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공동체, 청신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린도전서 2장 4절)
1971년도에 대중목욕탕을 짓고 운영 중이던 나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주일 성수 문제가 마음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집사였던 나와 우리 가족은 주일에 교회를 갈 수 있었지만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종업원들에게 주일에 일을 시키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영구적이고 안전한 직업이라는 데만 중점을 두고 주일 성수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목욕탕 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이 실수였다.
대중목욕탕은 주일에 문을 닫고서는 사업이 불가능했다. 주일에는 손님이 평상시의 세 배 가까이 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문을 안 열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업이 잘되면 잘 될수록 고민이 커졌고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두려웠다. 주일만 되면 이 문제가 떠올라 기도하던 중에도 주일 성수가 마음에 걸렸다. 나처럼 대중목욕탕을 경영하는 두 분의 믿는 형제들을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 두 분도 나와 똑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다시 만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목욕탕을 짓기 전에 주일 성수 문제를 생각하고 대중목욕탕 사업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이제 많은 투자를 해 놓고 난 후라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세 명이 자금을 모아 개척교회라도 짓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나의 제안을 받은 두 사람은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서라도 주일에 영업하는 것을 속죄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를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청신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였다. 수소문 끝에 믿는 형제들 중 목욕탕 영업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니 두 집이 더 있었다. 모두 다섯 세대가 모여 모임을 정식으로 발족시키고 간단한 약관을 만들었다. 그 후 목욕탕 경영은 안 하지만 우리 청신회의 선교사업에 동의하는 몇 사람이 더 동참하게 되어 참여 가정은 모두 13세대로 늘어났다. 청신회는 초교파적 모임이었다. 회원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자, 맑은 물을 마시자, 맑은 생활을 하자”는 표어를 정하고 매 달 첫 주 화요일에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가까운 산이나 명승지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다졌다. 맑은 공기를 마시자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자는 것이요, 맑은 물을 마시자는 것은 성령을 받자는 것이며, 맑은 생활을 하자는 것은 이 세상에서 깨끗한 생활을 하자는 뜻이었다.
청신회는 모일 때마다 자발적으로 헌금을 모았고, 그 돈으로 3년 후에 인천시 간석동에 대지 200여 평을 구입하였다. 여기에 교회 건물 80평을 지어 청신교회로 명명하였다. 첫 번째 개척이었다. 이때 청신교회의 소속 교단을 어디로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우리 회원 중 장로교 신자가 제일 많아서 장로교(통합 측)로 정하였다. 그런데 땅을 사고 교회를 지어 소속 교단의 유지재단에 가입을 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우선은 개인명의로 짓자는 의견과 처음부터 유지재단에 가입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주장이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흔히 교단의 명의로 짓지 않고 개인의 명의로 교회를 세웠다가 후일 고통 받는 교회가 많은 걸 보았던 나는 원칙대로 유지재단에 가입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다행히 의견이 모아져서 장로교(통합 측) 유지재단의 명의로 땅도 사고 교회 건축도 하였다.
그 후 우리는 주일 성수 못하는 것을 다소나마 만회한 것으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제2의 청신교회를 짓기 위해 모금을 하고 기도회를 열었다. 그러나 참여 가정이 늘고 인원이 많아지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였다. 게다가 먼저 세운 청신교회가 교회 내 분쟁으로 진통을 겪고 나중에는 청신회에까지 와서 문제 제기를 하는 상황이 되자 교회 개척한 것을 후회하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하기보다는 미자립 교회를 돕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삼양동에 있는 미자립 교회를 도왔다. 처음에 개척한 청신교회가 잘 운영되어 청신회를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면 제2, 제3의 개척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청신교회의 분쟁으로 개척교회에 회의를 느끼고 11년 만에 해산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주일 성수 하지 못하는 것을 물질로 만회하겠다는 착상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또 눈에 보이는 교회를 짓는 것으로만 충성으로 생각한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생각이었음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렸어야 했던 것이다. 청신회는 해산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회원 간에는 안부를 전하며 지낸다. 서로 교단 간 정보를 교환하면서 교파를 초월하여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