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벌떼의 습격에 맞서랴
기억과 추억 사이/발길 닿는 데로 여행
2008-10-11 21:00:35
먹구름이 잔뜩 낀 일요일 아침(21일), 영동지역으로 야생화 기행을 떠났다. 대전을 벗어나자 처음 마주친 산들이 아주 낮설게 다가왔다. 한바탕 빗줄기를 퍼붓던 어제의 구름장이 하늘을 뒤덮어 폭우라도 쏟아질 것 같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자 가까스로 구름장이 풀어졌다. 경부국도를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상촌 진들, 여러 채의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을 벗어나 단 두 채의 집이 산자락아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한 채는 나와 사돈 간 되는 집이었고 한 채는 도시에 사는 누나네가 사놓은 빈집이었다. 일행이 먼저 이 빈집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원래 일행을 초대한 김우열 선생의 댁에 들리기로 했었지만 성당의 미사관계로 한 시쯤 만나자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생 댁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이 빈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곧장 선생댁에 들를 작정이었다. 빈집 주변엔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무엇보다도 밭머리에 자라난 희한한 꽃 몇 포기에 눈길이 멎었다. 붉은 꽃대에 연 노랑의 꽃잎을 활짝 펼친 모습이 신기했다. 한지제조용 원료로 쓰이는 개량 닥풀이란다.
빈집에서 점심을 먹는 회원들
오솔길을 따라 걸을수록 헝클어진 덤불사이에서 야생화들이 경쟁적으로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다. 볼수록 아름다웠다. 김춘수 시인이 " 꽃"에서 읆은 싯귀처럼 이름을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들이 이름을 불러주자 신기하게 꽃이 되는 것 같았다. 조뱅이라고 불러주자 가녀린 꽃이 되었고 송이풀이라고 부르자 곱고 어여뿐 꽃이 되었다. 또한 구절초나 참취라고 부르자 그 꽃 특유의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붉은 열매를 매단 초피나무도 볼거리였다. 외형적으로 보면 산초나무와 비슷한데 줄기에 잎이 마주보고 달리는 것으로 보아 초피나무가 분명하다. 얼마쯤 갔을까. 이상한 농작물이 생기발랄하게 깔린 밭에 눈길이 멎었다. 언뜻 봐도 야콘이 틀림없었다. 그럼 그렇지, 바로 저거구나, 야콘을 심는다고 누나한테 연락이 왔을 때 난 자전거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지,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야콘이 저렇게 실하게 자랐구나, 담배처럼 쭉 뻗은 줄기에 고구마 같은 알뿌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야콘, 누나가 집에 가지고 온 야콘 뿌리를 달디 달게 깎아먹었던 기억이 났다.
곶감 덕장과 우물이 있는 풍경
조뱅이
그러나 야생화 보다도 버섯에 목이 맨 몇몇 때문에 급기야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오솔길을 걸으며 꽃과 오손도손 대화를 하다 말고는 혹시 버섯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일행중의 몇몇이 축사 뒤편 산비탈을 오른게 화근이었다. 더구나 들일을 갔다 돌아오는 나의 사돈의 말에 귀가 더 솔깃해졌던 모양이었다. 원래는 버섯이 많은 산이지만 한동안 가뭄이 들어 버섯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어제 내린 단비에 혹시나 해서 요행을 바란 것도 한몫했다. 나도 야생화도 구경할 겸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버섯을 찾아 일행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생각보단 산비탈이 험했다. 하나둘씩 행렬을 지어 길도 없는 잡목숲을 헤치며 끙끙 오르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나뭇가지를 휘어잡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쭉쭉 미끄러지기도 하며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곧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얼마동안 아무 탈 없이 올라가는 듯했다. 얼마쯤 올랐을까. 바로 그때였다. 내 머리맡에서 산이 무너질 듯 앙칼진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했다. 처음엔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다. 뱀이나 징그러운 벌레에 놀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마구 머리 위로 손을 휘젓는 모습을 보고 말벌의 습격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되었다. 보기에도 엄지만한 몸체를 가진 말벌은 일행의 머리 위를 재빠르게 날아다니며 융단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화가 잔뜩 난 꽁무니를 들어 한 방 한 방 침을 쏘아대는데 여기에 당당하게 맞설 자 아무도 없었다. 일행 중의 한 명이 잘못 벌집을 밟은 죄가 이렇게 클 줄이야.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누군들 제 보금자리를 부수면 가만히 있을 존재가 어디 있으랴. 생명을 가진 것들이라면 한결같이 분노를 일으키는 법이다.
개량 닥풀
더구나 은자처럼 조용히 산에 숨어 살아가는 벌떼들을 건드렸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무작정 산을 침입한 인간들에게 주는 자연의 보복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을 들으며 울창한 잡목 숲으로 몸을 피하면서 어떻게 산비탈을 타고 내려왔는지를 모르겠다. 알고 보니 벌침을 맞은 사람은 세 명이었다. 머리에도 몸에도 골고루 서너 방을 맞았는데 그 강도가 이만저만 아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고 쓰러질 듯 걸음을 걷는데 가만히 뇌두면 치명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벌초를 하거나 약초를 캐다 말벌에 쏘여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떠 도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먼저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 상책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혹시라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안일한 마음을 먹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구급차를 부르게 되었다.
초피나무 열매
송이풀
그래도 대로변에 접한 외딴집이라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산행 초입에 화를 당한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만약에 인적이 없는 험한 산골이나 길이 끊어진 곳에서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희생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한참 만에 구급차가 달려오고 세 명의 환자가 차에 실려 가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동 쪽의 산을 강력 추천했던 일도 후회가 되었다. 운이 나빠 이렇게 된 일을 내 탓이라고 가슴을 쳐봤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때가 되어 빈집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동안에도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병원에 실려 간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가 크나큰 관심사였다. 밥을 먹는 동안 내내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대고 환자들이 안정을 찾았다는 병원 측의 말에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일행을 초대한 김우열 선생 댁을 잠깐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끝마쳐야했다. 김우열 선생과 함께 주변 산을 타려고 했던 일도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참취
영동병원에 들러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진 것을 보고는 뒤늦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벌침을 맞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몇 년 만에 나온 회원이거나 초면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모임에 매달 빠지지 말라고 말벌이 벌침 몇 방을 놓아 경각심을 일깨워준 게 아니겠냐며 농을 하며 웃었다. 그러나 갑자기 급작스런 일을 겪고 보니 이제 험한 산에 들어갈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기에서 흘러나온 노란 즙액이 벌 쏘인데 특효라는 왕고들빼기 한 줌이나 살충제를 필히 지참하고서 말이다. 야생화가 좋아 무작정 산속을 쏘다녔던 일행들이 오늘처럼 말벌떼의 습격을 받아 초토화되기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