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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의경 설법품(無量義經 說法品 第二)
- 부처님의 설법인 불법은 그 내용이 무엇이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
대장엄보살마하살이 세존께 물으시니“세존이시어.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속히 이룩하고자 하면 마땅히 어떠한 법문을 닦고 행해야 합니까?”
- 지금 미국에서는 대중불교가 힘차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바람직한 일입니다. 출가인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사찰불교와는 달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교리를 멀리하고 스님만 따라서 하면 기독교의 종교의 식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이는 무당종교와 하등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특색은 교리를 알고 신앙을 한다는 점 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사실입니다만 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도들이 교리를 모르고 신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 미국의 대중불교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사찰을 갈 적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말뜻도 모르고 종교생활을 잘하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천육백여년을 그렇게 신앙해온 것입니다. 지금의 미국 불교에서 우리는 교리를 알고 수행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왜 법화경을 수지독송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대중불교의 모태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불자 한 사람 한사람이 다 법사가 되어서 법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다 함께 대중불교를 세워 나갑시다. -
무량의경의 설법품은 부처님의 설법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니 그 내용을 알고 나서
효과적인 공부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알면 그 목적은 자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 무량의경의 경제(經題)가 지니는 뜻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1) “보살이 무량의를 닦고 배워서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지금까지 성(性과) 상(相)이 공적하여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며,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며, 마치 허공과 같이 두 가지의 법이 없다고 관하라.”
(2) “보살은 법의 性과 相을 보지 못하고 옳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서 스스로 육도윤회를 하며 괴로움을 끝없이 받고 있는 것이니 이를 불쌍히 여겨서 이러한 중생을 구원해내고자 하여 깊이 일체의 법에 들게 해야 하느니라.”
(3) “보살은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을 주고 있는 네 가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법에 처음과 끝을 여실하게 깊이 觀하게 하라. 그리고 중생의 모든 근기와 성품과 욕망에 들어갈 지니라.”
(4) “이때 중생의 욕망이 한량이 없는 고로 보살의 설법도 한량이 없으며 설법이 한량이 없으므로 그 뜻도 한량이 없느니라.”
따라서 그 果報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5) “무량의(無量義)는 하나의 법에서 나며 하나의 법은 곧 무상(無相)이라.
무상은 상이 없고 상이 아니니라. 相이 아니며 相이 없음을 실상(實相)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심히 깊고 위없는 대승경전인 무량의경은 문리(文理)가 진정하고 존귀하여 다시 더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무량의경은 본래 한 법인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중생들의 욕망에 의해서 근기를 맞추다보니 이 뜻이 무량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법인 無相으로 들어가서 실상을 보게 되는 것이 무량의경이 요구하는 설법의 목적입니다. 無相은 본 성품에 모양이 없음을 말하고 不相은 수행으로 상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본 성품과 같이 수행해서 모양이 없는 성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實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량의경 이전에는 이 실상을 보이지 않았으나 무량의경 이후에는 이 실상세계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 무량의 경 이전의 경문의 내용
40여년 동안에 모든 네 가지 형태의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그 네 가지는 고(苦)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입니다. 苦란 인간에게는 욕망에 걸 맞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가르쳐 주심이요, 空이란 인생에는 차별이 있다. 그러나 그 차별은 일시적이고 차별을 떠나 그 근본이 되는 진리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설하시었다. 그리고 無常이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며, 無我란 조그마한 자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설하시고
‘나’라는 것은 항상 변하여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자기와 남의 차별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무아라고 합니다. 자기와 남을 초월한 인격이 높은 경지를 말합니다.
無大無小, 無生無滅, 一相, 無相, 法性, 本來空寂, 不來不去, 不出不沒 등은 無相과 無我를 되풀이 한 말입니다.
크고 작음,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니 이는 하나뿐인 상인 일상이며 차별을 떠난 무상입니다. 法性이란 모든 사물의 진실한 성질이고, 法相은 모든 사물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본래의 모습은 공적해서 오고 감이 없고 나타나고 사라짐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에 대하여
◉ 연법(煙法); 연은 따뜻한 것이며, 불교가 비교적 좋은 법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을 이릅니다.
◉ 정법(頂法); 산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경전을 읽으면 높은 경지에 이른 것처럼 느껴지며 이 세상의 어떤 윤리나 도덕이나 다 른 종교보다도 수승하다고 느껴서 수행하고 싶다는 생각 이 드는 수준을 이릅니다.
◉ 세제일법(世第一法); 불교가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제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러한 준비 단계를 지나서 수다원(입류) 사다함(일래) 아나함(불래) 아라한(응공)의 四果를 지나서
벽지불(연각승)의 도를 얻어서 다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는 단계에 이르니 이는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1) 사성제법(四聖諦法) ; 고집멸도(苦集滅道)
(2)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생, 노, 사우비고뇌
(3) 육바라밀법(六婆羅蜜法);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4) 일불승법(一佛乘法) ; 평등세계에 이르는 무위법의 세계 (화엄 법화)
* a.팔정도의 확실한 수행은 팔정도를 더불어 수행하는 것입니다.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완성하는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정념 정정입니다. 팔정도는 바퀴의 여덟 축과 같습니다.
먼저 고제에서‘나는 괴로운 존재이다.’를 분명히 보는 것이 정견이며 팔정도 수행의 시작입니다.
끝내는 열반에 들어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이 명상의 끝인 것입니다.
b.팔정도는 신들의 순수성을 위한 극한 상황의 고행이나 인간들이 무절재한 욕망의 만족을 구하는 양극단을 버리는 중도실상을 위한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神을 위한 극한 수행은 신의 순수성을 혼란스럽게해서 영혼의 혼돈을 가져오며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신흥종교의 대부분이 이것이며 기독교의 휴거도 이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인간들이 단멸론에 빠져서 되는대로 재미있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만족을 구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먹거리, 재미있는 유흥, 술,마약 등을 찾아서 만족을 구하지만 끝내는 만족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립니다. 이들이 병이 나거나 죽엄 앞에 직면하면 더욱 슬퍼합니다.
이러한 양극단을 떠나서 마음이라는 중도를 찾아서 신의 순수성과 인간의 만족하는 방법을 추구하여서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려놓아서 완성하는’ 중도의 실상을 관하는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팔정도의 참 의미이며 이는 불교의 전체를 총괄하는 관법입니다.
* 아라한 四果란
제법무아에 수다원 사타함이 속하고
제행무상에서 아나함 아라한을 이뤄서
의식세계의 무위심을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 십이인연법을 十二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밖의 인연에 따라서 무명에서 우비고뇌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無明만 가지고는 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마음속의 변화는 맞습니다.
“무명이 因이 되고 경계가 緣이 되어서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경계)이 있으니
이것(무명)이 있고, 이것(무명) 이 사라지니 연(경계)이 사라지고, 緣이 사라지니 因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십이인연법에서 연기법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무명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의 주인공은 我相입니다.
* 보살이란 무의식세계에서 습관성인 무위심을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다음은 화엄에 이르러서 일불승을 설하시니 일불승에 이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성문의 단계에서 연각을 거쳐서 보살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일지 제이지 제삼지에 이르는 지(地)라는 말은 부처님의 법을 실행해서 완전히 자기 것이 된 경지를 말합니다. 화엄해공(華嚴海空)에 이르는 52위의 단계를 거쳐서 묘각불에 이르니,
이는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을 이루어서 맨 나중에야 本佛에 들어갑니다.
◉ 십신(十信) ; 불성의 이치와 삼보의 존재를 믿고 따르는 마음
1) 신(信) - 불성의 상주이치를 듣고 환희심을 내어서 믿음을 내는 것.
2) 념(念) - 보리심을 일으켜서 잊지 않고 보살행을 함.
3) 정진(精進) - 부지런히 수행을 함.
4) 혜(慧) - 이지의 바른 판단으로 사도에 빠지지 않음.
5) 정(定) - 모든 망상을 여위고 일심으로 선정에 듬.
6) 불퇴(不退) - 정과 혜를 닦는데 물러서지 않음.
7) 회향(回向) - 닦은 공덕을 남에게 돌려주는 것.
8) 호법(護法) - 삼보의 교법을 보호하며 대승경전을 널리 유통함.
9) 계(戒) - 선업은 행하고 악업은 금단하는 계행.
10) 원(願)- 모든 중생과 더불어 살리라는 네 가지 서원.
◉ 십주(十住) ; 열 가지 머무르는 마음
공간으로 진제의 진리를 보아 통달함으로 견, 사혹을 끊고 마음이 흔들지 아니하고 안주하는 경지
1) 발심주(發心住) -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을 하여서 문득 얻은 진제의 진리인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닌 경지를 깨달아서 발심하는 보살의 보리심
2) 치지주(治地住) - 공의 진리를 본 지혜의 눈으로 종래의 모든 편견을 대치하여 청정한 지혜의 행을 닦는 것.
3) 수행주(修行住) - 앞의 청정한 마음과 행에 의하여 끊임없이 수행을 증진하는 것.
4) 생귀주(生貴住) - 청정한 불성의 집에 난다는 뜻이니 마치 세상사람이 존귀한 집에 나는 것처럼 청정한 불성의 집에 나서 다시는 변두리의 천한 것이나 사견 외도의 집에 나지 않는다는 뜻.
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모든 방편을 구족히 닦는다는 뜻이니 空觀을 성취하므로 그 공관에 의해서 무량한 방편의 선행을 일으키는 머무름.
6) 정심주(正心住) - 空과 방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관으로 지혜바라밀을 얻어서 바른 마음에 안주하는 것.
7) 불퇴주(不退住) - 공, 무상, 무아의 삼매에서 물러서지 않는 마음.
8) 동진주(童眞住) - 空觀을 성취하여 見愛를 끊었지만 이승과 같이 공적에 떨어지지 않고 안팎의
진사혹을 눌러 끊어서 무명혹을 눌러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수행에 욕심과 물듬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머무름.
9) 법왕자주(法王子住) - 칠 불퇴주에서 다시 범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팔 동진주에서 견,사 2혹을 여위고
청정 무념한 동진행을 성취하였으므로 이제 법왕을 이를 왕자가 위치에 오르게 되어 진정한 불자의 자격을 갖춤.
10) 관정주(灌頂住) - 관정은 인도의 풍습으로 왕이 될 왕자에게 태자를 봉할 때 항하수 물로 태자의 정수리에 뿌리어 장차 왕위를 이를 것을 표시하였음과 같이 이상의 십주에 있는 불자는 空, 無相 의 관을 닦아서 이 지혜에 의하여 진, 사혹을 끊고 다시 7 주의 불퇴주에서 범부로 타락하지 않는 지위를 얻었고, 장차 행, 불퇴, 염불퇴를 성취하여 법왕자의 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여기서는 법왕의 위를 계승하는 관정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견혹(見惑) - 근본 진리에 미혹한 번뇌
* 사혹(思惑) - 차별적 사물에 대한 미혹한 번뇌
* 진사혹(塵沙惑) - 사혹으로 인하여 한량없이 번뇌를 일으켜서 사혹보 다 끊기가 더 어려움.
◉ 십행(十行) ; 空의 진제에서 속제의 가관을 익히어 남을 위해서 교화 하는 이타행을 닦는 자리.
1) 환희행(歡喜行) - 공한 이치를 깨닫고서 사견과 번뇌에 동요하지 않아서 열반의 공리를 통달하여 무량한 환희를 느끼는 경지로서, 교법과 선정을 십행의 원천으로 하고 있는 行입니다.
2) 요익행(饒益行) - 세속의 차별상이 진실이 아님을 보면서 중생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겨서 교화하여 요익 케 하는 行입니다.
3) 무위역행(無違逆行)-거슬림이 없는 행은 인욕행을 닦아서 겸손하고 공경해서 어떤 상대방에게나 어긋나거나 거슬리지 않는 行입니다.
4) 무굴요행(無屈撓行)-굽히고 흔들림 없는 行은 위에서 인욕하고 중생을 요익케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져서 그 힘이 어디서나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行.
5) 무치란행(無痴亂行)-어리석고 어지럼이 없는 行은 이미 공리를 통달하였으므로 슬기로워
어리석지 아니하고, 또 가관으로 세속제를 사무치게 보았으므로 어지럽지 않아서 정혜가 구족한 行
6) 선현행(善現行) - 나는 곳마다 항상 불법과 인연이 있으며 나는 곳 마다 불법을 널리 유통시킴.
7) 무착행(無著行) - 집착이 없는 行은 내가 공한 이치에 통달했으므로 나와 나의 것에 일체 집착이 없는 行.
8) 난득행(難得行) - 보살이 얻기 어려운 行을 성취함이니 중생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목숨을 내놓는 등 범부와 二乘으로서는 닦기 어려운 行 .
9) 선법행(善法行) - 법을 설하여 사람을 교화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도록 하는 行.
10) 진실행(眞實行) - 空觀, 假觀이 다 성숙하여서 다시 中道를 발현할수 있는 진실행. (진사혹이 여기에서 다 끊어 짐.)
◉ 십회향(十廻向) ; 십회향에서는 中道觀을 닦는 것이다.
회향이란 1.인연으로 일어난 차별현상을 가관으로 돌리어 중도의 진리에 향해 나가며
2.지전(地前)의 인행을 지상의 과덕으로 향해 나가며
3.자기가 지은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위 세 가지 회향을 목표로 하고
중도 진여실상을 관 하며 그 공덕으로 중도의 실상과 보리를 중생에게 회향함을 그 과입으로 한다.
1) 구호중생 이중생상(救護衆生 離衆生相) ;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여윈 회향으로
육도중생을 구호하되 구호한다는 생각이 없고 그 바라는 바가 없는 회향.
2) 불괴 (不壞) ; 무너짐이 없는 회향은 迷悟인과의 차별상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그 차별상을 一如로 달관하는 수행.
3) 등일체제불(等一切諸佛) ; 모든 부처님과 비등한 회향은 중도관으로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진리를 관하는 바른 생각에 머무르는 수행.
4) 지일체처(知一切處) ; 일체지에 이르는 회향은 시방법계 일체불국토에 이르러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기를 발원하는 회향.
5)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 다함없는 공덕장회향은 일체 부처님을 공양하며 또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여
위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무진한 공덕을 쌓아가는 수행.
6) 입일체평등선근(入一切平等善根); 일체가 평등한 선근에 들어가는 회향은 평등한 선근에 수순하는 회향으로써
空觀과 假觀 의 두 가지 선근이 평등하여 둘이 아닌 중도관으로 둘이 아닌 선근에 회향.
7) 등수순일체중생(等隨順一切衆生);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수순하는 회향은 선악 중생을 평등하게 애민하여
한 불자로서 악한 이를 버리지 않고 선한 이를 특히 친함 없이 평등하게 수순하는 수행.
8) 진여상(眞如相) ; 진여의 참모습을 보는 회향은 공과 유가 둘이 아닌 절대평등의 진여의 실상을 보는 수행.
9) 무박무착해탈(無縛無着解脫) ; 얽힘 없고, 집착 없는 해탈 이란 모든 법의 공과 유가 둘이 아닌 중도관의 지혜로서 인연으로
생긴 한 모든 법이 그대로 공이므로 속세적인 모든 사물과 번뇌 망상에 얽매이지 않고 집착함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
10) 입법계무량(入法界無量) ; 법계에 무량하게 들어간다 함은 중도관의 지혜가 증진되어서 진여의
한 이치를 관하므로 말미암아 법계의 무량한 상을 다 관찰하여 그 실상을 깨쳐 들어가는 수행입니다.
◉ 십지(十地) ; 지(地)란
1. 능히 부처님의 지혜를 내는 경지이며
2. 대비심으로 중생을 짊어지는 마음자리 이므로 땅(地)이라고 합니다.
이에 열 가지 경지가 있으니 따로 떼어서 十地經을 펴기도 합니다.
1) 환희지(歡喜地) - 처음으로 실상을 보아서 성인의 지위에 올라서 무한한 법의 기쁨이 용솟아 치므로 환희지라 합니다.
2) 이구지(離垢地) - 때를 여윈 자리로서 공, 가의 이견을 떠나서 중생계에 들어가지만
마음이 허공과 같으므로 이구지 라 합니다.
3) 발광지(發光地) - 중도의 지혜를 닦아 익혀서 육근이 청정하고 밝으므로 발광지라 합니다.
4) 염혜지(焰慧地) - 無生法忍을 수순하여 모든 법을 관찰하는데 불길처럼 빛나는 지혜를 가진 경지를 말합니다.
5) 난승지(難勝地) - 이겨나가기 어려운 자리로서 무명 번뇌를 극복하 면서 더 어려운 경지를 만났음을 말합니다.
6) 현전지(現前地) - 삼세의 모든 법의 적멸상이 나타난 자리입니다.
7) 원행지(遠行地) - 모든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니 항상 생각하여서 적멸한 곳으로 전진하는 경지입니다.
8) 부동지(不動地) - 중도관으로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들어서 일체의 경계에 부동하는 경지를 이릅니다.
9) 선혜지(善慧地) - 중도의 지혜로 미묘한 用을 나타내는 妙用을 말합니다.
10)법운지(法雲地) - 중도관에 깊이 들어가 부처의 지위에 가까우며
대비의 구름을 일으키어 중생을 두루 덮어 이익케하므로 법의 구름이라고 합니다.
◉ 등각(等覺) ; 십지에서 무명혹을 끊었으나 아직 미세한 근본무명이 있어서 그 무명을 끊고
부처와 비등한 지위에 들어간다는 부처님의 경지이니 이를 등각불 또는 일생보처보살이라고도 합니다.
◉ 묘각(妙覺) ; 근본무명을 다 끊은 최상의 깨달음을 이릅니다. 등각불이 오랜 세월동안 덕을 닦아서 이루는 묘색상입니다.
◉ 본각(本覺) ; 일체 존재가 평등한 세계로 들어가는 절대 평등한 세계이며 이 세계는
이미 인간세계에 존재하여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본래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량의경 이전의 교법은 다 끝납니다.
사실 묘각불과 본래불은 무량의경 이후에 나오는 부처님입니다.
* 무량의경 이후에 나타는 경문의 내용
ㅇ 공(空) ; 일체의 중생심을 따라 그리고 상대적인 사념이 없이 아무런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고 꿋꿋하고 정직한 마음자리.
ㅇ 가(假) ; 십계 삼계의 상을 밝게 보는 것이니 열반의 안온에 들어가는 임기응변의 가동적 마음자리.
ㅇ 중(中) ; 중도의 진여, 바로 그것을 마음자리로 보는 것인데 마음의 절대성 , 영원성을 보는 것입니다.
선남자 아선도량보리수하 단좌육년 득성아뇩다라삼막삼보리
善男子야, 我先道場菩提樹下에 端坐六年하여 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라.
이불안관일체제법 불가선설 소이자하 지제중생성욕부동 성
以佛眼觀一切諸法하되 不可宣說하니라. 所以者何오 知諸衆生性欲不同이라. 性
욕부동 종종설법 종종설법 이방편력 사십여년 미현진실
浴不同하여 種種說法이니라. 種種說法하되 以方便力하니 四十餘年에 未顯眞實
시고중생 득도차별 부득질성무상보리
이니라. 是故衆生이 得道差別하여 不得疾成無上菩提라.
중생의 성품과 욕망이 갖가지 이므로 40 여년 동안은 방편을 설하시고 진실을 설하지 않아서 오히려 중생들이 무상보리를 빨리 이루지 못한 까닭입니다. 사십여년을 방편설만 하시고 미현진실(未顯眞實)하시었으니, 이제 때가 되어서 중도실상의 부처님 본회의 법문을 하시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은 진실교이고 나머지는 방편교입니다. 무량의경 이전의 경문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법문을 설했으나(수타의의 법문) 무량의경 이후에는 중생들의 물음이 없이 부처님 자의 설하시는 무문자설이 이뤄집니다.(수자의의 법문) 이는 부처님의 본회가 법화경에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며,
무량의경 이전의 경전은
법화경을 설하시기 위한 준비작업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설법하시는 순서와 내용을 점검하면서 불교가 목적하는 궁극적인 자리를 아는 것은 여간 중요한 일입니다.
그 내용이 무량의경의 핵심입니다. 부처님의 덕행을 알고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알고 나서 목표하는 바를 지향해서,
일향으로 수행하는 사람의 공덕을 다음 장에서 또 역역히 설명하십니다.
법화경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와 돌아가신 뒤의 말세 곧 오늘날과 같은 시대를 다 생각하여서 설하신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에는 오랜 동안 설해오신 가르침의 결론으로 법화경을 설하신 것이고, 말세에는 처음부터 법화경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비판적이고 그 성품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법을 펴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에 따라서 능히 알 수도 있고 깊이 들어가면 깊이 들어 갈수록
역시 능히 대응할 수 있는 교리이어야 하기에 그러한 교리는 법화경뿐이라는 것입니다.
ㅇ 삼법 - 연법 정법 세제일법
ㅇ 四果 -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사과
ㅇ 二道 - 소승과 대승
무량의경 이전과 무량의경 이후를 그 내용과 설법과정을 밝게 내다보고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서
본인의 공부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목적 방법 그리고 현재 나의 위치를 보고 수행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공부방법입니다.
사성제법 십이인연법 육바라밀법을 방편으로 닦아서 화엄해공에 이르니 이는 실상입니다.
이것이 무량의경 이전의 모든 설법의 내용이며 이 이후에는 실상법만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상묘법연화경에 들어서 마음이 무량수에 이르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에 나의 위치를 보아야 합니다. 너무 앞서도 안 되며, 너무 뒤처져도 안 됩니다.
마치 거문고의 줄을 알맞게 하듯이 나의 수행의 과정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