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어머니
그러니까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생전 처음 호박 된장국을 만들었던 날이었다.
사실 난 어릴적 시절엔 '방랑시인 김삿갓'을 무척 좋아했었다. 그래서 시인이 아닌 그냥 여행 다니는 떠돌이 '방랑 김삿갓'이 되고 싶었는데 자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산 마루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늘 산천에 방목된 소를 몰고 들어서는 이 아들 놈을 위해 뽀글뽀글 된장국 뚝배기를 화롯불에 올려 놓고서는 잿불을 덮어 꺼질듯 말듯 불을 낮추어 놓고서 기다리시는 그 때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텃밭에 나가 풋고추 두어 개를 따서 대파와 함께 설겅설겅 썰어놓고 다진 생마늘을 곁드려 담은 양념감 종지를 들고서는 반쯤 열어놓은 부엌 문을 연신 보다말다 아들이 보인다 싶으면 그제야 부젓가락으로 잿불을 파헤쳐 다시 불을 돋구고는 된장국을 부산히 끓이면서 양념감을 때맞추어 넣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프도록 선하다.
남달리 속정이 두터우셨던 그런 어머니께서 누워 계신지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2년. 아 ! 얼마나 갑갑하랴. 오늘도 이블 바깥으로 내민 방아깨비 같은 다리 모습이 안타까워 마음이 탄다. 이런 어머니께서 아니? 오늘따라 입이 싱거우신 지 '호박된장국'이 드시고 싶단다. 무엇이든지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얼른 작대기로 담 바깥 호박넝쿨을 이리저리 뒤져댔다.
때 늦은 10월 하순경이라 시들시들한 호박넝쿨에는 좀처럼 호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10리나 넘는 먼 시장에 가서 살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내가 가꾼 호박으로 해드리고 싶었다. 괜히 엊그제 애호박을 넣어 감자 부치기를 해먹었나보다. 하긴 농사래야 내가 먹을 만큼만 가꾸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 그렇다 감나무 아래 밭가에 가보자. 반신반의하면서 찾았더니, 다행히도 까치 대기리만 한 놈을 반갑게 하나 딸 수 있었다. 평소에는 호박이라고 업신여겼는데 궁할 때 귀중함에 새삼 느끼는 비한 마음이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서툰 솜씨로 달걀 만한 감자 한 개를 냄비에 썰어 넣고는 풀풀 소리날 때까지 끓였다. 그리고 서는 된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넣은 다음 썰어 놓았던 호박에다 함께 멸치를 조금 넣었다. 잘 되어 가는지는 모르지만 잠깐 사이 구수한 된장 냄새가 제법 코끝을 벌름거리게 만든다.
글세, 옛 맛을 잊을 수 없어 회귀한다는 연어 생각이 괜스레 다 난다. 드디어 된장국을 들어내기 전에 듬성듬성 썰어놓았던 풋고추와 파를 넣고는 냅다 숟가락으로 한 번 휘 저어대고는 마무리를 해버렸다.
갓 넣은 향긋한 특유의 풋고추와 파 냄새가 다시 방에 스민다. 어설프게 차려놓은 진지 상에 노모께서 호박 된장국에 수저가 먼저 가시면서 입맛을 다신다. 아, 호들갑스런 삶 보다 그저 이렇게 보통으로 가식 없는 자연의 삶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와 닿는 듯 하여 막걸리 한 잔에 잠시 명상에 잠겨 긴 회포를 풀었던 그 때의 생각이 떠올라 오늘 된장국을 만들면서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