이른 오전 11시도 안 된 시간. 따사로운 햇살 아래 연하천 산장지기는 벼락 맞은 석유 난로를 수리하고 있었고, 몇몇 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취사장 주변은 쓰레기 처리가 되지 않아 지저분하다. 곳곳에 음식물 찌꺼기가 얼어붙어 있어 그간 이곳을 지나간 산님의 양심을 헤아릴 수 있다. 깨끗이 사용하고 쓰레기는 되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리산을 찾는 산꾼들은 그 철칙을 고수한다. 비닐봉지를 두어 장 준비하여 쓰레기는 담아 배낭에 가져가면 될 텐데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모양이다. 한겨울 먹을거리가 없어 배고픔에 지친 산새들은 버려진 밥알을 쪼아 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점심은 간단하게 수제비와 라면과 김치를 넣고 끓여 얼큰한 국물 맛을 내게 하고 술을 한잔한다. 빵빵하게 배 속을 채운 후 우리의 하산 기점인 삼각고지를 향해 떠난다. 삼각고지는 한국전쟁때 벙커가 있어서 명명되었다. 중북부 능선은 지리산의 삼각봉에서 뻗어내려 영원령과 삼정산을 지난 후 실상사까지 지리산을 동서로 나누며 경남과 전북을 가르는 도계의 능선이다. 좀 더 확장하면 임천강을 건너 백운산과 삼봉산으로 맥을 이어간다. 2년전 겨울 걸어 올랐던 이 능선은 그 거리가 절대 만만치 않아 실상사에서 연하천산장이 있는 명선봉까지는 아무리 빠른 산꾼이라도 7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이틀 전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에 골O리지님의 전화를 받고 골O리지님도 벽소령에서 1박을 한 후 중북부 능선을 탄다고 들었다. 분명히 골O리지님은 우리보다 앞서 그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삼각고지에서 영원령과 도솔암으로 갈라지는 전망 좋은 암봉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그런데 그곳까지 가는데 내리막과 경사 높은 오르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리 만만치는 않다. 게다가 이곳서부터는 러셀이 되었다고는 하나 눈 속 깊이 발자국이 찍혀 그를 따라 걷는 것이 힘이 들었고, 습설이라 미끄러워 몸의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영원령 갈림길에서 전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영원령 길로 내려가 등로의 상태를 확인해 본 다음 일행에게 코스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다. 눈치를 보니 지친 모습이었고 도솔암 쪽으로 은근히 바라는 듯하다. 삼정산과 천왕봉 쪽으로의 조망을 즐기다가 도솔암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오르막은 없다. 찍힌 발자국을 따라 미끄럼을 타며 하산길이 이어지니 편하다. 그러나 20여 분 내려간 후 발자국은 도솔암에서 멀어져 갔고 영원사 쪽으로 향하는 계곡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데. 그러나 되돌아갈 이유는 없다. 듬성듬성 나뭇가지 사이로 영원사가 있는 봉우리가 보였고, 계곡을 치고 내려가면 영원사까지 잘 놓인 신작로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발자국은 다시 우측 산기슭을 두어 개 넘어 우측의 가지 능선 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당황할 것은 없다. 바로 우측의 울타리를 넘으면 도솔암일 테니.
지리산의 깊은 암자 도솔암 마당은 눈이 녹지 않고 치워져 있지 않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울려주는 풍경소리가 은은하다. 도솔암은 실상사의 말사로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 정진하는 곳이다. 인기척을 들었을까.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나오더니 꾸짖는 어투로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다. "연하천에서 하산 도중 길을 잃고 예까지 왔노라." 스님이 다시 묻기를 이정표가 없느냐고 한다. 아마 스님은 이정표만 보고 따라가면 길을 정상적으로 찾아 갈거고 도솔암까지 올 일이 없는데 왜 예까지 왔냐고 하는 것이다.
겨울철 산행에서 산님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서는 길을 잃기 일쑤이고, 러셀 된 곳으로 발자국을 따라 산행이 진행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 우리 일행도 그 발자국을 따라 예까지 온 것이라 둘러대었다. 스님은 잠시 전에도 등산객들이 길을 잃고 이곳으로 왔다며 이래서는 큰일이다. 사고 난다고. 야단이다. 아마 골O리지님으로 추정된다. 그 스님의 의도는 삼각고지에서 내려서면 우측의 벽소령길로 등산로가 나 있고 직진 길은 통제구역으로 막아 놓았는데 왜 이곳으로 들어왔냐고 따지는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전화한다. 아마 우리 일행을 고발하려는 눈치이다. 나는 순간 기분이 몹시 상했다. 우리야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으므로 서운할 것이 없겠지만 다른 산님이 하산하였다면 이곳까지 오는데도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고 곤경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었을 것인데 가엾은 중생을 극락왕생시킬 불자의 행동과 언행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솔암의 싸리나무 대문 빗장을 열고 도솔암을 떠난다. 이곳부터 영원사가 있는 큰길까지는 40여 분 이상이 소요된다. 작년 겨울 하산할 때도 적설량이 많아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던 추억이 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산행이 정리된다. 영원령에서 시작되는 영원사의 앞 계곡은 두껍게 얼었고 역시 많은 적설과 도로는 빙판이다. 우리는 영원사도 들러보지 않은 채 두트굴 길을 버리고 무작정 신작로를 치고 내려갔다. 음정 마을에서 영원사까지 잘 닦여진 이 길도 곳곳이 태풍 로사의 폭격을 받아 도로가 유실되었고 여전히 방치되고 있었다. 마을 차를 얻어타고 백무동에서 차량을 회수하여 우리가 산내면의 일성콘도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지리산도 편안히 겨울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