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문 도
고흥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고도(古島:0.83㎢)·동도(東島:3.4㎢)·서도(西島:7.77㎢)의 3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위에 소삼부도와 대삼부도가 있다. 고도만을 거문도라 부르기도 한다. 최고봉인 동도의 망향산(247m)을 비롯하여, 서도의 음달산(237m)·수월산(128m) 등 비교적 급경사의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외탄갑·다렝이끝·취끝·대매지끝 등 작은 돌출부가 많고 드나듦이 심하다.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동도의 남쪽 해안은 높은 해식애가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며 비가 많다. 농작물로 고구마·감자·마늘·보리·콩·유채·참깨·양파 등이 생산되지만, 자급하기에도 부족하다. 연안 일대에서는 삼치·멸치·장어·도미·갈치 등이 주로 잡히며, 자연산 굴·미역·조개류 등의 채취와 함께 최근에는 미역양식업이 시도되고 있다.
취락은 동도 서쪽 해안가인 유촌·죽촌마을, 서도의 북쪽 서도리·남쪽 덕촌리, 고도 서쪽 해안가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3섬으로 둘러싸인 도내해(島內海)는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깊으며, 거문항이 있는 고도 일대의 수역은 근해·원양 어업의 전진기지로, 서도는 연안항로의 기항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60여 년 전 추씨(秋氏)가 처음 거주했다고 전해지며,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는 추씨 할머니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제사를 올린다. 서도에는 동백나무가 섬을 뒤덮고 있으며, 섬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여 관광객유치를 위한 관광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전해진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거문도라 부르기 전에는 삼도·삼산도·거마도라고도 불렀다. 1885년(고종 22) 영국의 동양함대가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사건으로 유명하며, 이때에 해밀턴 항구라고 불렸다.
거문도라는 이름은 중국 제독 정여창(丁汝昌)이 귤은 김유와 필담을 나눈 후 섬 내에 큰 학문을 하는 사람, 문장가가 있다하여 '거문'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붙여졌다. 서도의 남단과 북단에 등대가 있으며, 남단의 거문도 등대는 1904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제1의 등대로 촉광(燭光)이 약 40km에 이른다. 면적 12㎢, 해안선 길이 4.3km, 인구 796, 가구 280(2003).
거문도에 가면 고풍스런 영국군 묘지가 있다. 왜 우리나라의 머나먼 섬에 영국군의 묘지가 있을까. 머나먼 이국땅에 묻힌 이들 영국인들은 한때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주의의 역사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영국은 거문도를 해밀턴섬이라고 명명하고 1885년 4월 중순에 느닷없이 조선정부의 허가도 없이 무단 점거한다. 이 사건은 세계적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 간 대립이 바야흐로 한반도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19세기는 국제관계사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남진하는 쟈르 러시아와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싸움이 한반도 거문도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영국의 거문도 점거는 러시아의 부동항 획득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빚어진 것이란 통설과 다르게 영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된 측면도 있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판데(Pandjeh)를 침공하여 인도로 가는 통로를 위협하는 극도의 긴장된 조건에서 영국이 러시아 남하를 핑계 삼아 선수를 친 것이다
영국내각은 홍콩 주둔 영국함대에게 긴급 훈령을 내려 보내고 일본 나가사키에 정박 중인 군함을 출동시켜 거문도 내항으로 진입시킨다. 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봉쇄작전이 시작된 것이니 대한해협에서 러시아의 목줄을 쥐려는 의도에서 벌어진 작전이었다. 우리의 바다에서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벌어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었다.
1885년 4월 26일 1차로 거문도 내항에 진입한 군함 3척의 승무원은 무려 617명에 달하였다. 이어서 중국주둔 함대에서 속속 진입하여 군함 13척에 총병력 2000명을 상회하였다. 이들 해군은 내항에 목책을 설치하여 러시아의 진입을 막는 한편 상륙부대가 사용할 해병대용 막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거문도에 영국기가 펄럭였으며, 병사들은 포대와 병영을 쌓아 요새화 구축에 들어갔다. 섬 주위에 수뢰(水雷)를 부설하고 수로와 전선을 가설한다. 3개의 항만 출입구에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6개처에 포대를 가설하였다. 막사건축과 해안축조는 거문도 주민을 동원하고 용역을 받은 미국 건축업자가 중국인 목수와 미장이를 대동하여 만들었다.
그렇다면 영국은 수많은 남해안 섬 중에서 하필이면 거문도를 주목했을까. 거문도를 가다보면 초도ㆍ손죽도 등이 펼쳐져 있어 거문도가 다도해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해역이자 대한해협의 문호로서 한일간의 해상통로이며,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서구열강은 동북아의 군함과 무역선 중간기착지로 거문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지형적으로도 군항에 안성맞춤이었다.
거문도는 고도, 동도, 서도 세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가운데에 고도(현재의 거문리)가 버티고 있어 본디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아늑한 만이 요새처럼 숨어 있어 대형 군항으로는 부족한 크기지만 중간 연락항으로는 그만이다. 서도·고도로 둘러싸인 내해는 언제나 파도가 잔잔하고 간조 때에도 수심이 14-6m 유지되는 천연의 양항이다. 영국이 욕심을 낸 이유를 알 만하다.
영국이 떠난 자리에 훗날 일본이 들어온다. 일제식민지가 시작되면서 이번에는 일본 어민들이 대거 거문도를 주목한다. 거문도의 일본과의 인연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소급된다. 삼산면 손죽리에는 이대원 (李大元,1566-1587)사당이 전해진다. 예전에 섬에서 초가로 사당을 짓고 배향해 오다가 지금 건물은 1983년에 여천군에서 지은 것이다. 이대원은 흥양현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지냈는데 왜구가 침입하자 대파하였으나 그가 공을 세우는 것을 시기한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이 무리하게 출전을 요구하여 나가 싸우다가 왜구에 잡혀 순절한다. 뒤에 이 사실을 안 조정은 심암을 파직 압송하여 처형한다. 충무공 이순신도 큰 인물을 잃어 크게 손실을 보았다고 슬퍼하며 손대도(損大島)라 명명한 것이 뒤에 손죽도(巽竹島)가 되었다고 한다.
...(이하 생략).. <주강현· 해양문화재단 이사>
여행일시: 2009년 3월 8일(07:00~09:40)산행 날씨: 맑음
산행코스: 여객선터미널(06:40)-삼호교(06:51)-목넘어(07:10)-거문도등대(07:23~07:41)-목넘어(07:52) -보로봉(08:05)-기와집몰랑(08:19)-억새군락지(08:31)-불탄봉(08:39)--덕촌마을(08:51)
-삼호교(08:59)-여객선터미녈(09:18)
산행거리: 약9km, 산행시간: 약2시간 40분
거문도의 유래
운항시간표
거문도와 녹동을 오가는 모비딕호의 모습
삼호교를 건너면 왼쪽 해안가를 따른다
삼호교에서 바라본 일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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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아침
덕촌리 마을의 모습
삼호교를 건너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밖노루섬과 오리섬의 일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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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계단 삼거리 이정표
밖노루섬과 멀리 삼부도가 보이고
수월산의 모습
선바위
선바위의 모습
거문도 등대의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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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서 바라본 일출이 장관이다
관백정과 구등대의 모습
등대 전기 폰
관백정에서 바라본 조망이 장관이다.
관백정에서 바라본 조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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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백정에서 바라본 일출
등대속의 계단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등대에서 바라본 선바위의 모습
선바위와 보로봉의 모습
거문도에는 동백이 지천이다.
등대가는 길에는 동백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쁜 동백꽃
보로봉의 모습
보로봉 오름길에 바라본 선바위와 등대의모습
동백꽃
조망이 멋지다.
보로봉 정상의 이정표
보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
보로봉 정상의 모습
보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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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봉 가는길
신선바위의 모습
뒤돌아본 조망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조망
소망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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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몰랑의 모습
용무늬절벽의 모습
기와집몰랑
뒤돌아본 기와집몰랑의 모습
억새군락지의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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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인지 너무 이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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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봉의 모습
불탄봉 정상표지판
불탄봉 삼각점
불탄봉 정상의 모습
정상에서 조망이 장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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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봉 정상에서 바라본 고도의 모습
덕촌마을 내림길에 바라본 조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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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중계탑
덕촌마을의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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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마을에서 바라본 불탄봉의 모습
내려온 골목길의 모습
뭔지.....
덕촌 마을에 세워진 박옥규 제독 송덕비
한바퀴 돌아서 삼호교에 도착하고
삼호교에서 바라본 덕촌 마을의 모습
우리를 태우고 나갈 모비딕호가 들어오고
선착장에서 바라본 덕촌 마을과 불탄봉의 모습
녹동으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녹산등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