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손진숙
보름 전이었다. 볼 일이 있어 A읍에 갔다. A읍에 간 김에 옛날 잔치국수를 먹다가 맞은편 대서소에서 도장 새길 생각을 했다.
몇 년 전에도 A읍에 와서 국수를 먹고 도장을 새긴 일이 있었다. 한글이 통용되는 시대에 한자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한글로 새긴 게 탈이었다. 사용하다 보니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글자라 신비감과는 멀었다. 도장에 무슨 신비감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적당히 낯설고 조금은 감춰지는 맛이 있어야 더 끌릴 테니까. 그런 연유로 한자 도장을 갖고 싶었다.
사실인지, 자찬인지, 그분은 "딴 곳엔 도장을 직접 손으로 새기는 데가 없다"고 했다. "나도 곧 그만둘 것" 이라고도 했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이제 수작업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처지인가.
지금 사는 도시에도 도장을 새기는 곳이야 군데군데 있지만 굳이 그곳을 택한 이유는 내가 태어난 마을 근처라 고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한번 믿음이 가면 전적으로 신뢰하는 나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분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친근한 모습이었다.
재료들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나마 무난해 보이는 것은 난蘭 무늬에 뚜껑이 자력磁力으로 닫히는 것과 용龍 무늬 장식에 손으로 뚜껑을 여닫는 것이었다. 난 무늬에 자석 뚜껑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장점과 단점을 교묘히 결합해 놓았다. 무엇이든 완전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난 무늬를 고르려니 자석이 걸리고, 자석 아닌 것을 고르려니 용 무늬가 마뜩잖았다. 잠시 갈등의 그네를 타다가 용 무늬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석 아닌 점에 끌려 고르게 됐다.
도장 하나를 찾기 위해 A읍까지 가기가 번거로워 계속 미루고 있다가 오늘에야 친구와 바람도 쐴 겸 나서게 되었다. 값을 치르고 차에 올라 살펴보니 내가 고른 것과 다른 자력으로 뚜껑이 닫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쪽에서의 착오나 실수가 분명했다. 확인하니 당황해 하던 아저씨는 "마음에 들어야 한다."며 내가 골랐던 것으로 다시 새겨 주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차가 A읍을 벗어나자 갈등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어찌되든 아저씨의 실수이니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재질이 단단해 2시간이 더 걸린다."던 아저씨의 말이 맞붙어 힘겨루기를 했다.
내가 너무 야박한 게 아닐까. 새겨진 도장은 어쩌면 나와 인연이 닿아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도장을 찾으러 또 A읍까지 와야 한다는 일도 성가시다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내 한마디면 아저씨가 다시 도장을 새기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저울질 끝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아저씨, 힘드실 텐데 새긴 그대로 할게요."
"고맙다. 나무 막도장 한자로 하나 더 파 주겠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게 마련인가. 처음부터 자석을 반대하던 친구가,
"너 같으면 장사하기 쉽겠다."
한마디 던지고는 차를 돌렸다.
어수선하던 마음이 일순 고요해졌다. 잊고 있었던 갈등이 집에 와 도장을 보자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자력에 대한 거부감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자석의 성질에 의해 철컥 닫히던 뚜껑이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도장 임자인 나의 손길은 아랑곳없이 저들끼리 눈이 맞아 희희낙락 찰싹 달라붙는 꼴이었다. 아니꼽고 밉살스러웠다. 갈등은 줄기차게 달라붙는 찰거머리 같았다. 얽히고설킨 거미줄의 근성을 닮았다.
그런 한편에선 '힘드니까 다시 새기지 말라.' 한 것이 불과 한두 시간 전인데 또 흔들리다니. 이렇게 마음이 간사해서야. 머리 드는 갈등을 애써 잠재운다. 쓰다가 정 싫으면 도장을 새로 새기는 한이 있더라도.
결심이 도장처럼 새겨지자 감각이 밝아져 여름의 향취가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창밖으론 유난히 맑은 하늘이 보이고, 어디선가 등꽃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