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 양산삽량문화 축전의 역사적 배경으로 665년 문무왕 5년에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하였고 757년 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삽량주도 양주(良州)로 개칭되었고 고려 때는 다시 양주(梁州)로 개칭하였고 조선시대에 양산(梁山)으로 개칭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양산은 지리적으로 신라 수도였던 경주와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김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또 낙동강 하구 물금은 경주로 들어가는 수상관문의 요충지였고 삽량주(歃良州)는 통일신라시대에 동래군(부산)에서 부터 임고군(경북 영천)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남동부 일대 및 경상남도 동부 전체를 영역으로 하는 최대의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충절의 고장을 대변하는 삼조의 열비(三朝義烈碑) 양산은 신라시대 삽량주, 고려시대 양주, 조선시대 양산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신라의 박제상, 고려의 김원현, 조선의 조영규 등이를 기리는 비가 삼조의열비입니다.
양산의 성장과 함께 매년 개최되는 삽량문화축전은 양산을 대표하는 정례적인 문화축제로서, 양산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양산의 자연,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 예술, 관광 등의 발전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다양한 체험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36만 양산시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