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의 코스 중 '포대능선'은 스릴이 적지 않아서,
초심자들이 도봉산에 매료되는 구간 중의 하나입니다.
과연 언제 '포대능선'이라는 명칭이 붙여졌을지, 그 유래는 무엇일까에 관한 잡글입니다....~
------------
맨처음 포대능선을 오를 때 느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함께 했던.
그때부터 포대능선이 과연 언제부터 불려졌을까를 궁금해했습니다.
도봉산에 관한 지도들을 보면
가장 이른 시기로 이우형 선생이 주도한 72년 교진사 판 '전국 100산악등산코오스안내집"에 등장합니다.,
산행기로는 정종 교수의 60년대 후반(?) 도봉산 산행기에도 등장합니다.
다음에 이분들의 관련 구절을 올리겠지만,
모두 '포대능선'을 주어진 이름으로 받아 들이고 말 뿐 안타깝게도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도봉산에 '포대'라는 군사용어가 들어있다면 좀 더 깊숙히 관심을 가졌을 법도 한데 말이죠.
사실 포대능선은 도봉산의 '주'된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난코스였기도 했고, 군사상 통행금지 코스였던 까닭도 있습니다.
망월사로 오르다가 능선에서 곧바로 만월암을 지나 천축사로 지나는 게 일제 때부터 일반적인 도봉산 코스였죠.
그러다 손경석 선생님의 1966년 4월 14일 대한일보 연재 기사에서,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초보자'라는 표현 대신 '초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섬세함이 참 좋습니다.
이 자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기태형의 자료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제일 탐나는 자료입니다.^^
후학들에게 평생 읽을 꺼리를 남겨 놓으신 선생님께 엎드려 새해 절을 올립니다.
손경석 선생님은 해방 전부터 북한산, 도봉산을 즐겨 찾았고,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등산학자로서 지대한 관심을 가져 그 모든 변화상을 소상히 또는 간략히 적고 있습니다.
1966년 도봉산과 산자락 풍경입니다.
지하철로 순식간에 접할 도봉산에 어떻게 이런 구석기 시절이 있었을까요.
망월사 앞과 도봉리에 민가가 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쌍문리에도 그리고 우이동에도 좀 있었군요...
북한산 한참 오르막까지 집이 띠가 두르고, 도봉산이 아파트와 높이를 서로 겨룰 시절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포대능선 관련 구절은 이렇습니다.....
칠성봉 안부에 미군부대가 있었고. 포대능선 또는 포대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나 봅니다.
사변 후에 이름이 포대길로 되었다 하니 아무래도 사변 때 이 광장에 포대가 있었나 보다"라고 추측합니다.
포대 설치를 선생님은 사변 후가 아니라 사변때라고 비정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좀 해석을 하고 추후 자료로 보강해야 할텐데요....
아무튼 이정도의 발굴이나마 일단 올려봅니다....~~~
그리고 포대능선을 오르는 정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 때는 철심이 박혀 있지 않아 오르내르는 것이 이렇습니다....~~~~
철심 없이 바위만 잡고 밟고 오르내려 보고 싶네요.
그럴 때, 정상에 섰을 때, 난소(難所)라는 그시 절(아마 일제식) 표현의 느낌이 살아날 듯 싶습니다.
아마 도봉산이 조금 더 높아질 것입니다.
==================
제가 어줍잖게 등산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하나하나 소소한 근현대 등산관련자료를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와운루계회 회원님들께 감히 일차 왕림(일차클릭)을 청합니다...~~~
클릭->"그때의 산, 우리들의 산"
==================
첫댓글 글타고 알고 있는데 함 더 자룔 차자 바야것네여.
기태횽님 자료집 궁금하네.
낼 한산도서관에 김정태 선생 자료 정리 시작하려 머가 있나 보러 가려는데 어캐 정리하는게 좋을지 몰것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