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가 복되던 날
양상태
피곤하다. 춘향 고을 남원에 다녀왔다. 왕복 두어 시간 운전했는데도 피곤하다. 무엇을 탓하기보다 운전하는 체질은 아닌 성싶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커피를 타서 책상머리에 앉았다.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페이지 수를 세고 있었다. 그러다 끼적거려 놓은 글들을 수정하였다. 제목을 붙이려니 머리가 무거워지고 하품이 손바닥을 부른다. 이제는 자야겠다 싶어 일어서는 순간 현관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밤늦게 큰딸이 손자들과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인즉슨, 손자가 무방비 상태로 욕실 바닥에서 미끄러져 뒷머리를 다쳤다고 했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119에 전화하니 대학병원 응급실을 안내해 주었다고 했다.
경황이 없어도 ‘차분해야지.’하며 속으로 다짐하고 딸과 손자를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차가 지날 때 앞서가던 차들이 우측으로 피해 주는 ‘모세의 기적’이 생길 정도의 교통량은 아니어서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한 명만이 입장할 수 있어 주차장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곳 병원에 왔었던 순간들이 앨범 속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던..... 내가 다녀간 순간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밖은 그리 춥지는 않았으나 으스스하여 차 안에서 기다렸다. 수시로 진행 상황을 문자로 주고받았다.
새벽 1시. 뇌진탕이나 출혈도 없고 CT 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돌아가서 몸이 처지거나 토하거나 통증이 생기면 다시 오라 하였다고 한다. 밤도 늦었으며 만일을 대비하여 우리 집에서 모두 같이 자기로 했다.
거실에서 부산 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손자가 방학 중 수업에 가야 한다고 딸이 가방을 챙겨주고 있었다. 욕심하고는, 하루 정도 쉬게 하면 어디에 덧이라도 나는 걸까?
딸내미 식구들이 가고 난 뒤에 뒷머리가 무겁고 해서 한숨 더 자고 싶었다. 누울까 망설이다가 날씨는 흐리지만,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기도 해서 일어났다.
점심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문우들과 함께 가서 먹어본 연잎밥이 떠올랐다. 별미여서 아내와 같이 꼭 한번 가려고 명함을 가지고 와 명함 갈피 속에 끼워 놓았었다. 월요일이라 혹 쉬지는 않나 싶어 전화해 보니 영업 중이니 오라고 하였다.
“여보, 점심 먹으러 갈까? 수육쌈밥과 연잎밥이 있는데 어느 게 좋아?“
“샤브샤브가 좋아.”
“자주 먹었으니 다른 걸로.”
“연잎!“
“그래 가지, 준비해.“
이때가 12시였다. 집에서 나설 때 시계는 1시를 숨 가쁘게 넘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집을 나서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대개 30∼40분은 기본이었다. 오늘은 너무 늦다. 예전 같아선 짜증을 내며 다투기도 했었다. 오늘은 피곤해서 말할 기운이 없어 참는 게 아니라 안 했다. 때로는 피곤한 것이 좋을 때가 있기도 한가 보다.
아내는 화장도 치장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굼뜬 것도 아니다. 가끔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스 잠갔나?” “마스크!” “어, 휴대폰!” 하면서 다시 집안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잦았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해도 이런 적이 열 번은 넘는다. 수백 번도 열 번이 넘는 범주에 속하니까 말이다.
1시 50분쯤 되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음식을 손수 담아와 배고픈 김에 젓가락이 바빠졌다. 아내는 천천히 먹으라 한다. 연잎에 싸인 찰밥은 콩과 호두·대추까지 들어 있어 연잎 향과 어울려 맛을 한층 깊게 하여 주었다. 반찬으로 내어놓은 망초나물, 토란대, 달맞이나물, 장녹나물 등은 보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연꽃은 더럽혀지는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정갈함을 유지하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있는 부처 정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김장철에 담근 김치는 숙성이 잘되어 맛이 깊어 조금 사고 연잎밥도 포장을 해왔다.
아직도 철이 이른지, 생기가 돋아야 할 나무들이 펼치는 봄날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시내에 들어와 천변에 다다르니 길가의 버드나무는 벌써 물이 올라 잎망울을 물고 있었다.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남편 잘 만나서 좋고, 엄마가 이쁘게 낳아 줘서 고맙고...”
“그 얘기 다시 해봐.”
“어머니가 ∼∼∼“
"아니, 그 앞에 한 말!“
"남편 잘 만나서 좋∼고!“
"다시, 삼세판!“
"남편 잘 만나서 좋∼고!“
이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