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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기원에 관한 설은
4가지 가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북방설과 남방설이 있다.
1. 북방기원설 : 몽골로부터 전파되었다는 가설. 몽골의 초원에는 "훈촐로오"라는 사람석상이 있다. 요하문명을 연구하는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도 돌하르방은 요하문명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유력한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다.
돌하르방과 훈촐로오의 차이점은 훈촐로오는 포즈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손에 무언가 사물을 들고 있다.
( 제주 돌하르방과 닮은 중국 요나라 시대 석인상 (왼쪽) 오른쪽은 관덕정앞 하르방)
한국 학계는 제주 돌하르방의 기원이 몽골(1206∼1368년)의 한반도 지배와 관련됐다고 믿었는데 아마도 이게 설득력이 있는 모양이다. 제주도에는 다양한 형태의 하르방이 있다. 제주도 돌하르방은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등장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는 제주 돌하르방이 몽골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외형은 요나라때부터 시작되었고 석인상의 외형도 몽골시대까지 이어지면서 몽골 지배기에 제주로 전해졌다고 본다고 했다.
2. 남방기원설 : 남태평양의 발리섬에서 석상문화가 해류를 타고 제주까지 전파되었다는 설로 대만에서 시작된 폴리네시아계 민족들이 태평양을 대항해하면서 전파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1세대 고고학자인 김병모 교수도 이 가설을 주장하였다. 폴리네시아 민족들은 남태평양의 이스터섬까지 이주하여 모아이석상을 건설하였다. 대만, 산동, 일본은 원(原) 오스트로네시아족의 거주지 중 하나로 추정된다.
폴리네시아인의 이동경로
나머지 두 개는 3.자생설, 4. 한반도 유래설 있는데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어느쪽이 맞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제주도는 한반도 전체를 합한 설화보다 몇 배가 많은 설화들이 전래한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도는 북방일까 남방일까?
돌하르방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김석익의 편년체 역사서 ‘탐라기년’에서 ‘영조 30년(1754년) 목사 김몽규가 옹중석(翁仲石)을 성문 밖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옹중은 중국 진시황때 흉노족을 토벌한 장수 완옹중을 지칭한다. 그의 동상은 중국의 성문 앞에 세워졌고 나라를 지킨 주인공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옹중석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원조 돌하르방이라 할 수 있는 오래된 돌하르방은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 삼읍(三邑)으로 행정구역이 나눠졌던 약 500년(1416~1914) 동안 모두 48기가 세워졌다. 그러니까 북방설이 유력해진 이유중 하나가 몽골이전에는 돌하르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몽골지배 이후에 세워졌다. 남방설이 유력해질려면 제주도에서 수 천년 된 돌하르방이 이스터섬의 모아이만큼 나와줘야 한다. 이스터섬은 163.6km²로 제주도가 1,826km² 10배 이상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돌하르방은 몽골 이후에 등장한 48기가 고작이다.
현재 제주도 자치정부에서도 북방설(요(거란)→몽골→제주도)을 밀고 있음.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남방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부족함.