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몽땅 쳐버린 건물 앞에서 오래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희 집은 초입에 둥글고 검은 대리석을
깔고 대문을 세웠습니다
들어서면 왼편은 정원이고
오른편은 대문 옆 일층을 차고로 만들어
위를 흙으로 덮어 정원으로 꾸민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설계학상 일층 현관까지 돌계단이 놓여졌습니다
대문 앞에서 현관문으로 올라가기까지는
꽤 넓은 면적을 검은 대리석들이 둥글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는 흙들이 틈을 메꾸고 있었지요
경주 남산 기슭 눈길을 잡은 앙증스러운 풀을
몇 포기 가져왔습니다
틈 사이 흙에다 조심스레 심었습니다
삼 년 정도 지나니 대리석 사이의 틈마다
연두빛 손들이 꼬물거리며 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눈이라도 있는지 밟고 다니는
대리석을 피해 돌틈사이로 곡예를 하듯이
뻗어나갔습니다
검은 돌과 초록의 담쟁이가 조화를 이루어
검은 벨벳 천에 초록 자수가 놓인것 같았습니다
모양은 보기좋게 퍼져나가 현관으로 올라오는
입구는 황홀한 색감과 함께 묘한 기쁨을
선물하였습니다
대추나무 앵두나무 배나무 목단 과꽃 등
많은 식물들이 있었지만
저는 한 땀씩 수를 놓으며 용감하고 열심히
키를 늘리며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담쟁이에게 정을 많이주고 어여뻐라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해 늦가을,
낙엽들 치우고 나무들 잘라주고
커다란 화분들을 일층과 차고로 옮기는
작업이 계절맞이의 일과인데요
느닷없이 "내가 정원 청소 좀 할까?" 합니다
"사람도 안부르고 혼자서?"
그러자 "그냥 낙엽들만 쓸어담으려고" 합니다
알아서 하라 하고 있었는데
두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벌건 얼굴로 들어오더니
자랑스럽게 말을 합니다
"내가 아주 깨끗하게 치워놨어!!"
그러냐고‥ 건성으로 듣고는 차 한잔 마시고
나가보았습니다
내려다보니 낙엽들은 모두 갈고리로
쓸어모아 푸대자루 두개에다 꼭꼭 눌러
담아놓았더군요
한발 두발 내려가다 보니 눈아래 사랑스럽게
펼쳐지던 초록 자수처럼 놓인 아기풀들이
한조각도 없이
아주 깨끗하게 뽑혀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마치 진공 청소기로 청소를 한 듯이
깨끗 깨끗 검은 돌들만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정원 귀퉁이 장독을 묻는다며 앵두나무를
잘라내지를 않나
이제는 삼년을 애지중지 키운 바닥의
애기담쟁이들을
한시에 전멸시키지를 않나‥
무슨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도 아니고
그때 이혼해야겠다고, 이혼하자고 했더니
열심히 치워놓았더니‥ 이게 무슨 미친소린가 하는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생각이 어제처럼 달려왔습니다
민둥산 처럼 만들어 놓은 남의 건물 앞에서요
굴원이 어부사에서 말했지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
물을 탓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갓과 발을 다 씻은 날 이었습니다.
늘 다니는 길에 건물입니다
무성하던 나무를 사람을 사서 싹 정리를 했습니다
깔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무가 주는 그늘의 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흰개미집 같은 둥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마주한 옆 건물들입니다
초창기에는 두 곳의 나무들이 비슷했습니다
이곳은 손대지 않고 나무를 소중히 다루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코너가 초록초록합니다
실제로는 양쪽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더욱
그늘이 깊습니다 나무들의 그늘은 좋은 기를
뿜어내는 어머니의 호흡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