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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읽는 삼국지 [1]
조 성 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Ⅰ] 십상시 횡포와 동탁의 득세
1. 황적적 난과 도원결의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400년 후에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다시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후한 말에 나이 어린 영제가 즉위하자(13세) 환관들이 득세한다. 환관들은 그들의 양자나 일족을 관리로 중용하고 관료나 호족과 결탁하여 중앙이나 지방의 요소요소에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관리를 등용하고 백성들을 착취하여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니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부패한 정권 속에서 서서히 몰락해갔는데, 설상가상으로 메뚜기 떼와 홍수와 가뭄 등으로 인한 거듭된 대기근은 생존을 위협했다. 이때 좌절과 실의에 빠진 농민들 사이에서 신흥종교인 태평도가 나타나 물밀듯이 퍼져나갔다. 태평도는 부적을 살라 물에 타마 시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절망적 가난 속에서 질병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일종의 심리요법이었다. 태평도는 발생한 지 10여 년만에 화북동부에서 양자강에 걸쳐 수십 만명의 신자를 얻었다. 이 시기에 발생한 「황건적(黃巾賊)」의 난은 태평도의 각 지부가 군사조직으로 전환되어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로써 장각, 장량, 장보가 주동이 되었다(184년). ‘불에서 흙이 생성된다’는 오행설을 신봉한 이들은 불(화덕-火德)에 해당하는 한나라는 곧 몰락하고, 흙(토덕-土德)에 해당하는 황건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머리에 새 세상을 상징하는 황색의 띠(황건-黃巾)의 띠를 동여 맸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관군을 파견하는 한편, 천하의 호걸들을 모으는 방문(벽보)을 붙였다. 이때 탁현(북경 부근)에 살던 20세의 유비가 이 방문을 보고 있을 때, 장비가 나타나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테니 고을의 장정들을 모아 황건적 토벌에 참가하자고 하여 주막으로 갔다.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관우와도 의기가 투합하였다. 세 사람은 장비 집 뒤의 복숭아 동산(도원-桃園)에서 의형제가 되는 “도원결의”를 맺어, 유비가 형이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되었다. 의형제가 된 세 사람은 의병 500명을 모집하여 황건적 토벌에 참가했다.
30년간 지속된 황건적 난이 평정되었으나 공을 세운 무장들이 공정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환관에게 아부한 자들만 중용되었다. 그 후 영제가 사망하고 14세의 소제(영제의 첫째 아들)가 즉위했다. 이에 따라 소제의 어머니 하태후(영제의 황후)가 섭정을 하게 되었고, 하태후 오빠인 하진이 대장군으로서 정권을 장악했다, 바야흐로 권력이 환관세력에서 외척세력으로 넘어갈 분위기였다. 하진(대장군)이 환관들을 주살하려고 사람들 모았는데, 환관타도에 동조한 원소와 조조가 참여했다. 동탁을 불러들이면 화근이 될 것이라는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장군 하진이 동탁과 그의 군사들을 낙양으로 불렀다.
그러자 하진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린 당시 세력이 가장 유력했던 10명의 환관(십상시)들이 선수를 쳐서 하진 가문을 몰살시키는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다(189년). 십상시 난으로 하진이 살해당하자, 이에 분개한 원소와 조조가 군사를 동원하여 궁궐로 들어가 환관 천여 명을 몰살시켰다. 얼마 후에 하진의 부름을 받고 뒤늦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온 동탁이 권력을 장악했다.
2. 반동탁연합군의 결성
동탁이 권력을 손아귀에 쥐더니 소제를 폐하고(5개월 재임), 영제의 둘째 아들인 헌제(9세)를 새 황제로 세우고 정치를 독주하기 시작했다(189년). 형주자사 정원이 소제 황제를 폐하는 것에 반대하자, 동탁이 정원을 제거하려 했으나 방천화극이라 불리는 창을 쓰는 솜씨가 뛰어난 정원의 양자인 여포 때문에 불가능했다. 동탁이 꾀를 내어 적토마와 금은보화를 여포에게 주고 여포를 회유하자 여포가 양부인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양자가 되었다. 여포를 얻자 동탁의 위세는 한층 더 커져서 낙양성 안에서는 동탁에 대항할만한 세력이 없게 되었다. 이때 소제 황제의 폐위문제를 둘러싸고 원소가 동탁에게 맞서지만, 판세의 불리를 느낀 원소는 근거지인 기주로 줄행랑을 쳤다.
그 후에 조조가 나서서 제후들에게 정치독주를 하는 동탁을 타도하자고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자 원소를 맹주로 하여 원술, 공손찬, 손견, 유비, 조조 등을 중심으로 「반동탁연합군」이 결성되었다(190년). 이때 기주목인 원소가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동탁의 전횡을 견디지 못하고 낙향한 강직한 성품의 순욱을 만나 예우했다. 그러나 순욱은 원소가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조조에게로 갔다. 그 때부터 순욱이 조조의 핵심인물이 되어 책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반동탁연합군은 목숨을 걸고 동탁군과 싸웠다. 「호로관 전투(190년)」에서 방천화극(창)과 적토마를 가진 동탁의 양자인 여포와 장팔사모(창)를 쓰는 장비, 청룡연월도(칼)를 쓰는 관우, 쌍고검(칼)을 쓰는 유비 삼형제가 싸우지만, 이들은 승패를 가르지 못한 채 여포가 퇴각한다. 무예가 뛰어난 동탁도 격렬하게 싸우는 반동탁연합군의 기세에 눌린다. 황건적 난의 진압과 십상시의 난 등으로 조정에는 돈과 양식이 부족했는데 낙양에는 부자가 많았다. 동탁은 부자들을 원소의 무리로 몰아 재산을 몰수하고 낙양에 불을 지르고 황제(헌제)를 겁박하여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동탁이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자 조조는 원소 등 다른 제후들에게 동탁을 뒤쫓자고 제안했지만, 맹주인 원소는 동탁을 추격하지 않았다. 반동탁연합군은 대의보다 실리를 따져, 각자가 실권을 장악하겠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조만이 혼자 군사를 이끌고 장안을 공격했으나 동탁군에게 패배했다. 이제 천하는 군웅할거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조조가 동탁에게 패배하자 화재로 폐허가 된 낙양성에 손견이 제일 먼저 입성하고 여러 제후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손견은 성내에 남아있던 동탁의 잔당소탕과 정비작업에 힘쓰다가, 폐허가 된 궁궐 우물 속에서 옥새를 발견했다. 이 옥새는 십상시 난 때 없어진 ‘전국옥새(傳國玉璽)’였다. 전국옥새는 진시황 때부터 400년이 넘는 세월을 한의 황제에게서 황제로 이어온 아주 귀중한 것이다. 이 옥새는 각 제후들의 야망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하게 되는데, 원소가 옥새를 몹시 탐냈다. 원소는 옥새를 빼앗기 위해 유표를 사주하여 손견을 치게 했다. 이로 인해 손견은 유표와의 전투에서 패하자, 옥새를 그 아들 손책에게 물려주고 37세에 전사했다.
동탁을 타도하지 못한 상태로 연합군 본진에서 조조가 떠나고 옥새문제로 원소와 갈등을 겪던 손견이 사망하자, 낙양에 있던 제후들 간에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군량이 모자란 연주자사 유대가 동군태수 교모에게 군량을 빌려달라고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유대가 교모를 급습하여 살해했다. 이 일로 제후들은 서로 의심하여 연합이 유지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에 맹주였던 원소가 군사를 거두어 물러가니 반동탁연합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3. 동탁의 죽음
장안에 입성한 동탁은 사치하고 오만방자했으며 외출 시에 황제 의전을 갖추어 독주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충신인 사도 왕윤이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동탁과 여포는 호색한이었는데, 왕윤이 양녀이자 절세미인인 초선을 이용하여 연환계를 써서 동탁을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다. 왕윤이 여포를 만나 날을 잡아 초선을 첩으로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왕윤이 동탁에게 초선을 바치겠다고 하면서 초선을 승상부로 보냈다. 이를 안 여포가 화를 내자, 동탁이 양자인 여포와 짝을 지어주어 준다고 하면서 초선을 데려갔다고 여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여포가 왕윤에게 속아 동탁을 살해했다(192년).
동탁이 죽자 왕윤이 정권을 잡게 되어 황제(헌제)는 비로소 동탁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왕윤은 사관 채옹이 동탁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시키는 등 오만해지고 덕이 없는 행동을 하였다.
한편 동탁의 장수였던 이각과 곽사는 동탁의 근거지인 서량군으로 피신해 있으면서, 왕윤에게 자신들을 사면시켜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공격하고 여포의 응전으로 이들은 중남산으로 들어가 여포군사와 대치했다. 그러던 중 여포의 부하장수인 장제와 번조가 동탁의 잔당과 내통해 장안성을 급습하여 「장안성 전투」가 벌어졌다. 이에 당황한 여포가 장안성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각과 곽사의 맹렬한 공격으로 왕윤은 죽임을 당하고 여포는 남양 태수 원술에게 달아났지만, 여포를 믿지 못하는 원술이 받아 주지 않자 원소에게로 갔다. 여포와의 장안전투에서 승리한 이각과 곽사가 조정을 장악했다.
실권을 쥐게 된 이각과 곽사는 황제를 위협하여 후양군·미양군의 작위를 받았고, 나중에 이들은 스스로 대장군이라 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 알력이 생겨 상호 간에 비방과 공격이 끊이질 않아 궁중이 불태워지고 장안이 거의 폐허화 되었다. 헌제가 장안에서 동쪽으로 옮기자 반복했던 이각과 곽사는 다시 합세하여 헌제를 추격했다. 이에 조조가 이각과 곽사의 군사들을 무찌르고 헌제를 영접했다.
4. 산동 일대를 장악한 조조
동탁의 사망 후에 조정이 평안해지는 듯 했으나 청주 땅에서 황건적의 잔당들이 발호하는 일이 벌어지자, 조정의 중책을 맡고 있던 주전이 황제에게 조조를 연주목으로 천거했다. 연주목이 된 조조가 황건적 잔당을 토벌하자 조조는 진동장군이 되었다. 산동 일대에서 세력을 떨치게 된 조조는 진류 땅에 있는 부친 조숭을 모셔오게 했다. 조숭 일행이 서주를 지날 때 조조와 친분을 맺고 싶어 하던 서주 자사 도겸이 이들을 융숭히 대접했다. 조숭 일행이 떠날 때 도겸이 황건적 잔당이던 부하 장수 장개에게 호위하게 했다. 그런데 도중에 황개가 조숭 일행이 가지고 있던 재물이 탐나 이들을 몰살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분노하여 도겸을 치기 위해 서주를 공략했다. 이에 당황한 도겸이 북해 태수 공융에게 구원을 청하자, 공융이 유비를 추천하여 유비, 관우, 장비가 도겸에게로 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도겸과 화해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때 마침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던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성을 공략했다. 이 급보를 받은 조조가 유비에게 화해에 응한다는 답장을 보내고 연주성을 되찾기 위해 퇴각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여포는 연주성을 부하장수 이포에게 맡기고 복양까지 와서 조조와 맞섰다. 자신감을 가진 여포군에게 조조군은 패해 달아났다. 그 후 일전 일퇴를 거듭하다가 그 해 메뜨기 떼가 창궐해 양 진영에 군량미가 부족해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조조는 일가친척을 모아 용맹스럽게 황건적 잔당과 대항하고 있던 허저를 부하장수로 삼았다.
한편 여포의 지시로 연주성을 지키던 이봉이 성 밖에서 노략질을 일삼느라 성을 자주 지운다는 첩보가 조조에게 보고되었다. 기회를 잡은 조조가 허저를 선봉에 세워 공략하자, 허저가 이봉을 베고 연주성을 함락시켰다. 연주성을 되찾은 조조가 여세를 몰아 여포가 있는 복양성으로 향했다. 조조 진영에서는 허저를 도와 하후돈,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 등 6명의 장수가 성문 밖에서 기다리던 여포를 협공 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여포가 달아났다. 여포는 복양성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조조 편을 드는 부하들이 성문을 닫아 들어가지 못하고 정도성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거기까지 조조군이 추격해와 여포는 정도성을 버리고 서주로 가서 유비에게 의탁했다. 조조는 여포에게 빼앗겼던 본거지를 다시 찾은 후에 세력을 떨쳐 산동 일대를 장악하는 맹주가 되었다.
5. 서주를 차지한 유비
서주를 공략하려던 조조가 물러나자, 연로한 도겸은 유비의 덕택이라고 생각하고 서주를 유비에게 넘기겠다고 하였다. 이에 유비는 서주를 도우러 왔는데 이를 차지하면 세상 사람들이 의리가 없다고 비웃을 것이라고 대의명분을 내세워 극구사양 했다. 그러자 도겸이 서주성에서 가까운 소패성에 머물면서 서주를 지켜달라는 청을 유비가 받아들여 관우, 장비와 함께 소패성으로 갔다.
그 후 병세가 악화된 도겸이 소패성에 있는 유비를 서주성으로 불러 서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번에도 유비는 서주를 다스릴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사양했다. 그러는 사이에 도겸이 사망했는데도 유비는 서주 자사가 되기를 마다했다. 그러자 서주 백성들이 유비에게 몰려와 서주를 맡아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렇게 하여 유비는 화살 하나도 쏘지 않고 서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조조에게 패한 여포가 유비를 찾아왔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여포를 받아들이고, 유비는 그다음 날 여포를 소패성에 자리를 잡게 했다.
"단번에 읽는 삼국지" [1] - [5] 중 [1]
(참고문헌) 조성민, 삼국지에서 내 성격을 찾다(제2쇄), 박영사, 2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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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아, 이사장님, 새로운 면을 봅니다.
존경해요^^*
주 박사님
감사합니다
하늘에서도 바람에서도 가을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이하여 일취월장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조성민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