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시조 계간평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시조집 그 집뿐이네
노창수(시인 · 문학평론가)
시조의 소재가 궁해질 땐 역사적 사실을 골라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할 일은 [사실:느낌]의 대차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8:2나 7:3이면 사실에 치우쳐 시답지 않을 것이다. 6:4나 5:5로, 아니면 경우에 따라 4:6정도도 괜찮을 듯 싶다. 흔히 역사적 사실만 나열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느낌만을 쓰는데, 전자는 시다운 느낌이 적고, 후자 는 유치한 감상(예, 원시적 감탄)이기 십상이다.
역사적 사실의 서술에 치우치는 시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말하자면 독자가 이해해야 할 최소 자료는 소개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독자 불신감 심리가 작용하는 까닭이다. 어떤 시인은 지나친 사실의 상세화로 역사 공부 시간에나 설명될 법한 내용을 자수율만 맞춰 시조라고 내놓는다. 일부 시인들은 그도 부족한지 각주脚註 를 심하게 달아 무슨 '고증자료철' 같은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기행시조도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다. 헌데, 다음 시조를 보고 필이 왔다.
바람의 동쪽에는 쇠 냄새 묻어왔다
자욱한 흙먼지 속 말발굽 솟구치는
아라국 철기병사들 실루엣이 떠돈다
바람의 북쪽에는 홍련이 날아왔다
칠백 년 자궁 속을 까마득히 기다리던
귀고리 영롱한 소녀 치맛자락 끌린다
죽간에 박혀있는 촘촘한 별의 내력
듬성듬성 이가 빠져 골다공증 앓고 있다
다 삭은 구름 한 조각 고분위를 맴돈다
-김덕남 「말이산의 기억」 전문
첫수의 초장 "바람의 동쪽에는 쇠 냄새가 묻어왔다"라는 단언斷言과 둘째 수의 초장 "바람의 북쪽에는 홍련이 날아왔다"의 단언 사이의 대구對句 [동쪽] 과 [북쪽], [쇠냄새]와 [홍련], [묻어왔다]와 [날아왔다]를 배치한 것으로 보아 이 역사 시조가 사실만의 진술이 아닌, 시인의 재해석적 입장으로 다루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셋째 수의 초장과 중장 즉 "죽간에 박혀 있는 촘촘한 별의 내력"으로부터 "듬성듬성이가 빠져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에 이르는 단계의 연 유와 결과도 주목해 볼만하다. "촘촘한 별"과 "골다공증"의 이질적 대상에는 시각의 변화, 시대의 차연성差延性을 엿볼 수 있다. 결국 "말이산의 기억"에 아라가야는 “삭은 구름"이 맴도는 쇄잔한 기억속에서만 잔존한다는 사실이다. 시인이 주에서 밝힌 바대로 '말이산'은 현 아라가야阿羅加耶의 산으로 시대의 정치지배층들이 묻혀있는 걸로 추정되는 고분군이다. 현재 남아있는 무덤 위상으로 한때 초강대국이었다는 것에 착안, 고사古史의 주체화主體化를 시도한 작품이겠다. 이 시조가 갖는 매력이란, 사유를 다음과 같은 극한점에 놓고 화자의 여유를 독자에게 베푼다는 점에 있다. 즉 시[인의 사유 →독자의 희망]의 연유 방식이겠다. 예컨대 "자욱한 흙먼지 속[침묵]→말발굽 솟구치 [희망]"거나, "칠백년 자궁 속[침묵]→까마득히 기다리[희망]"는 것과 같은 구절을 통해 침묵하는 절망들에 대해, [희망]의 답사踏査를 시도하고 역동화逆動化한다. 하니, 김현자 평론가가 현대시의 서정과 수사에서 소월시에 적용한 바 있는 [극적 구성의 시학]인 셈이라면 어떨까 싶다.
이외에도 각 수의 종장, "아라국 철기병사들 실루엣이 떠돈다"(첫수), “귀고리 영롱한 소녀 치맛자락 끌린다"(둘째수), "다 삭은 구름 한 조각 고분위 를 맴돈다"(셋째수)에 활용된 동사 어미를 진행형 버전을 차용, 생동감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역사물 시조이기에 과거형으로 쓸 법한 상식 틀을 깬 것이다. '아라국'의 부흥기를 상징한 "철기병사", "귀고리 영롱한 소녀", "구름"을 환기시키는 데 있어서도 '재생' 시스템을 시어별로 장착한다.
사라진 역사는 언젠가는 재현된다지만, 그 시대가 지닌 정서적 부활을 시도하는 건 시인의 영혼에 깃들인 의지로써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의의를 짚을 수 있겠다.
하략...
- 《나래시조 》 2018.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