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그만두기 한달전 부터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러 주말마다 이곳저곳을 다녀보았다. 나는 음식장사를 해보려 계획했다. 먹는 장사가 제일 쉽게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음식 만드는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특히 일요일이면 라면이나 짜파게티 같은 분식을 직접 끓여 가족과 함께 먹었다. 내각 끓인 라면을 먹으며 가족들은 라면은 무조건 아빠가 끓어야 맛있다고 칭찬했다. 나는 떡복이도 도전했다. 떡과 어묵, 파를 집어넣고 떡복이를 만들어 내면 맛있게들 먹었다. 나는 떡복이 장사를 해보기로 결졍했다. 집에서 맛있게 먹었다고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신당동 떡복이 골목으로 현지 답사를 갔다. 떡복이골목을 걸어보며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2층 건물에 프랜차이즈 간판이 있어 들어가보려 했으나 토요일이라서 문이 닫혀 있었다. 또 다른 음식은 잔치국수였다. 나는 국수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국물만 잘 우려내면 별다른 고명없이 맛이 있었던 같았다. 처음 시작하는 음식장사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이 좋을것 같았다. 집 근처에 행주산성이 있었고 행주산성 인근에 유명 잔치국수 집이 여러개가 있어 국수를 먹어보러 한참을 다녔다. 일산 근방에 국수집이 나와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상권이 좋지 않았다. 단골손님은 어느정도 있었으나, 내가 끓인 국수를 좋아해 줄지 알 수 없었다. 자영업을 한다고 하면 음식장사를 생각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차린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할것 없으면 음식장사나 하지" 이런 말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음식장사가 차리긴 쉬어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았다. 떡복이만 해도 어떤 손님을 대상으로 장사를 할것인가를 고려해봐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처럼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것인지, 아니면 성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것인지에 따라 음식맛, 맵기정도를 조절해야 했다. 가격도 천차만별로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라면 조금 싼 가격의 떡복이를, 성인을 상대로 한다면 즉석떡복이 처럼 직접 끓여 먹으며 단가가 높은 떡복이를 고려해야 했다. 나는 떡복이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팔려고 했다. 그래서 상호도 "매운떡복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줄여 "매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떡복이 하나만 가지고 승부를 보기가 쉽지 않을것 같았다. 잔치국수도 많은 양의 국수를 퍼지지 않게 끓여내야 하는데 3~4인분만 끓여본 내가 많은양의 국수를 끓여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국수를 끓여 차가운 물에 담가서 빨래 빨듯이 전분을 털어내야 하는데 추운 겨울에 찬물에 손을 담근다는 것이 두려웠다. 국수는 김치가 맛이있어야 하는데 집에서 김장을 담글 때 옆에서 김치속이나 먹고 수육이나 먹었던 내가 매일 김치를 담그는것도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부동산을 하고 있는데 자영업을 하기가 쉽지않다는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모든 자영업 사장들은 나라에 애국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특히 직원을 1명이라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라면 그는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퇴직이 확정된 상태에서 이것저것을 알아보니 쉬운것이 하나도 없었다. IMF 직후라 하던 장사도 문을 닫고 눈물의 땡처리를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내가 잘못 생각한것인가? 나는 퇴직신청을 후회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 나갈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같이 근무하던 차장이 나를 불렀다. "퇴직하면 뭘 할거야, 음식장사를 할거라고 이 사람아 당신이 무슨 음식을 만들어봤다고 음식장사야, 음식장사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쉬운게 아니라고 음식장사를 시작해서 성공할 확률은 10% 미만이야, 은행업무만 했던 사람이 오랜시간 음식장사를 했던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할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어봐" 라면서 책 한권을 내게 주었다. 그 책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부동산 경매와 관련된 책이었다. 나는 주택은행을 다니고 있었고, 은행에서 민법, 민사소송법등을 배워서 일반인보다는 많이 알고 있었다. 은행 대출이 연체되어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고 그 부동산을 유입(채권자가 다시 구입하는 행위)도 해보았다. 은행을 다니며 경매절차에 따라 경매법원을 출입하며 배당금을 받아 온적도 있었다. 그래서 경매가 낫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그 책을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현직 경매계장으로 경매와 관련되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내가 찾던일이야" 경매투자는 그 당시 내가 가장 잘알고 있는 일이었으며 은행업무와도 관련이 있었다. 은행업무와 관련이 없는 음식장사에 손을 대는것 보다는 경매일을 해보는것이 승산이 있어보였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도 하고, 남들에게 많이 말하기도 한다. 인생살이는 운이 70%고 기가 30%라는 말이다. 어떤일을 함에 있어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성공이 쉽지는 않다. 물론 성공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성공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자금이 투자되야 한다. 그러나 운이 따른다면, 아마도 일일 쉽게 척척 풀려나갈것이다. 그러나 기가 없이는 운을 성공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고 했던가, 잡으려 하면 휙하고 지나간다. 지나가고 나면 그때 그일을 했어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운이 내 눈앞에 있어도 눈을 감아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운이 왔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래서 기가 필요하다. 기(氣, 技) 기운과 기술이다. 운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그 운을 알아차리고 그 운을 바탕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 기가 바탕이 안된다면 운도 사상누각에 다름아니고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하고 기술을 배워햐하고 경험을 쌓아야한다. 복권 1등 당첨이 되었으면서도 알거지가 되고 심지어는 깜방에 구속되었다는 사연을 종종 보게된다. 일례로 복권1등 당첨자를 우리 지점에 데리고와서 돈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연금에 10억을 가입해주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몇일에 한번씩 찾아와 "형님, 술한잔 하시죠"하면서 나를 불러내 술을 샀다. "이 사람아 돈을 이렇게 유흥비로 전부 써버리면 어떡하나" "아, 형님 아직 10억이 남아있는데요" 그 사람과의 인연은 몇개월만에 끊어졌지만, 마침내 연금을 해약해서 다 써버렸던것 같다. 이것은 작은 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운과 함께 "맴피스토 펠레스"가 주위를 어정거리고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퇴직을 하면서 같이 근무를 했던 차장에게 경매와 관련된 책을 받아 읽어보며, 퇴직 후 이 길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다가온 세번째 행운이었다. 첫번째 행운은 은행에 입사 했던것이고, 두번째 행운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했던것이고, 세번째 행운은 퇴직 후 경매투자로 길을 잡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