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섯 바퀴를 달리다, Verity, 에어록, 정리(整理, Organization)》
어젯밤 잠을 못 이루고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그래도 강한 햇살 때문인지 잠이 들은 지 3시간여 만에 눈이 깨었다. (8시 반)
10시 20분쯤 집을 나와 숲길을 걷는다. 조금 걸었는데 왜 가슴에 통증이 오는 거지? 어제 안해가 끓여놓은 보리 차를 물병에 담아왔다. Book Lovers' Bench에 앉아 한 모금씩 마시면서 가져온 삶은 밤도 먹었다. 동산을 올라 반대편 골짜기로 내려왔다.
바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날라와서 내 왼쪽 엄지손가락에 앉더니 좀처럼 날아가지를 않는다. 내가 쳐다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두 개의 더듬이 사이에 있는 긴 실 오라기 같은 입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먹는 것 같다. 내 손 등위에 그 벌레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묻어있었던 모양이다. 이동해야 되었기에 입김을 세게 불어 내 손에서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나는 네가 싫지 않았는데 너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체는 작은 벌레라 할지라도 내 생명의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원 동문 쪽으로 갔다가 숲길로 돌아왔다. 상당히 더운 날씨라 땀도 많이 흘렸지만 몸은 상쾌했다.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베란다에서 편안하게 지냈다.
📚 Verity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true, real, or correct)
Lowen과 감정이입感情移入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럴 때면, 우주복을 단단히 챙겨 입고 에어록(Air-Lock)에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곤 한다. (에어록은 우주인이 우주선 안팎을 드나들 때 통과하는 작은 공간으로 기압(air pressure)이 서로 다른 두 공간의 공기가 서로 통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양쪽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
Lowen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 사람의 숲속에 숨은 것이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맨해튼의 아침, 약속 장소가 있는 Pantem Press 빌딩 맞은편 건널목에 서있다. 자신보다 조금 앞선 남성이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그 남자의 머리가 바퀴에 짜부라지는 순간 피가 그녀의 흰색 블라우스를 빨갛게 물들인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뒤에 서있는 군중들에게 밀려 횡단보도를 건넌다. 출근시간에 바쁜 시민들은 끔찍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재촉한다. 물리적으로는 몇 초 안되는 순간이지만 그녀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생각한다. 똑같은 일이 자기 고향 마을에서 벌어졌다면 지나가던 사람들 중 일부는 비명을 질러댈 것이고 누군가는 지니고 있던 핸드폰으로 911을 부를 것이고 몇몇은 그 남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다가갈 것이다. 내가 그런 화를 당한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지나쳐야 할까. 어쨌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밀려오는 수많은 행인들을 거슬러 걷는 것은 무리였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어떤 한 남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나타낸다. '괜찮아요?' 그녀는 자신의 피 묻은 블라우스를 흘깃 내려다보고 '내가 다친 것이 아니고 저 남자가 차에 치였어요.' 이제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 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는 충격(shock)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Lowen을 부축해 인근 공중화장실로 간다. 여 화장실은 잠겼다. 남자는 남자화장실이 빈 것을 확인하고 Lowen을 화장실 세면대로 안내하고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근다. Lowen은 얼굴을 씻고 블라우스의 피를 물로 닦으면서도 남자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밖에서 화장실 문을 급하게 두드린다. 남자가 '조금만 기다려요' 하고 외친다. 누군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Lowen은 조금 안심이 된다. Lowen의 블라우스가 회복 불가능이라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자신의 흰 셔츠를 벗어준다. Lowen은 이제야 이 남자의 이름이 알고 싶어졌다. Jeremy.
두 사람은 서로의 약속된 장소로 발길을 돌린다.
Lowen은 이제 오늘 아침 9시 15분에 약속된 만남을 이행하러 가야 한다. Lowen은 1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5주 전에 돌아가셨고 이후 모든 활동과 접촉을 끊고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Lowen은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It’s hard to say why I have such a deeply crippling aversion to other humans, but if I had to wager a bet, I’d say it’s a direct result of my own mother being terrified of me.》그러던 어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엄지발가락 위로 한 마리의 개미가 기어오르는 것을 내려다본다. 주위의 어디서도 다른 개미는 찾아볼 수 없다. 너도 외톨박이 개미구나. 너도 네가 있던 세상이 싫어서 다른 세상으로 나온 거니? Lowen은 그 개미가 자신의 칩거를 끝내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러던 중 Corey의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새로운 오퍼(offer)가 있으니 내일 아침 9시 15분 Pantem Press 빌딩 14층에서 봐.' 한때는 사랑도 나누었지만, 매정할 정도로 사무적인 Coray는 Lowen의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의 말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세도 내야하고 살기 위해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자의 큰 셔츠를 바지 밑으로 밀어 넣어 최대한 감추어야 할지 뉴욕의 새로운 패션인양 큰 셔츠를 펄럭이며 다녀야 할지 옷매무새를 거정하면서 Pantem Press 빌딩 로비에 들어섰다.
'멋있는 셔츠네요.'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예, 이 빌딩 14층입니다. 묵고 있는 호텔에 가서 여벌의 셔츠를 입고 급하게 왔지요.'
◇◇◇◇◇◇◇◇◇◇◇◇◇◇◇◇◇◇◇◇
저녁 7시쯤 운동장에 왔다. 걸어오는 동안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고통을 억제하는 것일까.
오늘 드디어 트랙 다섯 바퀴(즉 2km)를 연속으로 달렸다. (이후 휴식한 후 두 바퀴를 더 달렸다.) 자신감이 상승되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지 오늘이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정리를 하고 샤워를 했다.
무언가의 시작이 있다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 정리整理라고 생각한다. 난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정리(Organization)가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도 정리의 다른 표현이자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항상 정리와 청소를 한다. 항상 시작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로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