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이번에는 광화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 건너 광화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광화문안으로 들어 가 두루 거닐어 보고
싶었지만 그 간 꽤나 걸어서 피곤도 하고, 시간적으로도 그럴 여유가 없어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국대사관 앞길로 나와서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촬영하고 주변을 둘러 보면서
시청쪽으로 이동하였다. 조선 초기의 정궁(正宮)으로써 왕조의 상징같은 경복궁(景福宮)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불타고 후대의 왕들은 이를 선뜻 복원하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주로
창덕궁(昌德宮)에서 정무를 보게 되니 창덕궁이 정궁의 역할을 대신해 온 셈이다.
그러다가 조선 왕조 말기 고종때에 이르러 정무를 총리(總理)하든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도 막대한 건축 비용이 들어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쇠약해 가는 조정의 기운을 만천하에 진작시켜 보려는 정치적 야심의 소산으로
거대한 복원 역사가 추진되었다.
이 경복궁을 다시 세우기 위해 대원군이 펼친 비용 조달 시책으로 새 화폐를 만들어 사용
하였다는 것이다. 당백전(當百錢)이니 당오전(當五錢)이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비가 온 직후 세종대왕 동상쪽에서 바라 본 광화문>
아무튼 대원군의 대단한 추진력으로 경복궁은 다시 그 면모를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이 경복궁의 정문이 바로 광화문이다. 선정(善政)의 광채가 널리 백성들에게 미치기를 염원하면서,
지은 광화문일터인데 이러한 기대감이 얼마나 충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광화문 앞 거리를 걸어 보았다.
이 대로(大路)의 중앙에 자리잡은 세종대왕 동상과,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북악산과 경복궁을
배경으로 앞 뒤로 서 있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군주와 문치(文治)를 상징하는 성군(聖君) 세종대왕,
충신과 무공(武功)을 자랑하는 성웅(聖雄) 이순신장군,
두 분의 동상이 시대를 초월하여 비슷한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이 아주 교훈적이다.
또한, 이 동상 지하공간에는 두 분의 발자취와 업적을 나타내는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어진 정치를 펼쳐 조선왕조 오백년을 대표하는 임금 세종의
화려한 치적들을 후세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가슴에 아로새겨 본 받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서 혼신의 힘을 다 해 이를 극복해 나가면서, 애국애족의 위대한 본을
보여 주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우리는 오늘에 되살려 나가려는 범국민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들도 소중하지만, 두분을 통해 배우는 가치관과 그 발자취는
이에 못지 않게 소중한 겨레의 문화유산이라고 확신한다.
두 분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자칭 타칭 지도자라고 하는 분들이 이곳에 와서 역사적인 교훈을 배워, 사회와 국가를 새롭게 하는
일에 헌신해 주어야 할 터인데... 하는 맘이 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세종대왕상에서 바라 본 시청 방향 전경>
그러다가 서서히 어둠이 깃드는 황혼 시간에 가족들의 재촉을 받으면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마침, 교회에서 원고료 대신에 받은 문화상품권이 한 장 있었기에 우리는 교보문고로 향했다.
최근에 간행된 충무공 관련 서적을 한권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메모해 둔 수첩을 펼쳐서 책 이름을
확인하고 서점에서 책을 찾아 보았다. 동행한 딸내미가 바로 책을 집어서 내게 확인하였다.
나는 반갑게 책을 받아들고 계산대로 갔다.
책값 16,000원 중에 일만원은 상품권으로 나머지는 딸내미의 찬조(?)로 책을 사서 흐뭇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교보빌딩 로비 카페에 들러, 차도 한잔 마시며 좀 쉬기로 하였다. 이렇게 밖에서 가족
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였다. 가족이니까 서로 잘 알고 있으려니 하고 지내다 막상 서로간에
대화가 뜸하다 보면 아무리 가까와도 오해와 편견이 생길 수 있다. 그러기에 가족 간 대화는 소중함을
확인하면서 귀가 길에 올랐다.
이곳 저곳을 다니는 동안에 몸은 좀 피곤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름답고 소중하였음을
가슴에 새기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참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