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행장(行狀)
곽진구
생각이 뿔났다
종일 뜨락에 떨어져 죽은 나비의 행장(行狀)을 채울 문장 한 구절을 머리에 이고 궁리를 하였지만,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독야청청 흘러 슬픔을 들이받을 뿔만 키웠다
그 뿔이 지금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다
나무를 보면 나무를 들이받고 달을 보면 달을 들이받고 사람을 보면 사람을 들이받는다
보는 것마다 들이받지 아니하고선 견디지 못한다
들이받아야 소리를 지른다
생전에 나비가 다닌 길과 나비가 사랑한 꽃과 나비가 밤마다 바라본 하늘을 꺼내오지 않는다면 이 뿔을 잠재우지 못하리라
천둥 번개가 치고 벼락소리가 요란했다
벚나무도 뿔이 났나 보다
활짝 핀 꽃 아래로 사람을 토해내는 걸 보니
그런데 오늘은 얼마 전 죽은 누이 같은 나비가 걸어 나왔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눈물만 났다
난과 매화와 남자
곽진구
한쪽은 가지 끝이 춥고
또 한쪽은 줄기 끝이 뜨거워서
창(窓)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과 매화의 세상이 다르다
창 안의 난꽃은
뜨거운 가슴에서 꽃이 피고
창밖의 매화는
차가운 머리에서 꽃이 핀다
이 둘을 붙들고 있는 건
빨랫줄에 널려 있는 토방 위 젖은 옷
진눈깨비 맞으며
술을 꾸러 마실을 다녀왔는지,
축 늘어진 팔다리가
딱딱하게 얼어붙어
불편한 자세로 허공에 서 있다
빨래의 형국이 세상의 딱한 물정처럼 춥다
곽진구
· 전북 남원 출생. 원광대학교 한문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한문학과 졸업.
· 1988년 『예술계』 시, 1994년 『월간문학』 동화 등단. 전북시인상(2001년),
전북문학상(2004년), 표현문학상(2022년) 수상.
·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장,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문인탄생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 위원.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 회원.
· 시집 『사는 연습』 『그대에게 가는 먼길』 『짝』 『그 말이 아름답다』 『사람의 집』 『꽃에게 보내는 엽신葉信』 『시의 소굴』 『혼자 웃다』 『나비의 행장』(2026 도서출판 달을쏘다), 장편 동화 『빨간부리뻐꾸기』 『아빠의 비밀』, 창작동화집 『엄마의 손』, 논문 『장자莊子의 도에 관한 연구』, 기타 저서 『쉽게 배우는 한자 쉰다섯 마당』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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