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07-가정의학과 의사 마투린에게 남성 환자 대니가 새로 찾아온다. 대니는 늘 잠을 설치고 기분이 들쑥날쑥하며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증상을 설명하는 동안, 17세인 의붓딸과 관련한 성적 환상을 묘사한다. 가끔은 밤에 일어나 잠자는 의붓딸을 지켜본다고도 털어놓는다.
“실제로는 아무 짓도 안 할 거예요. 99퍼센트 확신해요.” •••
마투린이 사는 주에서는 의사가 보기에 아동 학대나 방치가 ‘합리적으로 의심’될 때 주정부의 아동 복지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마투린 박사가 이 사실을 신고해야 할까?
책에서 후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가 합리적 의심을 품는다면 무조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의심할 만한 사례인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의사의 몫이다. 만약 신고 후 조사하였을 때 의사의 생각보다 덜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의사는 애꿎은 집안을 박살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이 사례를 살펴보았을 때, 만약 내가 의사였다면 환자가 상담에서 스스로 참기 힘듦을 고백하였을 때, 못해도 의붓딸에게 자신의 성적 환상에 대한 언질을 했거나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을 때 신고하였을 것 같다.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 환자 스스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으며, 참아야 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기에 무언가 사건이 갑작스럽게 일어나지는 않을 듯 싶다.
2부 09- 휴는 열여덟 살 때 신나치 패거리에 가담했다가 총격전에서 그만 상대 패거리 한 명을 죽이고 만다. 이 때문에 고의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1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3년을 복역했을 때 판사다 세부 법조항을 근거로 그를 풀어줬다. 교도소에 있을 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던 휴는 출소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생물학과 물리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졸업했다. 이제 27세인 그는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다. 응시 원서에서 휴는 지난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이제는 백인우월주의와 완전히 손을 끊었다고 해명한다. ••• 의학전문대학원은 지난날 폭력을 휘두른 휴의 입학을 허락해야 할까?
최근 비슷한 맥락의 사례들이 눈에 자주 보이기도 했고, 확실하게 단정지어 말 할 수 없다는 부분이 깊게 생각하게 만들어 이 문단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사례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휴의 살인이라는 죄명과 의사의 대중적인 인식 간의 엇갈림이 너무 크다는 점일 듯 하다. 사실 휴가 정말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도 없고, 거짓말이라고 해도 겉으로 보았을 때 당장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의사의 마음가짐이야 둘째치고 어쨌든 의사가 된 이상, 환자를 치료한다는 제 일만 똑바로 하면 될 것이다. 휴에게도 원하는 직업을 가질 권리는 있다. 하필 그 직업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것이고, 휴는 과거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며,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리기에, 휴가 전문 대학원에 진학을 해도, 혹은 하지 못해도, 어딘가에서 반발은 확실하게 일어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