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국립대 길들이기' 의혹 극대화...총장직선제 회귀 대학 '주목'
대학 공공성보다 정부 재정절감 및 경쟁 강조한 법인화 압박도 논란
공립대도 지자체 장 성향 따라 반값 등록금부터 통폐합까지 손바닥 뒤집기
[한국대학신문 신나리·이연희 기자] 지난 8월 고현철 부산대 교수가 투신하며 주장한 ‘총장직선제’는 국립대 거버넌스의 오랜 화두다. 국립대 거버넌스는 민주화와 맥락을 같이하며 논란과 전기를 마련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총장직선제 도입과 교수협의회가 결성되면서 교수 중심의 거버넌스가 국립대 안에 자리잡았다.
이후 1999년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서 처음으로 외부인사로 구성된 대학이사회가 도입되고 총장직선제 개선(폐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교육부는 2012년 당시 총장직선제를 폐지할 경우 정부재정지원정책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통해 사실상 총장직선제 폐지를 유도하는 정책을 실시해서 국립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립대 교수들은 최근 총장직선제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지난 달 1000여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이 거리 집회를 단독으로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전국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등 전국의 교수단체들은 교육부가 재정 지원을 압박하며 총장직선제를 무력화하려고 개입한 것에 항의하며 총장직선제를 수호할 것을 다짐했다. 같은 날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 △총장직선제 폐지 △국립대학 민영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교육부는 직선제를 개선하겠다는 원칙만 밝혔을 뿐 아직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에 참석해 "총장 선출은 대학의 자율성과 선출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갈등을 충분히 고려해, 선출뿐만 아니라 제청·임명까지 전체적인 과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방안외에는 새로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끊이지 않는 논쟁 … ‘총장직선제와 간선제’ = 국립대는 총장직선제를 ‘최후의 보루’로 여긴다. 교육부가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청와대나 교육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총장을 임명해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직선제 폐지를 통해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국립대에 자리잡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의 일방적인 임용제청 거부로 국공립대 총장 선임은 마냥 미뤄지고 있다. 정부가 국립대에 ‘입맛에 맞는 총장’을 고르려고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는 이유다. 대통령이 중앙부처의 국·과장 좌천 인사를 직접 지시한 것처럼 국립대 총장 역시 청와대가 개입해 파행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대다. 경북대는 지난 8월 함인석 총장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 총장 공백상태다. 지난해 6월부터 신임총장 후보 선출을 준비한 총장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김사열 교수를 차기 총장 후보로 선출해 교육부에 임용제청을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거절했다. 총장추천위원회가 교육부에 이유를 물었지만 교육부는 “임용거부 이유는 비공개 정보”라고 답했다. 결국 학부과정에만 16개 단과대학과 73개 전공이 있는 경북대는 현재 총장 없이 졸업식과 입학식을 치르고, 학교 행정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29일 방송대 7대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려고 했던 류수노 교수는 당일 임용제청 거부 통보를 받았다. 방송대는 새 총장을 뽑기 위해 세 차례의 토론과 후보자 심사 과정이 있었지만 교육부의 거부 통보로 지금까지 총장이 없다. 류 교수는 “(교육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반정우)는 “류 교수는 교육부가 어떤 근거와 이유로 임용 제청을 하지 않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교육부가 류 교수에게 한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을 취소한다”고 류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간선제를 도입한 국립대에서도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총장 선출 과정이 중단된 경상대 교수회(회장 안성진)는 지난 5~8일 교원을 대상으로 총장직선제 회복 여부를 묻는 서면표결을 실시했다. 개표 결과 83.9%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총장직선제를 회복하기로 했다. 이번 서면표결에는 744명(연구년과 파견 등 27명 제외)의 교수 중 681명(91.5%)의 교수들이 참가해 571명(83.9%)이 찬성했다. 교수회는 교수평의원회를 개최해 총장선출특별위원회가 만든 총장직선제 규정 및 시행세칙(안)을 심의 의결할 계획이다.
교육부의 임용제청거부에 대해 정부가 국립대를 길들이기 위해 총장 직선제 폐지를 돈줄로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총장 선출제 개선에 따른 5% 반영 지표를 반영한다며, 교육부가 국립대를 돈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2012년 당시 교과부는 재정지원 사업인 ‘대학 교육역량 강화 사업’ 지원 대학 선정(학교당 약 25억~30억 원 지원) 및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학 지정’에서 총장직선제 개선을 5% 반영 지표로 삼는다고 밝히며 국립대학들과 ‘총장 직선제 폐지’에 대한 MOU 체결을 강요했다”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총장 선출제 간섭을 두고 “결국 코드 인사 위한 직선제 폐지, 정권의 국립대 길들이기”라고 규정했다.
■ 국립대 압박하는 ‘법인화 논란’ = 정부가 본격적으로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한 것은 지난 2007년이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비롯된 국립대 법인화는 노무현 정부들어 급물살을 탔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는 2007년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5·31 교육 개혁안의 국공립대 법인화 방안을 더욱 구체화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예산을 총액으로 지원하면 국립대법인이 사학법인처럼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결산할 수 있도록 하고,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겨 있다.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당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공립대 교수 등의 거센 반대로 국회에서는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별도로 제출된 ‘국립대학법인 울산과학기술대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통과돼, 2007년 3월 국내 최초의 ‘법인화 국립대’인 울산과기대가 문을 열었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에서 국립대 법인화 논의는 더욱 가속화됐다. 이 시기에 인천대 법인화 법안과 서울대 법인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2010년 12월 8일 국회를 통과해 국립대 학내 거버넌스 개편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국립대 법인화는 2006년 교육부가 처음 법인화 의지를 표명한 이후 최근까지 정부가 국립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립대가 법인으로 전환하면 재산권 행사가 자유로워지는 등 대학의 자율성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도쿄대를 비롯해 일본의 국립대들은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수익경영과 비용을 절감했다며 경쟁력 제고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공립대들은 법인화가 재정 지원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립대 한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국가부담률이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3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법인화로 재정운용의 자율성을 부여해도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법인화는 국립대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키고, 이는 다시 사립대 등록금 인상을 부추기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 공립대, 정부와 지자체 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지자체의 재정지원을 받는 시립대와 도립대학 등 공립대의 경우 총장선출방식 논란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실제로 서울시립대는 총장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립대는 지자체와 교육부, 안행부의 눈치를 모두 보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교육정책과 의무는 기본적으로 교육부 방침을 따라야 하지만, 교직원 정원은 안전행정부 관할이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등 타 행정부서에 소속된 고등교육기관은 교육부 지침과는 별도로 운영된다.
재정 측면에서는 지자체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다. 특히 등록금을 절반 이상 낮춘 서울시립대와 강원도립대학, 충북도립대학, 전남도립대학 등은 지자체 재정이 학생들에게 직접 투자되는 만큼 학교가 자체 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었다며 재정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지자체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재정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인천대처럼 법인화를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경남의 두 도립대학인 남해대학과 거창대학의 경우 오는 2016년 초부터 ‘경남도립대학’으로 통합 출범해 2캠퍼스 체제로 운영된다. 학과를 현재 21개에서 17개로 통폐합하고, 교원을 전체 53명에서 48명으로 줄이는 등 2020년까지 경상 경비 35억여 원을 절감하기로 했다. 학생 정원도 20%가량 감축하기로 했다.
두 대학 교직원과 학생, 주민들은 통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내용의 설문조사도 나왔으나, 도립대학 통합을 추진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두 전문대학에 들어가는 보조금이 연간 88억원이라며 통합을 밀어붙인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공립대 보직교수는 "공립대는 4년마다 지자체 장 선거가 치러지고, 당선자의 성향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되기 쉬운 구조이고, 대학 발전계획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라며 "지역 공공교육에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어느 정도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직원 전문성이나 대학 경쟁력 강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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