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일꾼을 위한 상생철학 강의안
1 진영논리 극복과 생명철학
1) 진영논리·국가주의·생존투쟁: 진영논리는 전쟁논리이고 전쟁논리는 국가주의논리다. 약육강식, 생존투쟁의 진영논리는 동물 짐승의 논리다. 국민주권과 마을자치를 이루는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허물고 인간의 감성, 지성, 영성을 짓밟는 논리다.
2) 상생을 위한 생명진화와 인간다움: 본능적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사는 짐승에서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지닌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생활방식을 졸업하고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안창호)
3) 생명철학: 창조자적 삶을 사는 상생일꾼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 편견과 고집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조건과 상황, 상대와 사회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로운 주체의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2 국가주의 문명의 한계 속에서 형성된 전통철학
1) 한민족의 생명체험과 인도 유럽어족의 국가주의 문명
국가주의문명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한민족의 생명체험: 하늘 열고 나라를 세운 하늘의 자손, 해뜨는 동쪽 아침의 나라,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사랑, 상생의 정신
인도 유럽어족의 국가주의 문명: 땅의 정복자.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은 땅(물질)의 현실과 대상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순수수학과 과학을 발전시켰다.
2) 중국의 농본주의적 전통철학: 땅에 충실한 농업문명, 자연생명친화적 생활철학
중국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자연생명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는 농업본위의 국가문명을 형성하였다. 천인합일, 천지인합일,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는 모두 하늘과 땅의 자연생명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자는 사상이다. 이런 사고에는 근현대 국민, 시민의 주권자, 민주정신에 걸맞는 주체적 자기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인간은 우주, 자연생명세계, 하늘에 귀속되는 존재다.
3) 히브리 기독교의 초월주의 철학과 종말론적 역사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정복, 억압과 수탈 속에서 형성된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문명에 대한 저항적 비판적 초월적 철학을 형성하였다. 또한 불의한 국가주의체제를 심판하고 신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나라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형성하였다.
3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자각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민족의 정신문화적 주체성과 정체성은 땅을 중시한 중국문명과 그 철학의 영향 속에서는 충분히 구현되고 완성될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르며 생명을 사랑하는 한민족의 정신은 서양문명에서 기독교정신, 과학사상, 민주정신을 만남으로써 보완되고 강화될 수 있었다.
1) 민족을 깨워 일으킨 안창호의 교육 독립운동
한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깨워 일으키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가던 1907년에 안창호는 민주공화의 이념을 내세우며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조선왕조의 백성인 한민족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민족교육운동을 벌였다. 그는 청년학생들을 향한 연설에서 도덕과 과학지식을 가지고 나라를 구하자고 말했다. 하늘을 체험하고 본받아 하늘의 차별없는 사랑으로 서로 살리고 서로 기르는 덕(體天同仁 相生相養)을 가지고 사물을 깊고 절실히 탐구하여 그 작용을 다하게 하는 과학지식으로 인간답게 나와 세상을, 나라를 구하자.
중국의 전통사상을 넘어서다: 안창호는 절대정직과 성실을 강조하였고 꿈에서라도 성실을 잃었으면 통회하라고 하였다. 그는 정직과 성실을 가슴에 모시어 들이자고 하였다. 그러나 안창호가 말한 성실은 중국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성실과 다르다.
중국의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성실은 자연 생명 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충실한 성실이다. 그러나 안창호는 나라의 책임적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과 일상생활에 그리고 민족을 깨워 일으켜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힘을 모으는 일에 지극정성을 다했고 충성을 다하였다. 임시정부 일을 할 때 “동지들이 서로 애호함과 형세를 헤아려 오늘의 부족한 형편을 즐기어 붙들고 진행하자” 하였다. 안창호는 하늘의 즐거움을 가지고 땅에서 살았다.
한민족의 약점을 보완하고 고쳤다: 안창호는 서양의 기독교정신, 과학사상, 민주정신을 깊이 받아들여서 한민족의 약점을 보완하고 치유하여 온전케 하였다. 눈에 띄는 한민족의 약점은 세 가지다. 한국어에서 1인칭 주체의 나가 약화되거나 생략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주체성이 약하다. 3인칭이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객관적 공공성이 약하였다. 낙관적이고 현세적인 감정과 의식에 머물러 자아와 현실에 깊이 분석하고 성찰하는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고 깊고 진지한 종교체험이 부족하다.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여겼던 안창호는 1인칭 ‘나’의 주체적 책임을 강조하였으며 ‘나’를 중심과 전면에 내세우는 ‘나’의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는 또한 3인칭이 없는 한민족에게 객관적이고 공적인 정신과 사상, 공공철학을 확립하였다. 안창호는 자신을 깊고 철저히 갈고 닦는 수행을 하고 끊임없이 자기성찰과 반성을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하며 지극정성을 다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정신에 깊이와 높이를 주었다.
애국가 1절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은 물질과 육체, 욕망과 감정, 의식과 이념을 꿰뚫는 얼과 혼의 사무치는 절절함을 드러낸다. 5천년 민족사에서 가장 사무치는 절절한 절구다. 이것은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깊고 높은 말씀이고, 모든 자연주의, 생태환경주의를 돌파하는 정신적 초월주의다.
2) 민주적 주체를 확립한 유영모의 영성철학
오늘의 철학: 일찍이 1918년에 쓴 ‘오늘’이란 글에서 ‘지금, 여기, 나’를 강조하는 오늘의 철학을 정립하였다. ‘오늘’ ‘내’가 ‘여기’에서 몰입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나’와 생명력을 가지고 소통하는 새로운 세계가 끝없이 열린다. 또한 ‘일’을 통해서 여러 다른 세계들이 유기체적으로 만나고 합류한다. “이 붓, 이 종이도 식물과 동물의 목숨은 물론 필공(筆工) 지공(紙工)의 목숨과 피땀으로 된 별세계에서 나온 물품이로다.” 모든 일들에는 “진리가 있고 도리가 있으니···그 진리를 살펴 잇고 그 도리를 밟아 행하면 족하다.” 일 속에서 새 세계가 열리고 유기체적인 전체 생명과 합류하고 영원한 진리를 이어가고 도리의 길을 간다.
내가 길이다: 다석에 따르면 인간의 ‘나’는 “만물의 변화와 발전의 대법칙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다석은 인간을 “변화 발전해 가는 이치의 길··· 그 이치를 파악하고 그 이치를 가지고 다시 하늘을 올라가는 길이 만물의 이치를 아는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고 했다.
‘나’는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며 길이다. 다석은 우주와 생명의 큰길로서의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길은 언제나 환하게 뚫려야 한다...비록 성현이라도 길을 막을 수는 없다...언제나 툭 뚫린 길 이 길로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자전거도 나귀도 말도 벌레도 일체가 지나간다. 이런 길을 가진 사람이 우주보다 크고 세계보다도 큰길이다. 이런 길을 활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가 나다. 그것은 지강지대(至剛至大)하여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고 아무도 견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다.”
시간과 주체(나)의 통일: 유영모의 생명철학에서는 시간과 주체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다석은 ‘이제’를 지금 이 순간의 의미(때)와 ‘이 사람, 나, 제’의 의미(주체)로 이해했다. 다석은 ‘제’에서 때의 제와 주체의 제를 함께 본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제 때를 사는 존재다. 저마다 저의 때, 내가 나의 때를 살기 때문에 흥겹고 신나는 것이다. 그는 또 시(時)를 시(是), 시(詩)와 동일시함으로써 시간의 현재적 주체성(是)과 창조적 기쁨(詩)을 말했다.
하늘의 초월적 자유: 1956년 12월에 유영모는 유교경전 ‘대학’을 강의하면서 ‘친민’(親民)을 ‘씨ᄋᆞᆯ어뵘’으로 풀이하여 씨ᄋᆞᆯ사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풀이하면서 깊은 성찰에 빠졌다. ‘사물을 깊이 탐구하여 온전한 앎에 이른다’는 주희의 해석에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자유롭고 초월적인 주체는 고대 그리스와 현대 서구의 이성철학이나 유교 경전 『대학』(大學)의 이학적 철학, 주희와 왕양명의 이성과 양심의 철학을 넘어서 하늘의 초월적 자유 ‘빈탕한데 맞혀놀이’(與空配享)에 이른다.
귀일(歸一)사상: 다석은 세상을 하나로 되게 하는 통일(統一)은 하늘,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은 다만 서로 다른 주체 인간들과 함께 큰 하나로 돌아가는 귀일(歸一)이 인간의 할 일이라고 보았다.
3) 민주화와 민족통일 운동의 중심에 선 생명철학자 함석헌
인간은 생명의 씨ᄋᆞᆯ: 인간은 우주역사, 생명진화사, 인류정신사의 씨ᄋᆞᆯ이다.
개별적 인간의 나와 전체 생명을 통일하는 참 나: “그것은 누가 보나 언제 보나 진(眞)이요, 선(善)이요, 미(美)다. 그러므로 거룩이다. 그것은 마음이요, 혼이요, 정신이다. 그것을 시간이 부술 수 없고 시간이 도리어 거기서 나오며, 그것을 공간이 감출 수 없고 우주가 도리어 그 품에 안기며, 법칙이 그것을 다스릴 수 없고 모든 법칙이 도리어 그에게서 나온다.”
씨ᄋᆞᆯ사상: 함석헌의 씨ᄋᆞᆯ사상은 ‘우리가 내세우는 것’이란 짧은 글에 압축되어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씨ᄋᆞᆯ은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러 새로 만든 말”이라고 하였다. 그는 ‘씨ᄋᆞᆯ’에서 ‘ᄋᆞᆯ’을 이렇게 풀이하였다.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超越的)인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ㆍ’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內在的)인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ᅟᅠᆯ’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라고 하였다.
초월적인 하늘, 하나님과 내재적 하늘 자아가 씨ᄋᆞᆯ의 삶에 참여하여 인간의 자기해방과 구원의 활동이 일어나게 한다. 하늘의 햇빛과 바람 땅의 흙과 물이 씨알의 생명활동에 참여하여 푸른 잎과 꽃과 열매를 피워내듯이, 생명과 역사(국가)의 씨ᄋᆞᆯ인 인간의 활동에 우주 자연과 생명, 사회와 역사, 영혼과 신령이 함께 참여하여 인간의 해방과 구원을 이룬다.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새 창조, 개벽이 일어나게 하라.: 인간의 몸과 맘, 자아 속에 ’우주의 중심‘, ’과거와 미래가 내다뵈는 점‘, ’시(時)·공(空)이 한데 맞닿는 원추의 정점‘, ’하나님이 계신 곳‘, ’창조와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씨은 (역사의) 어머니인 동시에 아들이다. 시간마다 역사의 심판, 우주의 창조, 역사의 출발이다.”
생각하는 인간이라야 산다: “생각이란 다른 것 아니요, 물질을 정신화 함이다. 없는 데서 있는 것을 창조해 냄이다. 고로 약한 놈, 병든 놈, 불리한 조건에 있는 놈일수록 생각하는 것이요, 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하면 서로 떨어진 것이 하나가 될 수 있고, 생각하면 실패한 것이 이익으로 변할 수 있다.”
시련과 패배가 상생의 기회다.: 함석헌은 말년에 악이 흉악을 부려주면 고맙다고 하였다. 삶과 역사의 모든 과정과 계기가 인간의 자기교육의 과정이고 기회이며 계기다. “실패는 곧 또 한 번 살아보라는 명령이요, 또 이김의 약속이다. 잘하고 이긴 자는 미래가 도리어 없을는지 몰라도 잘못하고 진 자야말로 미래의 주인이다. 진 자야말로 하나님의 아끼는 자요, 잘못된 일에야 말로 진리가 들어 있다.”
앓음에서 앎이 나온다: 함석헌은 앓음에서 앎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죽음을 사랑하지 않고 삶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죽음은 삶의 한 부분, 한 면이다. 잘못된 이론도 진리의 한 부분, 한 면이다.” 함석헌은 병을 앎음에서 앎이 나오고 알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작은 일이나 사건, 우연한 만남과 관계도 위대한 만남과 일의 씨ᄋᆞᆯ, 인연과 계기가 될 수 있고 나를 나가 되게 하는 내 인생의 인연과 계기가 된다. 만물과 모든 일, 사건, 만남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폭력 평화운동 원수사랑: 함석헌은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와 정복을 추구하는 모든 국가주의, 집단주의에 맞서 싸우려 했다. 그의 싸움은 남과 남의 집단을 해치고 죽이는, 파괴하고 거꾸러트리는 투쟁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를 바탕으로 서로 살리고 구원하고 해방하는 싸움이다.
4 상생일꾼의 정신과 철학
진영논리와 당파싸움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성향과 자질을 회복하고 생명철학을 배우자.
한국 근현대에서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룩한 신종교들과 교육독립운동을 일으킨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생명철학과 정신에서 배우자.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사랑을 길러야 한다. 생사를 뛰어넘는 초연한 덕을 가져야 한다. 절대희망과 낙관을 가져야 한다. 실패와 시련에서도 깨닫고 배워야 한다. 생의 참된 주체와 전체의 자리에서 사는 상생일꾼은 자신이 지금은 져도 끝내 이기는 삶을 산다는 것을 아는 이다. 흉악한 상대와 시련, 실패와 패배, 질병과 고난, 못남과 좌절조차도 새롭게 일어서서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여 새 역사를 짓는 계기가 되고 밑거름과 발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