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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일한 비결
본문 : 골로새서 3:18-25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한 평생 도예의 길을 걸어온 장인이 있었습니다.
장인에게는 뛰어난 수제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스승 밑에서 10년 동안이나 배웠지만 도저히 스승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님을 뛰어넘을 수 없던 제자는 스승님의 비법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 가끔 물어보았으나 스승님은 그럴 때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흙을 반죽할 때는 부모님을 안마해 드리듯이 정성을 다하고, 모양을 빚을 때는 연인을 다루듯이 사랑을 다하고, 유약을 바를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듯이 정성을 다하고, 가마에 넣을 때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 자녀를 지켜보듯이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님에게는 다른 비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늦은 밤 구석진 상자를 꺼내어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스승은 세상이 떠날 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제자를 불러 두루마리가 담긴 작은 상자를 물려주었습니다. 제자는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에는 “흙을 반죽할 때는 부모님을 안마해 드리듯이”로 시작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처럼 신앙에도 왕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라는 유일한 계명을 힘써 지키십시오. 아멘
* 기도: 주님, 주님이 말씀하신 가징 큰 첫째 계명을 힘써 지키게 하소서.
* 묵상: 기본적인 주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기본에 충실한 삶
본문: 히 11: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 5;12)
어떤 부인이 가정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예수님 계신 하늘나라로 데려가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원대로 해주겠는데, 그 전에 내 부탁을 먼저 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네가 죽으면 장례식이 벌어질 텐데 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정원의 풀도 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풀도 뽑아주고, 꽃씨도 뿌립니다.
둘째, “네가 떠나면 자식이 마음에 걸리니까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아주고, 특식도 해주었습니다. 셋째, “좋은 아내였다고 추억할 수 있도록 사흘만 남편이 무슨 말을 해 말대꾸하지 말고, 열심히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 딱 감고 사흘 동안 정말 그렇게 했다. 이윽고 주님이 오셔서 “이제는 하늘나라 갈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 깨끗이 정돈된 집안, 남편과 자녀들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그런 자기 집안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이 여인은 ‘아! 내 집이 이렇게 좋아졌구나! 떠나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산에서 길을 잃으면 골짜기를 헤매지 말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길이 보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방향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입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기본으로 돌아가라, 서로 통하는 말입니다. 시선은 높은 희망의 봉우리에 두되, 생각은 늘 처음의 자리를 잘 돌아보라는 말일 것입니다. 희망의 봉우리에 서면 막혔던 길도 보이고, 처음의 자리에 서면 끝난 줄 알았던 길도 다시 열립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것을 잊어버리면 결국에는 유익보다 불이익이 초래되고 맙니다. 주위에 이것을 지키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을 쫓아가다가 낭패를 당하는 이를 너무나 많이 봅니다. 이것은 ‘바로’ 기본입니다.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기본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가령, 신호등 앞 횡단보도에서 푸른 신호등일 때 손을 들고 걷는 것 밥을 먹을 때 윗사람이 먼저 수저를 들어 찬을 집고 난 후에 식사를 할 것 공부하는 수업시간에는 공부만 할 것 등인데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장 쉽습니다. 대다수 수석 합격의 명예를 안은 이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학생이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교과서와 수업시간을 잘 지켰다고 합니다. 두말 할 것 없습니다. 우리 모두!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아는 지인에게 그리고 도움 받은 모든 분께 연하장 한 장 보내는 것도 기본을 지키는 한 방법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기본 1-10-100」의 법칙이 있습니다. 설계단계에서 잘못을 바로 잡아 기본을 철저히 하면 1달러로 되는 것을 제조단계에서 잘못을 바로 잡을 때 10달러가 들고, 고객의 손에 가 있는 불량품을 바로 잡는 데는 100달러가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기본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10倍, 100倍의 비용을 지불하는 낭비사례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基本」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에 보면 “事物의 基礎와 根本” 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자기 직무분야에서 반드시 알아야 되고 지켜야 되고 실천해야 하고 체질화(體質化)해야 하는 것을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기본은 바로 절차(process)를 지키는 것입니다. 절차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우러나고 몸으로 배어나서 실천되고 습관화 되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문제가 꼬이면 꼬일수록 그 해결책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온갖 무질서와 혼잡함, 부실, 날림공사와 안전사고, 불신, 대립, 갈등, 낭비... 이러한 모든 것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의 의미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평범한 것들이 바로 경영의 기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수익성 없는 사업의 정리나 선택과 집중, 최고경영자의 도덕성과 정도경영, 경영정보의 투명한 공개, 종업원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고객중심 경영...이런 것들이 바로 경영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원칙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최고경영자가 경영에 관한 일반 지식 및 의사결정 방법론을 체득함으로써, 스스로 경영능력을 제고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능력과 경험을 갖춘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것이 되지만, 능력을 갖추지 않은 이에게는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는 것 보다 행동하기가, 특히 일관성 있게 행동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입니다. 솔선수범하여 엄격히 기본 원칙을 준수할 때 종업원들도 마음속에서 우러나 경영자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식당을 개업해 성공하려면 음식이 맛있어야 합니다. 음식맛이 좋지 않고서야 음식점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축구 선수가 기본기가 되어 있어야 하듯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합니다. 기본을 잘 지킬 때 보다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산꼭대기의 대학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생의 기본이 되는 정신과 지혜를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배웠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배웠는데 지키지 않고, 알고 있는데 하지 않는 것입니다. 빨간 불이 켜지면 서고, 파란 불에 건너는 것, 유치원에서부터 배웁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본을 배반하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뒤따릅니다. 1994년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본은 입문이나 기초가 아니라 전부"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초보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전문가들, 고수에 이르기까지 익히고 반복,숙지해야 할 것이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기본적인 삶으로 돌이키십니다. 거기에 인생 건축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순위로 삼으시고 그 말씀을 주의 깊게 경청하셨으며, 인생의 구조적 죄악과 악순환을 가슴 저미게 보시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아버지 하나님을 반영하시며,한 말씀 한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지혜와 능력의 말씀이셨습니다. 단지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까지 지시며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본적인 삶에 충실하셨다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앞날은 믿음의 기본기에 달려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로 믿음으로 기도하고 움직입시다. 어떤 비, 바람,홍수에도 끄떡없는 지혜자의 집을 지어갑시다. 주님의 얼굴에 환하게 피어나는 미소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7장24~27절)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예를 들어 운동 공부 혹은 악기를 배우는 일에도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우리가 꿈꾸는 교회”를 이야기하며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교인들에게 설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기본’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열린 2010년, 모든 신앙인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에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성경을 봐도 완전하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완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부끄러워했던,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혹시 ‘완전함’이 ‘믿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믿음을 정의하는 많은 명언이 존재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존재한다.” 아는 것만큼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아는 것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는 말이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필리핀에서 말씀을 전하던 중 선교사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녀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습니다. 여느 선교사들처럼 자녀교육은 큰 숙제인 모양입니다. 한국어 세대인 부모와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런 문화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한 번은 한국 식당에 갔는데 벽에 ‘물은 셀프(self)’라는 글귀를 보더니, 아이가 틀렸다고 우기기 시작했답니다. 물이 영어로 ‘water’지 어떻게 ‘self’냐고….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때 이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왔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아이는 억울하고 분해서 씩씩대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 어떤 놈이 나를 보고 ‘눈 깔아’ 그러잖아. 그래서 물었어. 눈을 어떻게 깔아야 하느냐고….” 그렇게 계속 묻다가 맞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닮아갈 수 있을까?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역과 교통 없는 노력이 얼마나 많은 ‘믿음 없는’ 소음을 만들어내는지 모릅니다.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완전함’은 종교적 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체험한 자’의 삶이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나서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처럼, 체험한 자의 삶이 보이지 않습니다. 2010년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
그러면 완전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요?
운동하는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감독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기초부터 다시 해라. 기본기부터 다시 차곡차곡 점검해서 새롭게 너의 미래를 가꾸었으면 좋겠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사도 바울의 고민이 들어있습니다. ‘이제 이쯤 되었으면 남을 가르쳐야 할 만큼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다시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쯤되면 성숙해야 하고,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다시 기본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을 회복하는 순간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음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만일 문제를 발견했다면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오늘의 예배를 통해 기본이 튼튼해지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가정의 기도가 식었습니까? 언제부터 우리 가정에 주님과의 관계성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점점 그 열정이 식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예배를 통해서 신앙의 기초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은 먹을 줄 모르던 단계에서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갖고 귀한 사역의 열매를 거두는 자리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 가정과 교회는 장성한 믿음의 분량의 자리에 올라서야 합니다. 온 식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의 열매와 사역의 능력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식구가 신앙으로 똘똘 뭉친다면 능히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아무리 먼 길도,아무리 오래 걸리는 길도 즐겁고 지루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든 인생길을 가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간다면 늘 신바람 나는 생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의 신앙과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기본으로 돌아가야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교회를 이 땅에 세울 수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교회를 만들어야 사회적·교회적으로 칭찬받고 영향력있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것도 교회로서 기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탤런트 장자연 씨의 자살 사건도 따지고 보면 관련자들이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박연차 회장의 뇌물 리스트 사건도 정치인으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기본기부터 탄탄한 가정.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 말씀 중심의 기본으로 돌아간 교회와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111: 10)
살면서 필요한 것은 모두 유치원 때 배웠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배우는 정직, 성실과 같은 기본을 살면서도 잘 적용만 한다면 살면서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휠라 코리아의 윤윤수 사장님도 자신의 성공의 유일한 비결을 기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윤 사장이 휠라 코리아의 사장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경영 철학인 ‘기본에 충실하자’를 잘 실천한 덕분입니다. 윤 사장이 무역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30살이 넘어서 입니다.
보통 회사에서는 대리정도의 직함을 달고 어느 정도 대우도 받을 나이이지만 윤 사장은 기본부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무역회사의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일을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자신보다 어린 직원들이 선임이었지만 토를 달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다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휴일도 반납하고 일했습니다. 언제나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한 것이 유일한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윤 사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기본에 충실한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비결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규범에 있듯이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도록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 기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근원이 되신 주님!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하소서.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새해가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교회가 어떤 환경에서도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영적 기본기가 튼튼한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과욕을 부리지 말고 기본부터 충실히 다져나가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기초, 기본에 관련한 성경 말씀
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0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0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0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 25)
0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 7, 8)
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3:10- 14)
0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갈4:8)
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
0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0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0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계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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