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정적」 연작에 부쳐
칠월이 가고 팔월이 왔다.
달력 한 장이 넘어갔을 뿐, 더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득 어린 시절 뙤약볕 아래 콩밭을 매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의 더위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해가 기울면 식었고, 먹구름이 몰려오면 소나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더위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세상의 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 거리로 나와 울고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울음과 외침으로 오늘의 민주주의도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칠월의 마지막 날에도 기다렸고, 팔월의 첫날에도 기다렸다.
그리고 시루봉을 바라보았다.
매미조차 입을 다문 뜨거운 아침,
참나무에 매달린 몇 마리만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 울음이 내게는 단순한 매미 울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 세 편은 한여름의 기록이면서,
내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풍경에 대한 작은 물음이다.
2026년 8월
이당
팔월의 정적
1.칠월의 마지막 날
칠월의 마지막 날은
팔월의 마지막 날처럼
더위가 한풀 꺾이는 날도 아니고,
시월의 마지막 날처럼
가을이 모두 떠나는 날도 아니다.
이월의 마지막 날,
설매가 꽃망울을 열어
봄을 맞는 때는 더욱 아니다.
칠월의 마지막 날은
달구어진 대지가 숨죽인 불을 토하고
텅 빈 도심의 열섬에 갇혀
삼계탕집 어린 닭 한 마리처럼
찜통 속에서 헐떡이며
열대야의 새벽을 기다리는 날이다.
칠월의 마지막 날은
핏대를 세운 매미의 울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를 흔들고,
인덕션 위에 놓인 솥처럼
부글거리는 밤을
고스란히 팔월로 밀어 넘기는 날이다.
칠월의 마지막 날은
끝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다.
이날과 저 날을,
이달과 저 달을 이어
한여름의 뜨거움을
다음 장으로 넘기는 날이다.
다만 잠시
숨을 멈춘 채
혹시나, 혹시나 하며
넘어가는 달력 한 장을
초조히 바라보는 그런 날인 것이다.
2. 팔월의 첫날
태풍 돌핀도 비껴가고
칠월 마지막 날의 열기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고스란히 팔월로 넘어왔다.
어린 시절
뙤약볕 아래 모자도 없이 콩밭을 맬 때,
머리털이 오그라들 듯 뜨거웠고
호미 끝에서 피어오른 열기는
코끝을 지나 허파까지 차올랐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은
어느새 소낙비가 되었고
한낮의 밭고랑에 엎드린 몸은
더는 견딜 수 없겠다 싶었지만,
그때의 더위는
해가 서산을 넘으면 한풀 꺾였고
멀리서 천둥이라도 한 번 울면
소나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더위는
달이 바뀌어도 물러설 줄 모른다.
칠월이 팔월로 넘어간
이 아침에도
바람은 숨을 죽이고
나무는 잎을 접은 채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때는 하늘을 보며
소나기를 기다렸는데,
오늘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매미마저 울음을 멈춘
이 낯선 정적 속에서
팔월의 첫날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뜨겁게 밝아오고 있다.
3. 시루봉
저만치 북한산 아래
심산이 누운 자리,
그가 바라지 않았을 미래 앞에
풀마저 말라가는데
신천이 여기에서 울었고
민청도 여기에서 울었건만
이제는 아무도 우는 이가 없다.
쌍문동에는
그들이 울던 때보다 더 뜨거운
팔월의 아침에도
매미조차 울지 않는다.
다만 올림픽공원의
그 처절한 울음처럼
시루봉 참나무에 매달린 매미 몇 마리
목에 핏대를 세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